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지식소매상’ 유시민
주제: 삶과 소통

“안철수씨는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강력한 제3당을 만들려는 것 같아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왔다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여의도에 입성한 안철수 무소속 국회의원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유 전 장관은 10년전인 2003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를 시작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으로 양분된 정치적 독과점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 통합진보당 등의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 김혜영
유 전 장관은 10년의 정치를 실패로 규정했다. “옳은 일”이었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라 판단했고 결국 “정치라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기”를 끝냈다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그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다”며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어나갈 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소통은 왜 어려운지에 대한 생각들을 들려주었다.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뛰어넘는 존재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고전 경제학은 행복이 소비량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행동한다’는 믿음 위에 “소비하면 할수록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소비’를 투입하면 ‘행복’이 산출되는 공식에서 타인은 고려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보는 합리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신만 챙기는 이기적이고 고립된 존재이다.

▲ 유 전 장관은 최근 저서에서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을 반추해가며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경제학의 공식은 현실과 다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의 떡은 더 커 보이는 법, 나의 행복은 타인의 소비에 영향받는다. 더 나아가 인간은 자기가 가진 걸 덜어내면서도 행복을 느낀다. 유 전 장관은 “인간이 (경제학 법칙처럼) 단순하지 않다”며 누군가 헌혈하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핏줄에 통증이 느껴지는 불쾌한 상태입니다. 자기 피를 뽑아 남에게 주는 건데 되게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도대체 왜 웃는 걸까요? 저는 이걸 연대의 기쁨이라고 봐요. 연대는 자기가 가진 자원을 자기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복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내 놓으려는 행위입니다.”

임상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이 일∙놀이∙사랑”이라고 말한다. 유 전 장관은 여기에 ‘연대(Solidarity)’를 더한다. 그는 “수십억년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심어 놓은 본성이 연대”라며 “인간은 연대의 기쁨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인간에게 ‘생물학적 본능’인 연대가 있다. 인간은 그렇게 모순된 존재다.

연대를 할 때 최고로 행복을 느낀다

유 전 장관은 논의를 진전시키기 앞서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질문을 던졌다. 치타가 새끼 산양을 사냥하는 사진과 아프리카 수단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낸 ‘수단의 굶주린 소녀’. 이 둘은 무엇이 다를까? 두 사진 모두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자연계를 지탱하는 먹이사슬을 생생히 드러낸다. 그러나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다른 감정을 전달한다.

“우리는 이 아이를 보면서 나를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의 총체가 삶입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면서 느끼는 보람, 기쁨, 환희가 있습니다. 저 아이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이 느낄 거란 걸 우리는 직관적으로 압니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연민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일 수 있습니다.”

▲ 포토저널리스트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수단 내전의 끔직한 참상을 드러낸다.

인간의 대뇌피질에는 특별한 신경세포가 있다. 모방을 통해 타인의 고통, 기쁨, 우울까지도 감지하는 ‘거울뉴런’은 타인과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의 감정을 획득하게 돕는다. 인간이 불행한 타인을 연민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우리가 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텔레파시’ 능력 덕분에 소통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연대를 할 때 사람이 최고조로 행복해지는 이유도 우리 뇌가 그렇게 하라고 계속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요구를 최대한 실현하지 못하면 자기 삶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보는 거예요.”

그럼에도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내 생각과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 나를 대신해 아플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죽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타인과 공감하면서 살고 공감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데도 완벽한 소통과 공감, 이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단독자이자 본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며 근본적으로 정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소통은 어렵다. 

유 전 장관은 사진 ‘수단의 굶주린 소녀’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수단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고 황급히 독수리를 쫓아냈다. 그러나 아이를 구할 수 없었다. 구호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전염병 위험 때문에 신체 접촉이 금지돼 있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을 받고 석 달 뒤 자살한다.

▲ 포토 저널리스트 케빈 카터는 '수단의 굶주린 소녀'를 찍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 영화 '뱅뱅클럽' 갈무리

“작가가 이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상황에 있었고, 독수리는 어떻게 했으며, 아이는 어떻게 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비난을 하거나 칭찬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이 시각정보가 준 충격, 일으키는 감정,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런 정보에서 느끼는 짐작과 추론을 가지고 판단해요.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이에요.”

