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아내가 술꾼이 되어버린 남편을 향해 읊조리던 쓸쓸한 절망이었다. 술은 인간에게서 무엇이었고, 무엇이 되었나. 인간의 무리가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 속에서 인간은 저마다의 이유로 술을 들이킨다. 슬픔으로, 기쁨으로, 위로로, 연대로, 그렇게 이유를 대며 술상 앞에 마주한 이들은 잔을 짠 부딪친다.

이때 건배사를 잊으면 섭섭하다. 팔뚝에 힘을 주고 잔을 들어올리자. 취기로 붉어진 얼굴이지만 눈은 부릅뜨고, 제멋대로 꼬인 혀를 동원해 목젖을 떨어보자. 선창으로 한 사람이 “적시자”를 외치면 나머지 사람도 따라 외친다. “적시자!” 술기운과 함께 알코올에 젖어 슬픔도, 기쁨도, 위로도, 연대도 그 밤을 따라 휘발한다. 한바탕 웃다가 울다가 토하다 다음 날 아침 콩나물국 한 그릇을 비우고 하루를 살아낸다. 삶은 그렇게 계속되고 술잔도 그렇게 채워진다.

이제 서른, 세 여자가 술꾼이 된 이유 

지난달 26일 막을 내린 티빙(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이하 <술도녀>)은 술과 함께 인생을 적시는 3명의 술꾼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 여자들의 우정과 연대를 담은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의 포스터. 혼술이 아닌 함께 술을 먹는 행위는 타인과 함께 고통과 즐거움을 나눈다는 의미다. 이 시대에서 술을 같이 먹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묻는다. ⓒ 티빙

<술도녀>의 캐치프레이즈는 ‘기승전술’이다. 원작인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이 일상 속에서 마시고 먹는 술과 안주에 집중했다면, <술도녀>는 이제 갓 서른이 된 동갑내기 여자들의 우정과 고투를 그리는 데 힘줬다. 30대 여성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편하게 말 못 할 속내를 술과 안주를 먹으며 서로에게 등을 내준다. 본격 술 권하고, 술 마시는 드라마다.

주인공은 스무 살 때부터 친구였던 세 명의 여자들이다. 예능 작가 안소희(이선빈), 요가 강사 한지연(한선화), 종이접기 유튜버 강지구(정은지)다. 직장 내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해야 할 몫을 해나가는 소희, 해맑고 솔직한 캐릭터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지연, 냉철하고 정 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친구들 일에 앞장서는 지구. 그들은 성격도, 취향도 모두 다르다. 달라서 만나면 서로의 빈곳이 채워진다. 10년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모여서 술을 홀짝이며 각자의 고민을 나누다 함께 웃는다.

당신의 실패에 건배를, 술은 써도 친구와 먹는 안주는 맛있다

<술도녀>는 우정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상된다. 그러나 실패해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렸다는 점에서 다르다. 현실 속 많은 사람은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전교 수석을 다투다 의대를 갈 수 없고, 천재적인 바둑 사범이 돼 첫사랑에 성공하지 못한다. 어릴 때 꾸던 꿈은 어릴 때 꾸던 꿈으로 남아 있다. 첫사랑은 대체로 비극이어서 술자리 안줏감으로 적당하다. 비극을 질겅질겅 씹으며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면, 실패한 지난 사랑은 희극으로 승화해 이야기하기 딱 좋다.

▲ 소희, 지연, 지구가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 성격도, 취향도 모두 다른 세 사람은 술을 통해 각자의 고민을 나누며 함께 웃는다. ⓒ 티빙

<술도녀> 주인공들은 여러 면에서 처참히 실패한다. 소희는 출판사 직원으로, 지연은 대기업 영양사로, 지구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으로 첫 둥지를 틀지만 박차고 나온다. 지연을 상대로 불륜을 저지르려는 대기업 회장의 자서전을 낼 수 없어, 소희는 회장 앞에서 하이힐로 맥주 병뚜껑을 딴 뒤 마시고 그를 욕한다. 지연은 회장이 부른 호텔에 소희와 지구를 초대해 그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개 식용 농장으로 좌천당한다. 그러나 지연은 농장에 감금당한 개를 모두 풀어준 뒤 두 친구를 불러 라면을 안주로 맛있게 술을 먹는다. 지구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자신의 반 아이를 구하려 같이 뛰어내렸고, 119 구조대원 덕분에 안전하게 쿠션 위로 떨어진다. 안도한 지구는 친구들과 술을 걸치던 자리에서 결국 그 아이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부당해서 친구들과 술을, 낙담해서 친구들과 술을, 견딜 수 없는 부채감에 친구들과 술을 먹는다. 그 몹쓸 사회가 자꾸 술을 권한다. 술 먹지 않고 도무지 털 방법이 없어 도시 술꾼 여자들은 매일 술을 마신다. 

