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제천시 빈집 리포트② 늘어나는 빈집, 대안은 ‘자진 철거’와 ‘활용’

전국에 1년 이상 전기나 상수도 사용이 없는 빈집은 10만 8000가구에 달한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수치다.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전국적인 문제다. 정부나 지자체도 빈집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관도 해치고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빈집을 강제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만들었다. 하지만 빈집 정비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예산과 인력 문제가 있고, 빈집 주인들도 철거를 꺼리기 때문이다.

철거하자니 비용 부담, 막상 철거하면 세금 가중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서현칠·정정순 부부의 빈집. 대문 틈이 쓰레기로 메워져 있다. 양혁규, 김다연 기자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서현칠·정정순 부부의 빈집. 대문 틈이 쓰레기로 메워져 있다. 양혁규, 김다연 기자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30길과 용두천로가 만나는 곳에 단층 폐가 하나가 있다. 외벽의 흰색 페인트가 적잖이 벗겨졌고, 옥상 난간은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렸다. 담벼락 대문 두 짝은 녹슬어 내려앉았다. 벌어진 대문 틈에서부터 마당까지 쓰레기로 가득하다. 인근 주민은 “밤마다 이곳 앞을 지나기가 무섭다”고 토로했다. 맞은편 부동산 대표는 “주민들이 가끔 민원을 넣어서 경찰이 왔었다”고 말했다.

이웃들이 불편해했지만, 집주인인 서현칠(77)·정정순(72) 부부는 집을 철거하지 않았다. 비용 때문이다. 십수 년 전 멀쩡했던 이 집에 불이 났다. 임차인이 가스를 쓰다 난 불이었다. 고쳐 쓸 수 없을 정도로 집 내부가 타버렸다. 부부는 철거를 고민했다. 당시 철거 비용이 700만 원이었다. 부부는 부담스러웠고, 철거를 포기했다.

충북 내 시·군별 빈집 철거 지원금과 빈집 철거 평균 비용. 그래픽 양혁규
충북 내 시·군별 빈집 철거 지원금과 빈집 철거 평균 비용. 그래픽 양혁규

당시는 제천시가 빈집 소유주에게 철거 비용 100만 원을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제천시는 가구당 철거 지원금을 지난해 200만 원으로, 올해 300만 원으로 올렸다. 충북 내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철거 비용은 더 올랐다. 현재 철거 비용은 대개 2000만 원에서 4000만 원이다. 정 씨는 “여전히 철거 비용이 부담스럽고, 지원금도 적다“고 말했다.

이어서 부부는 “빈집을 철거해 나대지가 되면 세금이 비싸지고, 팔 때도 세금이 많다”며 철거를 꺼렸다. 실제로 빈집을 철거하면, 과세 대상이 주택에서 토지로 바뀌면서 재산세가 늘어난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노후 빈집보다 토지에 높게 책정되는 탓이다. 세율도 집이 있을 때보다 높아진다. 재산세율은 빈집에 적용되는 주택분이 0.1~0.4%, 빈집이 철거된 나대지에 적용되는 토지분이 0.2~0.5%다. 세율이 약 2배 차이가 난다.

주택과 토지에 적용되는 재산세율 비교. 그래픽 양혁규
주택과 토지에 적용되는 재산세율 비교. 그래픽 양혁규

나중에 팔 때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도 늘어난다. 양도소득세율 역시 주택보다 토지에 높게 적용된다. 토지가 투기에 쓰이지 않고, 주택처럼 쓰임새 있게 이용되도록 유인하려는 목적이다. 현행법상 빈집이 철거되면서 생긴 나대지는 비사업용 토지에 해당한다. 현재 양도소득세율을 보면 주택분은 6~45%지만, 비사업용 토지분은 16~55%로 10% 포인트 더 높다. 10% 포인트라는 최고세율 차이도 크지만, 역시 과세표준이 낮은 구간에서는 2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주택과 비사업용 토지에 적용되는 양도소득세율 비교. 그래픽 양혁규
주택과 비사업용 토지에 적용되는 양도소득세율 비교. 그래픽 양혁규

막대한 철거 비용과 철거 뒤 늘어날 세금에 빈집 주인들은 철거를 꺼린다. 영세한 빈집 주인일수록 더욱 부담을 느낀다. 빈집을 방치하면 이웃에 피해가 간다는 걸 알면서도, 주인들이 쉽사리 철거를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다.

