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체크] ⑫ 망 사용료 국제기준 검증

지난 9월 세계 최대 인터넷방송 플랫폼 트위치(Twitch)가 한국 내 영상의 최대 해상도를 1080픽셀(Pixel)에서 720픽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트위치는 “한국 네트워크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 “해상도 제한은 운영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이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 같은 결정이 한국에서 망 사용료 입법이 추진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용자 불편이 늘면서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망 사용료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서도 콘텐츠 사업을 진행 중인 트위치와 넷플릭스. 두 회사 모두 대표적인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다. 트위치·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서도 콘텐츠 사업을 진행 중인 트위치와 넷플릭스. 두 회사 모두 대표적인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다. 트위치·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망 사용료’란 인터넷 회선 접속료, 서비스 이용료 등 정보통신망과 관련된 이용 요금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동영상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망 사용료를 놓고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와 콘텐츠사업자(CP)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통신사들이 중심이 된 인터넷사업자들은 “콘텐츠사업자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해 망을 유지 보수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니 돈을 더 내라“고 주장한다. 반면 콘텐츠사업자들은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최초 접속한 곳에 접속료만 내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2019년부터 망 사용료를 놓고 법적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망 사용료 문제는 앞의 트위치 사례에서 보듯이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넷플릭스 등 콘텐츠사업자들이 부담하는 망 사용료가 늘어나면 소비자들의 콘텐츠이용료가 비싸질 수 있다. 반면 트래픽이 늘어나도 통신사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회선을 늘리지 못하면 인터넷 속도가 느려져 다른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

국내 통신사들을 대변하는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지난 10월 ‘망 무임승차 하는 글로벌 빅테크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연합회는 “인터넷망은 통신사가 구축한 사적 재산이며, 상업적 거래에선 유료”라면서 현재 넷플릭스·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망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 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정감사에서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은 “구글도 (해외에서) 접속료를 내고, 접속료를 낸 콘텐츠사업자는 어디서 이용자가 콘텐츠를 요구하든 자유롭게 망을 사용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며 이미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앞의 간담회에서 “망 이용 대가는 한국에서만 문제가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KT·SKT·LG U+와 같은 통신사들이 모인 단체다. 이에 실제로 연합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망 이용 대가가 글로벌 스탠다드인지 확인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란?

해당 발언을 검증하기에 앞서 글로벌 스탠다드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으로 국제표준을 뜻하는 용어다. 이종수 한성대학교 행정학 교수의 저서 <행정학사전>에 따르면 글로벌 스탠다드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표준화 기관의 승인에 의해 규정된 공식적 표준, 두 번째는 경쟁을 통해 시장의 대세를 장악한 사실상의 표준이다. 

망 사용료 갈등에서 나타나듯이 아직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식 표준은 없다. 통신·전파·방송 등의 기술과 표준을 개발하는 유엔(UN) 산하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도 망 사용료에 관한 규칙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망 이용료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통신연합회 측 주장은 시장의 대세를 장악한 사실상의 표준을 의미한다.

망 사용료는 접속료? 착신료?

전 세계 망은 망끼리 연결돼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출처 픽사베이
전 세계 망은 망끼리 연결돼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출처 픽사베이

그렇다면 망 사용료란 무엇인가? 망 사용료가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에서 쓰이는 개념은 크게 인터넷 접속료와 착신료 두 가지다. 접속료는 망 회선에 직접 접속하면서 내는 비용을 뜻한다. 이와 달리 착신료는 데이터를 전송하면서 발생한 트래픽에 따라 요금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많은 데이터를 전송해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면 그만큼 많은 요금을 낸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은 <단비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망 사용료는 망 접속 그 자체의 비용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망 사용료는 사실상 ‘착신료’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망 사용료가 착신료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과거 한국의 통신 3사인 KT·SKT·LG U+는 상호 간에 트래픽이 더 발생해도 추가 정산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 ‘상호접속고시’가 개정되면서 더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사업자가 더 적은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사업자에게 상호접속료를 정산하도록 바뀌었다. 따라서 트래픽을 일정 수준 이상 더 많이 발생시키는 인터넷 사업자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실상 착신료의 형태로 망 사용료가 바뀐 것이다. 

인터넷사업자와 콘텐츠사업자의 계약에 대해 정부는 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 때문에 계약 내용은 기업별로 다르고 그 내용이 공개된 바 없지만, 대부분 국내 콘텐츠사업자들은 이미 높은 망 사용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가 국내 인터넷사업자에 지불한 금액은 2016년 734억 원, 2017년엔 1100억여 원이 넘는다. 카카오와 아프리카TV는 2016년 각각 300억 원과 150억 원을 냈다. 

