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온라인 커뮤니티·SNS 인용 보도 남용 문제

저널리즘은 최초의 소셜 미디어이자 공중을 위한 열린 포럼이라고 미국의 언론 연구자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국내에서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글을 맥락 없이 추종하는 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다. 언론이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갑론을박을 받아쓰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쉽게 복제되고 확산된다. 누군가 인터넷 어딘가에 게시한 글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복사되어 퍼진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건 사고 소식이나 유명인의 주장은 가벼운 기삿거리로 삼기 좋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물론 유명인의 공개적인 발언은 손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화면 캡처나 복사하기 버튼 몇 번만으로도 보도물을 만들 수 있다. 이른바 ‘커뮤니티발 보도’가 많아진 이유다.

무책임한 커뮤니티발 보도로 파장 일기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여기에 붙은 댓글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많다. 젠더 관련 문제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지난해 여름 도쿄올림픽 양궁 종목에 출전한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 모양을 두고 그를 극단적 여성주의자라 규정하고 공격하는 일부의 주장이 언론 보도를 타며 사회적인 논란이 됐다.

지난해 8월 29일에 방영된 KBS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안산 선수 페미니스트 논란 언론 보도를 비평했다. 진행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사 검색 시스템 빅카인즈 기준으로 2021년 7월 29일과 8월 2일에 나온 안산 선수 보도 가운데 약 50%가 페미니스트 보도를 다뤘고, 커뮤니티를 인용하거나 유명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 KBS
지난해 8월 29일에 방영된 KBS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안산 선수 페미니스트 논란 언론 보도를 비평했다. 진행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사 검색 시스템 빅카인즈 기준으로 2021년 7월 29일과 8월 2일에 나온 안산 선수 보도 가운데 약 50%가 페미니스트 보도를 다뤘고, 커뮤니티를 인용하거나 유명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 KBS

또 지난해 8월에는 서울 지하철에서 핫팬츠를 입은 응급 환자를 보고도 남성들이 몸을 사리느라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가 진원지였다. 이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의 보도가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건데, 언론 보도를 계기로 크게 확산됐다. 사실 확인도 안 된 보도 때문에 불필요한 젠더 갈등만 부추긴 셈이다.

무책임한 인용 보도는 젠더 관련해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12월 보도한 <카페서 3시간 파마 연습 진상 손님…“장사 못하겠다” 주인 울분> 기사는 내용 대부분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과 사진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이 기사에는 이틀 만에 댓글이 7백 개 넘게 달렸다. 역시 지난해 12월 머니투데이의 <“아빠 없이 자란 28살 딸, 아빠 같은 42살 男과 결혼하겠답니다”> 기사도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는데 역시 사흘 만에 6백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좋은 내용이지만, 사실 확인 없이 온라인 게시물을 그냥 받아쓴 데다가 공익성도 찾아보기 어려워 공적 논의에 어떤 보탬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자극적 소재·발언 실어 조회수 상승 노려

온라인 공간에 쏟아지는 검증도 안 된 자극적인 주장들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보도하면서 사실상 논란을 촉발하는 것을 노리는 언론들이 있다. 이런 보도는 어떤 발언을 따옴표 안에 넣어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단순 사실을 전달하는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따옴표에 들어 있는 말 자체를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있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인용문의 내용이 사실인지, 근거는 있는 것인지 충분히 검증한 뒤 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보도할 책임이 있다. 주장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단순한 의견 보도라도 그 의견이 전제하거나 내포한 사실이 있다면 반드시 검증이 앞서야 한다.

조회수를 올리는 데 관심이 쏠린 일부 언론사는 내부에서는 별도 인력까지 배정해놓고 무분별한 커뮤니티 인용보도를 권장하다시피 한다. 소셜 미디어가 널리 이용되는 것도 이유지만, 언론사가 포털에 종속된 것이 큰 이유다. 포털이 언론사들의 주된 기사 유통 창구가 되면서 언론사들은 포털에 노출되기 위해 경쟁해왔다. 속보 경쟁은 물론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끄는 시도도 많다. 내용 자체가 선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실제 기사 내용과 관련도 없는 문구를 사용한 ‘낚시’ 사례도 계속 발견된다.

