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침출수 ‘전면 차단’ 못한 폐쇄 공사…오염된 집수정도 방치

지난해 8월, 폐쇄 공사가 끝난 충북 제천시 왕암동 산업폐기물매립장 주변 지하수를 검사했더니 특정 위치에서 페놀과 시안 등 독성물질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 조벼리 기자
지난해 8월, 폐쇄 공사가 끝난 충북 제천시 왕암동 산업폐기물매립장 주변 지하수를 검사했더니 특정 위치에서 페놀과 시안 등 독성물질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 조벼리 기자

<단비뉴스>는 지난 3일, 충북 제천시 왕암동의 폐쇄된 산업폐기물 매립장 주변 지하수에서 독성물질이 계속 검출되고 있는 실태를 보도했다.(지난 기사 보기) 국비와 지방비 98억 원을 들여 5년 넘게 폐쇄 공사를 했는데도 매립장 주변 특정 위치에서 페놀과 시안, 염소이온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되고 있다. 매립장을 폐쇄하면서 설치한 침출수 처리시설은 9개월 넘게 운영되지 않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응급 가동되고 있다.

보도 이후 제천시는 “올해 안으로 위탁업체를 선정해 침출수 처리시설을 정상 가동하고,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한 후 개선 대책을 도출해 추가 공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제천시와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 한국환경공단이 정밀 안전진단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조사 범위와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단비뉴스는 매립장 폐쇄 과정에서 한계는 없었는지, 폐쇄 공사 이후 왜 침출수 처리시설이 9개월 넘게 운영되지 않았는지 취재했다.

예산에 맞춰 차수벽 높이 결정…침출수 ‘전면 차단’ 불가능

폐쇄 공사 실시설계 보고서를 보면, 매립장 암반층까지만 차수벽을 세워 침출수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1안이 추천됐고 그대로 채택됐다. 출처 한국환경공단
폐쇄 공사 실시설계 보고서를 보면, 매립장 암반층까지만 차수벽을 세워 침출수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1안이 추천됐고 그대로 채택됐다. 출처 한국환경공단

단비뉴스가 국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매립장 폐쇄 공사 실시설계 보고서를 보면, 침출수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차수벽이 매립장 깊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깊이로 설치됐다. 차수벽은 침출수가 매립장 밖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매립장 옆면에 수직으로 설치하는 벽이다. 보고서를 보면 매립장을 둘러싸는 차수벽 깊이가 2.9m에서 10.3m 사이로 설계돼, 매립장 바닥 깊이인 22.5m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폐쇄 공사 실시설계 보고서의 검토 의견을 보면, 연암층을 통한 침출수 누출 우려가 적고 경제성이 좋다는 이유로 암반층 0.5m까지만 차수벽을 설치하고 오염도가 높은 하류부만 2열로 보강하는 안이 추천됐다. 그래픽 조벼리
보고서의 검토 의견을 보면, 연암층을 통한 침출수 누출 우려가 적고 경제성이 좋다는 이유로 암반층 0.5m까지만 차수벽을 설치하고 오염도가 높은 하류부만 2열로 보강하는 안이 추천됐다. 그래픽 조벼리

보고서의 설계도와 검토의견 등을 보면 차수벽 깊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래 폐기물을 감싸고 있던 차수막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 차단 효과보다 경제성이 높은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립장 바닥까지 차수벽을 설치하는 대안도 있었지만, 공사비가 약 160억 원으로 예상돼 전체 예산을 초과했다. 하지만 매립장 절반 수준인 암반층 위까지만 설치하면 예상 공사비가 약 24억 원이었다. 결국 암반층의 0.5m까지만 차수벽을 설치하고 오염도가 높게 조사된 하류부만 2열로 보강해, 암반층과 차수벽의 틈을 통해 침출수가 유출될 가능성이 남게 됐다.

왕암동 폐기물매립장 폐쇄 공사 자문위원이었던 윤석표 세명대 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23일 인터뷰에서 “현재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침출수 처리시설을 가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벼리 기자
왕암동 폐기물매립장 폐쇄 공사 자문위원이었던 윤석표 세명대 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23일 인터뷰에서 “현재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침출수 처리시설을 가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벼리 기자

당시 공사 자문위원이었던 윤석표 세명대 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기존에 있던 매립장이라 밑부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수직으로만 벽을 세운 것”이라며 “어느 정도 (침출수가) 새어 나가는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계 보고서 내용과 윤 교수의 설명을 종합하면, 폐쇄 공사 당시 매립장은 에어돔 붕괴 사고 이후 침출수가 바닥부터 지표면까지 가득 찬 상태라 전면 차단이 불가능했다. 주변으로 침출수가 일정 부분 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침출수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사를 한 것이다.

