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울 강북구 빌라관리소 현장 취재

"그냥 시간 남으니까 치우는 거지 뭐. 골목이라 (담배)꽁초도 많은데 청소도 잘 안 해줘. 풀 나 있고 하면 보기 안 좋으니까. 시간 있는 사람이라도 치우면 좋잖아." '빌라 관리자냐'는 질문에 신현대(79)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제천 고속버스터미널 바로 뒤에 있는 ‘고속연립’에 사는 신 씨는 이 연립의 관리인이나 마찬가지다. 물이 새는 지붕도, 칠이 벗겨져 보기 흉한 외벽도 그가 주도해 보수했다. 그는 "지붕은 3년 전에, 외벽은 1년 전에 했지. 세대가 몇 개 안 되니까 내가 돌면서 돈 걷어서 했어. 그냥 두면 누가 와서 살고 싶겠냐고. 누구라도 해야지."라고 했다

공동주택 거주 환경은 사실상 ‘복불복’

고속연립은 신 씨의 말처럼 8세대밖에 안 되는 작은 연립이지만, 부지가 크고 차를 가진 거주자가 적어 다른 빌라나 연립에서 주로 겪는 주차 문제는 없다. 5개 세대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살고 있기에 층간소음 문제도 없다. 지붕도, 외벽도 새것이라 건물도 깔끔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신 씨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옆에서 신 씨의 일을 돕던 남성 거주자는 "반장님 없었으면 우리 못 살지"라며 신 씨를 치켜세웠다. 신 씨는 머쓱하게 웃으면서도 "내가 며칠 안 치우면 금방 (쓰레기가) 쌓여. 공공근로자들 가끔 오긴 하는데, 좀 더 자주 치워줬으면 좋겠어"라고 덧붙였다.

고속연립 앞의 다른 빌라에 방치되고 있는 깨진 주차 통제용 관리용 러버콘. 신 씨는 “깨진 지 몇 달 됐는데, 치우는 사람이 없어 그대로”라고 했다. 김창용 기자
고속연립 앞의 다른 빌라에 방치되고 있는 깨진 주차 통제용 관리용 러버콘. 신 씨는 “깨진 지 몇 달 됐는데, 치우는 사람이 없어 그대로”라고 했다. 김창용 기자

바로 근처에 있는 21세대로 구성된 다른 연립의 상황은 달랐다. 한 동의 꼭대기 층에는 장독이 여러 개 놓여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건물 전체에 장 냄새가 가득했다. 복도나 옥상 앞, 1층 계단 아래 등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쓰다 보니, 관리나 청소가 되지 않아 사실상 ‘대형 폐기물 방치장’처럼 보였다. 게다가 바로 앞 대로변이 쓰레기 배출 지정장소라, 거주자들이 다니는 통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관리인이나 반장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 없다. 고속연립의 상황과 비교하면, 관리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좌) 꼭대기 층에 놓인 장독들. (우) 잡다한 물건이 방치된 공용 공간. 김창용 기자
(좌) 꼭대기 층에 놓인 장독들. (우) 잡다한 물건이 방치된 공용 공간. 김창용 기자

나름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연립주택도 있다. 1986년 지어져 제천시에서 4번째로 오래된 공동주택인 '우신연립'은 오히려 지은 지 얼마 안 된 주변 건물보다 깨끗한 편이다. 24세대로 구성된 우신연립의 모든 거주자는 관리비를 매달 2만 원씩 낸다. 이렇게 모은 관리비 중 10만 원은 반장 김영애 씨(63)의 수고비로, 나머지는 계단 청소 용역 비용 등으로 사용한다. 김 씨는 이 연립으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반장을 맡아 7년째 활동하고 있다. 반상회도 자주 연다. 두 달에 한 번 하는 반상회에는 보통 18세대 정도가 참석하는데, 주말에 하면 한두 세대 정도만 빠질 만큼 단합도 잘 된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우신연립 옆 평상. 연립 거주자 조옥순(78) 씨는 “여기가 입주자들이 모여서 수다도 떨고, 과일도 먹는 곳”이라고 했다. 김창용 기자
주민들이 직접 만든 우신연립 옆 평상. 연립 거주자 조옥순(78) 씨는 “여기가 입주자들이 모여서 수다도 떨고, 과일도 먹는 곳”이라고 했다. 김창용 기자

