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정착촌 실태 보고서] ② 시멘트가 된 불과 얼음

‘희망’의 입구에서

이명옥(67·가명) 씨는 경주 희망마을 어귀 첫 번째 집에 산다. 시멘트블록으로 쌓은 벽에 조립식 패널을 두른 집이다. 지붕으로는 석면 슬레이트를 얹었는데, 녹이 슬어 푸른빛을 띠었다. 미닫이문 앞에 발을 치고 플라스틱 핀으로 고정해 현관으로 삼았다. 집에 들어설 때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는 모양새가 됐다.

▲ 이명옥(67·가명) 씨는 한센인 아버지를 따라 희망마을에 왔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조립식 패널 집에 산다. ⓒ 신현우

집으로 들어가면 정면으로 부엌이 보였다. 부엌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웠다. 가스레인지와 대야, 냄비가 어지럽게 놓였고 오래 방치된 듯 누런 창문이 나 있었다. 벽에는 곰팡이가 길게 슬어 있었다.

부엌에서 연결되는 문을 열면 거실이었다. 이 씨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과 살고 있었다. 이 씨와 TV를 보는 아들이 함께 거실에 있으면 움직일 틈이 없었다. 거실 뒤로는 아들의 방이 있었고, 정면으로 간이 목욕 시설이 있었다.

원래 이 씨의 집에는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집을 넓히면서 작은 공간에 목욕 시설을 마련했다. 시멘트 바닥에 물기가 스며 있었다. 변변한 세면대가 없어 화장대에 쓰는 거울을 걸어놓았다.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얼굴을 씻고 이를 닦아야 했다.

▲ 집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면 목욕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이 공간도 집을 넓혀 마련했다. ⓒ 신현우

그의 집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화장실은 양계장들 틈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걸어야 나왔다. 조립식 패널을 두른 화장실 중앙에는 재래식 변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옆으로 노란 휴지통을 뒀다. 비가 오면 화장실 가기 힘들겠다는 말에 이 씨는 “우산 쓰면 되는데, 뭘”이라며 웃었다.

이 씨는 닭을 길렀다. 마을 어귀에서 계사를 관리했다. 지난해 닭을 묻고 일을 그만뒀다. 그는 마을에서 40년을 살았다. 한센인 아버지를 따라 경주 희망마을에 와서 계사 2동을 받았다. 집을 나서 문을 열고 다섯 걸음만 걸어도 닭을 살필 수 있었다. 시멘트블록에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양계장은 집 앞에서 낡아갔다.

연탄과 ‘브루꾸’

이명옥 씨의 집은 지어진 지 40년이 넘었다. 취재팀이 방문한 4개 마을 16가구 가운데 건축 연도를 알 수 없는 경우를 빼면 집들은 최소 20년에서 최장 60년 전에 지어졌다. 오래된 집의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양계장을 지나야 했던 이 씨처럼, 16가구 중 6가구의 화장실은 집 바깥에 있었다.

▲ 취재팀이 방문한 16가구의 화장실 위치와 난방 기구 종류를 정리한 표. ⓒ 신현우

냉난방도 제대로 안 됐다. 도시처럼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취재팀이 직접 들어가 본 16곳 가운데 7곳에서 기름보일러를 사용했고, 2곳에서는 연탄을 사용했다. 나머지는 기름과 연탄을 혼용했다. 대부분 기름 값이 부담스러워 연탄을 함께 쓰는 경우였다. 한겨울이면 난방비 절약을 위해 집을 떠나 마을 내 간이양로주택에 들어가 임시로 사는 경우도 있었다.

시멘트블록으로 만든 벽도 단열 문제를 일으켰다. 정착마을 주택 대부분은 시멘트블록을 쌓아 지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시멘트블록을 ‘브루꾸’라고 불렀다. 취재팀이 조사한 희망·성심·도성마을 전체 주택 220개 가운데 68.2%가 시멘트블록을 쌓아 지은 집이었다. 시멘트블록으로 만든 집 150동 가운데 85동에 사람이 살았다.

▲ 희망·성심·도성마을 건물 가운데 시멘트블록으로 벽을 쌓은 비율. ⓒ 신현우

시멘트블록은 단열성이 떨어진다. 이건철 한국교통대 건축학부 교수는 “제대로 시공이 안 됐다면 시멘트블록 사이 공간이 많이 생기면서 찬 공기가 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며 “(집을) 경제적으로 짓다 보면 제대로 시공을 못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성심·도성·칠곡마을 주민 대부분은 집을 스스로 지었다고 말했다. “시멘트가 비싸서 모래를 섞어 집을 만들었다”고 증언한 이도 있었다. 이 경우 벽돌이 제대로 붙지 않고 벽 내구성이 약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취재팀이 방문한 집들 가운데 벽에 균열이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칠곡마을에 거주하는 최순이(88·가명) 씨는 “벽이 다 갈라져서 겨울에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 시멘트블록은 단열성과 내구성이 떨어진다. 균열이 생기기 쉬운 벽은 단열성이 떨어진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심마을, 칠곡마을, 성심마을, 희망마을의 건물이다. ⓒ 신현우

변변치 않은 지붕은 집의 단열성을 더 떨어뜨렸다. 정착마을 주민 대부분 지붕의 석면 슬레이트 위로 양철을 올렸다. 희망·성심·도성마을 세 곳에서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주택 가운데 양철을 올린 비율은 60.5%였다. 이 가운데 46가구에 사람이 살았다.

