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젊은 시절 남자와 함께 군에서 복무를 했던 한 동료가 남자를 찾아와 수년째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에 대해 털어놓았다.

“스물여섯 마리 개가 날 쫓아오고 있었어, 사나운 얼굴을 하고 나를 죽일 기세였지.”

“서른 마리도 아니고, 왜 하필 스물여섯 마리야?”

“아직 말 안 한 게 있어, 레바논에서...”

“레바논에서 뭐?”

“전쟁 초기 레바논 여러 마을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잡으러 갔었지”

부대가 마을에 가까이 다가가자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차마 사람에게 총을 쏘지 못했던 동료에게 개라도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한 마리, 두 마리, 모두 스물여섯 마리의 개가 동료의 총에 쓰러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지만, 몸을 뒤틀며 쓰러지던 개들의 눈빛은 떨쳐낼 수 없는 트라우마로 그의 무의식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동료와 헤어진 후 남자는 홀로 밤거리를 배회하며 레바논 내전에서 있었던 일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떠올린 유일한 장면은 어두운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던 조명탄의 노란 불빛으로 환히 밝혀진 도시의 잔해뿐이었다. 그 기억 속에 자신은 벌거벗은 채 바다에 몸을 맡기고, 공허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장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가, 아니면 동료와의 만남 이후 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대체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건가.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 보라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남자는 오래전 전우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남자는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려 했지만, 그 시절을 말해줄 수 있는 어떠한 영상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흔적 없이 사라진 과거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잊어버린 20년 전의 대학살을 떠올리려는 남자

<바시르와 왈츠를>(2008)은 이스라엘의 아리 폴만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에서 ‘나’, 즉 폴만은 정신과 의사를 시작으로 20년 전 자신과 함께 레바논으로 파병되었던 전우 다섯 명, 이들을 지휘했던 상관, 레바논에서의 대학살을 취재한 기자를 차례차례 찾아간다. 레바논에서 있었던 일들은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 조각들이 모여 재구성되었다.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포스터. 출처 IMDb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포스터. 출처 IMDb

다큐멘터리는 1982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레바논은 종교로 결집된 정치 집단 간의 갈등으로 극심한 정세 불안을 겪고 있었다. 1975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에 대립하는 기독교계 팔랑헤 민병대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다. PLO를 후원하던 시리아군이 내전에 개입하자, 팔랑헤 민병대 배후에 있던 이스라엘도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 암살 기도에 PLO가 연루되었다는 명목으로 당시 PLO 수뇌부가 있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진격해 도시를 포위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으로 취임할 예정이었던 팔랑헤 민병대의 지도자 바시르 제마엘이 시리아 비밀요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지도자를 잃은 팔랑헤 민병대는 분노에 휩싸인 채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Sabra)와 샤틸라(Chatila) 두 곳에 들이닥쳤다. PLO 전사들을 색출하겠다는 명분으로 난민촌에 진입한 민병대는 민간인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학살 현장 근처에 있었던 이스라엘군은 조명탄을 쏘아 올리며 팔랑헤 민병대의 양민학살을 방조했다.

폴만도 당시 학살 현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학살에 관한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폴만과 달리, 네덜란드에 정착해 살고 있는 전우 카미는 파병 초기 꾸었던 꿈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카미는 이른 새벽 오래된 벤츠 한 대가 다가오자 두려움에 휩싸인 병사들이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카미의 기억 속 공포감에 사로잡힌 병사들이 총을 난사하는 데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카미의 이야기를 들은 후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창밖을 응시하던 폴만. 사라진 기억이 서서히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바시르가 사망한 후, 폴만의 부대는 베이루트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해안을 따라 세워진 베이루트의 고층 호텔 빌딩들은 전부 폐허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어느 교차로를 향해 걸어가던 중, 부대는 호텔의 높은 층에 매복해있던 저격수의 총격을 받기 시작했다. 전진이 어려워지자 폴만의 동료 슈멜 프렌켈은 옆 사람의 기관총을 빼앗아 거리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프렌켈은 사방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며 총의 반동을 이겨내지 못해 휘청였다. 폴만의 눈에는 프렌켈의 몸짓이 마치 우아한 왈츠를 추는 것과 같았다.

“교차로의 프렌켈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 속에서 있었어. 그는 교차로를 건너가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진 듯 춤을 추고 있었어. 적군을 저주하며 거기 영원히 있을 것 같았지. 거리의 한가운데에서 왈츠 솜씨를 과시하는 듯했고, 머리 위로 바시르의 포스터가 보였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기관총을 쏘는 프렌켈,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기관총을 쏘는 프렌켈,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종군기자 론 벤이샤이는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시간 난민 수용소에서 대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곧장 국방 장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돌아온 건 “주의를 환기시켜줘 고맙네”라는 무책임한 말뿐이었다. 론이 취재팀을 꾸려 난민촌에 도착한 것은 대학살이 끝난 직후였다. 수용소 안의 광경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 사이로 여자와 아이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때 잔인하게 학살된 민간인이 최소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달했다.

