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현대 <한겨레> 농촌전문기자
주제: 99%를 위한 기업, 협동조합

돈 대신 ‘협동’이 경쟁력

“우리는 지금까지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하는 주식회사가 유일한 기업인줄 알았습니다. 협동과 배려, 공동선이라는 가치로 운영되는 기업이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죠. 하지만 앞으로는 돈이 아니라 협동이라는 가치가 경제를 움직이게 될 겁니다.”

▲ 김현대 기자가 최근 관심이 높아진 협동조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형준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억울해하면서도 승자독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경제적 이기심이 곧 합리성이라는 생각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협동조합(cooperative)’이다. 김현대 <한겨레> 농촌전문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사회교양특강’에서 ‘99%를 위한 기업, 협동조합’을 주제로 ‘다른 기업’, ‘다른 경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주주가 경제적 권한 대부분을 행사하는 투자자 소유 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인 이용자가 소유하는 기업이다. 주식회사의 ‘1주1표’가 아닌 ‘1인1표’로, 사람에 의해 조직이 통제되기 때문에 협동조합은 조합원 공동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 사업 이익도 보유지분에 따라 배당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조합원이 사업을 이용한 실적에 비례해 잉여금을 돌려주거나 사업에 재투자한다.  

우리나라는 일정 수준 이상의 조합원과 설립자금이 모여야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다섯 명만 모이면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김현대 기자는 “법 시행 100일 째인 3월10일 현재 647개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면서 “까다로운 설립조건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협동조합이 열풍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제빵왕을 만드는 상상력

▲ '썬키스트'는 감귤 재배 농민들이 모여 독자적인 유통통로를 개척한 대표적인 농업협동조합이다. ⓒ 썬키스트
“치킨집이나 동네빵집 같은 경우가 협동조합과 잘 어울리죠. 거대 프랜차이즈와 일대일로 경쟁해서 살아남기 힘든 동네빵집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드는 겁니다. 일종의 동네빵집 프랜차이즈인 셈이죠.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식재료를 비싸게 공급하는 식으로 주주들 배당금을 높인다면, 가게 주인이 조합원인 동네빵집 협동조합은 거품을 걷어내고 구매단가를 떨어뜨려서 경쟁하겠죠.”

협동조합 전통이 뿌리 깊은 분야는 농업이다. 김 기자는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 문제를 어느 나라도 쉽게 해결하지 못했는데,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똑같이 찾은 답이 협동조합”이라며 대표적인 농업협동조합으로 썬키스트를 꼽았다. 썬키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6천여 감귤 생산농가가 힘을 합쳐 만든 119년 전통의 협동조합이다. 도매상들이 감귤 판매 이익을 가로채고 위험요인은 재배농가에게 떠넘기자, 적자를 면치 못하던 농민들이 모여 독자적인 유통경로를 개척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농협, 수협, 축협 등 8개 업종 협동조합이 존재했다. 특히 우리 농협중앙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집계한 세계 300대 협동조합기업 경영실적에서 농업분야 매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매출 20%에 육박하는 대규모 농업협동조합이 있으면서도 농민들 시름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 해에 소득을 두 배 올리더라도 이듬해 반타작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농민들은 월급 받듯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는 게 제일 좋습니다. 우리 농협이 그걸 못해준 거죠. 조합원인 농민들한테 신뢰가 깨진 겁니다. 그런데 판로가 막힌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이 만든 생협에서 연중계약을 통해 일정한 가격으로 꾸준히 사줬습니다. 이게 이어지니까 아는 농민들은 이제 시중가가 폭등해도 다른 데 안 팔고, 소득이 계속 보장되는 생협에 농산물을 파는 겁니다. 신뢰가 협동조합의 강력한 자산이죠.” 
 
김 기자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고객 충성도’에서 고객이 주인인 협동조합은 주식회사가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경쟁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작은 노력으로 많은 변화를 이룬 완주 용진농협 사례를 들었다. 용진농협은 지난해 봄부터 조합원 농민들에게 그날 수확한 농산물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진열대를 제공했다. 개장 첫 주 주말 이백 평 안 되는 규모에서 7천만 원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간유통단계가 사라지다 보니 농협이 10% 운영수수료를 떼고도, 소비자는 시중보다 20~30% 싼값에 신선한 물건을 사고, 농민은 평소보다 두 배 높은 소득을 올렸다.

“농협이 이런 매장 하나를 운영해서 시골 마을 전체를 바꾼 거죠. 전국 천 몇 개 농협에서 저런 걸 다 하나씩 만든다고 상상해 보세요.”  

▲ 농민과 소비자가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완주 용진농협. ⓒ 김현대 

건강한 독점, 환영 받는 문어발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빛을 발하고 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와 세계 최대 유제품 수출기업 ‘폰테라’는 우리나라 재벌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 내용은 많이 다르다. 제스프리는 수많은 수출업체들이 난립하며 농가들이 줄파산하던 90년대 후반, 하나의 브랜드로 수출하자는 약속 아래 만들어졌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키위농가들이 100% 소유한 제스프리에 키위 수출의 독점권을 내주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낙농가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폰테라 역시 뉴질랜드의 거의 모든 물량을 독점한다.

“독점금지법이 뉴질랜드 협동조합에는 적용되지 않겠죠. 조합원이 평범한 가족농이고 이들에게 독점권을 줬을 때 오히려 사회•경제적 약자를 돕는 거니까요. 우리는 언뜻 이해 가지 않지만, 약자를 살리는 독점인 겁니다.”

