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청년 보고서] ② 은둔의 시작

▲ 취재팀이 만난 25명의 은둔 청년들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다양한 좌절과 폭력을 경험했다. 15명이 ‘학교나 직장에서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정·학교·사회 가운데 두 곳 이상에서 큰 좌절을 겪었다’고 한 사람은 20명(80%)이다. © 현경아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유정(29·여·가명) 씨는 2019년에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휴학했다. 생활비가 없었다. 족히 백만 원은 넘게 들어갈 미술대 졸업전시 비용도 마련해야 했다. 학교에 가는 대신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온갖 일을 맡았다. 제품 디자인, 웹 페이지 구성, 판매 기획까지도 했다. 김 씨는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니었다.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였다.

그 사이 대학 동기들은 인턴이 됐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스펙’을 쌓아 좋은 기업에 취직했다. 김 씨에겐 당면한 생계가 더 무거웠다. 매력적인 이력이 될 만한 일을 구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불러주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 김 씨의 노고는 소위 ‘물경력’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언제부턴가 1시간 거리의 지하철 통근이 괴로워졌다. 202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퇴사한 후 약 1년 6개월 동안 은둔하고 있다.

생활비 때문에라도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집 밖을 나서는 날이 점차 줄었다. 쓰레기 버리러 나갈 힘도 사라졌다. 29살 김 씨에겐 아직 대학 졸업장이 없다. 수료 상태인지, 제적 상태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9평 남짓한 원룸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 씨는 취재팀의 질문에 조각난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윽박지르기만 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책상 위에 쓰레기통을 엎어놓던 고등학교 친구들도 떠올렸다. 가고 싶었던 미술대학 실기 시험장에서 선 한 줄 긋지 못한 기억을 떠올렸다. 폭력과 좌절의 기억이었다. 그중 무엇이 김 씨를 은둔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탓할 뿐이다. 

폭력과 좌절의 생애

취재팀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모인 어느 인터넷 카페에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했다. 소개글은 정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다. 이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가 된 계기를 묻는 글이 있었다. 서술형으로 적은 답을 9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 취재팀은 은둔 청년이 모인 어느 인터넷 카페에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했다. 은둔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9개로 간추렸다. 우울증, 대인기피증과 같은 정신적 어려움과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꼽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 현경아

구체적인 경험을 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135명(28.6%)이 우울증, 대인기피증과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언급했고, 109명(23.1%)은 대인관계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93명(19.7%)이 내성적이거나 소심함 등 타고난 성격과 성향 때문에 은둔하게 됐다고 답했다. 42명(8.9%)은 왜 은둔하게 됐는지 모르거나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그냥, 어쩌다, 자연스럽게’ 은둔하게 되었다고 했다. 왜 은둔하게 됐는지 당사자도 짚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왜 은둔하게 됐나요?” 취재팀은 은둔 청년 25명에게도 매번 물었다. 이들 역시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다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경험이 있었다. 폭력과 좌절이었다. 생애 전반에 걸쳐 폭력과 좌절을 경험했고, 연이은 좌절에 지쳐 있었다. 그 상태에서 은둔을 촉발하는, 더는 극복할 수 없는 결정적 좌절을 겪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광주에 사는 장명진(27·남·가명) 씨도 왜 은둔하게 되었는지 묻는 취재팀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 씨는 2014년부터 7년 동안 은둔과 탈출을 반복해 왔다. 그에게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 항상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부터 살이 많이 쪘다. 중학교에 입학한 첫날, 장 씨는 싸움에 휘말린 후 따돌림을 당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친구가 없었다. 2014년 지역 사립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했지만 인간관계에는 여전히 서툴렀다. 새내기 때 처음으로 간 MT에서 티가 났다. 짐을 나르는 친구들을 장 씨는 돕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입학 동기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다시 시작된 은근한 따돌림을 견디기 어려웠다. 장 씨는 대학교 1학년 2학기를 채 마치지 못했다. 은둔이 시작됐다.

