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멸종위기 수달'의 친구, 어경연 교수

어둠이 고요히 내려앉은 충북 제천시 의림지. 빙판이 된 저수지 위에 몸매가 매끈한 족제비를 닮은 동물이 작은 물고기를 씹어먹는다. 얼음물에 흠뻑 젖었지만 윤기가 흐르는 털, 강아지처럼 동그란 머리, 작고 귀여운 눈과 귀, 길고 도톰한 꼬리까지. 바로 수달이다. 조심성 많은 녀석이 배가 많이 고팠는지,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배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고기를 마저 넘기자마자 다시 얼음구멍에 뛰어든다. 정확히 1분 만에 더 큰 고기를 물고 올라온다. 어른 손바닥만 한 먹이를 잠수에 걸린 시간보다도 빨리 해치운다. 야생 수달이 왕성하게 식사하는 진귀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 야행성인 수달을 살피러 밤마다 의림지를 지키는 세명대 어경연 교수다.

▲ 어경연 교수가 3~4미터 거리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수달. 성체 무게가 1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수달은 하루에 자기 체중의 10~15%를 먹는다. ⓒ 어경연

수달 친구 자처한 야생동물 전문가

“봄에 의림지에서 산책하다 마침 제 눈에 수달이 보였어요. 저한테는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사건이죠. 시민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겠지만, 야생동물을 공부해온 전문가에게는 ‘의림지에 수달이 산다’ 이 자체가 사건이에요.”

어경연 교수는 지난해 4월 세명대 동물바이오헬스학과에 부임했다. 부임한 직후 수달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다. 곧바로 연구 과제가 됐다. 이번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생태 연구를 시작해 1년 뒤 보전책을 담은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어 교수의 전문 분야는 야생동물이다. 학교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는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동물원장을 지냈다. 수의사이기도 한 그는 동물원 산하 종보전연구실장으로도 5년 일했다. 반달가슴곰이나 토종 남생이 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연구하고 자연으로 방사하는 일을 했다. 세명대에서는 야생동물의 질병과 치료를 다루는 ‘야생동물의학개론’ ‘동물해부발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며 자신이 찍은 영상을 설명하는 어경연 교수. 야행성 수달을 찍으려면 새벽에도 의림지를 찾아야 한다. ⓒ 민지희

야생동물 가운데서도 수달은 지위가 특별하다. 생태계에서 갖는 가치가 크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수달을 하천 환경 건강도를 판단하는 지표종으로 본다. 수달이 먹이사슬 정점에 있어 최상위 포식자로서 수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는 핵심종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에서 살기 때문에 수달이 발견되면 하천 수질이 나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사회 들어 댐을 짓고, 콘크리트로 하천을 정비하는 등 개발을 지속하고 수질이 오염되면서 서식지가 파괴되어 갔다. 겉털과 속털이 빽빽하게 자라는 덕에 보온과 방수 능력이 좋은 모피를 얻으려 포획도 이뤄졌다. 

결국 2004년, IUCN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서식하는 유라시아 수달을 멸종위기종이 될 위험이 큰 ‘위기근접종’으로 분류했다. 그 수가 계속 줄고 있어 IUCN은 앞으로 회복 가능성도 작다고 평가한다. 당장 국내에서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됐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 자취를 감췄고, 2012년에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자국 내 멸종을 선언했다. 

“의림지 수달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수달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어요. 의림지역사박물관 같은 좋은 시설이 있는데, 자료를 보강해야 해요. 단지 사진 몇 장 찍어서 전시해두면서 ‘여기 수달이 산대요’가 아니라, 합리적, 과학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서 의림지 수달의 행태와 먹이, 개체 수와 생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어경연 교수는 자신을 수달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은 그도 알아내야 할 것이 많다. 의림지 곳곳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수달 생태를 연구하는 일이 우선 과제다. 어 교수는 “4계절 조사를 하면서 먼저 의림지 수달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이게 야생동물을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 어경연 교수가 수달 생태 연구에 사용할 무인 감시 카메라(오른쪽 위). 연구실에 있는 장식 소품들은 야생동물에 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 민지희

“의림지 수달 최소 두 마리, 더 늘어날 수도”

어경연 교수는 겨울이 된 뒤 수달 관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눈이 쌓이면 발자국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어경연 교수와 함께 의림지로 나가봤다. 빙판 위에 남은 수달 발자국이 의림지 서편에 조성된 인공절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뒤가 좁고 앞은 부채처럼 넓은 모양, 앞발과 뒷발 간격이 넓은 형태, 선명하게 찍힌 다섯 발가락이 분명한 수달 발자국이었다. 어지럽게 뒤섞인 고양이나 고라니 발자국과는 확연히 구분됐다.