유명무실한 소규모주택정비법·농어촌정비법

이런 경우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나설 수 있다. 기초지자체장은 소규모주택정비법과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노후 빈집을 소유한 이에게 안전조치를 하거나 철거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소유주가 60일 이내에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직권으로 해당 빈집을 철거할 수 있다.

구체적인 철거 대상은 ▲붕괴ㆍ화재 등 안전사고나 범죄발생의 우려가 높은 경우 ▲위생상 유해 우려가 있는 경우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경우 ▲주변 생활환경 보전을 위하여 방치하기에는 부적절한 경우에 놓인 빈집이다.

소규모주택정비법과 농어촌특별법의 빈집 철거 명령·직권 철거 관련 조항. 그래픽 양혁규
소규모주택정비법과 농어촌특별법의 빈집 철거 명령·직권 철거 관련 조항. 그래픽 양혁규

이 법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을까? 단비뉴스가 확인해 보니 지난해 제천시가 직권 철거한 빈집은 한 채에 불과했다. 직권 철거가 사유 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은 토지수용전문 변호사는 지난 6월 23일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철거 대상 빈집을 정하는) 법령의 기준이 모호할 수 있다”며 “소유주가 자기 빈집이 철거 대상이 된 이유에 동의하지 않아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하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지자체가 막대한 행정력을 쏟아 대응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빈집 소유주가 직권 철거 조항을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자체장의 직권 철거가 빈집 소유주 입장에서 철거 비용을 아끼기 위한 편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빈집 소유주가 철거비 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기기 위해, 일부러 빈집을 방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천시청 건축과 조현백 주거복지팀장은 지난 5월 1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직권으로 빈집을 무상 철거해 주거나 정비해 주면, 자비나 철거 지원금으로 빈집을 철거하는 소유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강제 철거 시 빈집 철거 보상비나 살림 보상비 등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데, 이런 법이 악용되면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주택정비법과 농어촌정비법에는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빈집을 철거할 경우 소유주에게 정당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제천시장은 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라 한 해 두 번까지 이행강제금도 부과할 수 있다. 안전조치·철거 명령을 60일 내에 따르지 않은 도심 내 빈집 소유주가 대상이다. 그러나 지난 7월 20일 현재 제천시청이 빈집 소유주에게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소규모주택정비법의 이행강제금 부과 관련 조항. 그래픽 양혁규
소규모주택정비법의 이행강제금 부과 관련 조항. 그래픽 양혁규

제일 큰 문제는 빈집 소유주들의 경제 사정이다. 이들 중에는 이행강제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행강제금은 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건축물 시가표준액 절반의 20~40%, 철거하지 않을 때는 40~80%에 달하는 금액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들이 반발하면 지자체와 집주인 사이에 마찰이 생기고 법적 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이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조 팀장은 “농촌 경제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이행강제금 부과만이 능사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소유자나 상속자를 파악해 행정지도한 뒤 자진 철거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 예산만으로는 부족, 전담 인력도 1명뿐

제천시는 자체 예산만으로 빈집정비사업을 진행한다. 국비와 도비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 조정희 부연구위원이 지난해 발간한 연구보고서 “지방정부의 빈집 관리 정책역량 분석과 시사점”을 보면, 작년 충청북도 내 시군구별 빈집 관련 예산을 합친 약 16억 원 가운데 국비와 도비 비중은 0%였다. 그러다 보니 충북의 빈집 관련 시군구 총예산 규모도 전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전국 시군구 대비 충북 시군구의 빈집 관련 예산 국·도비 비중. 그래픽 양혁규
전국 시군구 대비 충북 시군구의 빈집 관련 예산 국·도비 비중. 그래픽 양혁규

