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2021년 한국방송대상 시리즈 다큐멘터리 작품상 ④ KBS 다큐인사이트 ‘성여’

그는 13살 여자 중학생을 성폭행한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복역 기간 내내 꾸준히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복역했다. 20년이 흘렀다. 모범수로 인정받았고 감형을 받아 2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2019년. ‘화성 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혔고 ‘13살 여자 중학생’ 사건의 범인도 그의 소행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0년간 복역하고, 10년을 더 범죄자라는 주변의 인식 속에 갇혀 살아왔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KBS 다큐인사이트 <성여>는 30년간 세상에서 지워졌던 ‘윤성여’의 지난 30년 이야기다.

▲ 다큐인사이트 <성여>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의 이야기다. 모래밭을 해치고 점차 뚜렷해지는 <성여>라는 타이틀 그래픽은 오랜 시간 숨죽여 살아왔던 성여 씨의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 KBS

‘지나간 세월을 어쩌겠어요’

화성 연쇄살인 사건(2019년 12월 경찰의 범인 신상공개 이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사건 명칭이 변경됐다.)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1980년대 말. 화성시에서 여덟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당국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가 윤성여 씨의 것과 같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화성시 한 농업소에서 일하던 스물두 살 윤 씨는 즉시 체포됐다. 그는 살인 및 강간치사 혐의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10년이 흐른 2000년, 윤 씨는 징역 20년으로 감형됐고, 그는 2009년 광복절, 2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성여>는 그로부터 10년이 더 흐른 2020년의 윤성여 씨를 다룬다. 2019년 8월, 경찰이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명한다. 이후 DNA 검사 등을 통해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었음이 확인됐다. 한 달이 지난 9월에 이춘재는 윤 씨가 범인으로 지목됐던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었다고 자백한다. <성여>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 이뤄진 화성 8차 사건에 관한 재심 과정을 담아내며, 윤 씨가 범인으로 지목된 뒤 지내온 험난한 지난 30년 삶을 조목조목 그려낸다.  

<성여>는 2부작이다. 그의 지난 20년을 담아내는 1부 ‘나는 살인자입니다’와 재심 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2부 ‘다시 찾은 이름’이다. 2부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다. <성여>의 연출을 맡은 KBS 이인건 PD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씨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큐는 연출을 통해 윤 씨의 사연을 강조하며 동정을 이끌지 않는다. 그저 그의 삶과 발언을 담담하게 기록해 낸다. 이 PD가 유지한 냉정한 거리감은 윤 씨가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했다. 다큐는 윤 씨가 자신과 출소 후 함께해줬던 교화복지회 원장과 대화하거나, 30년 전 체포 당시를 회고하는 장면을 통해 그의 기쁨과 슬픔을 가감 없이 보여줄 뿐이다.  

▲ 윤성여 씨가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촬영을 허락한 것은 처음 만나고 6개월이 지나서였다. 제작을 맡은 이인건 PD는 그와 오랜 시간 만난 후 좋든, 나쁘든 성여 씨의 지금 모습을 모두 그대로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동정에 관한 강요 없이 그의 아픔과 눈물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 KBS

기록된 영상에서 우리는 윤 씨의 속마음과 자주 만난다. 그가 100분의 영상 속에서 제일 빈번하게 한 말은 “지나간 걸 어쩌겠어요”다. 20년 동안 남이 저지른 죄로 옥살이를 한 사람이라면, 분노와 억울함은 당연한 감정일 테다. 하지만 윤 씨는, 억울하다는 말보다 지나간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연출 의도가 2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희생자 개인을 강조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그의 ‘있는 그대로’의 말이다. 감정을 절제한, 거리를 유지한 제작 태도는 역설적으로 윤 씨가 겪은 험난했던 20년 삶 속에 가려진, 억울하지만 억울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족에게 떳떳해 보이고 싶었던 한 인간의 속 깊은 감정을 보게 만든다.