이대호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단비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상호접속고시의 개정으로 인하여 서버를 유치하면 상호접속료라는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따라서 콘텐츠사업자의 서버를 유치할 때 기존보다 더 높은 이용 대가를 요구하게 됐다”며 “(국내) 인터넷사업자들은 국제적으로 높은 요금을 콘텐츠사업자에게 부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청회 자료집에서 공개된 지난 2월 콘텐츠사업자별 국내 트래픽 점유율. 그래픽 조성우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청회 자료집에서 공개된 지난 2월 콘텐츠사업자별 국내 트래픽 점유율. 그래픽 조성우

이에 따라 국내 콘텐츠사업자들은 트래픽 점유율이 낮은데도 비싼 망 사용료를 내고,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은 트래픽 점유율이 높은데도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9월 공청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일 평균 생성 트래픽 양의 약 37%를 구글·넷플릭스·메타(페이스북) 등 3개 글로벌 콘텐츠사업자가 차지하고 있다. 국내 주요 콘텐츠사업자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총 3.3%를 차지했다.

지난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총책임자(GIO)는 “해외 기업들도 같은 기준으로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구글과 넷플릭스 외에 트위치·메타 등 다른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은 국내 인터넷사업자에게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구글과 넷플릭스 측은 해외에서 이미 접속료를 내고 있다며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내 인터넷사업자는 해외 콘텐츠사업자에게 강제로 망 사용료를 내게 할 법적 근거가 없다. 통신사 측이 망 사용료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해외 기업에 망 사용료를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이 7개 발의돼 있다.

해외 망 사용료는?

다른 나라들은 망 사용료를 어떻게 지불하고 있을까? 해외에서는 대체로 최초로 접속한 회선의 인터넷사업자에게만 요금을 지불한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비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인터넷 접속료는 망사업자가 ‘전 세계 컴퓨터들’과의 소통을 약속하고 인터넷 이용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받는 돈으로,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트위치나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한국의 망 사용료 법안 추진에 반발하는 이유다.

한국의 망 사용료가 다른 나라보다 비싸다는 일부 조사도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텔레지오그래피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각국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인터넷 접속료를 비교하면 서울의 접속료가 프랑스 파리보다 8.3배, 영국 런던보다 6.2배, 미국 뉴욕보다 4.8배 높다.

2017년 서울과 해외 주요 도시의 인터넷접속료를 비교한 표. 그래픽 조성우
2017년 서울과 해외 주요 도시의 인터넷접속료를 비교한 표. 그래픽 조성우

반대로 국내 콘텐츠사업자가 해외에 데이터를 전송하면 어떨까? 국내 인터넷사업자를 통해 해외로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면 요금을 지불하는 상대는 여전히 국내 인터넷사업자다. 넷플릭스와 구글 또한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본사가 위치한 국가에서 최초로 접속한 인터넷사업자에게 이미 접속료를 지불하고 있으므로, 다른 국가에서는 접속료를 이중으로 지불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 사업자는 해외에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키지 않고, 해외 사업자는 국내에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것이 차이이고, 그래서 분쟁이 발생한다.

‘망 사용료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발언은 이 지점에서 해석이 갈린다. 한국은 실질적으로 트래픽 발생량에 따라 요금을 더 내도록 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접속료만 내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망 사용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세계적으로 콘텐츠사업자에게 망 부담 추진 움직임

넷플릭스·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의 성장으로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다. 출처 픽사베이
넷플릭스·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의 성장으로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다. 출처 픽사베이

글로벌 콘텐츠사업자의 트래픽 발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형태의 망 사용료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의회에선 빅테크 플랫폼 기업이 네트워크 인프라 확충에 이바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 공화당은 지난해 9월 구글·애플·메타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 농어촌, 학교 등에 필요한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인터넷 공정 기여법'을 발의했다. 한국이나 유럽처럼 '망 사용료'라는 관점에서 다루진 않지만, 빅테크 기업에 네트워크 투자 부담을 나눠지게 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해당 법안은 지난 5월 상원 상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8월에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3개국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플랫폼들이 망 사용료를 나눠 내는 차원에서 유럽 내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비용 중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라는 요구서를 함께 제출했다.

오스트리아와 호주도 비슷하다. 지난 1월 오스트리아 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은 글로벌 콘텐츠사업자에 망 이용 대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2020년 호주에서도 켈리 로즈마린 옵터스 최고경영자가 기업설명회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대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가 통신사의 망 부담을 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인터넷 트래픽과 관련해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론: 망 사용료는 글로벌 스탠다드? - 절반의 사실

망 사용료를 단순히 ‘접속료’라고 정의하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볼 수 있다. 통신사업자연합회 측을 비롯해 인터넷 사업자들도 망 사용료는 ‘접속료’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망 사용료는 표면적으로는 접속료지만, 실질적으로는 트래픽 발생량에 비례한다. 

이처럼 ‘망 사용료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발언을 사실과 거짓 한 가지로 판정하기에는 현실이 매우 복잡하다. 망 사용료에 대한 실질적인 개념이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SKB와 넷플릭스의 분쟁처럼 무엇을 최초 접속으로 볼 것이냐의 해석도 갈릴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점점 증가하는 글로벌 콘텐츠의 트래픽 문제를 놓고 논란과 해법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망 사용료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은 절반의 사실로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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