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주제① 정치의 실천이성과 윤리성

“영화 <링컨>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뭘까요? 노예해방에 찬성했던 급진파 리더 스티븐슨 의원이 노예제도 폐지를 명문화한 수정헌법 13조가 통과되자 그 법안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자기 아내에게 선물하는 장면입니다. 알고 보니 그의 아내가 흑인 가정부 출신이었던 거죠. 이 아름다운 장면을 가능하게 한 것도 ‘링컨’이라는 정치가 덕분입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최근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 영화 <링컨>을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헌법 13조 수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과정을 그렸다. 남북전쟁이라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정치인 링컨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는 데 찬성 20표가 필요했으나 옳지 못한 방법 외에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던 링컨은 고뇌에 빠진다. 결국 돈과 폭력을 동원해 폐지를 이끌어낸다. 박 대표는 “고귀한 목표와 더러운 수단 사이 딜레마와 이를 고민하는 과정이 정치”라고 했다.

▲ 정치의 본질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 <링컨>. ⓒ 21 Fox Film

‘정치’라는 개념의 몰락

“정치학은 인간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다룹니다. 만약 개인이 혼자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정치가 왜 필요하겠어요? 좋은 정치가 좋은 개인을 만들기 때문에, 먼저 정치를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를 ‘윤리학’이라 부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고대의 정치는 사회,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ce)도 ‘정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16세기 말 국가(state)나 사회(society)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정치는 하나의 부분체제로 의미가 축소됐다.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도 비슷한 논의가 등장한다. 원래 경제는 구성원들의 물질적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하위체제였다. 근대에 들어와 경제라는 부분체제가 전체 사회를 장악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박 대표는 “경제적인 원리로 사회를 바라보다 보니 공동체적인 전체의 관점이 해체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정치의 부분체제였다. 그래서 돈이 가진 윤리적 가치를 중요시했고, 공동체내 다른 구성원들의 결핍에도 연민을 가지며 배려했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경제는 경쟁 논리만을 앞세웠고, 그 결과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무너졌다. 정치의 개념이 협소해지고, 다른 것들이 우위에 오르면서 ‘모두가 잘 살기 위한’ 고민은 사라졌다.

우리 사회 비극의 이면

▲ 빚 독촉에 시달리는 신용불량자는 우리 사회 비극의 이면이다. ⓒ 최원석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감당한 집단은 아마 신용불량자일 겁니다. 한때 350만명이었다가 지금은 공식적인 숫자 집계도 내지 않고, 이름조차 사라진 사람들이죠. 신용불량자는 ‘정책’이 만들어냈습니다. 외환위기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정치적 욕망에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해줘 미래의 소득을 미리 쓰게 한 것입니다.”

박 대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문제는 잘못된 정치적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발생한 ‘여의도 칼부림 사건’ 에 대해서도 “우리는 칼을 휘둘렀다는 단편적인 사건만 기억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된 3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보험추심회사에 취업했지만 계약직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해야 했다. 결국 가족과도 사이가 소원해졌고 좌절과 분노는 결국 범죄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2년 전, 마포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90세 노모가 70세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다음 날, 하나밖에 없는 대화 상대를 잃은 앞집 노인도 같은 선택을 했어요. 전체적인 자살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유일하게 증가하는 연령층이 노인입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다른 주민들도 빈곤의 나락에 빠져있다. 지역구 의원이 직접 임대아파트에 가보니 아파트 내부 전압이 낮아 집안 조명이 너무 어두웠다고 한다. 주민들의 삶과 안전, 모든 게 불안해 보일 정도였다. 구청에 ‘조도를 높여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몇 백 원이라도 아끼고자 주민들이 직접 한전에 전화해 전압을 낮춰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구청에서는 주민 합의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반면 다른 지역 임대아파트는 구청이 전기료를 대납해주고 있었어요. 이건 정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정부가 책임질 수 없는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도 어떤 관점에서 사회를 보느냐에 따라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 박상훈 대표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많은 것들이 정치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 손지은

삶의 1순위에 정치를 놓는다면?

고대 아테네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몰자 장례식에서 연설한 추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공적은 모두 다 전사자들 몫이다. 전사자 자녀는 성장할 때까지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 아래 양육되어야 한다. 싸움이 끝난 뒤 전사들에게 마치 화환을 씌워 주듯, 아테네가 산 자와 죽은 자의 모든 후손들에게 보답하는 확실한 보상이다’. 아테네 남자들이 가족을 두고 전쟁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회보장제도 덕분이다. 아테네 폴리스가 남겨진 가족들을 챙겨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 대표는 우리 정치가 그러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는 공동체가 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와 요구를 책임지는 것이지 단순히 프로그램을 하나 덜 하고, 더 하는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와 달리 현재 우리 정치는 공동체를 위한 윤리적인 관념이 너무 약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가 만능은 아니다. 정치만으로 이상사회를 구현하고 모두의 삶을 구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치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사회에 만연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반(反)정치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

▲ 박상훈 대표는 저서 <정치의 발견>에서 '반(反)정치주의'를 비판하며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2008년 18대 총선 직후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길거리에서 평소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를 만났다. 계면쩍게 다가온 그 사람은 ‘노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될까 걱정 돼 내심 떨어졌으면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이 정치하겠다고 나서면 쌍수를 들고 막아 섭니다. 정치는 ‘더러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정치가는 ‘거짓말이나 일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부디 정치판에 들어가 때를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일 겁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하지 말라’는 말이 상식처럼 굳어진, 반(反)정치주의 사회다. 반정치주의는 정치가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건설적 비판과는 다르다. 정치가 자신의 삶을 더 낫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겨 정치를 경멸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한국사회에서 반정치주의가 사회, 경제, 정치 전반에 퍼져있다고 말한다. 

