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청소년특별전 유스보이스(YouthVoice)

▲ 전주국제영화제 청소년특별전 유스보이스(YouthVoice)가 열린 메가박스 전주 (객사) 앞. ⓒ김성숙

지난 4월 28일 1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관인 메가박스 전주 5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영화들이 상영됐다. 청소년이 직접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청소년특별전 ‘유스보이스(Youth Voice)’ 선정작들이 그 주인공이다.

상영관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청소년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거대한 스크린에서 정식 상영되는 소중한 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들의 가족과 친구들도 객석에서 응원의 눈길을 아끼지 않았다. 일반 관객들도 청소년 감독들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영화 속에 녹여냈는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작품들을 감상했다. 

▲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들. ⓒ김성숙
 이번 특별전은 ‘알아가고 있어-소통’이라는 주제의 <섹션1>과 ‘성장하고 있어-성장통’을 주제로 한 <섹션 2>로 순서로 진행됐다. <섹션1>에서는 <청색시대>, <괜찮아>, <에너지 소비 효율 1등급>, <하늘 아빠>, <연애의 시작> 등 다섯 편의 영화가 관객을 만났다. 이어진 <섹션2>에서는 <억수>, <담요와 함께 사라지다>, <BLANK>, <소년기> 등 네 작품이 상영됐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섹션 1> 영화들은 ‘소통’이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들이 다른 이들과 소통해가며 세상과의 관계를 넓혀가는 이야기들을 주로 담고 있다.

<청색시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연지는 매일같이 편의점에 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취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참다못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점장에게 말하지만 점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폭력을 휘두르려 한다. 그 순간 취객이 나타나 연지를 구해 준다.

<괜찮아>는 문제학생과 상담교사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문제아 정호는 상담교사 준성을 적대적으로 대하지만 속으론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호가 다시 한 번 싸움에 휘말리자 준성은 정호에게 크게 실망한다. 정호는 준성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준성이 완성하지 못한 영화의 뒷부분을 마무리한다.

▲ <섹션 1>에 소개된 청소년 감독들. 왼쪽부터 백성수, 장은진, 정지혜, 이은지, 이종우 감독. ⓒ김성숙

<에너지 소비 효율 1등급>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통마늘과 귤이다. 통마늘은 아버지, 귤은 나 자신을 의미한다. 아끼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까지나 남아있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늘 아빠>는 사춘기 소녀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사랑을 그렸다. 아버지의 돈을 몰래 꺼내 쓰던 주인공 지현은 직장 없이 놀고만 있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실은 힘겹게 대리운전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위태로웠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극복한다. <연애의 시작>은 십대의 유쾌한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은혁이 비밀연애를 하는 친구 우현의 여자 친구 은혜를 짝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괴로운, 혼란스러운, 서글픈, 그리고 유쾌한 성장통

<섹션 2>의 영화들은 ‘성장통’이란 주제에 걸맞게 ‘괴로움’, ‘서글픔’, ‘유쾌함’ 등 다양한 감정을 바탕으로 청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풀어낸다.

▲ <섹션 2>에 소개된 영화의 청소년 감독들. 왼쪽부터 이유빈, 임혜원, 권민지, 김다민 감독. ⓒ김성숙

<억수>는 자취방의 외로움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홀로 남겨진 주인공 지연은 우연히 걸려온 부재중 전화 때문에 불현듯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사무친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식을 끝내 듣지 못한다. <담요와 함께 사라지다>는 학교생활의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여고생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다은이가 친구들과 함께 담요를 두른 채 야간자습시간에 학교를 빠져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BLANK>는 할머니와 여고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전남 신안군의 외딴 섬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학교 친구들의 꿈에 관한 인터뷰를 담았다. <소년기>는 청소년의 불안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부를 하던 소녀의 방에 모래가 밀려오고 소녀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 결국 바다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떨리지만 당당한 ‘관객과의 만남’

9편의 상영이 모두 끝난 뒤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스크린 앞으로 나온 10대 감독들은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아>를 연출한 백성수(17) 감독은 “만날 노트북 모니터로 보다가 큰 화면을 보니까 새롭네요”라며 얼떨떨한 극장 데뷔 소감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질문이 시작되자 이들은 점차 자신 있게 영화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자신의 작품을 명쾌하게 해설하는 모습은 프로 감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너지 소비 효율 1등급>을 연출한 정지혜(19) 감독은 아버지를 위해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작의도를 묻는 관객의 질문에는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하시라는 의미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답변했다. <하늘 아빠>의 이은지(19) 감독은 “우리가 부모님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늘 아빠>라는 제목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BLANK>의 임혜원(19) 감독은 ‘BLANK’가 영어로는 ‘비어있는’, 독일어로는 ‘빛나는’이라는 뜻이 있다고 말하고 “우리가 할머니와 여고생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지만 ‘아 저 사람들도 오늘 하루를 저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이렇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소년기>의 권민지(19) 감독은 소년기가 중·고등학생 시기를 뜻한다며 이 시기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 관객의 열띤 반응, 성인의 부재 아쉬워

이번 특별전을 관람한 관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세호(19) 학생은 백성수 감독의 <괜찮아>가 제일 인상 깊었다며 “청소년이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이 영화를 보면 청소년들이 좀 더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영빈(18)학생은 이종우 감독의 <연애의 시작>이 제일 재미있었다며 “원래 사랑이란 게 가장 솔직한 감정을 다루는 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봤던 영화중에서도 가장 솔직하다”고 평가했다. 장예제(20)씨는 할머니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BLANK>를 제일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소년 특별전의 관객 대부분이 청소년이었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드문드문 성인 관객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연출자의 부모들이었다. 무료입장이었는데도 많은 관객을 모으지 못했다. 프로가 아닌 10대 아마추어들의 작품이어서 어설프고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생각을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이번 특별전은 그 의미가 적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클레이 아트 등 다양한 기법을 도입한 점도 돋보였다. 

영화로 꿈을 찍는 청소년

“사람들한테 희망도 주고 꿈꾸게 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임혜원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희망’과 ‘꿈’이라고 명료하게 말했다. 서글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시원하고 솔직한 할머니들과 상큼 발랄한 여고생들의 모습을 함께 그려낸 <BLANK>는 상영 내내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끌어냈다. 임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이 처음이었고, 혼자 촬영과 편집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지만 관객들이 재미있게 봐줘서 굉장히 뿌듯하다고 말했다.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 스무 살 때는 ‘뭔가를 내가 이뤄야 겠다’ 이런 게 아니더라도 내가 뭔가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타인과 교감하겠다는 임 감독. 그녀처럼 야무진 꿈을 가진 10대 감독들이 앞으로 한국 영화계의 대들보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특별전을 놓친 관객들은 ‘유스보이스’ 홈페이지(http://www.youthvoice.or.kr)에서 14회 전주국제영화제 청소년 특별전 상영작을 포함해 더 많은 청소년 감독들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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