마을에서 팔랑헤 민병대의 학살이 벌어지던 순간, 이스라엘군은 국방장관의 명령에 따라 조명탄을 쏘아 팔랑헤 민병대의 민간인 학살을 지원했다. 건물 옥상에서 쏘아 올린 조명탄은 밤하늘 높이 날아올라 난민촌을 노란빛으로 밝혔다. 당시 폴만을 비롯한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의 조명탄 지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몰랐지만, 훗날 사건의 진상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깊은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남아 두고두고 그들을 괴롭히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마지막 몇 분을 제외한 모든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짙은 음영과 선명한 색감으로 표현된 그림들이 작품의 시각적인 특징이다. 애니메이션은 사실이 아닌 상상력을 펼치기에 적합한 표현방식으로 여겨져 왔다.

대화를 나누는 카미와 폴만.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대화를 나누는 카미와 폴만.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오랜 세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며 다큐멘터리 작가의 대모로 불리는 김옥영 작가는 <바시르와 왈츠를>을 놓고 “거의 전체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불리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진실을 상징하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의 만남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바시르와 왈츠를>이 ‘다큐멘터리’라 불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란 제작자가 자신의 시각과 해석을 통해 어떤 사안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는 다양하다. 그중 공통으로 들어가는 키워드를 뽑아보면, 다큐멘터리의 핵심이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사실’과 그 이야기를 재구성해 나아가는 ‘해석’이라는 것을 얼추 가려낼 수 있다. 결국,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자가 자신만의 관점과 해석을 통해 어떤 진실을 드러낼 수 있냐는 점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바시르와 왈츠를>을 다큐멘터리로 여기는 이유는 그 속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증언, 그리고 참혹했던 1982년 레바논 전쟁에 대한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폴만 감독에 따르면 <바시르와 왈츠를>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인물 중 일곱 명의 음성은 실제 증언을 녹음해 사용했고, 인물의 외모 역시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냈다. 아리 폴만 감독의 덥수룩한 수염도 표현되었다. 자신의 얼굴이 애니메이션으로도 표현되기를 원치 않았던 나머지 두 명 (악몽을 꿨던 친구 보아즈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카미 찬)의 경우, 배우를 고용해 실제 증언을 바탕으로 연기를 하게 하고, 그것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사실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좌) ‘바시르와 왈츠를’ 속 아리 폴만.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우) 아리 폴만. 출처 로튼 토마토
(좌) ‘바시르와 왈츠를’ 속 아리 폴만.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우) 아리 폴만. 출처 로튼 토마토

애니메이션이라는 제작 방식을 사용한 덕분에 <바시르와 왈츠를>에선 통상적인 다큐멘터리들에서는 표현이 불가능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꿈과 상상이 생생하게 표현되었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화면의 전환도 더욱 창의적으로 구현되었다. 거부감이 들 법한 잔인한 장면들도 애니메이션이라는 필터를 거쳐 순화되었다. 자칫 인터뷰와 독백만으로 이어질 뻔했던 과거 회상이 애니메이션을 만나 ‘생명의 숨결’을 얻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던 <바시르와 왈츠를>은 엔딩 장면에서 마지막 극적인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살이 자행된 마을에 도착한 폴만은 두 손에 총을 쥔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폴만의 얼굴은 당혹감과 죄책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순간, 화면은 히잡을 쓴 여성들이 울부짖는 실제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자료 화면 속 어떤 여인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히잡을 내리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떤 여인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너진 건물 폐허에 묻힌 아이, 뒤엉켜 있는 시신들, 영상 속 아무런 사운드도 없이 한 장씩 나열되는 현장 사진들은 충격적이었다.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스틸컷.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스틸컷.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갈무리

82초, 다큐멘터리 전체에서 유일한 실제 자료 화면의 길이다. 작품 전체 속에서 매우 짧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이 엄중한 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임을 입증했다.

흔적 없는 과거를 재현하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자 역사 다큐멘터리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현대사의 민감한 부분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집단들이 대립하는 경우에 그렇다. <바시르와 왈츠를>도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폴만 감독은 한 해외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스라엘 좌파로부터 받은 단 하나의 비판은, 영화가 충분히 자아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미있게도, 내가 보수적인 유대인 사회로부터 들었던 비판은 <바시르와 왈츠를>이 이스라엘인을 나쁘게 묘사해서 유대인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거였다. 언제나 수많은 다른 종류의 이견이 존재한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사브라-샤틸라 대학살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 사건이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폴만이 자신의 과거를 되찾는 과정에서 만난 전우들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던 젊은 병사들이 진실에 접근하며 받게 될 트라우마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1982년 레바논에서 비극적인 전쟁을 겪은 후 노벨상을 받을 것 같다며 주변의 촉망을 받던 영리한 학생도, 어머니와 오순도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착한 아들도 다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가 현실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 위로 입혀진 애니메이션은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큐멘터리가 더욱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흔적 없이 사라진 레바논 전쟁에서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내 그 속의 진실을 세상에 내보였다. 만약 폴만이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1982년 레바논의 한 마을에서 벌어졌던 대학살의 참극이 이토록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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