“박정희 군사 정권은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겼더니 사회만 혼란해졌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를 부정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반정치주의의 중심 세력은 재벌로 바뀌었습니다. 언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기사의 상당부분은 정치를 ‘당리당략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비하하는데 본래 정치란 정략적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사회 반정치주의는 정치에 몸담은 정치인의 태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자신은 결코 “정치적이지 않다”며 정치를 거부하고 “권력에 욕심이 없다”, “권력의지 없이 국민께 봉사하려 한다”는 말을 일삼는다. 그러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에 담대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정치인이라면 당당히 ‘정치한다’고 밝히고 권력을 어떻게 선용(善用)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자신이 권력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그 권력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박상훈 대표의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손지은

‘운명의 여신’은 누구에게로 향하나

정치는 예측 불가능하다. 경제학과 달리 정치학에는 연역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학에는 교과서가 없다.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 또한 정치의 예측불가능성을 간파했다. 박 대표는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포르투나(fortuna)’와 막스베버의 ‘카리스마(charisma)’가 정치의 예측불가능성을 잘 설명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정치를 ‘포르투나’에 빗대었다. 운명을 주재하는 로마 신화의 여신 포르투나는 눈을 가린 채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포르투나처럼, 정치 또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막스 베버는 “민주정치는 합리적 정치가 아니라 카리스마 정치”라고 했다. ‘카리스마’란 단순히 센 힘이 아니라, ‘저 사람이 중심에 서면 팀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느낌을 말한다. ‘카리스마’를 정의하기 어렵듯이, 정치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념과 책임의 이율배반성을 감수하라

그렇다면 예측불가능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를 하는 이는 누구이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박 대표는 “정치인이라면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신념 윤리’ 는 무엇이며 ‘책임 윤리’ 는 또 무엇일까? 예를 들어, ‘악에는 악으로 대하지 말라’는 종교적 명제가 신념의 윤리라면 ‘악에는 힘으로 대항할지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악의 증대에 책임이 있다’는 방식이 책임윤리다.

정치인이라면 개인적인 신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신념을 현실세계에서 이루어내는 책임윤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현실적으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조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어떤 이론이나 철학만으로 해결 불가능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 현실에서 실천적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것이고, 결국 정치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신념과 책임의 이율배반성, 선한 목적과 도덕적으로 의심될 만한 수단을 결합해야 하는 정치의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담대한 인물, 그러면서 목적과 수단의 불편한 조합을 통해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능한 인물만이 윤리적 기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의 현실을 이끌 수 있습니다.”

사보나롤라의 실패, 링컨의 성공이 주는 교훈

이탈리아 피렌체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Savonarola)의 몰락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정치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494년, 사보나롤라는 메디치 가문의 부패를 공격하며 피렌체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사치품과 이교도적 미술품을 불태우는 ‘허영의 소각’을 하는 등 과격한 방법으로 교회를 개혁하려다 큰 반감을 샀다. 결국 사보나롤라는 화형에 처해졌다. 사보나롤라의 몰락 이유를 분석하는 마키아벨리의 비판은 신랄하다.

“벗들이여! 부디 사보나롤라와 같은 포퓰리스트들에게 속지 마시오. 그들은 이상주의에 물든 아마추어일 뿐! 현실을 변화시킬 힘은 없는 위인들이라오. 그들도 언젠가는 당신들을 배신하고,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신들을 억누르게 될 것이오. 그러니 이상주의자들에게 속지 마시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높은 비전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비도덕적 술수나 반대파들과의 뒷거래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링컨이 신념과 책임의 이율배반성 이라는 정치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링컨은 정치의 본질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라며 “링컨의 모습에서 진정한 정치를 봤다”고 했다.

▲ 사보나롤라를 예로 들어 이상적 정치의 한계를 설명하는 박상훈 대표. ⓒ 손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박 대표는 링컨과 같은 정치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를 ‘나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이라 여기고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정치는 인간의 성취가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영역”이라며 정치의 가능성을 믿었다. 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약간만 바꾸더라도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게 정치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를 잘 이해해 좀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가 강의 말미에 소개한 막스 베버의 말은 우리 정치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자기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에 비해서 세계가 자기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어리석거나 너무 야비하더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그 어떤 일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다.”

우리 정치는 소명 없이 정치공학에 따라 권력을 쫓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에 책임이 결여되어 있지는 않은가? 책임윤리를 방기하고 신념윤리에만 충실해 현실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이 의문에 대해 고민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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