[단비인터뷰] 2단계 창당 앞둔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개혁노선을 표방하는 군소정당 중 하나인 진보정의당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내걸고 지난 4일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당직선거를 치르고 있다. 오는 21일 전당원대회에서 당명 개정을 포함한 ‘2단계 창당’을 선언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엑스(X)파일 사건의 ‘떡값 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지난 2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57)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이 작업을 주도하며 ‘진보의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햇살이 뜨거웠던 지난 5월 31일, 서울 여의도의 진보정의당 당사에서 노 대표와 마주 앉았다.

진보가 자처한 위기, 그러나 회복 확신

 

▲ 2단계 창당 과정을 이야기 중인 노회찬 대표. ⓒ 이대용

“(저의 의원직 박탈과 유시민의 정계 은퇴 등) 최근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시적으로 진보진영에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만회할 수 있다고 봅니다.”

노 대표는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부정 사건 이후 국내 진보세력은 국민적 신뢰의 상실과 내부 분열 등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노 대표는 앞으로 치열하게 노력하면 ‘강력한 진보정당을 우뚝 세우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단다.

“정치인 한 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국민들은 잠깐 반짝하는 걸 보고 금방 판단을 바꾸진 않을 겁니다. 꾸준히 신뢰할 만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활동을 축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 대표는 진보세력이 기본 가치와 철학을 견지하면서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진화했어야 하는데 자신을 포함한 국내 진보정당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변화하는 국민들의 요구와 시대적 과제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젊은 세대의 목소리도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당원선거에서 만 39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 부대표를 1명이상 뽑는 등 젊은 층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차세대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진보정의당이 지난 16일 혁신당대회를 열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기존 구호 외에 ‘북한의 평화체제 역행에 대한 비판’ ‘(기성 노조 외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더 넓게 대변하는 정당’ ‘패권주의를 지양하고 차세대 정치리더를 길러내는 정당’ 등 7가지 대국민약속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 대표는 앞으로 정치권 재편과정에서 홍세화 전 대표 등의 진보신당과 함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서로가 조금씩 양보한다면 함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합쳐 만들었다가 선거부정 사건 등을 겪으며 진보정의당 등이 다시 갈라져 나온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연대 가능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결별 후 어떠한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 자신이 의원직을 상실한 후 해당 지역구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도 “그가 추구하는 가치지향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노 대표는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폭넓게 세력을 모으는 데는 관심이 없다”며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한국사회의 한 축으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한국사회 한 축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노회찬 대표. ⓒ 이대용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진보정당의 지향점이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살아 있는 제도 중에서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보다 더 나은 모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 제도를 한국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노 대표는 또 “선진 복지국가의 정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 폭, 속도를 두고 서로 정당을 달리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진보정당도 경제민주화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정의당은 최근 ‘중소상공인 자영업자위원회’를 당내 조직으로 만들어 ‘불공정거래 피해 온라인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중시하는 것이 진보정의당이 지향하는 가치라고 그는 강조했다. 
  
끊임없이 싸우는 건 ‘내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 없기 때문’

노 대표는 우리나라 정당이 가치, 이념과 상관없이 영남, 호남 등 지역을 기반으로 당선가능성이 높은 곳에 정치인들이 모여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가 ‘제대로’ 재편되는 것이 절실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서 표출된 ‘5.18 왜곡’ 등 극우적 일탈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든가 민주화 보상에 대해 대단히 소극적으로 대응했거든요. 저는 이런 것들이 (일베와 일부 종편의 5.18 왜곡과 같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는 데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국민합의에 기초해서 과거에 잘못됐던 일을 명확히 규명하고, 또 이런 것들이 교육과정에 잘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정치가 할 일이지요.”

노 대표는 지난 5월 18일 광주시 운정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5.18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휘두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해 눈길을 모았다. 군부독재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던 이 노래를 국가보훈처가 참석자 전원의 제창이 아닌 합창단 연주곡으로 제한한 데 대한 항의였다고 한다. 그는 “5·18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면서 그 정신이 담긴 노래를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처럼 옳다고 믿는 일에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노 대표의 ‘결기’는 때로 큰 희생을 부르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안기부(옛 국가안전기획부) 도청 문건에서 삼성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명단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일이 대표적이다. 삼성X파일은 거대 자본이 정치권과 검찰을 매수한 정황을 구체적인 이름과 함께 폭로했지만 ‘불법적인 도청문건을 수사 자료로 삼을 수 없다’는 논리로 혐의 당사자들은 사법처리 되지 않았고, 공익을 위해 이를 폭로한 노 대표와 이상호 전 문화방송(MBC)기자 등만 처벌을 받았다. 노 대표는 “이제까지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지만, 정치권이 (부조리를) 방지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다”며 “특히 사법부에서 힘 있는 사람이 처벌을 면제받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거대권력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며 사법 심판이 엄격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그가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고, 당장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진보정당의 재건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제 마음이 불편해서 못 견디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데, 그걸 알면서 나만 편하게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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