수달은 물가의 나무뿌리나 굴처럼 깊은 바위틈 등에 은신처를 여러 곳 마련한다. 어경연 교수가 수달 보금자리로 추정한 인공절벽에는 출입구로 보이는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출입구가 두 개 이상 마련된 곳을 은신처로 삼는 습성이 그대로 보였다. 스스로 굴을 파 집을 만들지 않는 습성상 인공 구조물이 파손되며 생긴 구멍으로 보인다. 어 교수는 “작은 구멍을 수달이 물어뜯어 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보금자리로 이어지는 수달 발자국. 오른쪽 사진은 인공절벽 안에서 밖을 본 모습이다. ⓒ 어경연

“여기가 수달 화장실이에요. 변을 볼 때는 숨지 않고 이렇게 돌출된 바위 위에다 봐요. 영역 표시도 하고 정보 교환도 하려고요. 물고기 비늘도 섞여 있는 게 보이죠?” 보금자리 맞은편에는 수달 배설물이 수북했다. 어 교수는 의림지 둘레를 따라 수달이 더는 사용하지 않는 곳을 포함해 용변 자리 열댓을 찾았다. 

의림지 가장자리에는 마저 얼지 못한 얼음구멍이 여럿 있었다. 어떤 구멍은 수달이 자주 드나들었는지 둥근 모양이었다. 최장 4분 동안 잠수할 수 있는 수달은 한 얼음구멍에 들어갔다 먹이를 물고 수백 미터 떨어진 다른 구멍으로 나오기도 한다.

▲ 수달의 용변 장소(왼쪽)와 잠수를 위해 드나드는 것으로 보이는 얼음구멍. ⓒ 민지희

어경연 교수는 의림지에 사는 수달이 최소 두 마리라고 추정했다. 수달은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고 가족 단위로만 지내며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데, 어 교수는 성체로 보이는 두 마리가 빙판 위를 뛰어노는 모습을 발견했다. 배뇨하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해 암수 한 쌍인지는 알 수 없다. 어 교수는 “겨울에는 하천에 낀 얼음 때문에 먹이 활동이 어렵긴 해도 의림지에 먹이 자원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천에서와 달리 호수에서는 먹이만 풍부하다면 여러 쌍이 공존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빙판 위를 함께 뛰어노는 의림지 수달 두 마리. ⓒ 어경연

지역사회가 먼저 보호 나서야

“먹이 자원은 괜찮겠지만 삶의 질을 높여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해요. 의림지가 야생과 비교하면 여건이 좋지만은 않거든요. 의림지 둘레를 따라 수직으로 쌓은 석축 때문에 은신처로 삼을 곳이 별로 없어요. 편안하게 지낼 곳을 몇 군데 만들어줘야 해요.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이런 대안을 써넣을 거예요. 지금은 수달을 배려한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가 싫으면 떠나겠지’가 아니라, 우연히 찾아와준 수달을 머물게 해야죠.”

어경연 교수는 “은신처가 생겨야 수달이 마음 놓고 번식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달은 서식지 한 곳에 적어도 보금자리 두세 개가 필요하다. 환경에 민감해서 보금자리 근처에 인적이 느껴지면 쉽게 거처를 옮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 보금자리를 만들 때도 여러 위치에 은신처를 충분히 만들어줘야 한다. 어 교수는 “보금자리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새끼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영상으로 확보하면 학술 가치도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 교수는 또 “의림지 가운데 있는 순주섬도 좋은 생태섬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저수지는 하천과 달리 깊고 넓어 사냥이 버거울 수 있는데, 순주섬에 은신할 수 있는 초지를 조성하면 쉼터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수달 집과 쉼터 만들기를 이벤트로 기획하고, 시민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며 “생태 연구가 이뤄진 뒤에는 제천시와 의림지역사박물관, 지역 대학인 세명대가 그 위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수달을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림지 수달을 지역사회 역사·문화적 콘텐츠로 만들어야 더 잘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야생동물을 다루는 외부 전문기관들도 있지만 지역사회 참여가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 교수는 이런 접촉을 통해 사람과 야생동물이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 수달 인공 보금자리 도면. 전라남도 구례군 섬진강 지류에 설치돼 있다. ⓒ 한국수달보호협회

노력한다면 충분히 보전 가능

IUCN은 수달 개체 수는 보전 노력에 따라 국가마다 회복 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존 의존성’(Conservation dependence)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수달이 거의 사라진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와 달리 엄격한 환경 규제와 서식지 보전책을 적용한 유럽에서 개체 수 증가 정황이 뚜렷하다고 봤다. 동시에 한국도 보전책에 힘쓰고 있어 유럽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수달은 태백산맥을 따라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간지대, 지리산을 비롯한 섬진강 일대에 다수 분포해 있다. 충북지역은 청풍호(충주호)를 중심으로 남한강 지류에서 주로 발견된다. 서울에서는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다시 발견되는 등 서식지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어경연 교수는 의림지에서도 최소한의 서식지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낚시가 수달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통발 그물에 걸린 수달이 폐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버려진 낚싯줄도 수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의림지 주변을 다니는 자동차로 인한 로드킬을 막기 위해 생태통로 조성도 필요하다. 

“수달이 매력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시민들이 의림지를 지나다니다가 수달을 보면 ‘오늘 행운이 있을 거야’라면서 남들에게 자랑처럼 말하게 되면 좋겠어요. 앞으로 괜찮은 자연 다큐멘터리도 나오지 않겠어요? 수달이 묘하게 이곳에서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 같네요.”

시민들이 지역사회와 인접해 살아가는 야생동물인 수달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달을 보면 가슴 뛰게 만드는 것. ‘수달의 친구’ 어경연 교수의 목표다.


편집: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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