조현백 팀장은 “국·도비 예산 없이 재정이 열악한 시 예산만으로 사업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향후 국·도비 매칭 사업이나 국가적 프로젝트가 도입되어 전국 지자체들이 일제히 빈집을 정비할 수 있다면, 제한된 기간에 빠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도청 건축문화과 전은지 주무관은 지난달 6일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특례법에 따라 시장·군수가 시군구의 계획하에 빈집 정비를 진행하게 돼 있다”며 도비 지원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충북과 경북, 전남을 뺀 14곳은 지난해 산하 시군구에 빈집 정비 예산을 지원했다. 전 주무관도 “올 하반기에 도비 지원 사업을 추진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며 “공모사업으로 시군에서 신청받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비 확보도 어렵다. 빈집 정비 자체가 목적인 국비 지원 사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중앙부처는 빈집 정비를 일부 포함한 국비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빈집 정비 목적으로만 해당 사업들을 신청해서는 예산을 지원받기 어렵다. 나름의 목적을 갖고 부처별로 공모하는 사업들이어서 빈집 정비에 적합한 예산 확보가 어렵다.

조직과 인력도 문제다. 제천시청에는 빈집 정비를 전담한 조직이 없다. 건축과 주거복지팀 박영주 주무관 한 명만이 빈집 정비 사업 전반을 맡고 있었다. 동시에 박 주무관은 빈집과 관련 없는 빈집 문제 외의 다른 업무도 맡고 있다. 그러나 박 주무관은 지난 7월 31일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인력이 부족해도 빈집 정비 사업 규모와 예산이 크지 않아서 어려운 점은 크게 없다”고 말했다.

세금 '혜택'과 '부담' 동시에 부여해야

한국지방세연구원 허원제 연구위원은 지난 6월 23일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빈집을 철거하면 재산세를 절반으로 감면하고, 대신 빈집을 방치하면 화재나 붕괴 위험 등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빈집을 소유주가 자진 철거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세금 혜택과 부담을 동시에 부여하자는 얘기다.

허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주택보다 빈집이 화재·붕괴 등 안전 위험이 크고, 주변 피해로 번질 수 있어 소방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며 “빈집에서 원인이 발생하고 있으니 소방 행정력을 집행할 수 있도록 소유주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빈집에 적용되는 재산세를 소규모 주택분보다 최대 6배까지 더 부과한다. 동시에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도 부여한다. 빈집을 상속받은 뒤 3년이 지난 해까지 팔면, 양도소득 3000만 엔을 특별공제받을 수 있다.

영국은 빈집에 지방정부세를 중과한다. 잉글랜드는 집이 빈 기간에 따라 400%까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1년 이상 빈 집에 각각 200%, 400%까지 지방정부세를 중과한다. 동시에 각 지방정부는 집이 빈 이유에 따라 지방정부세를 감면한다. 집이 큰 수리 중에 있거나, 소유주나 임차인이 숨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빈집으로 '청년 창업 공간' 만든다면

충북연구원 정삼철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4월 24일 단비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빈집을 청년 창업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이 지역에 살면 고령화 문제가 해결되고, 빈집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빈집이 초래하는 사회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2019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유휴시설에서 창업하려는 청년과 귀농·귀촌인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휴시설 60곳을 사업에 활용했지만, 빈집은 1곳뿐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촌계획과 한우리 사무관은 “사업에 활용할 빈집을 매입하려고 해도 소유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며 “공시가가 낮은 농촌 빈집을 정부에 파는 것이 소유주들한테 크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동구청도 2020년부터 ‘빈집 청년창업 채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구도심 빈집에서 창업할 청년을 돕는 사업이지만, 실제 활용된 빈집은 없었다. 빈 상가나 점포 30곳이 주로 활용됐다. 사업을 담당한 광주광역시 동구청 청년체육과 윤혜정 주무관은 “구도심 빈집은 대개 낙후돼 있어 리모델링 비용도 많이 들고, 상권에서도 벗어나 있다”며 “사업 참여 청년들은 기존에 상가였던 곳을 더 원한다”고 말했다.

제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천시청은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데 빈집을 활용하지 않았다.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창업 지원 사업이 있지만, 빈 상가를 활용할 뿐이었다. 농촌 빈집 리모델링 사업도 있지만, 창업 목적은 아니었다. 참여자 대부분도 청년이 아닌 5~60대 귀농·귀촌인이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지역 사회와 대학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천시가 세명대학교 학생들이 각 읍·면의 빈집에서 창업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시와 학교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면 제천에 청년 창업 특구를 만들 수 있다”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