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정착촌 실태 보고서] 프롤로그 – 여기에 사람이 산다

‘한센인’은 한센병을 앓고 있거나 병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나균이 피부나 말초신경으로 침투해 얼굴과 사지에 변형을 일으키는 것이 한센병이다. 한센인은 신체 일부가 변형된다는 특징 때문에 일제강점기부터 격리의 대상이 됐다. 국가에 의해 강제로 외지에 보내지거나 병원 근처에 마을을 이뤄 살았다. 교회 등 종교단체 소유의 땅에 모여 사는 이들도 있었다. 질병관리청이 펴낸 <2021년 한센병사업 관리지침>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형성된 100여 개의 한센인 정착마을은 2021년 4월 기준 82개만 남아있다.

정착마을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황무지나 갯벌, 임야 등을 개간하기 위해 한센인과 부랑인들을 정착시켰다. 국립병원에 수용됐던 한센인을 퇴원시켜 인천과 김제, 경주 등에 살도록 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정착마을에 사는 한센인 대부분은 축산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육류 소비 증가로 1980년대 초반까지 정착촌 내 축산업은 호황이었다. 그러나 시장 개방, 가축전염병,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 사료값 파동 등을 겪으며 한센인의 삶은 어려워졌다.

지난 4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 82개 한센인 정착마을을 대상으로 주거환경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정착마을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고령화 측면에서 본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정착마을에 사는 한센인은 시설에 있거나 사회에서 비한센인과 함께 사는 한센인보다 주거 환경, 경제적 상황 모두 열악했다. 인권위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설문조사와 주민 인터뷰를 통해 경제 상황을 조사했다. 실제 정착마을 주민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단비뉴스>는 ‘한센인 정착마을 취재팀’을 구성해 정착마을의 실상을 취재했다. 취재팀은 지난 7월부터 두 달 동안, 여덟 곳(서울 헌인마을·인천 부평마을·인천 경인마을·남양주 성생마을·경주 희망마을·상주 성심마을·칠곡 칠곡마을·여수 도성마을)의 한센인 정착마을을 총 11차례 방문했다. 그 가운데 희망·성심·도성마을의 모든 건물을 조사해 집과 축사 개수·사용 여부·벽과 지붕 재질 등을 확인했다. 또한 희망·성심·칠곡·도성마을 네 곳에 사는 한센인 1세 24명과 배우자 또는 자녀 등 한센인 가족 14명 등 모두 38명을 대면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16가구는 거주자의 허락을 받아 실내 구조를 살펴보고, 가구 현황과 거주 기간 등을 취재했다.

전문가의 도움도 받았다. 한센인과 정착마을을 연구한 사회학자와 건축학자, 관계 부처 공무원 등 전문가 9명을 취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한센인 인권실태조사> <고령화 측면에서 본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한센인의 격리제도와 낙인·차별에 관한 연구> 등 1천여 쪽의 논문과 보고서도 참고했다.

취재한 내용을 앞으로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크게 마을과 집, 사람과 삶을 살펴보는 4개의 기사로 나눴다. 취재팀을 집 안까지 들이는 한센인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매우 경계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한센인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나이와 성별, 가구원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주민이 동의한 경우에만 썼다.

‘1회-발암 물질에 포위된 마을’편은 석면 슬레이트와 함께 살아가는 정착마을을 담았다. 석면은 1급 발암 물질이다. 석면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폐 같은 질환을 앓을 수 있다. 정착마을이 만들어지던 당시 석면 슬레이트는 저렴했다. 여전히 석면 슬레이트는 정착마을의 지붕을 책임진다. 취재팀이 방문한 희망·성심·도성마을 전체 건물 가운데 80.1%가 석면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었다.

‘2회-불덩이와 냉동고의 집’편에서는 한센인이 사는 집을 살펴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단열이었다. 정착마을 주택 대부분이 단열성이 떨어지는 시멘트블록을 쌓아 지어졌다. 냉난방도 제대로 안 됐다. 취재팀이 방문한 희망·성심·도성·칠곡마을 16가구 가운데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기름보일러가 있어도 기름값이 부담스러워 연탄을 함께 쓰기도 했다. 16가구의 집은 최소 20년에서 최장 60년 전에 지어졌다. 한센인들은 벽이 갈라지고 비가 새는 집에 살고 있었다.

‘3회-사라진 가축과 스러진 사람’편은 정착마을에 사는 한센인이 왜, 어떻게 가난해졌는지 분석했다. 1960년대 후반, 정착마을에서 전업형 축산이 시작됐다. 정착마을을 먹여 살리던 닭과 돼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 사라졌다. 기업형 축산의 출현, 시장 개방, 가축전염병 등이 이유였다. 고령화도 한몫했다. 정착마을 내 노동력이 줄었다. 정착마을의 빈 축사는 축산업 쇠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취재팀이 방문한 희망·성심·도성마을 전체 축사 가운데 96.1%가 비어있었다. 한센인은 생계의 수단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4회-오래된 가난의 삶’편에서는 정착마을로 떠밀려온 한센인의 삶을 담았다. 1960년대 정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센인을 시설에서 내보내고 정착마을을 만들었다. 한센인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0년대 축산업이 쇠퇴하면서 한센인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절반의 복귀, 절반의 격리’ 상태였던 이들은 “배운 게 그것(축산업)뿐”이었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전국 정착마을 한센인 가운데 82.4%가 기초생활수급자다.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전염병 통제라는 국가적 사업 때문에 한센인들을 특별 관리했고, 낙인과 차별이 발생했다”며 정부가 한센인을 돌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단비뉴스>는 정착마을에서 고립되고 방치된 채, 삶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한센인들의 이야기를 오는 21일부터 매주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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