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2 대산농촌재단·유엔식량농업기구 청소년 연수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재난 등으로 식량위기에 관한 걱정이 부쩍 커진 가운데 청소년들이 현장에서 우리 농업·농촌의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둘러봤다. 대산농촌재단(이사장 김기영)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소장 탕 셩야오)가 함께 주최한 청소년 농업·농촌 연수에 국내 국제학교 학생과 일반 청소년 등 15명이 참가했다.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열린 1·2차에 이은 3차 연수로, <단비뉴스>가 동행했다.

농업·농촌 연수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전라남도 담양군 메타세콰이아 거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농업·농촌 연수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전라남도 담양군 메타세콰이아 거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담양 대나무밭

연수단은 지난달 21일 오후 전라남도 담양군의 죽녹원(竹綠苑)을 찾았다. 대나무숲이 울창한 죽녹원은 2020년 6월 대나무 품목으로는 세계 최초로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에 등재됐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2002년부터 FAO가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농업문화·경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등을 다음 세대에 전승하기 위해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구들장 논, 제주의 밭담, 경남 하동군의 하동 전통차, 충남 금산의 전통 인삼, 담양 대나무밭 등 5개가 선정됐다.

연수단은 죽녹원 대나무밭에서 이철규(54) 담양군 농업기술센터 소장을 만났다. 이 소장은 ‘담향’과 ‘죽향’ 등 우수한 딸기 신품종을 개발해 일본 품종인 육보를 대체한 전문가다. 2020년 폭우에 담양의 딸기농장이 물에 잠기면서 죽향딸기 종자가 사라질 위기를 겪었던 그는 종자를 지키기 위해 ‘노아의 방주’처럼 담양군농업기술센터 내 육묘 공동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연수단에게 “대나무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식물로 꼽힌다”며 기후변화 시대에 돋보이는 죽녹원의 가치를 설명했다. 대나무밭에는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며, 어우러진 습지는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 대나무밭은 재난을 막아주는 방재림의 기능도 하며, 사시사철 변하는 대나무밭의 경관은 소중한 관광자원이 된다.

“죽녹원은 담양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이기도 하지만, 담양의 것이 아닌 세계인의 것이에요.”

이 소장은 ‘대나무밭 농업시스템’은 담양에 있지만, 세계적 관점에서 보존되어야 할 유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세계 공통의 책임이며,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미래세대에 좋은 환경을 물려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담양 죽녹원을 둘러보는 연수단과 대나무숲의 가치를 설명하는 이철규 담양군 농업기술센터 소장. 박시몬 기자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담양 죽녹원을 둘러보는 연수단과 대나무숲의 가치를 설명하는 이철규 담양군 농업기술센터 소장. 박시몬 기자

땅의 힘을 기르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친환경농업

해 질 무렵 연수단은 죽녹원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담양군 수북면 황금마을로 이동했다. 전남 친환경농업교육원으로 지정된 두리농원에서 김상식(59) 대표가 연수단을 맞이했다. 그는 1991년 황금마을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했고 2002년에는 지역 55개의 농가와 함께 두리영농조합법인을 결성했다. 40년 이상 친환경 농사를 고수해 온 김 대표는 토경재배의 가치를 역설했다.

“농산물은 흙에서 자라죠. 이처럼 흙 위에서 재배하는 걸 토경재배라고 해요. 흙이 아닌 배지 위에 양액을 공급하며 식물을 재배하는 방식을 양액재배라고 해요. 두 재배방식의 작물 모양과 맛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토경재배가 친환경적이고 땅심을 기를 수 있는 지속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가 땅의 힘을 활용한 토경재배 등 친환경농업에 관해 설명한 뒤 올해 처음 수확한 방울토마토 등을 연수단 저녁 식사로 제공했다. 박시몬 기자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가 땅의 힘을 활용한 토경재배 등 친환경농업에 관해 설명한 뒤 올해 처음 수확한 방울토마토 등을 연수단 저녁 식사로 제공했다. 박시몬 기자

김 대표에 따르면 토경재배는 지력(地力)을 이용한 작물 재배방식이다. 땅속의 미생물, 곰팡이 등의 균으로 만들어진 천연 양분이 사용된다. 시설비용이 저렴하며 농산물의 보관기간이 길다는 장점도 있다. 양액재배는 배지(식물 배양 세포를 기르는 데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액체)와 인공 양분을 이용한 작물 재배방식이다. 양액은 질소, 인산 등 식물의 13가지 필수원소로 만들어진다. 노동력 투입이 적고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재배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인공 양분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토양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

김 대표는 “무엇을 먹느냐가 사람의 건강을 좌우하듯, 소비자가 먹는 작물이 어떻게 재배됐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소비자는 구매하는 작물이 토경재배와 양액재배 중 어떤 방식으로 컸는지 알 수 없다. 김 대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해 상표에 작물의 재배방식을 알려야 한다”며 “여러분은 토경에서 나온 농산물을 드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아토피 치료 고심하다 발아현미 품종 개발

