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대제중 엄재민 교사의 글쓰기 교육

충북 제천시 대제중학교에 글 잘 쓰는 학생들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5년여 전이다. 2018년, 이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엄재민(54) 교사는 정규 교과목과 별개로 ‘글쓰기 수업’을 처음으로 열었다. 이 수업에서 글쓰기를 배운 학생들은 이후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이 학교 학생들이 받은 글짓기 관련 상만 90개가 넘는다. 코로나 19 여파로 글짓기 대회가 줄어들었지만, 지난해에도 40개 가까운 상을 받았다.

충북 제천 대제중학교 엄재민 교사는 2020년부터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의 글을 모아 문집으로 만들었다. 문집 제목 '바람이 밀어내도 먹구름이 덮쳐와도'(2021년), '서로 어울려 사는 들꽃'(2022년)은 학생들의 수상작에서 가져온 글귀다. 박동주 기자
충북 제천 대제중학교 엄재민 교사는 2020년부터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의 글을 모아 문집으로 만들었다. 문집 제목 '바람이 밀어내도 먹구름이 덮쳐와도'(2021년), '서로 어울려 사는 들꽃'(2022년)은 학생들의 수상작에서 가져온 글귀다. 박동주 기자

그 출발은 ‘민송백일장’이었다. 2018년 봄, 세명대학교는 제3회 민송백일장을 열었다. 엄재민 교사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두었다. 백일장에 딸린 북콘서트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가 좋아하는 구효서 소설가와 정끝별 시인이 세명대에 와서 문학을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그들을 만나려면, 백일장에도 참가해야 했다.

백일장이 열리던 날, 학생들을 데리고 세명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참가를 신청할 수 있었다. “선생님도 써보세요.” 학생들이 조르고 권했다. 민망했지만 ‘한번 써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생들의 눈을 피해 대학 도서관 컴퓨터실로 슬쩍 빠져 글을 썼다.

뒤이어 북콘서트가 열렸다. 재미있게 보았다. 마지막으로 시상식이 열렸다. 중등부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그 이름 가운데 대제중 학생도 있었다. 아이는 일찍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다른 학생이 대신 받아도 좋은지 물으려고 엄 교사는 시상식장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사회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일반부, 대제중학교 엄재민 선생님!”

그는 제3회 민송백일장 일반부 산문 부문에서 장원상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을 받고 나서야 생각했다. ‘나한테도 이런 재주가 있구나.’ 그 마음과 기분이 좋았다. 똑같은 마음과 기분을 아이들이 느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부심을 아이들이 평생 간직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2018년 세명대학교에서 열린 제3회 민송백일장에서 엄재민 교사(왼쪽)가 일반부 산문 장원상을 받고 있다. 황진우 기자
2018년 세명대학교에서 열린 제3회 민송백일장에서 엄재민 교사(왼쪽)가 일반부 산문 장원상을 받고 있다. 황진우 기자

학교에 돌아온 이후, 엄 교사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정규 수업만으로 부족했다. 여러 방편으로 글쓰기 수업을 열었다. 학기 중 한 달에 한 권, 1년에 딱 10권의 책을 함께 읽는 인문 동아리 ‘그루터기’를 만들어 지도했다. 방과 후에 글쓰기를 공부하는 ‘생각과 표현’ 강의도 열었다. 방학 동안에는 글쓰기의 기초를 집중적으로 익히는 특강을 개설했다.

동아리를 만들고 강의를 열었다고 끝나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햄버거 사준다’, ‘생활기록부에 (수행 실적이) 한 줄 더 생긴다’ 등의 말로 아이들을 꼬드겼다”고 엄 교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 교사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100명에 달한다.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글쓰기

그의 글쓰기 교육은 크게 두 갈래로 이뤄진다. 방학 동안엔 주 5일, 하루 4시간씩 글쓰기 기초를 가르친다. 지난해 여름방학, 아이들 앞에 선 엄 교사는 ‘나는 핸드폰입니다’라는 문장을 보여줬다. 곧이어 말했다. “이제 30분 안에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걸 쓰는 거야! 글쓰기 시작!”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는 아이들은 멈칫거리다 후다닥 펜을 들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엄 교사는 학생들을 독려했다. “맞춤법 틀려도 돼. 뭐라도 쓰면 돼.” 30분 동안 무엇이건  써서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무조건 쓰기’는 방학 때마다 빼놓지 않는 그의 교습법이다.

무조건 쓰는 방학이 지나면, 학기중 금요일 오후 3시 40분마다 2시간씩 글을 쓰는 ‘생각과 표현’ 수업을 연다. 이 수업에선 여러 글짓기 대회에 제출할 글을 공들여 쓴다. 엄 교사는 교육청에서 각급 학교로 보내는 공문, 그리고 각종 공모전 공고가 올라오는 누리집을 항상 살핀다. 그 가운데 백일장 개최를 알리는 내용이 있으면, 그 글제를 수업 시간에 활용한다. 제시어를 읽은 학생들은 마음에 떠오르는 글감을 찾는다. 이미지를 보고 연상하기도 한다. 글은 그 자리에서 쓴다. 다 쓰고 나면 각자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데는 2주쯤 걸린다.