▲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들의 생애에는 잇단 폭력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가정이 위태롭다. 가족과 또래 친구에게 깊이 상처받았다. 경쟁 사회가 이들을 몰아세웠다. 은둔 청년들은 이들의 절망을 외면하는 사회의 뒷모습을 보았다. 결국 세상에 등돌려 사라지기를 택했다. Ⓒ 김혜리

위태로운 가정, 잔인한 학교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23명(92%)이 가정 불화를 겪었다. 대다수가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거나 억압 속에서 성장했다. 방치되어 자랐다고 생각하는 은둔 청년도 있었다. 가족은 이들의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는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해 학교에서도 좌절하기 쉬운 환경에 처할 수 있다. 학교 폭력에도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은둔 청년을 돕는 정지영 예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위기 상황에서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경우 불합리한 폭력에 위축되거나 순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서(31·여·가명) 씨는 경기도 부천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9년 7개월, 그리고 2021년의 4개월간 두 차례 걸쳐 약 10년 동안 은둔했다. 이 씨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부천으로 전학을 가면서 따돌림을 당했다. 가해 학생은 학교 단체 사진에서 이 씨 얼굴을 칼로 도려냈다. 이 씨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업이 망해 무능력자가 된 아버지는 계속 술만 마셨다. 아버지는 먹던 것을 이 씨에게 던졌다. 이 씨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텼다. 버티는 삶에 한계가 왔다. 스무 살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입학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모아둔 등록금을 아버지가 다른 곳에 써버렸다. 등록금을 낼 수 없었다. 기댈 곳이 없어진 이 씨는 동급생들이 대학교 새내기가 되던 2010년, 은둔을 시작했다. 가족과의 대화도 끊었다.

은둔 청년들에게는 학교도 날 선 공간이었다. 취재팀이 만난 25명의 은둔 청년 가운데 13명(52%)이 학교 폭력을 겪었고, 그 중 8명이 학교 폭력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거나 학교를 자퇴했다. 2021년 한국사회복지학회에서 발표한 <청년 은둔형 외톨이의 경험과 발생원인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학교 폭력을 당한 청소년은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위축된다. 등교 거부와 자퇴는 은둔으로 이어지는 주요 계기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은둔하기 시작한 이자연(28·여·가명)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폭력을 당했다. 이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에서 김해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간 학교에서 폭력이 시작됐다. 선생님이 안 보이면 욕지거리가 날아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몰려와 이 씨를 발로 찼다. 이 씨는 밤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어김없이 내일이 오면, 학교에서 다시 맞아야 했다. 그런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부모님께 이르면 집에 찾아와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이 씨 동급생의 귀띔으로 학교 폭력을 알게 됐다. 담임선생님은 학교 폭력 사실을 알고도 그를 돕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학교에 찾아간 부모님에게 “자식한테 관심이 없으신 게 아니냐”고 했다. 온 가족이 찾아가 난장을 치고 나서야 아이들의 폭력은 잠잠해졌다. 가해 학생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 씨에게는 학교가 지옥이었다. 고등학생 때도 사소한 오해로 따돌림을 당했다. 이 씨는 17살에 자퇴하고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은둔했다. 

평점 4.13점도 받아주지 않는 사회

청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 사회를 살아왔다. 특히 대학 입시로 강한 압력을 받는다. 입시 이후 경쟁은 취업으로 형태만 바뀌어 이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청년들은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일상적으로 겪는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18명(72%)은 ‘학교생활에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가정·학교·사회 가운데 두 곳 이상에서 큰 좌절을 겪었다’고 한 사람은 20명(80%)이다. 2015년에 발행된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 논문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를 보면, 생애 전반에 걸친 경쟁과 성취의 압력 앞에서 어떤 청년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을 대안으로 선택한다. 사회에서 끊임없는 좌절을 경험하면서 생기는 우울감과 무력감이 삶으로부터 이탈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취재팀이 7월에 촬영한 박태준(35·남·가명) 씨 집 베란다. 박 씨는 2018년 직장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뒤 지금까지 은둔하고 있다. 그는 창문을 가리키며 “세상이 보기 싫어서 블라인드를 내렸다”고 말했다. Ⓒ 이강원