공동주택 관리 지원도 있지만…지원 범위 좁고 신청해야 지원

그런 우신연립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주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몰래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주변에 CCTV가 없다 보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연립 외벽에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쓰레기 수거가 종종 늦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리비도 좀 부족하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거나 옥상 방수 공사를 할 땐 추가로 돈을 걷어야 하는데, 그런 얘기를 어르신들께 하기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들 중에는 이런 공동주택을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제천시도 지난 1월, ‘2023년 제천시 공동주택 관리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나흘간 신청을 받아 공용시설 유지보수비와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그것도 신청받아 지원하는 방식 탓에 반장이 이런 사업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해당 공동주택 전체가 지원받지 못한다. 반장이 없는 곳은 사실상 아무 혜택도 없는 셈이다. 빌라나 연립에 살며 반장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지원 신청을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업 담당자인 제천시청 건축과 유희옥 주무관은 "소규모 공동주택을 지원해 드리려고 해도 대표자가 명확하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제천시 의림동의 한 빌라 내부. 내벽, 천장 등이 다 벗겨져 있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방치돼 있다. 김창용 기자.
제천시 의림동의 한 빌라 내부. 내벽, 천장 등이 다 벗겨져 있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방치돼 있다. 김창용 기자.

낡은 빌라 사이에 자리 잡은 '강북구 빌라관리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선 지자체가 있다. 서울 강북구다. 구청과 가까이 있는 번1동은 20세대 미만인 공동주택 비중이 전체 건물의 97%를 차지하는 데다 20년 이상 된 노후 공동주택이 44%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낙후된 동네였다. 좁은 골목이 많고, 다른 동에 비해 CCTV가 부족해 길거리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각종 치안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구청과 가까운 동네인데도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자 강북구는 "공동주택 관리조례"를 일부 개정했다. 공동주택관리법상 의무관리대상에 속하지 않는 빌라나 연립이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일부 공동주택을 임의관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공동주택 대상 관리소 설치 등 운영 규정"을 신설하고 관리자에 대해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개정된 조례 내용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적용됐다.

강북구 번1동 샛강 어린이공원 안에 있는 강북구 빌라관리소. 이 사업은 올해 전국 매니페스토 경진대회에서 자치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창용 기자
강북구 번1동 샛강 어린이공원 안에 있는 강북구 빌라관리소. 이 사업은 올해 전국 매니페스토 경진대회에서 자치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창용 기자

조례가 발효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 2월, 강북구는 약 2200만 원을 들여 시범지역 안에 빌라관리소를 설치하고, 청소도구와 수레, 자전거를 비치했다. 이어 채용 공고를 내고 평일 오전, 평일 오후, 주말을 각각 담당하는 ‘빌라 관리 매니저’ 3명을 채용했다. 이들은 강북구 생활임금인 시급 1만 1157원을 적용받아 한 달에 약 180여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그 외에 드는 예산은 없다. 강북구청 건축과 권혁민 주무관은 "현재 매니저 3명의 인건비로 매달 500여만 원을 지출하는 것 외에는 예산 소모가 없다"고 했다.

빌라 관리 매니저와 지자체 협력해 넓은 지역 관리

평일 오전 매니저로 근무하는 심상수(64) 씨는 사업이 시작된 3월부터 지금까지 약 7개월째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업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다. 빌라관리소가 담당하는 구역은 건물 68개 동, 694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가운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건물은 49개 동, 468세대이다. 구역이 넓고 세대 수도 많아, 5시간 30분이라는 짧은 근무 시간 안에 혼자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좌) 자전거를 타고 관리 지역을 돌고 있는 빌라관리 매니저 심상수 씨. (우) 빌라관리 사업에 참여한 주택 현황을 표시한 지도. 시범구역 내의 약 72%가 참여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좌) 자전거를 타고 관리 지역을 돌고 있는 빌라관리 매니저 심상수 씨. (우) 빌라관리 사업에 참여한 주택 현황을 표시한 지도. 시범구역 내의 약 72%가 참여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심 씨는 “혼자서 다 처리하기에는 (구역이) 넓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구와 협력 관계에 있어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대형 폐기물을 몰래 버렸다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사진을 찍어 앱에 올리면, 구청에서 나와서 처리해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권 주무관은 “매니저님이 사진을 찍어 올려 주시면 우리 쪽으로 접수가 된다”며 “공무원들이 일일이 살피기 힘든 골목에서 들어오는 민원이 많은데, 매니저님 신고 덕분에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주민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했다.

