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0년 퓰리처상 국내보도부문 수상작 - 보잉 설계결함 보도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다. 성장과 발전이 거듭될수록 그에 따른 위험부담도 늘어난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은 미리 파악해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위험사회 개념을 제안한 율리히 벡의 진단이었다. 위험 예방 시스템을 잘 갖추고 따르면 목숨 여럿을 앗아가는 비극을 목격하지 않을 수 있다. 위험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특히 재난이 일어났을 때, 급박한 상황을 차분하게 전달하는 기사 뿐만 아니라, 재난의 원인을 추적하여 밝히는 ‘재난 이후 보도’까지 내놓는 것이 언론의 본령이다.

미국 <시애틀타임스>(The Seattle Times)는 보잉 737 맥스(MAX) 기체의 결함으로 대형 참사가 두 차례 발생한 이유를 파고들었다. 항공기 제조 회사의 안전 관리 의무를 국가가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구조를 드러냈다. 위험사회에서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전형적 보도다.

공식 문서에서 찾아낸 실마리

2016년 1월 처음 취항한 보잉 737 맥스 기종은 3년 여 만에 두 차례나 대형 참사를 일으켰다.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에서, 그리고 2019년 3월 10일 에티오피아에서 잇따라 보잉 737 맥스 기체가 추락했다. 사망자는 각각 189명과 157명에 달했다. 미국 항공 당국은 두 번째 사고 사흘 뒤부터 이 기종의 미국 내 비행을 금지시켰다. <시애틀타임스>가 해당 기종을 다룬 탐사 보도는 두 번째 사고 발생 6일 뒤에 처음 나왔다.

▲ <시애틀 타임스>의 보잉 탐사보도는 비행기의 설계결함을 쉽게 풀어내려고 애썼다. 항공우주과학 전문용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간단한 그림으로 설명했다. ⓒ 시애틀타임스 기사 갈무리

이 기사를 보도한 도미닉 게이츠(Dominic Gates) 기자의 취재는 2018년 10월 첫 번째 추락 사고 직후부터 시작됐다. 첫 사고 일주일 뒤, 보잉사는 전세계 항공사들에게 ‘737 맥스 관리 안내서’를 보내, 맥스 기종에 새로운 비행 조종 장치(MCAS)를 도입했고 센서 오류로 이 장치가 잘못 작동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게이츠 기자는 ‘새롭게 도입했다’는 이 장치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도미닉 기자가 이끄는 특별취재팀은 2019년 1월부터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두 달 동안 보잉사의 전현직 엔지니어 12명을 인터뷰하면서, 관련 문서와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했다.

정부와 시장이 자초한 참사

일련의 취재를 통해 디자인 결정과 안전성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보잉사의 매니저들은 안전 검증 과정에서 시간과 돈을 절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엔지니어들은 좌천의 성격으로 인사 이동을 당했다.

▲ 보잉사는 2018년 11월 각 항공사에 737 맥스 기종에 관한 긴급 지침을 보내고, 기류 등 외부 요인으로 비행기가 갑자기 큰 힘을 받을 경우 조종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MCAS라 불리는 비행 조종 장치의 작동을 멈추기 전에 수평날개가 받는 힘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을 빠뜨려 조종사가 위험을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시애틀타임스>는 보도했다. ⓒ 시애틀타임스 기사 갈무리

이는 보잉사의 안일함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항공 안전 관리 체계의 문제가 있었다. 원래 항공기를 설계·제작할 때, 그 안전을 검증하는 엔지니어는 미 연방항공청에 의해 임명됐다. 엔지니어들은 보잉사로부터 임금을 받지만, 이들이 작성한 안전 검증 보고서는 보잉사에 보여주지 않고 연방항공청에 직접 보냈다. 하지만 2004년부터 규정이 바뀌었다. 항공기 제조사가 안전 검증 엔지니어를 임명하고, 그 결과 보고서도 제조사의 관리자의 검토와 정리를 거쳐 연방항공청으로 보내게 됐다. 항공기 제조사가 안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회피할 경우, 이를 바로잡을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참사의 배경에는 시장 경쟁이 작용했다. 2010년대 들어 경쟁사 에어버스는 A320이라는 신기종을 절찬리에 팔고 있었는데, 보잉은 이를 따라잡고 싶어했다. 그러나 후속 모델 개발이 경쟁사보다 9개월 넘게 뒤처지자 보잉은 조급해했다. 엔지니어들에게 안전 검증 과정을 최소화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밝혀낸 취재팀은 그밖에도 새로 도입한 비행 장치가 문제를 일으킨 과정, 연방항공청의 감독 기능을 완화하려는 보잉의 시도, 조종사의 역량을 탓하는 보잉의 주장에 관한 반박, 희생자들에게 보잉사 등이 합의를 종용한 의혹, 그리고 대형 참사 이후 보잉의 대처와 기업의 향후 전망을 주제로 2019년 말까지 연속 기사를 썼다.

