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조력존엄사법’ 쟁점 리뷰
사람이 죽으면 몸은 각각 다른 속도로 기능이 정지된다. 먼저 호흡이 멈춘다. 몸에 산소가 돌지 않는다. 약 6분 뒤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된다. 뇌가 죽는다. 그다음 약 4분이 지나면 심장이 멎는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한다.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 거치는 섭리다.
현대의학은 죽음의 섭리에 개입했다. 의사는 환자의 몸에 수십 가닥의 관과 각종 의료기기를 부착한다. 몸 안에 강제로 산소가 공급된다. 덕분에 사람은 더 오래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겼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명하는 삶을 살게 됐다.
법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존엄사에 대한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이에 연명치료를 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헌법재판소에 국회가 법을 만들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다만 ‘죽음의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국회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전체 이름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2018년 드디어 법이 시행되면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조력존엄사법’ 도입 찬성 76.3%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 범위는 좁다.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무의미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만이 대상이다.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존엄하지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지만 이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말기암 환자 등 고통스러운 병에 시달리는 이들은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대병원은 성인 남녀 1000명에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이른바 ‘조력존엄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응답자의 76.3%가 안락사와 함께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에 찬성했다.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 ‘고통의 경감’(20.6%), ‘가족의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인권보호에 위배되지 않음’(3.1%)이 이유였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반영한 법안이 나왔다. 지난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력존엄사 개념을 도입하자며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가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종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조력존엄사 위원회가 설치된다.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위원회가 대상이 되는지 심사한다. 대상으로 선정이 되면 한 달 동안 자신의 결정을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최종적으로 결심을 굳히면 담당 의사와 전문의 두 사람에게 결정을 알린다. 담당 의사는 삶을 마무리할 수단과 방법을 제공한다. 환자는 의사가 제공한 방법을 이용해서 삶을 마무리한다. 환자를 도운 의료진은 형법 제252조 2항 ‘자살방조죄’를 적용받지 않는다. 정보유출 방지를 위한 조항도 만들어진다. 조력존엄사와 관련된 기관에서 환자 정보를 유출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생명권 침해 우려” 반론도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자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지난 7월 대한의사협회는 연명의료중단과 달리 조력존엄사는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는 행위기 때문에 환자의 생명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한번 생명권이 침해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자살을 쉽게 생각하는 생명경시 풍조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극화 문제도 지적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삶을 비관한 나머지 죽음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처럼 연명의료중단과 조력존엄사는 차이가 있다. 연명의료 중단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것이다. 의료기기가 제거되면 사람은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에 접어든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존엄사 관련 심판에서 연명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인위적인 신체침해 행위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생명을 자연적인 상태에 맡기는 것”이라며 연명의료중단이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생명유지장치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력존엄사는 생명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조력존엄사를 결심한 환자는 의사에게 자살방법과 도구를 제공받는다. 이를 이용해 자기 삶을 마감한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게 된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같은 결정에서 “생명권의 주체라도 자신의 생명을 임의로 처분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행위인 조력존엄사는 이 의무에 어긋난다.
“조력존엄사는 기본권” 주장도
조력존엄사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인간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이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하게 만들면,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죽을 권리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가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결정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력존엄사와 연명의료 중단의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하열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을 마감할 권리에 관한 헌법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생명의 종결을 지향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연명의료 중단과 의사 조력사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설명처럼 연명의료 중단과 조력존엄사 모두 환자의 자발적인 요청에 따라 시행된다. 환자가 주도하고 의사가 보조한다. 의사의 도움으로 환자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
생명경시 풍조는 이미 존엄사가 인정되는 다른 나라에서도 아직 실제로 문제가 됐다는 보고가 없다. 엄격한 절차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미국 오리건주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7년 오리건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을 제정했다. 법 제정 당시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사이에서 생명경시 풍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우려와 달리 존엄사를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고령자에 말기암 환자였다. 특정 인종이나 저소득층이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만 18세 이상이라는 연령제한과 의료진의 엄격한 심사, 그리고 환자에게 주어지는 숙고기간이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의사가 죽음을 돕는 것은 정당할까?
조력존엄사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인정돼도 윤리적인 문제가 남는다. 의사윤리지침 제36조는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돕는 것을 금지한다. 이 조항을 근거로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의사가 죽음을 돕는 것은 직업 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하열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죽음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된다면,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권리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조력존엄사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된다면, 환자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인프라 구축 필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한 돌봄이 필요하다. 문재완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돌봄과 조력존엄사는 서로 보완적 관계라고 설명했다. ‘호스피스 돌봄’은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의 고통과 증상을 완화해서 정신적으로 평안한 임종을 맞이하게 돕는다. 돌봄을 받는 환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조력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다. 두 체계가 잘 정비돼 있으면, 존엄한 죽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문 교수의 생각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지난 7월, 조력존엄사는 아직 한국의 부실한 돌봄 체계가 감당할 수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학회의 지적처럼 한국의 호스피스 돌봄 체계는 열악하다. 돌봄 이용이 가능한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에 국한됐다. 시설도 부족하다. 현재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88개에 불과하다. 돌봄 대상이 되는 환자 중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다. 학회는 이 때문에 “간병살인, 환자와 가족의 동반자살, 아버지의 간병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청년 등 안타까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죽음기피 사회”
지난 3월 세계적인 배우 알랭 들롱(86)이 존엄사를 선택했다. 이전부터 그는 “특정 나이, 특정 시점부터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대로 1999년 알랭 들롱은 존엄사가 합법인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이 사례는 고통스러운 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존엄한 죽음을 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존엄사의 범위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018년에야 연명의료결정법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90년대부터 조력존엄사 도입을 논의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리건주 등 미국의 11개 지역 등이 조력존엄사를 도입했다. 호스피스 돌봄체계도 한국보다 잘 갖춰졌다.
전직 언론인이자 호스피스 활동가인 최철주는 책 <존엄한 죽음 : 인간답게 떠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에서 한국이 여전히 ‘죽음기피 사회’에 머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활동가는 생명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죽을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비뉴스 지역사회부, 시사현안팀 이강원입니다.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