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20대 대선 미디어·언론 공약 점검

이번 대선에서 제시된 미디어·언론 관련 공약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공급되고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는 건강한 미디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미디어·언론 공약은 이번 선거 전 과정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달 11일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언론자율규제기구와 지역언론 문제가 언급되기는 했지만 언론 현안을 충분히 다루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미 사전투표가 시작된 상태지만 지금까지 나온 미디어 공약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언론 규제는 “자율적으로”

지난 3일 공개된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서면질의 답변에서 이재명, 심상정 후보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구성에 동의했다. 이들 후보는 지난달 11일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도 자율규제기구의 필요성에 동의했고, 특히 심상정 후보는 언론자율규제기구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집에 포함시켰다. 심 후보는 공약집에서 “강제적 방식의 언론규제는 민주사회의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에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한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이용자인 시민과 언론인으로 기구를 구성하고, 기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운영을 돕겠다고 밝혔다. 공약집에는 포털 등 사업자가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면 자율규제기구에 참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재명 후보는 공약집에 언론자율규제기구 관련 내용을 넣지는 않았지만,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자율규제기구 구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자율규제기구로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가 제도화된다면 굳이 법을 통한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 왼쪽은 언론자율규제에 관한 윤석열 후보의 공약 내용, 오른쪽은 심상정 의원 공약. ⓒ 윤석열 심상정 후보 공약집

윤석열 후보도 공약집을 통해 “가짜뉴스, 악의적 왜곡 등의 문제는 자율규제를 통해 해결되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달 12일 유세에서 윤 후보는 개인 인권을 침해하는 허위 보도를 할 경우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 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자율규제와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언론자율규제기구’는 허위조작정보를 가려내고,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고안됐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하며 언론현업단체가 제시한 대안이다.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규제하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해치지 않고자 마련한 절충안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부터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무기로 언론의 허위·조작보도를 법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인 반면 자율규제기구는 공권력이 언론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언론 스스로 문제 보도를 걸러내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언론현업단체 8곳의 의뢰로 구성된 연구위원회에서 이미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을 보면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는 일상적으로 분쟁을 처리하고 문제적 보도를 시정하도록 하는 자율조정인과 이들을 감독하면서 규약을 위반한 언론사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는 자율규제위원회로 구성된다. 자율조정인은 이용자의 불만을 접수하거나 모니터를 통해 문제 보도를 발견하면 개별 언론사 고충처리인 등과 소통하면서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한다. 자율규제위원회는 독립적인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고, 자율조정인의 업무 전반을 감독하면서 자율조정인이 처리한 사안을 바탕으로 언론사들에 대한 제재 여부를 정한다. 문제적 기사에는 정정, 노출중단 등의 다양한 시정조치와 함께 규약 위반에 대한 제재가 부여되는데 중대한 규약 위반에 대해서는 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고, 벌점이 누적되면 자율규제체제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이런 언론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공적 지원에서의 인센티브가 논의되고 있다. 현재 언론현업단체들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설립 추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수 후보들이 자율규제를 지지하는 가운데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3일 인터뷰에서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 목표가 “기존의 언론중재위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보다 피해자들이 조금 더 신속하고 직접적으로 기사가 나간 배경을 설명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중요 쟁점

이번 선거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핵심 이슈다.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는 여야가 추천권을 행사하면서 서로 자기 편 인사를 임명하는 바람에 정파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K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11명을 여야가 7대 4 비율로 추천해왔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 언론중재법 개정 소동 끝에 지난해 말 여야가 함께 구성한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가 비로소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개선과 독립성 방향을 논의 중이다. 

▲ 지난해 11월 21일 KBS <질문하는 기자들 Q> 방송화면 갈무리. ⓒ KBS

심상정 후보는 그동안 거대 양당이 행사하던 공영방송 이사 선출권을 국민에게 주겠다고 공약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지역, 성별, 연령을 감안해 ‘이사추천국민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서 면접을 실시해 투표로 공영방송 이사를 뽑고, 이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사장을 추천하는 식이다. 윤석열 후보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공약을 냈지만, 공약집에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윤 후보는 지난해 11월 KBS <질문하는 기자들 Q>의 질문에 여야가 공영방송 이사를 7:6으로 추천하고 그중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특별다수제’를 제안했었다. 

미디어 진흥·규제 관련 부처 개편 공약

미디어 정책 전담 부처 신설 공약은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등 여러 후보가 공통적으로 내놓았다. 현재 부처별로 흩어진 미디어 정책 기능을 합쳐서 하나의 미디어 진흥을 위한 부처와 규제를 담당하는 독립 위원회로 개편하는 방안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3개 부처로 미디어 정책 기능이 분산되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가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조세나 규제의 특혜를 받고 국내 콘텐츠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 신규 미디어까지 포괄해서 진흥과 규제를 하는 미디어 통합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낸 미디어 전담기구 개편안을 도식으로 보여주는 자료. ⓒ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방송영상미디어 정책 통합 전담부처’ ‘미디어 및 콘텐츠산업 진흥 전담기구’ 등 공약에 언급된 기구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통합기구의 업무 범위와 기구를 만드는 이행과정은 공약에 담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통합기구가 다루는 업무에 신문사와 방송사 외에 통신 사업자도 포함시킬지 공약에선 제대로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신규 부처는 방송개혁위원회나 미디어융합추진위원회 같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먼저 만들고 그곳에서 제안된 내용에 따라 법을 제정해왔다. 현재 이재명 후보 공약에는 사회적 논의에 관한 내용이 없다. 윤석열 후보는 ‘미디어 혁신위원회’를 언급하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구성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와 같은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심상정 후보 공약에서도 미디어 거버넌스 재구축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성격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다.