엄재민 교사가 충북 제천 대제중학교 도서관에서 이미지 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카드를 이용해 방학마다 하는 글쓰기 기초반 수업에서 글감 찾는 훈련을 한다. 박동주 기자
엄재민 교사가 충북 제천 대제중학교 도서관에서 이미지 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카드를 이용해 방학마다 하는 글쓰기 기초반 수업에서 글감 찾는 훈련을 한다. 박동주 기자

이러한 글쓰기 공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엄 교사는 생각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 교사는 글제에 비춰 자신을 찾는 게 글쓰기라고 가르친다. “이 글에 네가 없잖아.” 수업 때 자주 하는 말이다. 글쓰기 수업의 이름이 ‘생각과 표현’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자는 뜻이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찾는다. 마치 엄 교사가 민송백일장에서 ‘글 쓰는 엄재민’을 발견했던 것과 같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그도 계속 글을 쓴다. 가르치는 일에는 전달력이 필요해서다. “수업 시간만 해도 아이들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엄 교사는 말했다. 엄 교사는 대제중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 직원과 함께 2020년과 2021년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 독후감 일반단체 부문에서 잇따라 수상했다. 엄 교사에게 ‘글쓰기 코칭’을 받은 동료 교사도 적지 않다. 그렇게 익힌 글쓰기 비법을 동료들은 ‘가정통신문’에 써먹는다. 잘 다듬어진 가정통신문 덕분에 학부모와 소통이 훨씬 편안해졌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민송백일장이 뒤바꾼 20년 교사 생활

엄 교사의 열정은 아주 최근에 생겨났다. “(교사가 되고) 20년 동안 맨날 딴짓하고 술 먹고 운동하고 놀았다”고 엄 교사는 말했다. 제천에서 나고 자란 엄 교사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문학회 사람들과 술 먹고 글을 썼다. 졸업 후엔 서울 충무로에 있는 광고 회사에 취업했다. 광고 문구도 직접 쓰며 5년째 회사생활을 하던 1998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어머니가 홀로 계신 제천으로 돌아왔다. 직업도 바꿨다. 교사가 됐다. 특별한 열정 없이 시작했다.

국어 교사였지만, 글쓰기나 읽기 교육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뭘 한다고 나서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송백일장 이후 제대로 글쓰기를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고 엄 교사는 돌아봤다.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고 그는 말했다.

엄재민 교사가 인문 독서 동아리 ‘그루터기’에서 읽으려고 구매한 책들을 보여주고 있다. 엄 씨는 “다음 달에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가 제천에서 북토크를 한다”면서 “그 전에 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북토크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동주 기자
엄재민 교사가 인문 독서 동아리 ‘그루터기’에서 읽으려고 구매한 책들을 보여주고 있다. 엄 씨는 “다음 달에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가 제천에서 북토크를 한다”면서 “그 전에 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북토크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동주 기자

이제 엄 교사의 꿈은 대제중학교의 독서와 글쓰기 교육을 더욱 체계화하고, 이를 일종의 ‘브랜드’로 만들어 전국 각급 학교에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교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더 많은 교사가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고 말하는 엄 교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지난 5월 9일, 대제중학교 도서관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한 엄재민 교사가 활짝 웃고 있다. 박동주 기자
지난 5월 9일, 대제중학교 도서관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한 엄재민 교사가 활짝 웃고 있다. 박동주 기자

그래서 그는 여전히 바쁘고, 바빠서 행복하다. “교사 생활 25년 중에 이렇게 열심히 가르친 건 최근 5년뿐이지만, 예전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저 온종일 굉장히 바쁘거든요.”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읽고, 기사에서 글감을 찾아 블로그에 올린다. 그 블로그를 학생들도 찾아와 읽는다. 이윽고 그는 정규 수업에 더해 방과 후 수업과 동아리 수업을 진행한다. 퇴근하면 동네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고른다. 충북 교육도서관의 지원을 받아 동료 교사들과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도 틈틈이 쓴다.

이 바쁜 일과에 최근 새로운 일이 보태졌다. 오는 25일 세명대학교에서 열리는 제5회 민송백일장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열렸던 2019년 제4회 민송백일장에서 엄 교사가 지도한 대제중 학생 10명(장원 2명, 금상 2명, 은상 3명, 동상 3명)이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며 재개된 이번 민송백일장에도 참가하느냐고 묻자 엄 교사는 그렇다고 했다. 엄 교사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특별한 일정 없으면 저는 (선생님 따라) 다 가요.”하고 웃었다.

글 읽고 쓰는 일을 참 좋아하는 엄 교사, 그리고 대제중학생들과 함께 자신을 찾는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은 여기에서 참가를 신청할 수 있다.

 

오는 25일 열리는 제 5회 민송백일장 홍보 포스터. 세명대 제공
오는 25일 열리는 제 5회 민송백일장 홍보 포스터. 세명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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