오염된 지하수 집수정 폐쇄도 예산 문제로 빠져

폐쇄 과정에서 2014년 정밀 안전진단 결과 침출수에 오염된 것으로 드러난 지하수 집수정을 폐쇄하지 못한 사실도 확인됐다. 매립장 주변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를 빼내기 위한 시설인 집수정이 침출수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나 정화작업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폐쇄 공사 과정에서는 공사비 부족 등의 문제로 그대로 방치됐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이 매립장 주변에 지하수 수직 배제시설, 양수펌프 등을 설치하는 데 필요한 예상 공사비는 약 2억 원이었다.

2014년 정밀 안전진단에서 지하수 집수정의 수질을 검사했더니 조사 대상 12개 항목 중 7개 항목이 수질기준보다 높게 검출됐다. 출처 한국환경공단

당시 한국환경공단이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한 정밀 안전진단 보고서를 보면, 지하수 집수정의 수질을 조사했더니 12개 항목 중 7개 항목이 수질기준보다 높게 검출됐다. 페놀과 시안, 납, 비소, 카드뮴 등의 독성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사실상 정상 운영될 수 없는 상태였다. 한국환경공단은 오염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으로 지하수 집수정을 폐쇄하고 차수벽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폐쇄 공사에서는 집수정은 그대로 둔 채 차수벽만 설치됐다.

2014년 정밀 안전진단 보고서에서 오염된 지하수 집수정을 폐쇄하고 차수벽을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폐쇄 공사에서는 결국 차수벽만 설치됐다. 출처 한국환경공단

폐쇄 공사가 끝났는데도 매립장 주변 지하수에서 독성물질이 계속 검출되자 한국환경공단과 원주지방환경청, 제천시는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정밀 검사와 지하수공 정화작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원주청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지난 5일 “(당시) 예산 범위 내에서 공사를 했던 걸로 알고 있다”며 “(현재) 침출수의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공사 비용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폐쇄 공사 과정에서 예산 문제로 오염된 지하수 집수정을 방치했다가, 결국 추가 공사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관계기관 협의하느라 처리시설 9개월 가동 중단

폐쇄 공사가 끝난 충북 제천시 왕암동 폐기물매립장의 침출수 처리시설이다. 매립장 지하에 고여 있는 침출수를 매일 60톤씩 펌프로 빼내서 하수처리장으로 보내기 위해 설치됐다. 조벼리 기자
폐쇄 공사가 끝난 충북 제천시 왕암동 폐기물매립장의 침출수 처리시설이다. 매립장 지하에 고여 있는 침출수를 매일 60톤씩 펌프로 빼내서 하수처리장으로 보내기 위해 설치됐다. 조벼리 기자

윤석표 교수는 “지하수의 흐름과 방향을 고려해 (매립장) 하류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 다시 벽체를 땜질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침출수를 열심히 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매립장 운영업체의 부도로 관계기관끼리 예산과 업무 등을 조율하느라 폐쇄 공사가 끝난 직후 곧바로 원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침출수 처리시설은 9개월 동안 아예 운영되지 않았다.

침출수 처리시설은 매립장에 고여있는 침출수를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는 시설이다. 폐기물 매립장은 폐기물관리법 제70조에 따라 폐쇄 신고를 한 날부터 30년 동안 침출수 수위를 2m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 매립장은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침출수가 지표면 부근인 약 20m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따라서 처리시설을 가동해 매일 60톤씩 침출수를 빼내야 약 4년 후에 사후관리 기준인 2m로 침출수 수위를 낮출 수 있고, 그 이후로는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들여야 한다. 침출수를 2m 수위까지 낮추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침출수 처리시설 운영비는 한 해에 약 5억 원 수준이다.

원주지방환경청과 제천시, 한국환경공단은 지난해 5월에 열린 후속조치 실무자 회의에서 “침출수 수위가 상승해 침출수 처리시설 운영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진성준 의원실 제공
원주지방환경청과 제천시, 한국환경공단은 지난해 5월에 열린 후속조치 실무자 회의에서 “침출수 수위가 상승해 침출수 처리시설 운영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진성준 의원실 제공

관계기관 간 합의를 보는 동안 침출수 처리시설 운영이 중단되면서 침출수 수위가 오르자, 지난해 10월부터 한국환경공단이 시설을 응급 가동하고 있다. 제천시는 “지난해 11월 매립장을 위탁운영 하기 위한 조례 제정을 완료했다”며 “올해 침출수 처리시설 운영비 4억 원을 시비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제천시는 “위탁업체 선정 등 후속 절차를 마무리할 동안 환경공단이 운영하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제천시가 정상 가동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7년 전 합의안 마련했지만, 폐쇄 공사 끝나자 원점으로 돌아가

