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녹취의 시대, 불법녹음 보도 신중해야

지난 2019년, 제주 지역 한 인터넷신문 기자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편집국장과 언론사 대표도 같은 형을 받았다.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의 측근인 정책보좌관실장 A씨의 비리 의혹을 보도한 게 문제였다. A씨가 지난 2016년 정무기획보좌관을 그만둔 8개월 뒤, 조직폭력배이자 여행업체 대표인 B씨를 만나, 지사가 자신을 신뢰해 곧 공직으로 돌아간다며 복직하면 골프장과 호텔 등 각종 인허가사업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 보도가 A보좌관과 여행업체 대표 B씨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제3자의 제보로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 대화의 녹음’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불법으로 녹음된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사람도 똑같은 형량으로 처벌한다. 징역형만 있을 뿐, 벌금형 규정은 없다. 예외 규정도 없다. 도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제보자는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다. 제보를 직접 받은 당사자인 언론사 대표와 편집국장, 제보된 내용을 전달받아 기사를 쓴 기자는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갔지만 끝내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다.

만인의, 만인에 의한 녹취의 시대

제보자가 A보좌관과 B씨의 대화 내용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제보자는 여행업체 대표 B씨와 자동차 정비공장을 세워 동업하기로 했다. B씨의 제안이었다. 제보자는 1억 5천만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B씨는 돈만 받고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불안해진 제보자는 B씨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려 2016년 12월, B씨 사무실 소파 밑에 녹음기를 숨겨뒀다. 녹음 시작 10여 일 만에, 문제의 대화가 녹음됐다. 제보자는 녹음파일을 1년 반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2018년 5월, 6.13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언론사에 제보했다.

▲ 문제가 된 제주지역 인터넷 언론사 보도. 2018년 5월 24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10일 동안 8차례 보도가 계속됐다. ⓒ 해당 언론사 갈무리

애초 통신비밀보호법은 1992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벌어진 부산 초원복국 도청 사건을 계기로 권력기관의 도청을 근절하기 위해 1993년 제정됐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민사상 권리를 지키려 증거수집을 위해 소형 녹음기를 사용하는 일도 보편화했다.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직장인들은 녹음을 자기방어를 위한 필수전략으로 여긴다. 수술실 CCTV 설치가 법으로 의무화했지만, 녹음은 여전히 합법화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의료과실 소송에 대비해 전신마취 수술 때 소형 녹음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의료과실을 입증할 책임은 환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언론이 녹음파일을 제보받는 일도 흔해졌다. 하지만 불법 녹음으로 보이는 내용을 제보받는다면 그대로 보도해도 괜찮을까?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을 한 사람은 물론, 이를 전달받아 공표하는 사람도 처벌한다. 그렇다 해도 그 내용이 공익적이라면 이를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을까? 그럼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보도를 결정할 수 있을까? 윤리적 쟁점을 따지기 전에 불법녹음이 무엇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1항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 대화의 녹음’을 금지한다. 먼저 ‘공개되지 아니한’의 뜻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 2000년 형사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도청, 감청 및 비밀녹음(녹화)의 제한과 증거능력’ 보고서를 보면,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가 꼭 ‘비밀’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화가 일상적 내용이더라도, 누군가 몰래 듣기 원치 않는다면 공개되지 않은 대화로 볼 수 있다. 굳이 비밀대화는 아니라도 누군가 몰래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유롭게 소통하기 어렵다. 사생활 차원을 넘어서 헌법은 제18조에서 내용이 무엇이든 통신비밀 그 자체를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음은 ‘타인 간 대화’의 뜻이다. 도청은 그 한자어가 뜻하는 대로 ‘훔쳐 듣기’로 이해할 수 있다. ‘훔쳐’ 들을 필요가 없다면 ‘타인 간 대화’는 아니다. 대법원도 3인 사이 대화에서 한 명이 다른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해도 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본다(대법원 2013도16404 판결). 회의는 참석자들에게는 이미 공개된 상태다. 회의를 녹음하는 경우, 배석자는 직접 발언하지 않더라도 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들을 권한이 있다. 또 언제든 발언할 기회도 있어, 잠재적인 대화 참여자로 볼 수 있다. 강의를 듣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청진기 같은 특수장비를 활용해 회의장을 이른바 ‘벽치기’ 취재한다면,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회의실이나 강의실에 녹음기만 두고 장소를 벗어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장소를 벗어난 시간 동안 대화에 ‘참여할 가능성’은 없다. 2011년 <KBS>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는 민주당 대책 회의를 <KBS> 기자가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회의가 진행되는 당 대표실에 기자가 작동 중인 녹음기를 두고 나왔다고 의심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해당 기자는 증거가 될 수 있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한꺼번에 분실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기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사건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 2017년 6월 8일 <뉴스타파> 보도. 민주당 도청 의혹 당시 <KBS> 보도국장 임창건 씨는 <뉴스타파> 기자에게 도청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 <뉴스타파>