2013년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나연(28·여·가명) 씨는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자 한강에 가서 ‘생명의 전화’를 붙잡고 울었다. 자신의 몸을 때리며 자해도 했다.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더 나은 삶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학점이라도 잘 받아야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 씨는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4.3 만점에 평점 4.13점을 받았다. 그것으로 해결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명문대 졸업장과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어학시험 점수, 대외활동, 인턴 경험 등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졸업 이후에 알았다. 취업 원서를 내볼 만한 곳이 없었다. 경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다가, 그마저 포기했다. 그는 2018년 봄에 은둔을 시작했다.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2021년 4월, 김 씨는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재발성 우울장애를 진단받았다. 

은둔 청년의 절망을 먹고 우울이 자랐다

반복된 좌절로 마음의 상처가 깊은 은둔 청년들은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삶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살아갈 힘을 잃는다. 죽음을 생각한다. 1년 6개월째 은둔하는 김유정 씨는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옅은 희망이나마 찾아내며 살아왔다. 중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잘 하는 일로 취업도 하고 싶었다. 그런 김 씨의 발목을 잡는 건 가난이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 돈을 벌었다. 일감이 없으면 콜센터 아르바이트라도 했다. 

그러나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던 순간, 버틸 힘은 사라졌다. 김 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 후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은둔의 시간을 산다. 그의 하루는 공허하다. 침대에 누워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시 일어설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의 절망을 먹고 우울과 무기력이 자랐다.


한정된 공간에서 은둔하며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은둔형 외톨이는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청년 세대의 은둔은 중요한 사회 문제다. 지난해 12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거나 '집에 있으면서 인근 편의점 등에만 외출한다'고 답한 비율은 3.4%였다. 이를 한국 청년(19~35세) 인구에 대입하면 37만여 명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추정치일 뿐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전국에 은둔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지내는지 한국 사회는 알지 못한다. 정부 차원의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파고든 국내 언론의 보도도 부족했다. 그들의 실태를 밝히기 위해 5명의 <단비뉴스> 기자가 '은둔 청년 취재팀'을 결성했다.

취재팀은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지원 단체 관계자들을 도움을 받거나 직접 수소문하여 25명의 은둔 청년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심층 인터뷰한 25명의 은둔 청년의 연령은 10대 1명, 20대 16명, 30대 8명이다. 서울 등 수도권 거주자는 14명, 광주·강원 등 비수도권 거주자는 11명이다. 남성 12명, 여성 13명을 만났다.

심층 인터뷰와 별개로 취재팀은 이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도 분석했다. 은둔 청년들이 모인 어느 인터넷 카페의 회원 소개글에는 은둔 계기, 현재의 어려움 등을 진솔하게 적은 내용이 있었다. 취재팀은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4년 6개월여 동안 이 카페에 올라온 소개글 471건의 내용을 분석했다. 또한 관련 전문가 11명을 인터뷰하고, 은둔 청년 문제를 다룬 단행본·보고서·연구논문·토론회자료집 등 2500여 쪽 분량의 문서도 검토했다.

자료조사, 전문가 자문, 지원단체 취재, 은둔 청년 인터뷰 등 4개월 여에 걸친 취재 내용을 5편으로 나눠 담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은둔 청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당사자들이 신상 노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진 촬영도 꺼렸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진 대부분은 당사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들의 생활상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러스트를 삽입했다. 일러스트는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편집자주)

1회 <게임과 잠으로 고립을 잊는 은둔 청년>

'은둔 청년 25인 보고서'는 <한겨레21> 제1390호 표지 기사(링크)로도 게재됐습니다.

편집: 심미영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