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체크] ⑭ 선진국 노조 회계감사법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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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경 의원 등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지난달 20일 노동조합 회계감사를 강화하도록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대부분 독립적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 노조의 회계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노조 회계 감사를 독립적 외부 기관에 맡기고 있는지 검증해봤다. 선진국은 G5 국가로 정했다.

● G5 가운데 독립적 외부 기관에 노조 회계감사를 맡기도록 법에 규정한 국가는 영국과 일본뿐이다. 나머지 국가들, 미국·독일·프랑스는 노조 회계 감사원의 자격을 규정하는 법적 규율이 없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에 관한 법률 자체가 없다. 따라서 “선진국 노조들은 대부분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를 받는다”는 주호영 원내대표의 말은 절반의 사실에 불과했다.

● 한국의 경우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는 회계감사를 6개월에 한 번씩 받도록 하고, 그 감사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한다. 또 요청이 있을 시 행정관청에도 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노조법상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감사 대상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으나, 국가가 노조 회계를 들여다보도록 하는 조항은 국가 권력 남용의 우려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이 화두에 올랐다. 그 시작은 지난달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한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총리는 노조 회계 운영의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도 과감성 있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 총리의 말을 이어받았다. 주 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대부분 독립적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단지 결산 내용만 공개한다”라고 말하며 한국 노조 회계 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주 대표가 해당 발언을 한 날 여당 의원들은 노조법 개정안 총 2건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감사자료의 범위를 명시하고, 노조의 회계자료를 행정관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해당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자치조직이란 이유로 회계는 성역화돼 왔고, 현행법은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부추겨왔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첫머리라고 볼 수 있다. <단비뉴스>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달 20일 한 발언을 중심으로 노조 회계감사 강화 법안의 근거에 대해 진위를 따져보았다. 주 대표의 말대로 선진국 노조는 대부분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는지 관련 법조항들을 살펴봤다. 검증 대상 국가는 G5,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로 정했다.

‘독립적 회계 기관’ 규정은 영국·일본뿐

G5 국가들의 법률을 살펴보니 미국·영국·일본에서만 노조 회계감사에 관한 조항을 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과 프랑스는 노조가 자치 규약을 마련해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조회계법을 갖춘 미국·영국·일본 간에도 구체적인 법 조항을 들여다보니 서로 다른 점들이 발견됐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재무관리는 물론 조직 운영 및 활동 전반에 대해 매우 엄격한 법망을 갖췄으나 일본은 비교적 느슨한 편이다. 한편 주 대표의 말대로 회계감사 권한을 ‘독립된 외부 기관’으로 정한 국가는 영국과 일본에만 해당한다. 미국은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노사 정보 보고 및 공개법(이하 노사정보공개법)’에 노동조합의 내부 운영에 관한 규율이 담겼다. 해당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자산과 부채, 수령금 등의 정보를 포함한 연차회계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는 모든 조합원에게 공개될 수 있다(제201조(a), (b), (c)). 또 노조는 주식, 채권, 증권 등 회사나 거래업체로부터 받은 일체의 이득을 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제202조(a)). 노동부 장관은 회계 문서를 공고하거나 열람 및 조사할 수 있다(제205조(a), (b)).

미국 ‘노사 정보 보고 및 공개법(Labor-Management Reporting and Disclosure Act)’ 일부. 자료 미국 온라인 법률, 그래픽 유지인 기자  
미국 ‘노사 정보 보고 및 공개법(Labor-Management Reporting and Disclosure Act)’ 일부. 자료 미국 온라인 법률, 그래픽 유지인 기자  

<미국의 노사정보 보고 및 공개법 원문>

이처럼 미국 노조의 경우 회계 정보를 조합원과 정부에 자세히 공개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요건을 명시한 규율은 없다. 조합원들이 회계감사원을 직접 선출한다는 절차적 규정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미국 노조의 회계감사가 반드시 독립적 외부 회계 기관을 거쳐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주호영 원내 대표의 발언,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대부분 독립적 외부 회계기관의 감시를 받도록 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편 영국과 일본의 경우 주 대표의 말대로 노조 회계감사를 독립적 외부 회계 감사 기관에 맡기도록 법에서 규율하고 있다. 영국의 ‘노조‧노동관계 조정법(이하 노조 조정법)’ 32조에 따르면 노조는 ‘연차보고서’를 작성해 정부가 임명한 ‘인증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해당 연차보고서에는 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감사보고서, 노조의 대차대조표, 노조 간부에게 지급된 급여 내역, 수익계정 등이 포함된다. 다만 조합원 수 500명 미만 또는 수입‧지출 총액이 5천 파운드(한화 약 772만 원) 미만인 소규모 조합의 경우에는 인증관이 별도로 법적 자격을 갖춘 회계감사를 선정해 감사를 맡기고 있다.