<술도녀>는 여성끼리 유대하는 서사로 여성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지연은 밤중에 귀가하다 모자 쓴 남자가 뒤따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집으로 빨리 들어가려 현관문을 다급하게 여는 동시에 괴한도 같이 들어온다. 지연은 필사적으로 휴대전화에 긴급전화로 등록돼 있는 지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지구는 죽을 듯이 뛰어와 지연을 구한다. 후에 도착한 소희는 지연을 끌어안고 울고, 지구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지연을 위로한다. 지연이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실로 가기 전 지연의 손을 잡아 준 이도 두 친구뿐이다. 미리 적어놓은 유서를 지구와 소희는 같이 읽으며 울다가 웃는다. 친구가 죽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지구가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부채감에 학교를 그만두고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지연과 소희가 지구의 방문 앞에서 소리지른다. “지구야 술 먹자!” 지구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손을 잡아주는 건 역시 두 친구이다. 또, 사고사로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넋을 놓은 소희에게 지지대가 되주는 것도 지연과 지구다. 틈틈이 소희의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마지막 아버지가 가는 길까지 두 친구가 함께 걸어간다. 

▲ 소희가 아버지를 잃고 장례식장에서 힘들어 하고 있다. 양옆에 지연과 지구가 팔짱을 끼고 지지대가 되준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여성들끼리의 우정을 그린다. ⓒ 티빙

난색 표한 방송사 보란 듯 유쾌한 질주

<술도녀>는 제작 전부터 난항을 겪었다. <술도녀>를 쓴 위소영 작가는 여자 셋이 주구장창 술 마시는 게 드라마가 되겠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4년여 퇴짜를 연속으로 맞던 중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티빙에서 편성이 확정됐다. 여자들이 술 먹는 이야기라 방송사에서 거절당한 뒤 마지막에서야 티빙에 채택돼 방영됐다. 그런 <술도녀>가 결국 대박을 쳤다.

▲ 디즈니 플러스 스트리밍이 지난달 12일 시작했다. 세계적인 OTT 디즈니 플러스를 뛰어넘기 위해서 국내 콘텐츠는 어떤 강점을 더해 제작돼야 하는지 고민해 볼 지점이다. ⓒ 디즈니 플러스 인스타그램 갈무리

<술도녀>가 공개되고 5주 뒤, 티빙의 유료 가입자 수는 지난 10월 대비 11월에 36배 뛰었다. 세계 OTT 시장 골리앗 디즈니 플러스가 상륙했지만, 티빙은 <술도녀>로 디즈니 플러스를 제치고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에서 1.8배(모바일 인덱스 기준·11월 15~21일) 앞섰다. 마블 독점 콘텐츠 등 최신 화제작을 줄줄이 앞세운 디즈니 플러스보다 티빙에 시청자들이 더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뜻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이는 <술도녀>가 온라인에서 뜨거운 화제 몰이를 한 결과다. 매주 회차를 공개할 때마다 화제성이 2배, 3배로 치솟았다. 결국 역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주간 유료 가입 기여도 1위를 달성했다. 최종화 공개 이후에도 전편 몰아보기로 콘텐츠를 즐겨 현재 이용자가 유지되고 있다. 현재 <술도녀>는 시즌2 제작을 공식화했다. 이선빈, 한선화, 정은지 등 기존 등장 배우도 출연을 확정한 상태다. 

▲ OTT에서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 티빙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에 힘쓰고 있다. <술꾼도시여자들>의 원작은 카카오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이다. ⓒ 티빙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편 티빙에서는 <술도녀>뿐 아니라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에 힘쓸 예정이다. 지난 9월 방영한 웹툰 원작의 <유미의 세포들>도 내년 상반기 시즌2를 공개한다.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의사를 꿈궜으나 아무도 오지 않는 진료실에서 적자를 탈출하기 위한 생존기를 그린 <내과 박원장>이 내년 1월 공개된다. 하일권 작가의 유명한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도 내년 티빙 오리지널로 단독 공개된다.


편집: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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