불가피한 익명 보도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

이 기사에는 적지 않은 익명 보도가 등장한다. 보잉사의 안전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가장 내밀하게 아는 사람은 소속 엔지니어들이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익명을 요청한 것이다. 정보 신뢰성을 높이려면 익명 보도를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내부고발자의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게 익명으로 보도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익명보도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시애틀 타임즈>의 기자들은 이 기사를 쓰면서, 익명 증언을 인용할 때마다 익명으로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 문장 이상 소개했다. 예를 들어 ‘미 연방항공청이나 항공 관련 조직에서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을 전제로 안전성 분석의 세부 사항을 모두 말했다’고 밝히는 식이다.

▲ 보잉사 홈페이지에 737 맥스 기종이 소개돼있다. ⓒ 보잉사 공식 누리집 갈무리

나아가 익명 취재원의 신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증언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개인 정보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담았다. 가령 ‘한 엔지니어는’이라고 쓰는 대신 ‘수십 년 동안 보잉사에서 기술 분야 임명 대리자(DER)와 (2004년 제도변화 이후 항공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자(AR)로 맥스 기종을 포함한 검증 과정에 관여한 베테랑 항공안전 엔지니어’라고 소개했다.

또한, 익명 취재원의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문서나 사례를 찾아내 함께 보도했다. 예를 들어, 안전성 검증 강화를 주장했다가 자리에서 쫓겨난 엔지니어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비슷한 이유로 인사발령을 당한 다른 사례를 보잉사의 내부 문서에서 찾아내 소개했다. 증언의 신빙성을 높인 것이다.

낯선 지식, 쉬운 말과 인터랙티브로 풀다

보잉 737 맥스 기종 문제를 취재한 도미닉 게이츠는 <시애틀타임스>의 항공우주분야 기자(aerospace reporter)다. 그는 저널리즘스쿨이나 지역 소규모 언론사에서 기자 경력을 쌓는 일반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았다. 아일랜드와 짐바브웨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미국 시애틀에 터를 잡고 프리랜서 기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의 매거진 기자를 거쳐 2003년 <시애틀타임스>에 입사했다.

▲ <시애틀타임스>는 탐사보도 내용을 <두 차례의 비극적인 비행, 열두 가지 문제>(Two tragic flights, 12 problems)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재가공해 보잉737 맥스 참사의 원인을 12가지로 정리했다. ⓒ 시애틀타임스 기사 갈무리

이 기사에서 그는 항공 관련 전문지식을 기사에 쉽게 녹여냈다. 게이츠 기자는 2019년 6월 소속 언론사 <시애틀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복잡한 기술 문제를 독자들에게 풀어 설명하는 전략을 묻는 질문에 대해 “나는 전문가가 아니며, 스스로 (기술 이슈를) 소화하려 노력한다”고 답했다. 전문가에게 정보를 얻고, 자신이 이해할 만한 말들로 정보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또 “보잉사의 전현직 임직원이 (<시애틀타임스>를) 구독하니, 내가 (기사에서) 잘못 쓴 부분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복잡한 지식을 쉽게 풀어쓰는 그의 노력은 곳곳에 드러났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풀어쓰고, 기체역학(aerodynamics)과 연관지어 기체 오작동 원인을 설명할 땐 그림을 제시했다. 아홉 차례에 걸쳐 기사를 출고한 것에서 나아가 보잉 737 맥스 사고 두 건을 12가지 문제로 분석한 인터랙티브도 구성했다. 

이 인터랙티브는 시선을 끌 정도로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림과 설명을 나란히 배열하고, 3~6개의 짧은 단락으로 12개 문제를 순차적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복잡한 사안에 관한 이해를 높여준다.

보잉이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

게이츠 기자는 첫 보도가 나간 이후인 2019년 5월 호주의 방송 프로그램 <60분>(60 Minutes) 인터뷰에서 ‘앞으로 보잉 737 맥스가 다시 취항하면 이용하겠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일단 (이 기종이) 다시 뜬다면 안전 문제가 해결됐을 테니 내 답은 ‘그렇다’이다”라고 답했다. 보잉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면서도 안전성에 관한 신뢰를 보잉사가 되찾을 것이라는 낙관을 함께 표현한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뒤에도 게이츠 기자는 이 사안을 놓지 않았다. 2022년 초에도 수사 결과를 비롯한 후속 보도를 여전히 내놓고 있다.

<시애틀타임스>의 보잉 737 맥스 탐사 보도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Flawed analysis, failed oversight: How Boeing, FAA certified the suspect 737 MAX flight control system
Engineers say Boeing pushed to limit safety testing in race to certify planes, including 737 MAX
The inside story of MCAS: How Boeing’s 737 MAX system gained power and lost safeguards
Boeing rejected 737 MAX safety upgrades before fatal crashes, whistleblower says
Boeing pushed FAA to relax 737 MAX certification requirements for crew alerts
Lack of redundancies on Boeing 737 MAX system baffles some involved in developing the jet
Newly stringent FAA tests spur a fundamental software redesign of Boeing’s 737 MAX flight controls
A Lion Air crash victim, his family’s loss and a year of quiet mourning
Boeing’s 737 MAX crisis leaves it badly behind in ‘arms race’ for next decade’s jets
Two tragic flights, 12 problems (인터랙티브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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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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