대법원은 이미 2006년에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정보의 신뢰도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취득한 공개 정보는 누구나 손쉽게 복사·가공하여 게시·전송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 내용의 진위가 불명확함은 물론 궁극적 출처도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대법원 2006. 1. 27. 선고 2003다66806 판결). 허위사실을 퍼뜨려 명예를 훼손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었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를 함부로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SBS 스브스뉴스 '코보다 목이 더 정확하다? 자가키트 소문 팩트체크 해봄'은 SNS에서 도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소문을 검증했다. © SBS
SBS 스브스뉴스 '코보다 목이 더 정확하다? 자가키트 소문 팩트체크 해봄'은 SNS에서 도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소문을 검증했다. © SBS

사실 검증 원칙은 ‘커뮤니티발 보도’에도 적용해야

디지털 공간에서의 활동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하면 언론이 커뮤니티발 정보라고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출발점이 무엇이든 제대로 된 사실 검증을 거친다면 얼마든지 기사로서 필요한 요건을 갖출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인용하면서 글 내용의 진위뿐 아니라 관련 정보까지 함께 소개하면 된다. 단순히 감정적인 댓글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떠도는 소문을 팩트체크’해서 실제로 일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나온 국민일보 <“편의점 알바면접 후 면접수당, 잘못인가요?”> 기사는 면접수당을 위한 ‘면접 확인서’를 요구하자 편의점 점장이 화를 냈다는 커뮤니티발 사연을 보도했다. 기사는 먼저 면접수당 수령이 부당한 건지 따졌다. 사연의 주인공이 ‘경기도 청년면접수당 제도’를 이용했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직접 취재한 사항을 전달했다. 이렇듯 기본적인 사실확인 노력만 덧붙이면 커뮤니티 인용 보도도 유익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소문 가운데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에 관한 것은 언론이 반드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SBS 스브스뉴스가 지난달 내놓은 <코보다 목이 더 정확하다? 자가키트 소문 팩트체크 해봄>이 대표적인 보도 사례다. 코로나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할 때 코보다 목에서 검체를 채취해야 판정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소문이 SNS를 타고 퍼졌는데, 이 콘텐츠는 소문과 관련한 반응을 적당히 버무리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인터뷰해 뉴스 이용자에게 소문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바이러스가 몸에서 퍼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해주고, 목에서 검체를 채취하면 위험한 이유도 보여줬다.

온라인 ‘따옴표 저널리즘’, 무조건 배제보다 적절히 활용해야

가끔은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여론이 너무 쉽게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여론 분포를 드러내고 공론장을 활성화려면 그 가운데서도 의미 있는 발언을 골라내 잘 보여주는 것은 필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주장들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보도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정치인 발언을 인용한 보도는 독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관점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 © KBS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정치인 발언을 인용한 보도는 독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관점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 © KBS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정치 분야에서 이런 점은 특히 중요하다. 정치인의 말은 유권자인 독자, 시청자가 공론장에서 관점을 결정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의 하나로 이용된다. 선거를 앞두고 내놓는 발언도 중요하지만, 평소의 언행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두 관점이 첨예하게 맞붙는 이슈에선 발언을 충실히 인용해 보도하는 것이 유용할 때가 있다. 뉴스 소비자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판단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정치인의 말을 잘 가려서 보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정치 성향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기 쉬운 온라인 커뮤니티의 속성을 잘 헤아려 자칫 일방적인 정치적 주장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뉴스 이용자들도 따옴표 저널리즘을 무조건 나쁜 보도로 치부하지 말고, 뉴스를 볼 때 항상 몇 가지를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다. 따옴표 속 주장이 어느 한 쪽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균형 있게 담고 있는 것인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한 주장은 아닌지, 인용문이 어떤 사실에 관한 것을 담고 있다면 어떤 검증을 거친 것인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도 가능하다면 인용문에 대한 사실 검증 여부는 물론 인용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달아준다면 무분별한 수용이나 불필요한 오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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