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시사보도 공모전] 병의 기록: 우리가 묻은 짐승들의 이야기 ②

[앵커]
조류인플루엔자, AI 방역을 위해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살처분 문제에 대한 보도 두 번째 시간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왜 이렇게 살처분을 선호하는 걸까요? 

정부는 지금도 상당량의 AI 백신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정부가 무조건 살처분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정말 다른 방법은 불가능한 것인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농림축산식품부는 AI 긴급행동지침에서 AI를 관심, 주의, 심각의 세 단계로 나눠 관리합니다. 

관심 단계에서는 방역과 함께 이동제한 조치를 취하지만, AI가 심해지면 살처분을 우선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농림부 행동지침에는 괄호 안에 ‘백신을 필요할 경우 쓸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살처분 외의 다른 대안을 시도해본 적이 없습니다. 

백신을 사용해본 경험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윤종웅/한국 가금수의사회 회장: AI가 8번의 발병이 있었는데, 살처분만을 계속해왔어요. 백신이나 다른 (정책)을 고려할 여력이 없었고, 정부에서 백신을 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백신 사용에 관해) 두려움이나 책임 소재가 정부 관료로서의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솔/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정부의 입장에선 (살처분이) 깔끔해 보일 수 있고, 외부적으로 보기에도 전염병이 발생했으니, 그냥 그 지역 반경을 다 묻어버리는구나, 라는 보여주기식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쉽게 채택하고 있는 것 같고…]

물론 살처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용 경험이 없어 방역 효과가 불확실한 다른 정책들과는 달리, 살처분은 그나마 안정적인 방역 성과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수/「살처분, 신화의 종말」 기획 PD: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이러스 감수성이 높은데, AI가 터졌다, 그런데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이렇게 됐을 때 농림부의 선택으로 ‘백신을 하겠습니다’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코로나 백신도 못 믿는데…?]

실제로 농림부는 지난달 5일, 스브스뉴스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백신의 효용을 확신할 수 없어 AI 살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조금이라도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면, 현재로선 살처분 방침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김영수/「살처분, 신화의 종말」 기획 PD: 농림부 입장에서는 지금 밤을 새워가면서 방역 정책을 (통해 AI를) 막아내고 있거든요. (살처분 정책이라는) 이걸 완전히 흑백논리로 볼 수가 없어요, 사실은. 동물이 말을 할 줄만 알면 쉽게 해결될 문젠데, 말을 못하니까 역학관계 같은 조사가 안 되잖아요.]

하지만 다양한 방역 수단을 통해 유동적으로 AI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에 등록된 ‘AI 살처분 반대’ 국민청원에는 지난달 기준 약 6,500명이 동참했습니다. 

특히 ‘살처분만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바꿀 때가 됐다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윤종웅/한국 가금수의사회 회장: 산란계와 종계에만 백신 (접종)을 하고, 나머지 (가금류는) 그냥 살처분을 유지하는, 그런 정책을 쓰면 돼요. 그렇게 했을 때는 지금처럼 예방적 살처분이라고 해서 주변의 닭들을 죽일 필요가 없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AI에) 감염된 닭들만 골라내면 되는 일이니까…]

정부는 지난달 15일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다소 완화하는 방향으로 AI 방역 대책을 개편했습니다.

기존에 AI 발생 농가를 기준으로 3km 이내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던 것에서 거리는 반경 1km로 줄이고, 살처분 대상도 AI가 발생한 것과 같은 종으로 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백신 사용 같은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과 살처분의 반복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소비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문선희/동물 매몰지 관련 도서 『묻다』 저자: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당연히 우리가 소비하는 부분에 신경써야 돼요. 예를 들어, 우리가 소비하는 계란을 낳은 닭이 어떤 환경에 있었을까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더 싼 식재료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런 문제가 반복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재찬/비건주의 대학생: 백신을 맞은 다음에 곧바로 양계장에 들어가 다시 기계처럼 알을 낳고 하는 그 상황이 과연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면, 백신이든 살처분이든 그런 대책을 마련하는 것 보다, (우리의) 수요를 줄이는 게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이 아닐까…]

실제로 지난달 9일, AI 사태로 인한 계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산 계란을 수입했는데 수요가 적어 계란을 반값 판매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가 축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영수/「살처분, 신화의 종말」 기획 PD: 사실, 일반 국민들이 나서주면, 요런 (살처분 정책) 같은 게 조금씩 바뀌거든요.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관심이 없잖아요. 이게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이에요. 관련 있는 사람들은 막 나서서 소규모 집회도 하지만…]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극단적인 방역 방식이 주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축산물 소비자인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단비뉴스 원종환입니다.

(영상취재 : 원종환 / 편집 : 원종환 / CG : 원종환 / 앵커 : 원종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저널리즘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시사보도 기획안 공모전’에서 당선된 기획안들이 후속 취재를 거쳐 기사로 완성됐습니다. 지난 1월 중순 당선작이 발표된 뒤부터 수상자들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들의 지도 하에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여러 차례의 데스크를 거쳐 완성한 기사를 단비뉴스를 통해 공개합니다. 오늘은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던 원종환 씨의 기사로 지난 2일에 보도한 1편에 이어 2편을 게재합니다. 기획안 제목은 ‘병의 기록: 우리가 묻은 짐승들의 이야기’로, AI와 같은 동물 전염병에 무조건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문제와 대안을 짚어보는 내용입니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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