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2021년 한국방송대상 시리즈 영상촬영상 ③ EBS 다큐프라임 ‘60세 미만 출입금지’

‘독거노인’.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미디어를 통해 자주 봤던 고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 먼저 그려지진 않으시나요. 독거노인은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요. ‘독거’ 대신 ‘함께 독거’하는 노인이 될 순 없는 걸까요. 조금은 생경한 이 질문을 던진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환갑을 넘은, 독거노인이라 불리고 싶지 않은 ‘혼자 사는 세 여자’의 이야기. EBS 다큐프라임 <60세 미만 출입금지>입니다.  

▲ <60세 미만 출입금지>는 홀로 사는 예순 넘은 세 여성이 한 달 동안 같이 살아가는 '함께 독거하는 삶' 프로젝트입니다. 할머니로도, 독거노인으로도 규정되고 싶지 않은 이들의 ‘함께 독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홀로 늙어가는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 EBS

환갑 넘은 세 여성이 ‘같이 독거하는 법’

<60세 미만 출입금지>는 2020년 11월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입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혼자가 된 60세 이상의 세 여성이 서울의 한 한옥에 한 달간 함께 살며 겪는 에피소드를 풀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이달의 PD상, 한국방송대상 영상촬영부문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북미 3대 영상 페스티벌로 알려진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 TV부분 금상(Gold Remi Award), 토론토국제여성영화제 월간 베스트 여성프로듀서상도 수상해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60세 이상 독거노인 200만 명 시대, 그중 3분의 2가 여성’. 다큐멘터리는 한국에 얼마나 많은 노인이 홀로 지내며, 그중 여성 비중이 절반이 넘는 현실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주인공 세 명은 독거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홀로 사는 60대의 삶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혼자 산 지 16년째인 예순두 살 사공경희 씨, 이혼 후 자식들을 분가시킨 지 두 달이 채 안 된 예순다섯 살 김영자 씨, 13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예순다섯 살 이수아 씨. 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혼자 살게 된 ‘60세 이상’의 여성 노인입니다. 

사는 지역도, 혼자 된 배경도 다른 세 사람은 서울의 한 한옥에 모여 한 달간 함께 살게 됩니다. 이들은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저녁엔 와인도 마시며 하루를 보냅니다. 혼자여서 시켜 먹지 못했던 치킨도 셋이라서 먹을 수 있습니다. 혼자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습니다. TV 소리에 기대 잠을 청하던 수아 씨에게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즐기는 ‘함께 하는 삶’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공동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청소 당번을 두고 의견 대립을 보이는가 하면, 밥을 너무 많이 지었다며 타박하기도 합니다. 경희 씨는 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영자 씨는 자식 키우듯 어떻게든 밥을 챙겨주려 합니다. 혼자 살다 같이 살면 좋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드러내며 같이 사는 일도 쉽지 않음을 다큐멘터리는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 독거하던 노인이 다른 이와 함께하는 삶은 매번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노인들은 각자의 차이를 발견하며 맞춰가는, '같이 독거하는 삶’을 배우며 함께 살아갑니다. ⓒ EBS

다큐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삶과 홀로 사는 삶을 번갈아 비춥니다. 1부 첫 에피소드 제목이 ‘함께, 독거’인 이유입니다. 병원이 무서워 건강검진 한 번 받은 적 없다는 경희 씨는 세 살 많은 예순다섯 살 두 언니의 도움을 받아 병원 공포증을 이겨냅니다. 주사를 맞을 때 주삿바늘도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병원을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영자 씨가 옆에 있습니다. 투박한 손으로 경희 씨의 눈을 가려줍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지쳐 잠든 경희 씨를 영자 씨가 깨웁니다. 미역국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혼자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을, 받지 못했을 도움을 경희 씨는 경험합니다. 수아 씨는 친구와 동생을 집에 두고 가끔 혼자 나갑니다. 하고 싶었던 피아노 교습을 받기 위해섭니다. 혼자 따로 있는 게 아쉬울 법도 한데, 집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은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도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모일 때 재밌게 놀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영자 씨는 목욕탕을 가고, 경희 씨는 집에 있는 반려묘와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다큐멘터리는 환갑이 넘은 세 여성의 한 달 함께 살기를 통해 혼자, 그리고 함께 사는 독거노인의 삶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 삶은 다소 낯선 어른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병원이 무서워 울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조용히 하라며 ‘얼음’을 외치고, 밥을 많이 준다며 상대를 타박합니다. 혼자 사는 동안에는 마치 무엇이든 다 잘하는 어른인 것만 같았지만, 막상 같이 살아보니 무서운 거 많고, 기대고 싶어 하는 부족한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홀로 사는 게 괜찮아도, 가끔은 서로가 곁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예순이 넘은 ‘다 큰 어른’일지라도요. 