다큐가 그의 지난 30년을 드러내는 법

성여 씨는 자신의 입으로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고 그의 20년의 고통과 억울함이 사라지겠는가. 다큐멘터리는 그가 몸으로 체험한 고통과 억울함을 대신 증언해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성여>에는 그를 도운 두 명이 나온다. 성여 씨가 ‘박 선배’라고 부르는 박종덕 교도관과 출소자 교화복지회 원장인 나호건씨다. 박종덕 교도관은 20년간 ‘성실하게’ 복역하며 변함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성여씨를 보고 그의 무죄를 확신했다고 말한다. 출소 후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는 나 원장이다. 나 원장은 교도소에서 성여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을 이렇게 전한다. “수녀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살인자라고 해요. 괜찮아요. 수녀님 한 분만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어주시면 저는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가 겪고 견뎌낸 분노와 억울함은 타인의 입을 통해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깊게 다가온다. 

다큐에서 성여 씨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고통스러워하는 결정적인 두 번의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체포 당시 경찰의 조사 과정을 떠올릴 수 있겠냐는 PD의 질문을 받았을 때다. 성여 씨는 머뭇머뭇하더니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그는 오늘 촬영은 여기서 접자고 말하고,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구토를 한다. 한 번도 자신의 상처를 직접 말한 적 없는 성여 씨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 말이 아닌 눈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 머리를 부여잡는 성여 씨. 아픔을 기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에겐 상처이자 고통임을 두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 KBS

다른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부분이다. 다큐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의 성여 씨를 비춘다. 지금 이 순간 누가 가장 생각나냐는 PD의 질문에, 그는 ‘어머니’라고 답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난, 얼굴도 가물가물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성여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한다. “천국에서나마 내가 엄마를 떳떳하게 볼 수 있겠지.” 잠깐의 그 순간 보는 이의 심금이 울린다. 아팠다고, 분노로 참을 수 없었다고, 지난 30년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가 겪은 내면 깊숙한 아픔을 그대로 보는 이에게 전해진다. 

▲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돌아가는 길, 성여 씨는 어머니가 가장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천국에서 만날 어머니에게 당당할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이 붉어진 성여 씨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의 처절했던 지난 삶의 아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 KBS

체포부터 재심까지... 30년 세월의 눈물과 아픔

<성여>는 윤성여 개인을 다루면서 동시에 재심이라는 재판 과정에 주목한다. 그가 홀로 30년 동안 겪은 아픔의 과정을 나누기 위해서다. 1부에서는 그가 체포되는 과정을 전달한다. 성여 씨는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는 도중 찾아온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들은 성여 씨를 구속하며 여러 증거물을 내놓았으나, 재심 과정에서 다시 살펴본 증거들은 모두 허위거나 조작된 것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성여 씨의 체모를 분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 결과는 검사 당시에도 둘 사이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근거로 성여 씨를 구속했고, 법원은 그것을 증거를 받아들여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가 성여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성여 씨를 구속하기 위한 수사당국의 조작은 지속해서 벌어졌다. 범인은 담을 넘어가 범죄를 저질렀다.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했던 성여 씨는 담을 넘을 수가 없었다. 특히 사건 현장의 담벼락은 부실하게 시공돼 성인 남자가 살짝만 힘을 주어 밀면 넘어지게 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현장 검증 과정에서 성여 씨에게 담을 넘는 시늉만 하게 시키고, 이를 증거로 사용했다. 담 아래 찍혀있는 슬리퍼 자국을 슬리퍼를 자주 신는 성여 씨가 저지른 범죄라는 증거로 삼기 위해서였다.

다큐는 재심 과정을 비추며, 재심에 출석한 당시 수사 담당 공무원들과 이춘재의 말을 큼지막한 자막으로 보여준다. 현장 검증 당시에 담을 넘었냐는 변호사의 신문에 윤 씨가 한 “시늉만 했다”는 대답, 자신을 빼고 진행되는 수사 상황을 두고 이춘재가 한 대답, “저는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들이다. 자막은 사건의 진실은 명확했고, 진범도 수사관도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막 장면에는 흔한 삽입 영상이나 효과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오롯이 그들의 말에 주목하게 만들어, 한 선량한 개인이었던 성여씨가 범죄자로 몰려 30년간 겪어 온 눈물과 고통의 삶을 공유하게 만든다. 고문과 조작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도 아니 내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보여준다. 당신만이 아니라 나도 범죄자로 몰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증명한다.  

