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정착촌 실태 보고서] ③ 창고가 된 축사

버스에서 내리자 썩은내가 났다. 낡은 버스 정류장엔 ‘성심원’이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남았다. 경북 상주시 공검면, 성당 근처에 마을이 있다. 성당의 옛 이름과 같은 ‘성심마을’이다. 정류장 뒤쪽으로 작게 난 샛길을 따라 걸었다. 몇 시간 전까지 비가 온 탓에 밟히는 게 젖은 흙인지 가축의 분뇨인지 알 수 없었다. 악취가 있는 곳엔 날벌레가 모여들었다. 팔을 휘저으며 5분 정도 걸으니 회색 벽돌 건물이 나왔다. ‘의무실’ 이라 쓰인 나무 현판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마을은 잿빛 동그라미였다. 앉은뱅이 건물들이 길 양옆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모두 연회색 벽에 진회색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올렸다. 검게 변한 나무가 무너져가는 건물을 지탱했다. 늘어선 건물들은 용도는 달랐지만 모양은 같았다.

문이 없는 마당에 들어서자 돼지가 살던 흔적이 먼저 보였다. 여덟 칸짜리 축사에 지금은 빨랫줄이 걸렸다. 노란 수건과 일바지, 철사 뭉치 등이 널려 있었다. 창고가 돼 버린 축사 옆엔 여전히 사람이 살았다. “병에 걸려 마을로 쫓겨온 청년들은 이제 평균 나이 70세 노인이 됐지.” 성심마을 이장 김창일 씨가 말했다. 이제 그들은 마을을 떠날 수 없다. 돼지와 닭을 키우던 사람들은 마을 밖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 경북 상주 성심마을에 있는 축사의 모습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축사와 집이 함께 있다. 돼지를 키우던 축사는 현재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 신현우

차별의 시절을 견디게 한 건 돼지와 닭이었다. 가축을 잘 길러 팔면 돈이 됐다. 닭똥을 잘 말려서 거름으로 팔면 그것도 돈이었다. 무일푼으로 마을에 와 사방 막힌 집에서 잘 수 있게 된 것도, ‘문둥이 자식’이라고 놀림 받던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게 한 것도 다 가축 덕이었다. 마을엔 이제 닭과 돼지가 한 마리도 없다. 빈 축사엔 거미줄만 가득했다.

축사를 따라 물길이 나 있었다. 씻겨 내려가지 않은 오물의 흔적에서만 번성했던 축산업의 역사를 찾을 수 있었다.

닭과 돼지가 먹여 살린 마을

1960년대 후반 서울, 인천, 경주 등 일부 정착마을에서 전업형 축산을 시작했다. 정착마을은 사회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악취와 오·폐수가 발생하는 축산업을 하기에 적합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몸을 덜 써도 되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한센인들에게 적절한 일이었다. 한때 마을에는 집보다 축사가, 사람보다 가축이 많았다.

한센인들이 축산업에 뛰어들자 정부도 이를 반겼다. 음식 소비 패턴 변화에 따른 육류소비 증가와 함께 정부도 정착촌 한센인의 축산업을 지원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축산업 전반에서 정착촌의 비중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당시 한센인들이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경제 자립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마을엔 여전히 축산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취재팀이 방문한 희망·성심·도성마을 세 곳 전체 건물 가운데 축사가 63.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성심마을의 축사 비율이 74.3%로 가장 높았고, 희망마을이 63.8%로 뒤를 이었다.

▲ 희망·성심·도성마을 전체 건물 가운데 축사가 차지하는 비율. ⓒ 신현우

취재팀이 방문한 16가구 모두 과거에 양돈과 양계로 가계를 부양했다. 특기할 점은 축사와 집 사이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는 것이다. 범주를 나누면 현관에서 열 걸음 채 되지 않는 경우, 별채처럼 집 옆에 지어져 일터와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 집과 축사가 연결돼 있는 경우 등이 있었다. 집과 축사가 분리되지 않아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악취로 고충을 겪은 주민도 있었다. 성심마을에 사는 박현숙(가명) 씨는 “집과 양계장이 연결돼 얼마 전까지 집 안으로 분뇨 냄새가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경주 희망마을은 마을 전체가 축사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마을 중심에 집단계사가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집들이 늘어선 구조다. 지난해 12월 조류독감(AI)이 퍼지면서 병아리와 닭을 모두 살처분했다. 2021년 9월 희망마을에서 닭을 기르는 주민은 없었다. 주민 대부분이 축산업에 종사했던 도성마을이나 칠곡마을도 마찬가지다.

▲ 빈 축사가 늘어서 있는 경주 희망마을의 모습이다.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인 사료통이 축사 근처에 있다. 희망마을에서는 2020년 12월 조류독감으로 키우던 닭을 모두 살처분했다. ⓒ 신현우

가축은 병들고 사람은 늙었다

정착마을 내 축산업은 거듭 위축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기업형 축산업이 출현하고 시장이 개방되면서 정착마을 축산업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조류독감 등 가축전염병이 반복해 퍼져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도 문제였다. 2021년 9월 기준 취재팀이 방문한 희망·성심·도성·칠곡마을 네 곳에서 양계나 양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센인은 없었다.