(좌) 민원신고 앱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는 심상수 씨. (우) 심 씨가 민원 앱을 통해 신고한 내역. 김창용 기자
(좌) 민원신고 앱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는 심상수 씨. (우) 심 씨가 민원 앱을 통해 신고한 내역. 김창용 기자

실제로 구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의 만족도는 93%에 달한다. 참여를 신청하지 않았던 빌라에서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올 정도다. 심 씨는 “(사업) 초기에는 주민들의 반응이 좋진 않았다. 쓰레기를 치우고 있으면 괜히 눈치를 주거나 피해 가는 사람도 있었다”며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청소하고 있으니 지금은 주민들이 음료를 사다 주거나 청소를 도와주기도 한다. 친해진 주민도 많고,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빌라) 옆의 건물에 사는 사람이 ‘우리도 신청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고 했다.

구역 내 빌라를 청소하고 있는 심상수 씨. 심 씨는 “쓰레기가 그냥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버리는데, 한 번 치워두면 웬만해선 안 버린다”며 “예전에는 한 바퀴 돌면 50L 쓰레기봉투 3개는 거뜬히 채웠는데, 요새는 1개도 안 차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구역 내 빌라를 청소하고 있는 심상수 씨. 심 씨는 “쓰레기가 그냥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버리는데, 한 번 치워두면 웬만해선 안 버린다”며 “예전에는 한 바퀴 돌면 50L 쓰레기봉투 3개는 거뜬히 채웠는데, 요새는 1개도 안 차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더 많은 주민이 누릴 수 있도록

강북구청의 권 주무관은 “시범지역을 선정할 때 다른 동에서 형평성과 관련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당장 내년에는 2개 동을 추가해 총 3개 동에서 빌라관리사무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예산도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려달라고 (구의회에) 요청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 당장은 매니저님들이 일반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타고 다녀 (체력적으로) 약간의 어려움이 있는데, 내년에는 전기자전거로 바꾸는 등 장비에도 투자해 근무환경을 개선할 계획도 있다”고 했다.

강북구는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강북구 전동 확대를 최종 목표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구가 지난 1월 빌라관리사무소 주민 설명회에서 발표한 “4개년 기본계획”에 따르면, 빌라관리소 사업은 내년까지의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202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아·수유권으로 사업구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권 주무관은 “주민 만족도도 높고, 거리도 깨끗해지고, 슬럼화도 막을 수 있어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최대한 빨리 많은 구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에서도 '빌라관리소' 가능할까?

제천시가 지난달 자체 조사한 공동주택 현황을 보면 시 안에 의무 관리 대상인 공동주택을 제외한 10세대 이상 빌라와 연립은 87곳으로 모두 1960세대나 된다. 여기에 10세대 미만인 연립이나 빌라도 있어, 실제 수는 더 많다. 당장 고속연립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건물도 대부분 오래됐다. 지어진 지 가장 오래된 ‘개나리연립’은 사용 허가가 난 지 44년이나 됐고, 가장 최근 지어진 건물도 10년 가까이 됐다.

서울 강북구에 비해 단독주택 비율이 높은 제천시는 단독주택과 소규모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민원을 처리하는 ‘고충민원처리기동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6명이라는 적은 인원이 민원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데다가, 빌라관리업체 등 관련 업계가 ‘지역 경제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반발해 사업을 확대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마 빌라와 같은 소규모 공동주택들은 실질적으로 시의 관리에서 제외돼 있다. 오래된 건물과 공동 생활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슬럼화가 진행되는 걸 막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낙후된 공동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자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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