언론학계에서는 후보들의 미디어와 언론 관련 공약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14일 열린 ‘대선후보 언론정책 점검 및 제안 세미나’에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후보들의 미디어공약이 “구체적인 내용이나 실행계획은 없고 추상적 선언에 그쳤다”며 “미디어시장을 통찰하는 근본적인 혁신방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총평했다. 주요 후보들이 포털규제나 미디어전담 기구 신설 같은 문제에는 동의했지만,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이나 국내 콘텐츠 사업자의 역차별 같은 다양한 현안에 관한 구체적인 공약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미나 사회를 맡았던 김영욱 KAIST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도 “산업·기술 측면의 공약은 추상적이나마 제시됐지만 사회적 소통 구조에 관한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업계도 비슷한 입장이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한국에서 미디어 시장을 주도하는 통신 3사와 포털이 있는데 이들 사업자에 대한 책무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며 “K-한류나 K-콘텐츠를 내세우면서 대형 사업자를 만들고 글로벌 경쟁력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소멸 시대에 지역언론 지원은?

자치분권이 강조되는 만큼 지방 권력을 감시하는 지역언론을 지원하는 공약도 제시됐다. 주로 지역언론사 경영난 해소를 위한 방안이 많다. 지역 언론에 대한 정부광고나 기존에 지원해왔던 방송통신발전기금,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늘려주겠다는 내용이다. 이재명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지역 중소방송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자체 제작비율이 높은 지역방송사에 방송발전기금을 더 지원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제시했다. 이 후보는 지역방송만을 위한 ‘지역방송발전기금’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 왼쪽은 이재명 후보의 지역방송 활성화 공약, 오른쪽은 심상정 후보의 지역언론 진흥 공약. ⓒ 이재명 심상정 후보 공약집

심상정 후보는 시민이 원하는 지역언론을 돕는 ‘미디어바우처’ 도입을 공약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언론사 후원용 쿠폰인 바우처를 나눠주면 시청자가 본인이 지지하는 언론사나 기사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후원 규모에 따라 정부광고를 결정한다. 정부광고 집행 기준에 지역성과 미디어 다양성 항목을 추가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전체 정부광고 예산 가운데 지역언론에 집행하는 비율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공약집과 공식 누리집에 별도로 지역언론 관련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윤 후보는 지난달 27일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 정책질의에서 지금도 있는 지역신문 발전기금과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질의에서 지역 공영방송의 이사를 지역 대표성이 있는 사람으로 임명하도록 하며, 지역 공영방송 광고를 판매하는 공영미디어렙을 통해 지역방송 광고 판매 비율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때 했던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 확대 공약은 부분적으로만 이행된 상태다. 핵심 과제였던 지역신문 지원법은 2004년 종료 시점이 정해진 한시법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국회의 법률 개정으로 지역신문 지원법은 상시법이 됐다. 그러나 안정적인 기금 확보와 배분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지역방송사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공약이행은 미진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역 프로그램 제작 지원 예산으로 56억 원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36억 원으로 대폭 삭감했다”며 사실상 공약폐기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지배구조 개편 역시 뚜렷하게 진전된 바가 없다. 

지역언론을 연구해온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달 28일 인터뷰에서 “지역언론 공약은 그냥 없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미미하다”고 말했다. 기존에 해오던 정부 광고를 늘리거나 일부 기금을 늘리는 형태로는 지역신문부터 방송사, 풀뿌리 언론까지 복잡다단한 지역언론 생태계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미디어바우처 공약 역시 “신문 매체에 맞춰 제안됐기에 방송까지 아우른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대안으로 지역신문, 지역지상파 방송, 케이블 방송마다 따로 독립지원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내 콘텐츠 지원·방송노동자 인권 개선 공약도

미디어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이재명 후보는 국내 OTT 정책자금 지원 확대, 1인 미디어 제작비 지원 확대, 중소제작사 제작비 지원 등 총 7가지 세부공약을 내놨다. 콘텐츠 생산 여건을 정비하고 제작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일례로 ‘미디어 창작자 지원’ 공약은 1인 미디어 창작자나 스타트업에 전문강사를 배치해 단계별로 교육하고 실습을 위한 스튜디오 구축을 돕겠다는 내용도 제시됐다.

현재 뜨거운 쟁점인 ‘방송작가 등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공약도 있다. 심상정 후보는 미디어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공약했다. 미디어 노동자도 ‘일하는 시민을 위한 기본법’의 보호를 받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1년 미만 계약 노동자에게는 비정규직 계약 종료 수당 같은 ‘평등 수당’을 지급해 고용불안정성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편집: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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