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학회 ‘공직후보자 검증보도 쟁점’ 세미나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이 올라가며 총리, 장관 등 고위직에 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언론은 벌써부터 주요 직책에 예상되는 인물을 거론하며 인사검증에 시동을 걸고 있다. 새로 들어설 윤석열 정부의 국회 인사 청문회 과정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훨씬 넘는 172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과정은 종종 가혹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공직 후보의 공적 활동에서부터 내밀한 사생활까지 샅샅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검증과정에 개입되는 정치권과 언론의 정파성은 검증의 본질을 왜곡한다. 후보자가 공직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정쟁을 위한 검증이 이뤄진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청문회장은 전장으로 변하고, 언론은 위협적인 내용을 실어 나른다. 소모적인 정쟁이 검증기간 동안 이어지면, 남는 건 정치혐오 뿐이라는 우려도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소모적이고 본질에서 벗어난 검증 보도를 지양하고, 올바른 인사검증 보도를 하기 위해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한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언론법학회 주최로 지난 17일 열린 ‘공직후보자 검증보도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 세미나에서는 인사 검증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표절과 사생활 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관해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 지난 17일 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열린 “공직후보자 검증보도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 세미나에서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 한국언론법학회

‘표절 검증 보도’ 명과 암이 공존

공직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표절 문제는 후보자가 쓴 논문이나 책 등이 ‘표절인가 아닌가’를 밝히는 데 집중돼 있다. 표절 검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간이 적잖게 걸리는 간단치 않은 일인데, 짧은 검증 기간에 언론의 속보 경쟁이 맞물리면 표면적인 보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전문적인 검증보다는 형식적인 판단이 앞서게 되고, 정작 공직 후보자의 임명 여부가 결정 나면 표절 문제에는 더 이상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표절 문제에 대한 발제를 맡은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표절에 대한 검증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진영적, 선정적 접근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 세계를 막론하고 지적 재산권이 강조되고 있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표절 여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면서도 “흠집 내기나 정치적 노선에 따른 상대방 공격용으로 의혹 제기 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도 짧은 기간에 표절 검증 보도를 하다 보니 진지함과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검증 과정에서 유사도 검색 프로그램에 기계적으로 의존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실제로 언론은 점점 ‘카피킬러’(Copy Killer)와 ‘턴잇인’(Turnitin) 등 유사도 검색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고 있다. 속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런 프로그램에서 유사율이 높게 나올 경우 표절로 쉽게 단정 지어 보도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유사율이 10%라고 해서 표절이 아니라거나, 50% 이상이면 표절이라는 식의 기계적인 접근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 이인재 교수가 문장 유사도 검사 시스템 ‘카피킬러’의 유사율 문제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PPT 화면 갈무리. ⓒ 이인재

토론자로 나선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표절 검증이 지나치게 학문 외적 동기에서 비롯되다 보니 ‘교수가 공직자가 되려면 논문이나 저서를 많이 쓰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며 전문적 판단과 거리가 먼 흠집내기식 표절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법학회 연구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 교수는 다만 학계 내에서 자체적인 검증이 필요한데도 온정주의가 존재하다 보니 동료 연구자의 저작물에 대해 ‘표절’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공직자 표절 검증 위원회’ 제안도…실현 가능성은 논란

▲ 언론 보도 이전에 공직자 표절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 ⓒ 한국언론법학회

이인재 교수는 표절 검증이 신중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문적인 검토를 받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1차적으로는 언론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기자가 검증을 진행하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저작권법 전문가와 연구 윤리 전문가에게 검토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가칭 ‘공직자 표절 검증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전문성과 일관성 없이 선정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예방하자고 제안했다. 또 기자협회가 표절 검증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들 사이에서는 ‘표절 검증 심의위’ 제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이민규 중앙대 교수와 장세찬 인터넷신문위원회 사무처장은 “위원회를 통한 최종 검증은 다소 이상적인 주장”이라며 속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언론의 속성으로 볼 때 검증 위원회는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언론의 표절 검증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하는 토론자가 많았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도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학계와 현업 언론계가 함께 작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사(私事)적 영역과 내밀한 영역 구분해야”

사생활 검증 보도에 대해 발제를 한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직 후보자와 관련해 어떤 부분을 검증 대상으로 삼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직자의 주요 자질에는 정책적 능력 외에도 도덕성도 중요하며, 도덕성은 곧 사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공직자의 사생활이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인 경우에만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은 보도는 “단순 ‘흠집 내기’ 혹은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이재진 교수가 제시한 독일법 상 사생활 영역의 구분 방식. 하지만 현실 언론 보도에 있어 사사적 영역과 내밀한 영역 간 명확한 구분이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 이재진

문제는 법원에서 공직자 사생활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주지 않아 언론도 보도 기준을 잡기 어렵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여기서 사생활 영역을 공적 영역, 사회적 영역, 사사(私事)적 영역, 내밀한 영역으로 나누는 독일의 사례를 제시했다. 사사적 영역은 결혼이나 이혼 여부 같은 가족 생활, 주거, 종교, 출입국 기록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비밀로 보호받아야 하는 사생활 영역도 있지만 공직자의 지위나 역할에 따라 검증을 위해 공개해야 하는 부분도 섞여 있다. 내밀한 영역에는 개인의 성생활, 성정체성, 치명적인 질환 등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 교수는 사생활 영역 가운데 내밀한 영역에 관한 보도 필요성에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도를 통한 공적인 이익이 적거나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사생활 검증은 ‘속보 경쟁’ 대상이 아니며, 인터넷이나 SNS에 이미 공개된 내용이라 해도 보도를 위해선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생활 보도 가이드라인 필요” vs. “실효성 떨어져” 논란

이재진 교수는 보호해야 하는 사적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무리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사생활 보도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토론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먼저 이민규 교수는 “언론의 자의적이고 정파적인 판단이 공익을 위한 사생활 검증을 막고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장세찬 인터넷신문위원회 사무처장도 재난보도 준칙이나 자살보도 준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업 언론단체들이 사생활 보도에 관한 지침을 만들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실장인 양재규 변호사는 국내 법원 판결에서는 사생활 영역의 구분보다 보도의 목적을 언론의 책임을 따지는 더 중요한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 한국언론법학회

이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실장을 맡고 있는 양재규 변호사는 사생활 영역의 실질적인 구분이나 가이드라인 제정에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독일의 사생활 영역 기준을 활용하더라도 실제로 내밀한 영역과 사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직자의 질병은 내밀한 영역에 해당하지만 고위 공직자의 건강은 직무수행 능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검증대상이 되기도 한다.

양 변호사는 특히 최근에는 고위 공직자들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정당한 검증 요구를 방어하는 경우도 많다며 보호해야 할 사생활의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면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탈세, 부동산실명법 위반, 공적 권한의 사적 남용과 같은 행위는 확실하게 사생활의 범주 바깥이라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사생활 범주를 사회적으로 분명하게 결정하는 것이 앞으로 언론이나 정치권의 공직자 검증 과정에서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언론법학회가 주최한 이번 특별 세미나는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이재진 한양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종합 토론에는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실장인 양재규 변호사, 방송통신심의위원인 윤성옥 경기대 교수, 언론학회 연구윤리위원장인 이민규 중앙대 교수, 장세찬 인터넷신문위원회 사무처장,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편집: 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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