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예전에는 동창회 같은 데서 손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돈 내고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돈 줄 테니 손주 사진 좀 보여 달라’로 바뀌었단다. 장성한 자녀가 있어도 손주는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남의 집 아기 사진이라도 감지덕지한다는 말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한 해 전 0.78명에서 더 떨어진 ‘초저출생’ 한국의 풍경이다.요즘 나의 단골 소셜미디어는 ‘똥별이’라는 아기 영상을 자주 올려준다. 이 영상만 뜨면 적어도 몇 십 초는 넋을 놓고 본다
‘아이폰’으로 유명한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우주선 모양의 새 사옥 ‘애플 파크’를 지어 2017년 입주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반지처럼 생긴 이 사옥에는 1만 2천여 명이 일하는데, 지붕 전체가 파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건물 전기수요의 75% 이상을 태양광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바이오연료 등을 활용해, 녹색에너지 비중이 100%에 가깝다고 한다. 채광과 통풍 설계도 잘돼 있어, 1년 중 아홉 달은 건물 냉난방이 필요 없다고 애플은 자랑한다. ‘사용 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RE100) 운동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교전 중인 이스라엘에서는 요즘 ‘로켓 얼러트’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앱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와이어드>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사일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알려주는 앱을 앞다퉈 깔고 있다. 정부 공식 앱만 해도 사용자가 6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늘었고, 민간 앱도 사용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스라엘 인구는 약 900만 명이다. 공공 사이렌보다 한발 앞서 앱에 경보가 뜨면, 해당 지역 주민은 분초를 다투며 지하 방공호 등으로 대피한
마음 있는 데에 돈이 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곧잘 ‘네가 필요하다면 뭐든 다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된다. 부모는 구멍 난 양말을 신으면서도,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목돈을 쏟아붓기도 한다.나라 살림도 마찬가지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하면 그 사업에 돈을 몰아준다. 그래서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을 살펴보면 정부가 무엇을 중히 여기며,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지 알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완화, 저출생 개선, 지역소멸 대응, 기술혁신 지원 등 시대적 과제에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진심인지는 2024년 예산안을 보면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이 쓴 <불평등 트라우마>는 경제적 불평등이 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회역학자인 저자들은 20여 개 선진국을 나라끼리 비교하거나 미국 50개 주를 서로 비교하는 방법 등으로 분석한 뒤 이렇게 정리했다. 불평등한 사회에는 덜 불평등한 사회에 비해 정신질환자가 훨씬 많다. 따돌림 등 학교폭력이 만연하고, 마약·알코올·도박 등 중독도 더 흔하다. 살인 등 범죄로 교도소에 갇힌 인구 비중이 높고, 경호산업이 번성한다. 명품 등 과시적 소비와 성형 등 외모 관련 투자에 집착하는
데이비드 혼둘라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폭염담당관’으로 일한다. 공식 직함은 ‘열기 대응 및 완화 책임자’다. 섭씨 43도를 넘는 폭염이 기록적으로 이어진 올여름, 그는 온열환자가 쏟아지는 저소득층 동네에 구급대와 자원봉사자를 급파하고 공공 대피소를 설치하느라 바빴다. 미국에서도 덥기로 손꼽히는 이 도시에서는 거리의 노동자와 노숙자 등이 뜨거운 아스팔트에 화상 입는 일이 많아 응급실 병상이 부족했을 정도라고 한다. 혼둘라 담당관은 그의 활동을 소개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당장의 폭염 대응과 함께, 기후변화로 더 심해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을 지낸 앨런 러스브리저는 몇 년 전 트위터에서 끔찍한 소식을 접했다. 스웨덴 말뫼에서 무슬림 이민자가 10대 여성을 성폭행했는데, 여성의 중요 부위에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 불까지 질렀다는 얘기였다. 트위터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난민을 받아들이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가 퍼져나갔다. 은퇴 뒤 대학에서 강의하던 러스브리저는 팩트체크에 나섰다. 그런데 스웨덴 언론을 검색하다 벽에 부닥쳤다. 월 구독료 1만 5천 원가량을 결제해야 기사를 볼 수 있는 ‘유료화의 벽’이었다. 러스브리저는 저서 <브레이킹
영국 <비비시>(BBC)가 라디오드라마 형식으로 방송 중인 다큐멘터리 <후쿠시마>는 2011년 3월 원전 사고가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도쿄전력 수뇌부는 2008년 내부 연구자가 “규모 9의 강진으로 12~15미터(m) 쓰나미(지진해일)가 원전을 덮칠 가능성이 있으니 방파제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하자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 무시한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고, 전원이 물에 잠겨 정전되면서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났다. 도쿄전력 수뇌부는 경제적 손실을 걱정해 노심 냉각을 위한 바닷물 주입에 반대하다 빠른 수습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이