인간의 뇌는 수렵 채집인 시대에 형성됐다고 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이것이 바람 소리인지 맹수의 발자국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순간의 판단에 삶과 죽음이 갈리던 그 시대에 이를 위험으로 생각한 인간이 생존했을 것이다. 우리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깊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남을 생각하지 않을 때 고개 드는 ‘내 안의 아이히만’

그러나 이러한 성향에 안주해버리면 남을 생각하지 못한 채 의도하지 않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고 “악은 평범하다”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죄를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이 아이히만에게 없었다. 별 생각 없이 공무원으로서 상관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지만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이 됐다. 유 전 장관은 “역지사지 태도의 결여가 아이히만을 만들었다”며 “악은 범속한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보통 악한 일이 벌어지면 책임자를 찾죠. 그러나 거기에는 관련된 언론인, 검사, 판사, 숱한 사람들이 누구를 죽여야겠다는 나쁜 의도가 아니라 그냥 범속하게 별 생각 없이 그 악에 가담한 거예요.”

▲ 독일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시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한나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그를 묘사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년남성이었다." ⓒ Wikimedia Commons

특히 언론은 이러한 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형 오보를 내고 왜곡보도를 하며 사람들 등에 칼을 꽂기 일쑤다. 기자 자신이 접한 상황 속에서 역지사지하지 못하고 느낀 대로 기사를 쓰다가 결과적으로 죄를 저지른다. 그는 “예수가 죽은 이유도 당시 지식과 여론을 만들던 언론 때문”이라며 “이러한 사건들이 무수히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사 이래 모든 인간은 소통 문제로 고민했어요. 여러분도 나와 잘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실망하거나 좌절감을 느끼거나 비관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아요. 내 주변에 몇몇이라도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살 만한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꼭 그렇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소통에는 한계가 있고 비관할 필요가 없다는 유 전 장관의 강연에 질문이 이어졌다. 개인의 소통 문제를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정치 영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문제까지 그냥 두고 봐야 하는 걸까?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을 안 하는 게 아라 자신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며 “소통을 아예 안 한다고 말하는 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 잘한다고 그랬나요? 노무현 대통령은요? 기자들은 한번도 우리 대통령에 대해서 소통 잘한다고 얘기한 적 없습니다. 모든 대통령은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소통의 폭과 방식, 대상이 다를 뿐이죠.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1600만 표 이상을 받나요?”

그는 “소통을 요구하는 게 폭력은 아니지만 불통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폭력”이라며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소통을 하는지, 그런 방식의 소통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얘기하고 대안을 말하면서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통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며 “한계에 부딪쳤을 때 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통의 한계를 인정하면 좌절하지 않고 더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테리아와 공존하듯 ‘극우’와도 함께 살아야

대화가 불가능한 ‘일베’나 ‘변희재’ 같은 극우 성향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유 전 장관은 “왜 소통하려고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유사 이래 그런 집단은 늘 있어 왔고 모든 나라에 있었다”며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총리하는 일본보다 우리나라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보다 그들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아직 괜찮다”고 덧붙였다. 극우가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부당하게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들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건강하다는 것은 모든 박테리아, 세균과 격리돼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라고 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회 속에서 지저분해 보이는 유해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참아줘야 한다고 봐요.”

▲ '삶과 소통'을 주제로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특강을 하고 있는 지식소매상 유시민. ⓒ 김혜영

그는 소통 가능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파벌주의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정파를 근본적으로 나쁘게 보는 것도 매우 폭력적”이라며 “그렇게 나뉘어서 맺는 관계가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물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정치권에서 정파가 신념이나 이념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렵채집인 시대로부터 백만년을 넘는 시간 동안 대부분 150명이 넘지 않는 단체를 만들어 왔어요. 국가는 낯선 단체입니다. 국가로 만족 못 하고 계속 쪼개는 거죠. 마침내 100명 내외 커뮤니티가 됐을 때 귀속감을 느낀다고 해요. 쪼개는 습성은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나쁘게 보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근원적 문제해결 위해 정치하는 사람 욕하지 말아야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헌법대로 작동한 지 겨우 25년이 지난 만큼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유 전 장관은 우리 정치가 “아직 원심분리기 속에서 돌고 있는 상태”라며 “안정된 정치 지형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비하할 필요는 없다. 이상이 높아서 만족을 못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잘 작동하는 수준의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질의응답을 마무리하며 맹자 제선왕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임금이 맹자에게 물어봅니다. 저도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요? 그는 눈앞에서 끌려가는 제사에 쓰일 소가 불쌍해 대신 양을 잡으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임금이 쩨쩨하다고 수군댔지요. 그런데 맹자는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소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을 연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왕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 운영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불쌍한 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은 누구에게나 있어서 연대를 하고 연민을 느끼게 한다. 신경심리학자들이 발견한 거울뉴런은 맹자가 옳다고 말한다. 우리가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마다 연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기부를 하고 봉사를 하고 정치에 뛰어들기도 한다.

“측은지심 때문에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고 정치인은 나쁜 놈이야 말할 때 저는 슬퍼요. 그러다 보면 못 견디고 떠나는 사람이 생기죠. 우리 정치는 그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제대로 되기 어려울 거예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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