‘업무로 인한 행위’는 정당행위

그렇다면 일단 불법 녹취물로 보이는 녹음파일은 어떤 경우에 보도할 수 있을까?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죄를 묻지 않을 수 있는 요건을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한다. 죄목에 따라 법에서 개별적으로 명시하기도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처럼 예외가 따로 없는 경우라도 형법 20조에서 규정한 ‘정당행위’를 적용할 수 있다. 겉으로는 불법처럼 보여도, 업무로 인한 행위는 예외가 된다. 의사가 환자의 배를 가르는 것은 상해에 해당하지만, 이는 의사 본연의 업무인 수술 행위이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다. 실정법을 위반한 것 같은 보도도 때에 따라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난 2006년 안기부 X파일 보도 재판에서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보도가 정당행위가 되기 위한 요건이 집중적으로 검토됐다. 1997년 9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비밀 도청을 담당하던 ‘미림팀’은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사이 대화를 도청했다. 이들이 검찰 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줘왔고, 대선 주자들에게 정치자금을 어떻게 지원할지 논의하는 대화였다. 여러 차례 이뤄진 녹음은 모두 90여 분 분량이었다. 당시 <MBC> 소속이던 이상호 기자는 이 녹취록을 2004년 10월 제보받았다. 제보자는 미림팀 소속으로 일하다 퇴직한 직원이었다. 이 기자는 사실 확인을 거쳐 1년 가까이 지난 2005년 7월 이 내용을 보도했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6고합177 판결).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를 흔들려는 시도에 대한 보도는 공익성을 충족하고, 비록 기자가 불법 자료를 취득했어도 보도 과정에서 충분한 보강취재를 거친 데다, 애초 도청 과정과는 관련성도 없어 “불법성에 깊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봤다. 정당행위를 판단하는 기존 판례대로 목적의 정당성(보도의 경우에는 공익성), 방법의 상당성(보도 목적에 어긋나는 내용까지 불필요하게 언급하지 않았는지),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 균형성 등 주요한 기준을 모두 만족했다고 판단했다.

▲ 이상호 기자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지면서 시민단체는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검사’와 삼성 관계자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이들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 <KBS>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 판단이 갈린 주요한 이유는 ‘공익성’이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매우 높은 공익성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불법 녹취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당장 공중의 생명과 신체, 재산 등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경우에만 불법 녹음된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런 기준을 제시한 근거는 특이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을 보면 안보를 위협하는 음모행위, 사망과 상해를 일으키는 중대한 조직범죄 실행이 임박한 경우, 수사기관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도청할 수 있는데, 이런 기준을 똑같이 적용해, 언론도 국가가 위험에 처한 수준의 조건이 있을 때 보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X파일 보도는 문제의 대화가 이미 보도 시점보다 8년 전에 이뤄져 ‘직접적이고 임박한 위험’이 없다며, 불법으로 녹음된 음성을 보도할 정도의 공익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가장 우선해야 할 판단 기준은 ‘공익성’