양철은 열전도율이 높아 열을 그대로 전달한다. 칠곡마을 최순이 씨는 “집이 여름에는 불덩어리이고 겨울에는 냉동고”라고 표현했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인 정착마을에서 단열이 안 되는 집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이태구 세명대 건축학과 교수는 “집 안의 온도 차이가 심장에 무리를 준다”고 설명했다. 집 내부 공기가 차가운 상태에서 바닥이 따뜻해지면 거주자의 상‧하체에 온도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결국 심장에 혼란을 주기 때문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온도 차이가 심할수록 심혈관 계통의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며 “고령층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집은 한센인의 경제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 단열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집을 고칠 돈이 이들에게는 없다. 성심마을에 사는 이영훈(47·가명) 씨도 마찬가지였다.

고치지 못하고 덧대는 삶

조각보 같은 집이었다. 천장 벽지는 군데군데 뜯어졌다. 이영훈 씨는 새로 도배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며, 집이 습해서 금방 울어버린 거라고 했다. 거실 천장은 다른 방들보다 더 낮았다. 키가 174센티미터(cm)인 기자가 한 손을 뻗으니 천장에 가뿐히 닿았다. 비가 새거나 수리를 해야 할 때마다 얇은 합판이나 벽지로 조금씩 덧댄 탓이다. 건설 일용 일을 하는 이 씨는 이를 ‘덧방’이라고 불렀다.

안방엔 곰팡이가 가득했다. 30년도 더 전에 직접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덧발라 만든 집은 시간이 지나며 벽이 갈라졌다. 그 틈을 타고 매년 겨울 웃풍이 심하게 들었다. 단열이 안 돼 온도가 낮아진 벽이 겨울철 집안 공기와 만나 물방울을 만들었다. 물방울은 곧 곰팡이가 됐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거울로 곰팡이를 가리려 했다. 거울을 한참 벗어난 곰팡이는 이제 벽면 중앙을 가득 채웠다. 바로 옆에 이 씨의 침대가 있었다.

부엌 벽엔 단열 벽지를 붙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 씨는 정부에서 보조받은 연탄으로 겨울을 났다. 연탄의 온기는 부엌까지 닿지 않았다. 수도는 겨울이면 꽁꽁 얼어 쓸 수 없었다. 벽면에 중구난방으로 붙은 주황색 단열 벽지는 환풍기 옆 작은 창문마저 가렸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벽지는 물론 상부 장 곳곳에도 검게 곰팡이가 피었다.

현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30미터(m)를 걷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몇 걸음 더 가면 화장실이 있다. 천장은 슬레이트로, 벽은 벽돌과 시멘트를 섞어 만들었다.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엮은 문을 열면 어둡던 공간에 빛이 비친다. 벽에는 거미줄 잔해가 널려 있다. 몇 번이나 생기고 없어진지 모를 정도로 두꺼운 거미줄은 먼지와 슬레이트 잔해, 오물이 묻어 검게 변했다. 바닥에는 바닥 3분의 1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 양옆에 놓인 긴 널빤지 두 개가 발판이다.

▲ 성심마을에 사는 이영훈(47·가명) 씨 집의 화장실은 집 바깥에 있다. 페인트 통과 기름통이 널브러진 구멍 뚫린 바닥에 긴 널빤지 두 개를 올렸다. 널빤지가 발판 역할을 한다. ⓒ 유재인

집을 고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이 씨는 한센인 2세다. 한센병에 걸린 부모를 따라 35년 전에 성심마을로 왔다. 현재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취재팀이 방문한 날은 비가 와서 일을 나가지 못했다. 그는 4년 전까지 부모와 함께 돼지를 키웠다. 양돈을 그만둔 지금, 집 바로 앞 축사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을에 가득했던 돼지 울음소리와 분뇨 냄새가 사라졌다. 돼지가 사라진 자리에 사람만 남았다.


한센병을 앓고 있거나 병력을 가진 사람을 ‘한센인’이라고 한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고령화 측면에서 본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는 한센인의 거주 형태를 정착마을, 시설, 재가로 분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착마을에 사는 한센인은 시설에 있거나 사회에서 비한센인들과 함께 사는 한센인보다 주거 환경, 경제 상황 모두 열악했다.

<단비뉴스>는 ‘한센인 정착마을 취재팀’을 구성해 그 실상을 밀착 취재했다. 지난 7~10월 동안 한센인 정착마을 여덟 곳을 총 11차례 방문하고, 한센인 1세 24명을 포함해 38명을 대면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16가구는 거주자의 허락을 받아 실내 구조를 살펴보고 가구 현황과 거주 기간 등을 취재했다. 전문가 9명을 인터뷰했고, 1천여 쪽에 이르는 논문과 보고서도 참고했다. 프롤로그를 포함해 모두 5회에 걸쳐 연재할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4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편집자주)

프롤로그 – 여기에 사람이 산다
발암물질에 포위된 마을
② 불덩이와 냉동고의 집
사라진 가축과 스러진 사람
오래된 가난의 삶

편집: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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