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지승호 지음/창비/1만5000원

인터뷰 전문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그 꿈은 좋은 인터뷰 기사들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월간지 <인물과 사상> 권두에 실리던 두툼한 분량의 인터뷰는 일간지보다 긴 호흡으로 문제적 인물과 그의 사상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 모음집 <진심의 탐닉>도 수작이다. 김혜리 기자의 섬세한 시선이 거침없는 질문과 어우러지면서 인터뷰이를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낸다. 

인터뷰란 ‘근사한’ 사람들을 만나 춤을 추듯 대화하며 그의 속마음을 끌어내고, 사람의 한 시절을 초상화를 그리듯이 글로 풀어내는 예술적 작업이라고 멋대로 정의하며 선망했다. 대학에서 신문을 만들 때 한 인물을 조명하는 인터뷰 작업에 큰 흥미를 느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상에 비해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버거웠다.

숱한 옛날의 꿈들처럼 지금은 그 꿈도 과거형이 되었다. 그 계기 중 하나가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의 작가 지승호다. 그가 인터뷰와 책에서 밝힌 ‘인터뷰론’을 접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려면 지승호처럼 해야 하는데, 지승호만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지승호도 늘 한계에 부딪히는 작업이 인터뷰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그의 인터뷰론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단행본 인터뷰집만 55권을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출판 당시 45권) 펴낸 ‘인터뷰 장인’ 지승호가 자신의 내공을 전부 쏟아 부은 ‘인터뷰의 정석’이 바로 이 책이다. 

▲ 지승호는 2002년 이후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50여 권이 넘는 단행본 인터뷰집을 냈다. 사진은 지승호가 발간한 인터뷰집 일부의 표지들. ⓒ 책 표지 갈무리

문제적 인터뷰어 지승호

인터뷰어 지승호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는 국내 최고의 전문 인터뷰어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나 작가는 많지만 지승호처럼 단행본 인터뷰를 전업으로 삼는 이는 없다. 척박한 출판계, 그 안에서도 제대로 된 인식조차 없었던 단행본 인터뷰의 ‘판’을 깔았다. 

하지만 그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인터뷰’라는 저술 활동이 지닌 특수성이 그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 인터뷰는 독립된 저술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저널리즘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인터뷰는 다양한 매체의 기자가 수행하는 취재 행위 혹은 기사 형식이다. 정치인, 교수, 작가 등 저명한 인물을 조명하는 인터뷰도 그의 생애 또는 의견을 인터뷰이의 말로 풀어내는 식으로 제한적이었다. 대중의 말초적이고 사소한 관심을 자극하는 신변잡기식 인터뷰도 상당수다. 하지만 지승호는 두 가지 부류에 속하지 않는 고유한 인터뷰 장르를 개척했다. 

동시에 그의 인터뷰는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견을 받는다. 유명한 사람들의 멋진 말을 적당히 토막내어 앞뒤로 배치하는 일이라는 평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단순히 남의 말을 받아 적는  속기사에 불과하다는 모욕에 가까운 평도 들어왔다고 지승호는 고백한다. 하지만 지승호의 인터뷰에는 고유한 철학과 문법이 존재한다, 인터뷰가 본래 그렇다기보다 지승호가 그렇게 만들었다.

▲ 지승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인터뷰집을 출간하여 퓰리처상 후보에라도 오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 박소연

풍부한 사례로 인터뷰의 시작과 끝을 안내하다

이 책은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가 말하는 인터뷰의 모든 것’이라는 소개글처럼 인터뷰를 준비하고 수행하는 전 과정에 관한 작가의 노하우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아홉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작가가 만났던 인터뷰이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과 그와 얽힌 사연을 풀어낸 마지막 장(제9장)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은 인터뷰란 무엇이고(제1장), 왜 인터뷰를 하는지(제2장), 묵직한 물음에 대한 작가 나름의 대답을 담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언어로 정의하고 선언하는 내용 이외에도, 다른 작가나 기자, 인터뷰이의 말, 격언 등을 많이 인용했다. 자신이 직접 인터뷰를 했던 사례가 상당수다. 책 전반에서 이러한 특징적인 서술 방식이 활용된다.