대법원의 이런 판단에는 의문이 남는다. 아무리 통신비밀보호법이 도청행위와 도청된 내용을 공표하는 행위를 똑같이 강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권력기관의 일반적인 공표행위가 아닌 공익을 위한 언론 보도에까지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 본연의 업무는 국민의 생명 보호가 맞다. 하지만 언론기관은 사회 비판과 진실 보도가 존재 목적이다. 언론이 수사기관에 소속된 홍보부서가 아니듯, 국가안보 위협을 보도 판단 기준으로 삼으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박시환 등 대법관 5명은 소수의견을 통해 다수의견이 내세운 공익성 판단 기준을 비판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공익성이 있는지는 내용의 영향력과 파급력, 당사자의 공인성 등을 사례마다 매번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안기부 X파일 보도의 경우에도 “8년 전에 이뤄진 대화이나 재계와 정치권 유착관계를 근절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시의성이 없다고 할 수 없”고 “대화 내용이 중대한 내용이고, 대화 당사자가 공적 인물이어서” 충분히 보도할 만한 공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익성은 거의 모든 보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논의를 확장해, 도청된 녹음파일뿐만 아니라 언론사가 제보 받은 불법적인 자료를 보도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도 공익성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2015년 4월, <JTBC>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 파일을 입수해 보도한 뒤 많은 비판을 받았다. 비판 지점은 단지 그 인터뷰 파일을 정당한 권한이 없는 제보자로부터 전달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당성 논란을 무릅쓰고 보도해야 할 만큼의 공익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성완종 전 회장 유족의 반대에도 <JTBC>가 보도를 강행하자 언론계에 비판 여론이 일었다. ⓒ <JTBC>

해당 전화 인터뷰 파일은 경향신문 기자가 고 성완종 회장의 동의를 얻어 녹음한 결과물이었다. 경향신문이 이를 검찰에 제출하기 전 보안 작업을 도와주겠다며 파일을 받아 간 포렌식 전문가가 평소 친분이 있던 <JTBC> 기자에게 파일을 건네줬다. 업무상 배임이 성립될 수 있는 행위였다. 경향신문은 이미 주요 내용을 보도했었고, 녹취록 전문 공개까지 예고한 상태였다. <JTBC>는 어차피 보도될 내용을, 정작 인터뷰를 한 언론사보다 몇 시간 먼저 내놨다. 경향신문이 놓치고 있던 내용을 특별히 다룬 것도 아니었다. 

손석희 전 앵커는 다음 날 방송에서 “파일이 검찰에 넘어간 이상 공적 대상물이라 판단했다”며 “(경향신문을 통해) 글자로 전문이 공개된다 해도 육성이 전하는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른 언론이 취재한 내용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입수해 보도해야 할 정도로 공익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다. 비록 언론사가 제보자에게 도청이나 절도를 시키는 등 불법행위 과정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위법성이 면책되려면 불법성을 넘어설 공익성이 담보돼야 한다. 

기본권 대 기본권의 대결

공익성을 판단한 다음에는 보도로 얻을 공익성과 침해될 가치를 비교해야 한다. 알권리가 제한될 수 있는 것처럼 통신의 비밀 보호라는 기본권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둘 다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 한, 언론이 알권리를 충족하면서 통신비밀 침해를 최소화해야 보도가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헌법을 해석할 때는 헌법이 보호하는 여러 가치가 조화될 수 있도록, 이른바 ‘규범조화적 해석’을 해야 한다.

앞서 제주 지역 인터넷신문사 기자가 최종심까지 일관되게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기사의 공익적 가치에 비해 사생활 침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제주지법은 해당 언론사가 권력형 비리가 의심된다면서도 그 실체를 확인하는 추가 취재 노력은 하지 않고, 단지 녹취록에만 기댔다고 비판했다. 제보를 받은 뒤 휴일을 포함한 4일 만에 보도를 시작했고, 10일 동안 8차례나 녹취록을 공개해 상당성을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또 보도 내용 중에는 정책보좌관실장 A씨가 여성비하 발언을 했다는 등 보도의 전체 취지로 볼 때 꼭 필요하지 않은 내용까지 담겨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봤다.

불법녹음 내용을 보도할 때 언론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제보자가 범죄자이든, 제보된 내용이 불법적으로 취득된 것이든, 언론의 역할은 어떤 경우에도 진실과 공익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언론 보도가 실정법을 어긴다 해서 반드시 언론윤리를 어긴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을 어기는 책임을 지더라도 언론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나 진지한 고민과 논의 없이 함부로 자기 판단만 앞세워 법을 어겨서는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판단하는 기준도 역시 공익성이다.


편집: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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