전문가들은 농업 다음으로 규모가 큰 소매분야 협동조합들이 주식회사를 압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스위스 대표 소비자협동조합 ‘미그로’와 ‘쿱’은 국민 대부분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조합원이 원하면 무엇이든 문어발식으로 확장한다. 웬만한 대기업에 버금갈 정도로 규모가 커졌지만, 이들의 문어발 확장은 비판받지 않는다. 골목상권을 밟고 성장한 우리나라 대형유통업체와 달리, 확장의 수혜대상이 다르고 대중적 뿌리가 탄탄한 ‘착한 문어발’이기 때문이다.

▲ '미그로'와 '쿱'은 스위스 국민 대부분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대표적 소비자협동조합이다. ⓒ 미그로

“밴쿠버 UBC대학 등산동호회원 6명이 시작한 협동조합 ‘MEC’는 아웃도어 장비를 파는 캐나다의 대규모 소매업체입니다. 이들은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모범사례로 인정받았지요. MEC는 따로 바겐세일을 하지 않습니다. 사업이 유지되는 최소한의 잉여금만 남기고, 평소에 제일 싸게 파는데 세일이 있을 리 없죠.”

세대를 초월한 협동의 경제

새로 발효된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은 본래 취지와 달리 수익성 사업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업종 가운데 금융과 보험업을 제외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소매분야만큼이나 신용협동조합이 크게 발달해 있다. ‘라이파이젠’ 신협은 고리채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농민들을 위해 독일의 한 촌장이 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집집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순서를 정해 시중의 절반 금리로 그 돈을 빌려주도록 한 것이다.

라이파이젠과 비슷한 사연으로 만들어진 신협들만 해도 유럽 예금은행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네덜란드 ‘라보방크’를 비롯해 대부분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공적 자금을 지원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건전한 금융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에 대해 김 기자는 “월스트리트 은행들처럼 높은 수익을 위해 복잡하고 위험한 파생상품에 투자하자고 외친 조합원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들은 탐욕 대신 안전판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 당시 라보방크의 내부유보금 300억 유로가 큰 힘을 발휘했던 것처럼, 건강한 신협들은 수익이 나면 조합원에게 배당하는 대신 스스로 위험에 대비한다. 김 기자는 “협동조합은 수익이 적기 때문에 외부자금을 따로 공급받기 힘들어서, 신협은 자신을 비롯한 다른 협동조합을 돕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며 금융협동조합을 ’협동조합 생태계의 심장’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때 라보방크 조합원들은 ‘돌아가신 선배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큰 빚을 졌다’고 말했습니다. 세대를 초월한 협동의 힘이죠. 얼굴도 모르는 후대 조합원들을 위해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선배 조합원들이 양보한 것이니까요. 이처럼 금융협동조합이 건전성을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은 고인이 된 수많은 선배 조합원에게서 나옵니다.”

▲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을 거의 받지 않은 '라보방크'. ⓒ 라보방크

혼자 가면 빨리, 여럿이 가면 멀리

김현대 기자는 3년 전부터 농촌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최근 <협동조합 참 좋다>라는 책까지 펴낼 정도로 이 분야 전문가가 됐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속한 한겨레신문의 창간이 협동조합 방식이었음을 얼마 전 깨달았다고 한다. 

“87년 당시 온통 주식회사뿐이니 그렇게 간판을 내건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한겨레>도 협동조합 아닌가요? 6만 명 국민주주로부터 200억 원을 모아 창간해놓고 지금까지 배당금을 한 푼도 드리지 않았죠. 대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라는 가치를 배당금으로 드리는 셈인데...... 조합원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겨레>는 협동조합 중에서도 ‘사회적 협동조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 협동조합이 이용자 스스로 ‘우리의 몫을 지키자’라는 취지로 생겨났다면,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합원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까지 협동경제의 가치를 나누는 것이다. 그는 “돌봄센터, 자활공동체 같은 사업은 애초부터 주식회사로 할 일이 아니었다”며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던 기존 사회적 기업들이 협동조합으로 옷을 많이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최근 지자체에서 관심을 보이며 많이 시도하는 ‘돌봄협동조합’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회적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다. 공동육아 개념으로 부모가 주인이 돼 참여하는 어린이집에서 더 나아가, 비조합원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이나 지역 노인들을 돌보는 등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김 기자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효율적 복지를 구현할 것으로 기대한다.

“선진국에서 비효율을 들어 복지예산을 줄이는 추세라고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그 주체를 바꾸는 겁니다. 공무원이 집행하던 복지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의 상상력과 협동으로 대체하는 거죠.” 

▲ 강의를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안형준

골리앗 쓰러뜨릴 다섯 조약돌

협동조합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자본조달 문제다. 이익을 많이 내지 않으니 기업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고 당연히 외부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 조합원 공동의 요구대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의사결정이 더딘 것도 협동조합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그만큼 하나의 협동조합이 자리 잡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번 제 궤도에 올라서면 주식회사 못지않은 파급력을 지닌 경제주체가 될 수 있다.

정말 착하면 성공할 수 없을까요? 협동조합은 신뢰와 선함을 CEO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 되도록 만들 겁니다. 3% 소금이 바다 맛을 짜게 하듯, 협동조합이 기존 경제 질서에 건강한 자극을 줘 변화를 이끌어 내리라 기대합니다.”

다윗이 조약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듯, 마음 맞는 사람 다섯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맡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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