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㉛ 17개 시·도교육청 운영 현황 점검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각급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늘리고 있지만 환경교육이 병행되지 않거나 식단의 다양성이 부족해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전국 17개 교육청과 일선 영양(교)사들에 따르면 2020년 7월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기후위기 시대, 환경교육을 위한 비상선언문’을 발표한 후 전국 초·중·고교에서 ‘월 1회’ ‘주 1회’ 등 정기적으로 채식 급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인천, 충북, 충남, 전남, 울산, 경북, 제주 등 15개 교육청은 월 1회 이상 ‘채식 급식의 날’을 의무 혹은 권장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채식의 날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를 빼고 채소·곡물과 함께 해산물, 달걀, 유제품을 포함하는 ‘페스코 식단’으로 급식을 한다. 

육류 빼고 해산물 넣는 ‘페스코 식단’이 주류

배윤주 인천광역시교육청 주무관은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육류를 우선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교육청 산하 학교들은 월 1회 ‘다채롭데이’라는 이름으로 채식 급식을 한다. 충남 천안의 가톨릭계 학교인 복자여고는 교육청이 지정한 ‘월 1회’보다 훨씬 자주, ‘주 3회 이상’ 채식 급식을 하고 있다. 학교 재단과 임숙이(54) 영양사가 모두 환경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채식을 비빔밥, 칼국수, 볶음밥 등 ‘특식’으로 제공하고 있어 학생들의 거부감이 적다고 밝혔다.

▲ 충남 천안 복자여고의 채식 식판. 육류를 뺀 페스코 식단으로, 이날은 참치야채비빔밥, 치즈생선까스 등이 나왔다. ⓒ 복자여고 영양사 인스타그램

인천, 대구, 경북, 제주교육청 등은 ‘채식 급식 연구·선도학교’를 지정해 예산을 지원하기도 한다. 채식 급식을 환경 동아리, 텃밭 가꾸기, 채식 요리 실습, 학생·학부모·교직원 교육, 환경·영양 수업 등과 연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일선 영양(교)사들은 체계적인 환경교육이 병행되지 않거나 다양한 채식 메뉴를 개발할 여력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매주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시행한다는 송미선 울산 강남초등학교 영양사는 “월요일이 아닌 날에 채식 메뉴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왜 채식의 날도 아닌데 고기가 없냐’고 (불만스럽게) 물었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이 환경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채식 급식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수현 서울 면일초등학교 영양교사도 교육청이 ‘그린 급식의 날’을 도입하기 전인 2019년부터 주 1~2회 채식 급식을 운영해왔는데, ‘(채식의 날이 있으니) 육식의 날도 만들어 달라’는 등 불평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 교육, 레시피(요리법) 연구, 지원책 등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 시행됐기 때문에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권 교사는 “최근 생태환경교육이 늘어나면서 채식에 대한 불만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며 각급 학교의 채식 확대에 환경교육이 병행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후위기와 채식’을 주제로 전교생 대상 교육을 한 제주 우도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감상문을 통해 “기후변화는 취약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동물성 고기를 줄이고 1주일에 한 번씩은 채식을 해야겠다” 등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영양교사 개발 여력 없어 메뉴 다양성 부족 

채식 급식이 늘면서 메뉴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영양(교)사들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경남 창원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학생들의 기호, 영양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식단을 짜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학생들이 채식을 먹게 하려고 회오리감자, 새우튀김, 연근튀김 등 기름에 튀기는 요리를 많이 하는데, 건강에는 좋지 않아 걱정이라는 것이다. 

송미선 울산 강남초등학교 영양사도 “채식 급식을 비빔밥, 볶음밥, 잔치국수 등 학생들이 선호하는 특식으로 제공하는데, 그렇게 되면 탄수화물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단백질 등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청에서 레시피(요리법)를 개발하고 자료를 공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수현 영양교사는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기후위기시대의 먹거리 생태전환교육 포럼’에서 “채식 전문점과 협업해서 학교 급식용 레시피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권 교사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급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지만, 환경적으로 열악해 채식 급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채식 메뉴를 추가로 개발해야 한다면 영양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여주거나 보조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생태전환교육포럼에서 권수현 영양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 서울시교육청

어른들부터 채식 실천 모범 보여야

지난해 11월 울산교육청이 주최한 ‘슬기로운 먹거리 포럼’에서 성정희 학교급식정책모니터단 학부모 대표는 “가정에서도 채식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학부모 교육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가정과 학교가 연계해서 교육을 할 수 있다면 채식이 훨씬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점심을 먹는 모습. ⓒ 서울시북부교육지원청

지난 2월 제주도의회가 채식 급식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 시민단체들과 함께 참여한 오인숙 제주도교육청 장학사는 ‘어른들이 채식의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했다. 그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채식을 실천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아니라고 하더라”며 “기후위기 책임이 큰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학생들에게만 채식을 실천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이 먼저 채식을 실천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며 “학생들이 채식을 싫어한다고 해서 식단에서 뺄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어른들이 먼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장학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막상 정부는 축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전국 각 도청에서는 축산업을 키우는 부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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