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9년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 수상작 – 미얀마 버닝(Myanmar Burning)

2017년 8월 28일, 80여 명의 미얀마 33경보병사단 군인들이 미얀마 라카인주 인딘 마을을 습격했다. 사흘 전 로힝야족 저항군이 경찰서를 공격하자, 군부가 대응에 나선 것이다. 군인들은 경찰과 불교 신자들과 함께 로힝야족이 사는 인딘 마을에 총격을 퍼붓고 집을 불태웠다. 사람들은 가까운 해변에 숨어들었다. 9월 1일 군인들이 그들을 찾아냈다. 남성 10명을 무작위로 골라 데려갔다. 저항군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군인들은 하룻밤 동안 남성들을 심문했다. 다음날 그들을 마을의 무덤가로 데려가서 총칼로 무참히 죽였다.

로이터 시리즈 기사 '미얀마 버닝'(Myanmar Burning)의 표지 사진. 출처 로이터
로이터 시리즈 기사 '미얀마 버닝'(Myanmar Burning)의 표지 사진. 출처 로이터

인딘 마을의 학살은 당시 미얀마 군부가 자행한 수많은 학살 중 하나다. 2017년 8월 군부는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국제 비정부기구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탄압 한 달 만에 최소 6,700명이 사망했다. 군대와 경찰이 학살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며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군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딘 마을의 학살은 군부가 유일하게 책임을 시인한 사건이다. 학살에 가담한 병사 7명에게는 무거운 처벌이 뒤따랐다. 그 배경에는 <로이터>의 미얀마인 기자 와론(Wa Lone)과 쵸소우(Kyaw Soe Oe)가 있다. 그들은 군부가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학살의 증거들을 모았다. 군부의 탄압으로 두 사람이 감옥에 갇힌 뒤에는, 로이터의 다른 기자들이 취재와 보도를 이어갔다. 그 결과 2018년 2월부터 12월까지 총 9편에 달하는 로이터의 연속보도 ‘미얀마 버닝(Myanmar Burning)’이 나왔다. 이 보도는 2019년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구체적 증거로 학살을 증명하다

로힝야족 수천 명이 살해됐지만, 군부가 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피해자 증언을 제외하고 다른 실체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반면 와론과 쵸소우 기자는 명확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다. 특히 학살 전후 촬영된 사진들이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인딘 마을에서 만난 한 불교 신자 노인에게 사진 석 장을 받았다. 그 가운데 두 장은 학살이 벌어지기 전인 9월 1일 이른 저녁과 9월 2일 아침에 촬영됐다. 로힝야족 남성 10명이 일렬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은 학살 이후 촬영됐다. 얕은 구덩이에 피투성이가 된 남자들의 시체가 쌓여있는 장면을 담았다.

와론과 쵸소우가 확보한 사진 3장 중 1장. 10명의 로힝야족 남성들이 무릎을 꿇고 일렬로 앉아있다. 뒤에 있는 남성 2명은 미얀마 제8보안경찰대대 소속 경찰이다. 출처 로이터
와론과 쵸소우가 확보한 사진 3장 중 1장. 10명의 로힝야족 남성들이 무릎을 꿇고 일렬로 앉아있다. 뒤에 있는 남성 2명은 미얀마 제8보안경찰대대 소속 경찰이다. 출처 로이터

기자들은 학살 가해자의 신원도 특정했다. 와론 기자는 사진에서 총을 들고 있는 남자들에 주목했다. 총의 개머리판에 미얀마어로 숫자 8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 중 일부가 미얀마 제8보안경찰대대 소속 경찰이라는 증거였다. 와론 기자는 페이스북에서 이들의 계정을 찾았고, 나중에 직접 만나 신원까지 확인했다.

학살 희생자 10명의 신원도 확인했다. 와론, 쵸소우 기자가 당국에 의해 구금된 후, 로이터의 다른 기자들은 방글라데시 내 로힝야족 난민캠프를 방문했다. 그들은 희생자들의 사진을 난민에게 보여주며 유족을 찾아, 죽은 이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자세히 다룬 기사를 작성했다.