왕암동 폐기물매립장 사후관리는 7년 전에 이미 관계기관 간 합의가 이뤄졌다. 에어돔 붕괴 사고 이후 매립장이 5년 넘게 방치되면서 환경 오염을 일으키자, 지난 2017년 인근 주민 500여 명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제천시장, 충청북도 정무부지사, 환경부 자원순환국장, 원주지방환경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정 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에어돔 붕괴 사고가 일어난 후 약 5년 만에 매립장의 오염확산 방지와 사후관리에 대한 관계기관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 합의에 따라 원주지방환경청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매립장 폐쇄 공사를 추진했다. 그런데 폐쇄 공사가 끝난 후에도 매립장 주변 지하수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되자, 후속 대책을 놓고 관계기관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원주청이 폐쇄 공사 이후 안전진단을 한 뒤 제천시에 운영을 넘긴다는 합의에서 ‘안전진단’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한 당시 조정서에는 안전진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침출수 처리시설 재원 마련 계획, 운영 시점 등 구체적인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7년 4월 보도자료를 내고 제천 왕암동 폐기물매립장의 환경오염 문제가 5년 만에 해결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는 2017년 4월 보도자료를 내고 제천 왕암동 폐기물매립장의 환경오염 문제가 5년 만에 해결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결국 제천시와 원주지방환경청, 한국환경공단은 지난해 3월부터 8차례 이뤄진 실무진 회의와 원주지방환경청장·제천시장 간담회를 통해 정밀 안전진단을 하기로 합의했다. 제천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원주청, 환경공단과 정밀 안전진단을 통해 원인을 조사하고 개선 공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관계기관 간에 조사 범위나 기간 등 구체적인 내용은 합의되지 않았다.

제천시는 “안전진단이 완료된 후 이상이 없으면 매립장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진단이 완료되더라도 제천시가 져야 하는 부담은 적지 않다. 제천시는 “앞으로 30년간 침출수 처리시설 운영비로만 약 150억 원이 소요된다”며 “수계기금과 국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원주지방환경청과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래 매립장 폐쇄 공사와 사후관리를 해야 할 민간업체가 파산하면서, 제천시와 원주청이 에어돔 붕괴 사고 수습에 더해 앞으로 약 30년 동안 매립장을 관리할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립장 사업을 하던 민간기업이 발을 빼버리면 고스란히 공공이 관리를 떠맡아야 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인 셈이다.

방치된 매립장, 침출수 사고 막을 대안은?

이것은 제천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충남 당진시, 경기도 화성시 등 전국 곳곳에서 사용 종료된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운영업체의 경영 악화로 방치되면서 지자체가 대신 관리를 떠맡고 있다. 민간업체가 매립장을 운영하면서 이익을 얻었지만, 사후관리는 지자체가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운영 중인 매립장에서는 민간업체가 사후관리 보증금을 제때 내지 않아 관할 기관이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곧바로 이행하지 않아 가중 처벌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단비뉴스는 다음 편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매립장 침출수 유출 사고의 원인과 사후관리 문제를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

국내 폐기물의 약 90%는 폐농약, 폐섬유 등 각종 사업장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이다. 공공이 직접 관리하는 생활폐기물과 달리, 산업폐기물은 대부분 민간업체가 처리한다. 이 가운데 폐기물을 땅에 묻는 방식인 매립은 침출수가 주변 환경으로 유출되지 않게 계속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업체가 매립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매립장에 고인 침출수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며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단비뉴스>가 이 산업폐기물 매립장 문제를 집중 취재했다. 먼저 폐쇄 공사가 끝난 충북 제천의 한 산업폐기물 매립장 주변 지하수에서 독성물질이 계속 검출되고 있는 실태를 보도했다. 경기 화성, 충남 당진 등 전국의 방치된 산업폐기물 매립장 위치와 침출수 사고 등도 조사했다. 민간업체가 폐기물관리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유럽과 미국, 일본의 매립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살펴봤다. 방치되는 산업폐기물 매립장의 사후관리 문제와 대안을 네 편의 기사에 담았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매립장 주변 독성물질 계속 검출…사실상 방치

② 폐쇄된 매립장 주변, 왜 독성물질 계속 나오나

늪지대로 변한 매립장…뒷수습은 국가 몫

수익 크고 처벌 약한 매립장…공공이 운영해야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