빈 축사는 정착마을에서 축산업이 쇠퇴했다는 증거였다. 수도권에 있는 일부 정착마을은 가구공단으로 변해 축사를 가구공장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외 지역에 있는 정착마을의 축사는 용도를 잃고 방치됐다. 2021년 9월 기준 희망·성심·도성마을 세 곳 전체 축사 가운데 비어 있는 곳은 96.1%였다. 성심마을은 축사 104동 전체가 비어 있었다. 희망마을 전체 축사의 98.5%, 도성마을 축사의 85.0%가 비어 있었다.

▲ 희망·성심·도성마을의 축사 가운데 현재 사용되지 않는 축사의 비율. ⓒ 신현우
경주 희망마을에 있는 빈 계사에 닭이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축산업이 쇠락하면서 한센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월 17만원의 한센인 위로지원금에 기대 산다. ⓒ 김세훈
경주 희망마을에 있는 빈 계사에 닭이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축산업이 쇠락하면서 한센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월 17만원의 한센인 위로지원금에 기대 산다. ⓒ 김세훈

축산업의 쇠퇴는 남아 있는 한센인의 생계를 위협했다. 지난해 12월, 희망마을엔 조류독감(AI)이 돌았다. 닭을 살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생업을 잃은 한센인들은 살아갈 날이 막막해졌다.

빼앗긴 삶, 사라진 일

김말순(72·가명) 씨는 억울했다. 집에 돌아오니 닭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을 양계장 벽마다 주인 이름과 함께 ‘OK’라 휘갈긴 글씨가 있었다. 살처분 절차와 관련해 주인의 허락을 구했다는 뜻이었다. 김 씨의 집에는 어떤 서명도 없었다. 김 씨가 그 일에 동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든 닭만 잡아가면 될 일이지, 멀쩡한 닭까지 땅에 묻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닭은 사라졌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 관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닭을 끌어냈다. 김 씨는 원통해서 울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월급 받는 사람들이 형편을 알 리 없었다. 김 씨는 빚을 떠안았다. 닭에게 들인 사료값을 치러야 했다. 알을 낳지 못하고 땅에 묻혔으니 닭이 벌어온 돈은 없고 닭 때문에 빠져나갈 돈만 늘었다. 닭을 죽인 값으로 나라에서 준 보상금으로는 빚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김말순 씨는 1982년 같은 한센인 남편을 따라 경북 경주 희망마을에 왔다. 집 옆에 딸린 계사와 함께 서른 해 넘게 살았다. 오래된 에어컨을 얻어 여름을 보내고, 교회에서 주는 연탄을 때서 겨울을 났다.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살았다. 캄캄한 창고 같은 공간에 재래식 변기를 놓고 썼다.

▲ 지난 9월 7일 경주 희망마을에서 만난 김말순 씨가 말린 고추를 정리하며 취재팀과 대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을에 조류독감이 퍼져 키우던 닭을 살처분했다. ⓒ 신현우

한때는 닭 6000수를 길렀다. 김 씨는 양계장을 가리키며 오래전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닭을 빼앗긴 계사 안에는 캄캄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살면서 걱정 없는 날은 드물었다. 누군가 도와줄 거란 희망도 없어진 지 오래다. 김 씨는 버릇처럼 “소용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제 생활비는 한센인 위로지원금과 기초생활수급이 전부다. 그마저도 다달이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일하지 못하니 기복신앙에 기댔다. 하느님이 돈을 내려주기를 바랐다. 김 씨는 최근 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한센병을 앓고 있거나 병력을 가진 사람을 ‘한센인’이라고 한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고령화 측면에서 본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는 한센인의 거주 형태를 정착마을, 시설, 재가로 분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착마을에 사는 한센인은 시설에 있거나 사회에서 비한센인들과 함께 사는 한센인보다 주거 환경, 경제 상황 모두 열악했다.

<단비뉴스>는 ‘한센인 정착마을 취재팀’을 구성해 그 실상을 밀착 취재했다. 지난 7~10월 동안 한센인 정착마을 여덟 곳을 총 11차례 방문하고, 한센인 1세 24명을 포함해 38명을 대면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16가구는 거주자의 허락을 받아 실내 구조를 살펴보고 가구 현황과 거주 기간 등을 취재했다. 전문가 9명을 인터뷰했고, 1천여 쪽에 이르는 논문과 보고서도 참고했다. 프롤로그를 포함해 모두 5회에 걸쳐 연재할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4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편집자주)

프롤로그 – 여기에 사람이 산다
① 발암물질에 포위된 마을
불덩이와 냉동고의 집
③ 사라진 가축과 스러진 사람
오래된 가난의 삶

편집: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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