로이터 기자 와론(앞)과 쵸소우(뒤). 2018년 2월, 공무상 비밀법(the Official Secrets Acts)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다투는 재판을 받기 위해 두 기자가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로이터
로이터 기자 와론(앞)과 쵸소우(뒤). 2018년 2월, 공무상 비밀법(the Official Secrets Acts)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다투는 재판을 받기 위해 두 기자가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로이터

학살에 가담한 불교 신자들과 경찰 내부자들의 증언도 확보했다. 인딘 마을에서 군인과 경찰들이 살인과 방화를 저질렀다는 사실, 군인들이 신상을 숨기기 위해 사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 제8보안경찰대대 지휘관이 로힝야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청소하라’는 구두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 등이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미얀마 군부는 기자들이 확보한 증거들을 검토한 후, 2018년 1월 인딘 마을에서의 학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학살에 가담한 군인들에 대한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4월, 군인 7명에게 징역 10년 형이 선고되었다.

흡인력을 더한 시각적 요소들

기사에서 사용된 시각적인 요소들도 주목할 만하다. 기사 2편 ‘학살 이후’(After the killing)에는 희생자 10명의 유족을 일렬로 세워 촬영한 사진이 나온다. 이 사진 속 유족의 위치는 사진 속 희생자의 순서와 일치한다. 여기에 희생자와 유족을 잇는 그래픽을 추가해, 그들 간의 연결고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미얀마 군대에 의해 살해된 로힝야족 남성 10명(위)과 유족(아래)의 사진. 출처 로이터
미얀마 군대에 의해 살해된 로힝야족 남성 10명(위)과 유족(아래)의 사진. 출처 로이터

기사 7편 ‘로힝야족 지우기’(Erasing the Rohingya)에서는 위성 사진을 중요한 증거로 활용했다. 인딘 마을은 원래 로힝야족과 불교 신자 등 모두 7,000여 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곳이었다. 2017년 5월의 위성 사진에서는 양쪽 민족의 집들이 온전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해 9월의 사진에서는 방화로 인해 로힝야족의 거주지가 완전히 소실되어 잔해만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로힝야족에 대한 파괴 행위의 규모와 심각성을 시각적으로 강력하게 전달했다.

인딘 마을을 촬영한 위성 사진. 2017년 5월(위) 촬영된 사진에 주황색 지붕의 집이 많이 보인다. 2017년 9월(아래) 촬영된 사진에서 주황색 주택들이 모두 사라졌다. 로힝야족이 살던 집이었다. 출처 로이터
인딘 마을을 촬영한 위성 사진. 2017년 5월(위) 촬영된 사진에 주황색 지붕의 집이 많이 보인다. 2017년 9월(아래) 촬영된 사진에서 주황색 주택들이 모두 사라졌다. 로힝야족이 살던 집이었다. 출처 로이터

2편 ‘학살 이후’(After the killing)에서는 로힝야족이 미얀마를 탈출해 방글라데시로 이주하는 과정을 위성 사진과 영상을 결합한 인터렉티브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했다. 위성 사진에 그래픽을 더해 로힝야족이 산과 들판을 헤치고, 강과 바다를 건너는 경로를 단계적으로 보여줬고, 로힝야족 또는 기자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중요 지점에 배치하여 긴박한 현장의 고통까지 전달했다.

로힝야족이 인딘 마을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탈출하는 경로를 구현한 인터렉티브 페이지. 출처 로이터
로힝야족이 인딘 마을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탈출하는 경로를 구현한 인터렉티브 페이지. 출처 로이터

진실을 위해 목숨 건 기자들

4편 ‘위험한 뉴스’(Dangerous News)는 와론, 쵸소우 두 기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얀마인으로 불교 신자인 이들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탄압받아온 로힝야족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배신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2017년 12월 12일, 와론과 쵸소우 기자는 제8보안경찰대대 소속 나잉 린(Naing Lin) 상병과 식당에서 만나 어느 문서를 전달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식당을 떠나자마자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 문서를 빌미로 공무상 비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최대 14년 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감옥에서도 이들은 진실을 밝히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2018년 7월 9일, 와론 기자는 법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선언했다. “우리는 인권유린과 부패를 추적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정은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수감된 지 511일이 지난 2019년 5월 7일에야 비로소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

어떤 기자들은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건다. 감옥에서 심문을 받아도 진실을 좇는 신념을 잃지 않는다. 미얀마 군부에 대항하며 진실을 추적한 와론과 쵸소우 기자가 그랬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로힝야족 남성 10명의 억울한 죽음을 역사에 기록하고, 일부 가해자들의 처벌을 이끌어냈다.

2019년 퓰리처상(국제보도 부문)을 수상한 <로이터>의 ‘미얀마 버닝’ 연속보도는 여기를 눌러 읽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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