이 밖에 노조 조정법 45조에 따라 회계 관련 비리에 연루돼 유죄 선고를 받은 간부급 조합원은 일정기간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다. 또 해당법 82조는 노조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 정치기금은 철저히 노조에서 자체적으로 갹출한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

영국 ‘1992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Trade Union and Labour Relations (Consolidation) Act 1992)’ 일부. 자료 영국 온라인 법률, 그래픽 유지인 기자   
영국 ‘1992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Trade Union and Labour Relations (Consolidation) Act 1992)’ 일부. 자료 영국 온라인 법률, 그래픽 유지인 기자   

<영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원문>

일본의 경우 노동조합법에 노조 재정이나 회계 관련한 규정을 비교적 간략히 명시하고 있다. 노동조합법 제2장 제5조 7항에 따르면 노조는 조합원에 의해 위촉된 직업적 자격이 있는 회계감사원을 둬야 한다. 노조전임자나 노조회계담당책임자는 회계감사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때 조합원의 총회 결의를 통해 회계감사원을 위촉함으로써 노조 임원의 자의에 의한 위촉 우려를 최소화하고 있다.

일본 ‘노동조합법(労働組合法)’ 일부. 자료 일본 온라인 법률, 그래픽 유지인 기자
일본 ‘노동조합법(労働組合法)’ 일부. 자료 일본 온라인 법률, 그래픽 유지인 기자

<일본의 노동조합법 원문>

독일·프랑스, 회계감사 ‘노조 자치’에 맡겨

독일과 프랑스는 노동조합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두고 있지 않다. 독일의 경우 노동조합에 대한 행정관청이나 법원에 의한 국가의 통제는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만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조합의 재정문제 역시 국가의 감독을 받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노동조합은 자신의 재정적 상황에 관해 매우 제한적으로만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자치 규약을 통해 노조 회계 투명성을 확보한다.

대표적으로 독일 서비스산업노조(Vereinte Dienstleistungsgewerkschaft, Ver.di)의 경우 총회에서 회계감사위원을 선출해 운영하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각 조직의 재정 및 회계를 감독하며,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이사회와 총회에 제출해야 한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의 경우도 독자적 회계감사 권한을 부여한 감독위원회를 운영한다. 감독위원회의 구성원 역시 총회에서 선출되는데, 조합비의 체납 사실이 없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두 노조 모두 회계감사원의 자격에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노조 내 다른 지위를 겸할 수 없도록 해 회계 운영 투명성을 보장한다.

프랑스의 경우도 노동조합의 회계를 노조 자치 규약에 맡기고 있다. 노조 회계 내역을 조합원이나 행정관청에 보고할 의무 또한 법령에 없다. 다만 프랑스 노동조합은 직접 조합비를 징수하는 ‘징수요원’과 회계 관리를 맡는 ‘감사위원회’를 두어 비교적 엄격하게 노조 회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위원회의 경우 노동조합 내에서 회계관리수칙에 해박한 후보자를 우선 선발하여 구성된다.

한국 노조법 개정, 영미 말고 다른 모델도 참고해야

한국의 경우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는 노조의 재정 운영과 관련하여 비리 예방책으로서 회계감사를 6개월에 한 번씩 받도록 하고, 그 감사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하며(제25조), 행정관청의 요구 시 감사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제27조).

한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5~27조. 자료 법체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래픽 유지인 기자
한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5~27조. 자료 법체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래픽 유지인 기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회계감사의 자격이다. 한국 노조법에는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따로 명시한 조항이 없어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와 여당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교 법학과 김 모 교수는 <단비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노동조합이 유명무실했던 과거와 달리 민노총과 같이 예산 규모가 큰 노조들이 생겨났다”며 “과거의 기준을 갖고 지금도 규율하는 게 맞는지를 재검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3자가 감사를 해야 적법성 및 타당성 있는 감사가 이루어진다”며 현재 한국 노조법상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감사 대상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노조 회계 내역을 국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에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국가와 국민에게 회계장부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은 다소 국가 권한 남용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노조에 투입된 국가 예산에 한해서만 국가의 열람권을 허용하는 등 개정안의 구체적 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경찰이 건설현장 불법행위 관련 수사를 위해 양대 노총 건설노조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노조 운영·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경찰이 건설현장 불법행위 관련 수사를 위해 양대 노총 건설노조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노조 운영·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수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의 회계감사는 상대적으로 집행부와 동일하지 않은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회계감사를 하고 있어 이미 투명성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셀프회계’, ‘깜깜이 회계’라는 비판과 다르게 노조 안에서 상호 견제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 역시 “국가가 노조 회계를 들여다보는 건 악용의 소지가 크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했다. 전략적으로 운용되는 노조 조합비의 내역이 모조리 공개된다면 노조의 교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어서 그는 “영미식뿐 아니라 우리만의 상황과 조건에 맞도록 다른 선진국 모델들을 함께 참고해야 한다”며 “영국, 미국, 일본처럼 자본과 기업에 편향적인 나라들만을 예시로 든 것은 의도가 불순하다”고 지적했다.

결론 : 절반의 사실

노조 회계의 감사와 관련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대부분 독립적 외부 회계 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는 주호영 원내대표의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선진국 가운데 G5의 노조 회계 감사 관련 법률들을 살펴본 결과, 회계 감사원의 자격을 규정한 나라는 영국과 일본 두 나라밖에 없었다. 특히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자율적 결사 단체인 노조의 특성을 존중해 노조 운영의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었다. 회계 감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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