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취업'

▲ 강주영 기자

구직활동이 또 좌초된 다음 날 아침 늦게 눈을 떴다. 카톡과 각종 어플리케이션에 쌓인 빨간 알람들이 내게 경고했다. 네가 잠든 사이 누군가 열심히 달린 흔적들을 보라고. 누군가를 떨어뜨리고 오른 자리, 다시 내가 떨어진 곳에 올라 누군가는 달린다. 언제쯤 나도 이 치킨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까? 기분 전환할 겸 맛집에 가자는 친구의 카톡을 보고 패배감에 젖어 물었다. 과연 나는 밥 먹을 자격이 있는가? 친구가 답했다. ‘밥 먹는데 자격이 뭐가 필요해.’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밥값은 하고 먹는거야?’라는 물음이 계속된다. 밥이란 ’응당 능력과 자격이 주어진 사람만 누리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더 이상 천부인권을 인식하지 못한다. 값을 매기는 바코드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스펙을 증명하고 등급을 부여받는다. 돼지고기 가죽에 보라색 A등급 도장이 새겨지듯. 값만큼 효율을 내지 못하는 기계는 분류돼 폐기처분된다. 개인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성보다 생산력으로 정량화하며 서열화하고 분류된다.

세대론도 인간을 수치화한 자본주의 한 모습이다. 사람도 태어난 연도별로 분류해 Z세대, 밀레니얼세대, X세대로 구분한다. 무리의 특성은 소비력과 기술활용능력, 생산력으로 평가받는다. 소비유행을 선도하는 MZ세대와 구매력이 높은 X세대. 한 세대로 묶인 군중은 비슷한 경제력을 누릴 것이며 비슷한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개인은 사회가 규정하는 세대의 ‘평균값’이라도 하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경쟁력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발전한 무리’에 속했음을 자처한다.

도태된 세대는 신세대에게 인기있는 콘텐츠를 찾아보고 베스트셀러를 읽고, 비슷한 물건을 구매하며 혁신적인 사고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답습한다. ‘취향 존중’을 강조하는 MZ세대는 어처구니없게도 또래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한다. 마치 욕망하는 것들이 정말 자신이 욕망한 것인 양. 단시간 더 많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고스펙’ 최신기기를 구매해 적응한다. ‘필요 이상’이 아니라 생산을 멈추지 않는 훌륭한 인재가 되려고 서점에 쌓여 있는 세대분석 책들을 찾는다.

이런 자본주의 논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영화 <Still Life>의 주인공 존 메이 이야기다. 그는 무연고자들 장례를 치러주는 공무원이다. 회사로부터 폐기처분된 삶들, 사회활동에서 실패한 삶들을 생각하며 앨범에 고인들의 사진을 정리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인의 지인과 친척을 찾아 장례식에 초대한다. 대개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텅 빈 장례식을 찾는 유일한 이가 된다. 어떤 새로움도 찾을 수 없고 생산이란 찾아볼 수 없이 실패를 반복하는 삶이다.

▲ 영화'Still Life'의 한 장면.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인 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홀로 맞은 죽음을 찾아 가족 대신 마지막 가는 길을 기린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능력과 경제력을 떠나 그저 똑같을 뿐이다. ⓒ 강주영

하지만 재촉하는 어떤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그는 고인들의 생애를 묵묵히 진심을 다해 추적하고 기록한다. 가족이 외면한 알콜중독자이든, 일을 못 해 실직한 자든 살아 생전 어떤 값어치를 했을지언정, 한 인간으로 살다 간 그들의 삶을 최선을 다해 기린다. 그 역시 죽음을 맞고 그의 묘지 주변엔 사람들이 잔뜩 몰리기 시작한다. 그가 장례식을 치러준 사회에서 나약한 사람들, ‘밥값’ 못 하는 사람들이었다.

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입니다’라고 썼다. 누구나 고개를 쳐들면 볼 수 있는 하늘처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밥이라고 썼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기 전 앉혀 두고 가장 먼저 하는 말이라 한다. 내 값어치는 얼마일까? 밥값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에 부단히 요구할 생각이다. 자격이 뭐가 필요한가? ‘내게도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세상아, 밥 줘!’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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