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남북관계’

▲ 이강원 기자

링컨은 침략자다. 적어도 미국 남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제임스 바더맨의 <두 개의 미국사>에는 남부 사람들이 링컨에 적개심을 갖는 이유가 나온다. 남북전쟁 때 북부는 ‘노예 해방’을 명분으로 남부를 악으로 몰았다. 전쟁 승리 뒤에는 치안 유지 이유로 남부에 머물며 점령군 행세를 했다. 북부 자본가들은 남부 소자본가들과 결합해 철도와 산업을 장악했다. 남부 소농들은 철도 부지로 토지를 팔고 소작농이 됐다. 소작도 못하는 주민은 북부 자본이 만든 공장의 저임금 노동자가 됐다. 북부에 흡수된 남부는 사실상 식민지였다.

전쟁 패배와 경제 종속에서 비롯된 남부인들의 적개심은 밥그릇 문제도 뛰어넘었다.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정책 시기에 남부와 북부가 연합했다. 루스벨트 정부는 남부에 대규모 토목공사로 일자리를 공급했다. 테네시강에 댐이 생기면서 값싼 전력이 남부인에게 공급됐다. 남북전쟁 이후 몰락한 남부 백인 소농들에게 일자리와 현금이 생겼다. 남부 백인들은 이익을 챙겨준 루스벨트를 지지했다. 통합은 1950년대까지였다. 트루먼과 민주당이 흑인 인권을 지지하자 남부인은 패전을 떠올렸다. 다시 북부는 민주당의 파란색, 남부는 공화당의 붉은 색으로 칠해졌다. 남부 사람들 마음에는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앙금이 있다.

미국 남북관계는 흡수통일론이 진정한 통일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역사를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으로 채택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한다면 국민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이처럼 한국 흡수통일론은 북한을 동등한 대화 상대로 보지 않았다. 개발 대상, 경제 진출 대상이었을 뿐이다. 흡수통일전략은 북한 사람이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뭉치게 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가진 유일한 균형추인 핵에 더 집착했다. 2030년이 되면 200개가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잘살게 해준다고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우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남과 북은 한국전쟁에서 시작해 2000년 6월까지 적대적 공생 관계였다. 그동안 연평해전 같은 무력충돌이 있었다. 적개심을 일깨우는 선전과 교육도 한몫했다. 70년 세월에 문화도 달라졌다. 2008년 남한에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대결구도가 재연됐다. 대결구도가 벌어질 때마다 북한은 적개심을 키워갔다. 미국 남북보다 한반도 남북에 더 깊은 골이 패였다.

▲ 2019년 한국 정부가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북한으로 보낸 쌀 5만 톤. 쌀 포대마다 '대한민국 기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KBS

흡수통일의 반대는 포용정책이다. 그 정신은 개성공단에서 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개성공단 노동자의 임금을 남한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적게 책정했다. 중국이나 다른 동구권 국가에 파견할 때보다 낮은 임금이었다. 이는 개성공단이 남과 북을 연결해 양측의 적개심을 완화할 수 있다는 공감대였다. 남한 경제력은 개성공단에만 제한됐다. 남한의 우세한 경제력이 북한 경제를 잠식하지 않는 것이다. 의도한 대로 교류협력의 가치가 높게 인식됐다. 개성공단은 당 간부 자녀들이 일할 정도로 북한 주민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다. 공단 노동자들은 남한 문화에 호감을 보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남한 문화가 물밑에서 퍼졌다. 당시 남북관계는 이익을 얻되 침탈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심었다.

박근혜 정부 때 개성공단이 사라지고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포용정책은 설 자리를 잃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끊어졌다. 국제 제재도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백신과 식량 같은 걸 보내는 인도적 지원은 가능하다. 북한은 코로나19 백신이 부족하고, 식량난도 겪고 있다. 남한은 이제 충분한 백신 물량이 확보되고 있다. 최근 동북아 백신 공장이 세워질 가능성도 있다. 무상으로 백신과 식량을 지원하면 북한의 적개심을 해소하고 대화의 장으로 돌아오게 할 만큼 신뢰를 만들 수 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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