‘<폭스뉴스>는 선거에 관해서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세계 60여 나라 500여 매체가 협업하는 기후보도 웹사이트 커버링클라이밋나우(CCN)는 지난 3월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폭스뉴스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폈다가 제소돼, 최근 1조 원가량을 개표기 업체에 물어주게 된 방송사다. CCN은 “폭스뉴스가 기후대응을 방해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허위 주장을 거의 매일 퍼뜨렸다”고 고발했다.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는 없다’부터 ‘풍력발전기가 고래들을 죽인다’까지, 온갖 음모론이 망라됐다고
한국에서 100살 가까이 살아온 어르신들은 미국이나 유럽 기준으로 볼 때 근현대 200~300년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국민소득 세계 꼴찌 수준의 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극적 세월을 살았으니 왜 아니겠는가. 호롱불 아래 바느질하고 아궁이에 장작을 때던 소녀·소년들이 수십 년 후 스마트폰에 대고 “시리야, 정훈희의 안개를 틀어줘~” 하게 됐으니 ‘천지개벽’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기자, 교수로서 비교적 자주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던 편이라, 그런 압축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 리키는 택배노동자로 숨 가쁘게 살아간다. 스마트 단말기를 통해 배달 동선을 분 단위로 감시당하며, 소변을 빈 음료통에 해결해야 할 정도로 시간에 쫓긴다. 하지만 법적으론 자기 차로 배달을 대행하는 개인사업자여서, 노동자로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해진 업무량을 못 채우면 가차 없이 벌금이 부과되기에 말썽을 부린 아들의 학부모 상담에도 가지 못한다. 아들은 어쩌면 피할 수 있었을 정학 처분을 받는다. 어느 날 리키는 배달 물품을 노린 불량배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인 박연진은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다. 이 드라마가 폭발적 반응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돈의 힘으로 징벌을 피하고 떵떵거리던 악당들이 결국 대가를 치르며 파멸하는 모습을 통쾌하게 보여줬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학교와 경찰이 내팽개친 ‘인과응보의 정의’를 피해자가 사적 복수로 구현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우리를 돌아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사법·행정 등 현실의 공적 제도에 관한 불신이 그만큼 커 보여서다.장르는 다르지만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 중이던 이달 초, 시드니 숙소의 뉴스 채널에서는 상어의 공격을 받고 숨진 10대 소녀 이야기가 속보로 거듭 나왔다. 사람이 있는 해변이나 강에 상어가 출몰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강 하구에서 수영하다 참변을 당한 소녀의 소식은 현지인들에게도 충격인 듯했다. 이 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최근 상어의 공격이 늘고 있는데, 이는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온 상승 등으로 생태 환경이 바뀌어 물고기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상어와 인간의 불행한 만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인
지난해 성탄절 세상을 떠난 조세희 작가는 2008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출판 30주년에 즈음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책을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다”고 말했다. 이 연작소설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 가족이 절망 끝에 목숨을 버리거나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 반면, 부자들은 입주권 매입 등으로 쉽게 돈을 벌며 가난한 이들 위에 군림하는 세태 등을 그렸다. 조 작가는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것,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로 기록된 리즈 트러스는 지난 9월 취임 당시만 해도 ‘제2의 마거릿 대처’를 꿈꿨다고 한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 전 총리는 감세, 규제 완화, 민영화, 노조 무력화 등의 정책으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기업에 최대의 자유를 주면 경제가 빨리 성장해 모두가 잘살게 된다고 주장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대처의 처방을 좇아 대규모 감세를 핵심으로 하는 ‘미니 예산안’을 발표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물가 상승 등으로 서민의 삶이 피폐하고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데, ‘부자 세
칼럼에 타당한 얘기만 담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열어두는 편이다. 그래서 댓글 등 독자 의견에 참고할 부분이 있는지 열심히 살핀다. 지난달 <한겨레> 칼럼 ‘원전 오염수가 후쿠시마를 벗어날 때’를 반박한 11월 17일치 독자투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위험, 정확한 정보로 판단해야’도 반갑게 읽었다. 다만 사실과과학네트워크 활동가가 쓴 그 글은 해당 단체를 구성하는 원자력 관계자들의 평소 주장을 대체로 반복하는 내용이었다.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국내 친원전 인사들의 의견은 ‘일본 정부 및 도쿄전력과
지난 1월 일본 청년 6명이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을 상대로 약 6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배출된 방사성물질 때문에 갑상선암에 걸렸으며, 수술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거나 진학·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현은 사고 당시 18세 이하였던 38만여 명을 대상으로 갑상선암 추적 검사를 하고 있는데, 최근까지 300명 가까운 의심·확진자가 나왔다. 그런데 세계 평균보다 인구 당 수십에서 100배나 많은 소아갑상선암 발병을 당국은 ‘원전 사고와 무관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