연수 둘째 날에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연수단이 전남 곡성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방문했다. 미실란(美實蘭)은 ‘아름다운 사람들(美)이 희망의 열매(實)를 꽃 피우는 곳(蘭)’이라는 뜻이다.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미실란 내부에는 발아현미 요리로 잘 알려진 ‘밥 카페 반(飯)하다’와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이 있다. 연수단은 유기농 오색 발아현미가 들어간 자연 채식 밥상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연수단을 맞이한 이동현(53) 미실란 대표는 미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벼농사를 짓는 농부다. 그는 순천대와 서울대에서 농생물학을 공부했고,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규슈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때 세계적 미생물학자를 꿈꿨던 그는 둘째 아이가 앓던 아토피 피부염이 계기가 돼 2005년 11월 농부가 됐다. 아이에게 발아현미를 주식으로 먹이고 목초액 치료를 병행한 결과 피부염이 나았기 때문에, 직접 발아현미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하는 일에 나선 것이다.

이동현 미실란 대표가 ‘생태 전환의 시대, 고민과 작은 실천’이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 대표가 벼농사를 짓는 논에는 품종별 이름이 적힌 푯말이 세워져 있고 일반 논의 2배인 30cm 간격으로 벼가 심겨있다. 박시몬 기자
이동현 미실란 대표가 ‘생태 전환의 시대, 고민과 작은 실천’이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 대표가 벼농사를 짓는 논에는 품종별 이름이 적힌 푯말이 세워져 있고 일반 논의 2배인 30cm 간격으로 벼가 심겨있다. 박시몬 기자

이 대표는 강의에서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습지가 논이며, 논은 가장 많은 생물종다양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논을 지키기 위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인 우렁이 농법을 활용한다. 우렁이가 논에서 어린 풀(잡초)을 먹어주기 때문에 농약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는 “논을 지키는 것이 지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미실란 앞에 펼쳐진 50헥타르(ha)의 논이 더는 파괴되지 않게 지키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팜 경쟁력을 위해 종자와 기자재의 주권화 필요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기술 등을 활용해 농업을 자동화, 정밀화, 무인화하는 것, 즉 ‘스마트팜’도 연수단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연수단은 지난달 23일 전북 김제시 백구면의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찾았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2021년 11월 준공됐으며 21.3ha 규모로 국비, 도비, 시비 총 829억 원이 투입됐다. 혁신밸리는 청년보육 실습농장, 임대형 스마트팜, 스마트팜 실증단지, 빅데이터 센터 등 네 분야로 운영된다. 이창희(40) 전라북도 농식품인력개발원 주무관은 “우리나라가 스마트팜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종자와 기자재의 우리나라 주권화가 필요하다”며 “(현재) 국내 스마트팜에는 네덜란드 제품이 대다수라 국내에서 유지 관리 보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파프리카 씨앗 하나에 1200원 정도 하는데, 정작 심으려고 하면 몇천 주 몇만 주를 심어야 한다”며 “종자 가격을 지불하는 것만 해도 큰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 종자와 농약값을 스위스의 신젠타와 미국의 몬산토 같은 글로벌 기업에 지불한다. 그리고 시설원예 및 온실의 환경제어 시스템은 네덜란드의 프리바에서, 관수자재는 이스라엘의 네타핌에서 수입한다. 이 주무관은 “우리나라도 자체적으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스마트팜 생태계와 기업을 육성해야 하며 우리의 기술과 종자를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온실 안에서 익어가는 파프리카 등 다양한 작물의 모습. 이창희 주무관이 연수단에게 스마트팜의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온실 안에서 익어가는 파프리카 등 다양한 작물의 모습. 이창희 주무관이 연수단에게 스마트팜의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청년보육 실습농장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스마트팜과 관련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곳에서는 매년 5월에서 7월 사이 40세 미만의 청년 50명을 모집해 20개월 동안 교육한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스마트팜, 작물재배, 시설원예에 관한 교육을 받고, 우수 교육생 10명은 직접 단지 내 실증 온실에서 스마트팜을 경영해 실적을 내는 경험도 한다. 청년들이 스마트팜 농업인으로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도 이뤄진다.

멀게만 느꼈던 농업농촌을 재발견한 시간

조연우(17·솔트국제학교) 참가자는 연수를 마무리하면서 “직접 농업·농촌 현장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며 “주된 관심사인 경제 분야의 관점과 농촌·농촌의 관점이 상충한다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농업·농촌을 지키는 것이 지속가능성과 같은 다양한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유은(15·홈스쿨링) 참가자는 “농업·농촌을 나의 관심 분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연수로 직접 농촌을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 하나하나를 생각해봐도 농업과 관련이 없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 분야가 생각보다 넓고 융합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나은(24·건국대) 참가자는 “농촌 현장을 직접 방문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농촌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며 “수업에서 접했던 농촌의 이미지를 벗어나, 변화하는 농촌의 정의와 가치에 주목해보고 싶게 된 연수여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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