담담하게 빛나는 세 사람의 얼굴과 삶

<60세 미만 출입금지> 속 이야기와 세 명의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영상미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방송대상에서 영상촬영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8월 한여름 초록 잎과 나무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북촌 풍경을 배경으로 세 주인공은 활동합니다. 여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북촌이라는 세 사람에게 전혀 낯선 장소는 세 주인공의 활동에 자유로움을 줍니다.

임형은 <EBS> 촬영감독은 ‘세 사람의 공간과 그들의 시간을 담담하게 전달하자’라는 생각으로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노인들이 편한 공간에 마음껏 시간을 부여해, 노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방식이 다큐 촬영 기법이 됐다는 것인데요. 임 감독에 따르면, 영자 씨가 무거운 수박을 들고 집으로 가던 도중 길 위에서 갑자기 주저앉아 쉬겠다고 했답니다. 제작진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했지만, 세 사람이 힘을 합해 수박을 지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일상적인 장면에 그칠 수 있었지만, 그 일상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이 편한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제작진의 ‘기법 아닌 기법’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영화 같은 질감으로 담긴 화면 구성은 작품에 감성을 더했습니다. 주인공 개개인에 맞춘 화면 톤을 결정하는 등의 장면 구성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자유로운 한 달 살기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이 개개인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 세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영상미와 내레이션 등 다양한 기능적 수단입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제한적인 내레이션의 사용은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사진은 수박을 들고 집에 가다 길 위에 앉은 영자 씨를 담은 모습. ⓒ EBS

두 번째는 내레이션입니다. 절제된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를 담담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한국 다큐에서 내레이션은 빼놓을 수 없는 장치입니다. 내레이션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돼 영상의 힘을 갉아 먹는 경우가 종종 있죠. <60세 미만 출입금지>에서는 내레이션이 비교적 적게 사용됩니다. 소제목을 언급하거나, 배경을 설명하는 등 필요한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쓰였습니다. 절제되고 담백한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의 영상과 내용의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내레이터로 참여한 이다희 배우의 목소리는 다큐의 진정성을 높여 줍니다. 이다희 배우는, 다큐멘터리 방영 1년 전 인기를 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라는 드라마를 통해 여성 서사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내레이션의 기능적 제한과 내레이터의 서사적 연관성은 다큐멘터리를 한층 더 빛나게 해준 좋은 장치였습니다.   

혼자 살아도, 같이 살아도 자신을 사랑하기를

작품의 끝.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집니다. “당신이 ‘머물고 싶은 나이’는 언제인가요.” 막내 경희 씨는 마흔 살, ‘대장’ 영자 씨는 예순에서 한 살을 뺀 쉰아홉으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아 씨는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나이, 지금의 예순다섯으로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입니다. “지금은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 멋진 사람인 거 같아요.” 혼자 살면서, 수아 씨는 예순다섯이 된 지금 주변에 친구도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을 자책해왔습니다. 한 달 살이를 끝내고 돌아보며 수아 씨는 더 이상 자책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또 다른 ‘혼자 사는’ 친구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 예순이 넘어도, 일흔이 넘어도. 혼자 살아도, 같이 살아도.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기를. <60세 미만 출입금지>는 각자가 있는 그대로, ‘함께 독거’하며 늙어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EBS

‘독거노인’. 혼자 사는 노인을 일컫는 이 말을 그동안 깊게 고민해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나이가 들고, 지금도 우리네 옆에는 각자의 이유로 많은 노인들이 혼자 살아갑니다. 그 수도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다는 건 뭘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정답은 모르지만, 다큐멘터리는 말합니다. 혼자 살아도 괜찮고, 같이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노인 모두의 삶이 60세가 넘어도, 70세가 넘어도, 80세가 넘어도 외롭고 불안하지 않기를. 외롭지만 ‘함께 독거’로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 되기를. <60세 미만 출입금지>는 이 세상의 독거노인들을, 그리고 언젠가는 노인이 될 우리를 응원하는 아래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합니다. 

“어떠한 나이로 살아가든, 오늘의 젊음을 살아가는 당신을 위하여. 60세 미만 출입금지.” 


편집: 이주연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