▲ 다큐는 30년 전 수사를 담당했던 검·경찰과 진범인 이춘재의 법정 발언을 자막으로 전할 때, 흔한 영상 효과를 쓰지 않는다. 담백하게 과거의 진실을 되살리는 증언은, 성여 씨의 억울한 20년 옥살이가 어떻게 조작돼서 만들어졌는지 생생하게 살려낸다. ⓒ KBS

재심 과정과 체포 당시의 상황을 다큐는 ‘성여 씨의 입’을 통해서 전한다. 체포 과정이 어땠는지, 재심을 청구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주요한 과정은 모두 성여 씨의 직접 증언을 통해 전한다. 사건의 전후 관계를 다룬 뉴스 등 여러 자료는 보충 자료로 제시될 뿐이다. 검거 당시 상황을 뉴스 자료나 재심을 도와주는 변호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다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성여 씨가 자신의 목소리로 전하는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감정은, 그대로 시청자 가슴에 와닿는다. 그가 자신의 말로 전하는 증언은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리얼리티 그 자체다. 성여 씨는 8차 사건 당시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을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을 먹는 도중 경찰이 그를 찾아왔고, 이내 성여 씨는 체포됐다. 성여 씨는 “어이없었다”며 그때를 담담히 기억한다. 재심을 청구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어딜 가나”라며 세상에 당당해지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오늘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안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2부의 마지막은 화성 8차 사건 재심 최종 선고일을 담는다. 이 장면은 1부의 첫 장면과 같다. 재판장에 들어서고, 판사는 법원이 마지막 인권의 보루로서 제대로 역할 하지 못했다며 사법부를 대신해 사과한다. 이어 윤성여 씨의 무죄가 선고된다. 변호를 맡은 변호사와 지인들이 그에게 축하를 건넨다. 

같은 장면이 두 번에 걸쳐 나오지만, 전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1부가 시사적인 이슈를 간략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면, 100분이 흐른 뒤 보는 같은 장면은 모든 것이 낯익게 느껴진다. 재판정을 들어서는 절뚝거리는 그의 걸음걸이에서 억울함을 삭였을 젊은 윤성여 씨가 보인다. 이어 성여 씨를 변호하며 재심을 성사시킨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여 씨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지인들은 출소 후 그와 함께한 ‘박 선배’, ‘나 원장’이었음을 시청자는 알게 된다. 100분이 가져다준 낯익음은 결국 30년 동안 홀로 외로워야 했던 그와 시청자 사이에 ‘억울함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연대의 고리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 재심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오는 길, 성여씨는 여느 때처럼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성여를 시청한 사람들은 모두 이제 그의 억울함을 안다. 다큐멘터리 <성여>가 윤성여 씨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다. ⓒ KBS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안 나오길 바랄 뿐이고, 모든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제 바람입니다. 이상입니다. 고맙습니다.” 무죄 판결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에는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가슴 속에 삭이고, 대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사회적 타살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나의 아픔을 다른 이가 또 겪어선 안 된다는, 타인을 향한 배려가 남아있다. 다큐를 만든 이인건 PD는 성여 씨를 ‘깊게 들여다봐야 보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성여>는 30년 동안 고립됐던 한 인간이 성숙된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시청자들에게 열어준다. 그를 쉽게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그를 통해 범죄자로 몰려 평생을 살아온 사회적 약자의 아픔과 눈물을 깊게 들여다보기. 그래서 그가 홀로 견뎌내 온 30년 동안의 고독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위로하기. 다큐멘터리 <성여>가 바라는, 진정한 ‘재심 청구인 윤성여’의 엔딩이다. 


편집: 심미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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