다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주체로서 인터뷰어의 역할과 태도(제3장), 그리고 필요한 자질(제8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인터뷰어가 갖추어야 할 자질’(제8장)은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지만 흐름상 제3장에 이어서 읽는 것도 괜찮다.

핵심은 인터뷰의 실재(reality)라고 할 수 있는 섭외(제4장)와 질문(제5장), 화법(제6장), 그리고 기록(제7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실제 인터뷰 작업의 기본적인 흐름에 따라 인터뷰어가 준비하고 수행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인터뷰의 제 1원칙: 태초에 호기심이 있었다

그는 책 전반에 걸쳐, 좋은 인터뷰어가 되기 위해 기술보다 태도를 강조한다. 우선 인터뷰어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호기심을 꼽는다. 호기심은 인물을 섭외하는 단계부터 질문을 설계하고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든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인터뷰의 첫 번째 필요조건은 인터뷰어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일이다. 호기심은 억지로 꾸며내거나, 다른 기술로 대체할 수 없다. 타자를 알고 싶은 강한 욕구가 질문과 태도로 구체화되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어느 평론가가 제가 쓴 책을 제자들에게 권해준다고 해서 궁금한 나머지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제 책을 왜 권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너는 정말 궁금해하더라.” (본문 27쪽)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순수한 욕구는 얼핏 사소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터뷰어가 어떤 사람을 ‘정말’ 궁금해 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어떤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삶과 사유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의무적 동기에서 비롯된 호기심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그는 지금까지 정말 만나고 싶은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야만 꼭 필요한 질문, 좋은 질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매체에 소속되기보다 독립 저술가로서 활동한 배경인지도 모른다.

▲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표지. ⓒ 오픈하우스

성실한 공부가 좋은 질문을 만든다

지금까지 지승호가 만나 인터뷰한 인물들은 스펙트럼이 넓다. 김규항, 박노자와 같은 진보적 지식인을 만나 한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철학자 강신주는 그를 통해 ‘김수영론’을 비롯한 자신의 철학을 대중들에게 보다 생생하게 설명했다. 영화배우 김의성은 지승호의 질문을 통해 사회에 대한 그의 소신과 연기론을 풀어냈다. 장하준, 김수행 등 경제학자를 만나서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위기에 대해 논했다.

하지만 지승호가 특별한 인터뷰어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만난 인터뷰이들이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인터뷰에 임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다. 어느 인터뷰이를 만나도 깊이 있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인터뷰어의 말을 이끌어냈다. 그 원동력은 철저한 자료 수집, 즉 인터뷰어의 삶과 인터뷰 주제에 대한 학습이다. 한 분야에 대한 특별한 학위나 자격이 없어도 성실하게 인터뷰를 준비하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공부한 결과다. 그는 인터뷰이가 쓴 모든 저술을 비롯한 작품과 다른 인터뷰는 물론, SNS에 남긴 메모까지 모두 조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인터뷰가 이뤄진 인물이어도, 이러한 성실함이 그로부터 새로운 메시지와 깊이 있는 사유를 이끌어낸다.

‘공부’는 인터뷰가 한 인물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실재에 다가서는 과정이라는 인터뷰 철학을 구현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대중은 인터뷰어가 창조하고 편집한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라 한 인물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충실히 되짚으면서 그가 지닌 다양한 층위의 사유를 명료하게 만날 수 있게 된다.

인터뷰어는 사전 질문을 통해 ‘질문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때로는 질문을 바꾸어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며 준비하는 모든 과정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본문 124쪽)

인터뷰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승호는 피와 땀과 눈물로 체득한 인터뷰의 모든 것을 책에서 겸손하게 기록한다. 사실 인터뷰에 대한 고민들, ‘질문하기’에 대한 질문들은 그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조명도 없이, 곤궁과 폄하를 견디며 전인미답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 온 장인의 작업이 예술과 맞닿아 있음은 그동안의 인터뷰들과 이 책이 증명한다. 그는 질문의 힘을 알았고, 좋은 질문이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적은 글 가운데 특히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뷰는 인터뷰이를 둘러싼 이미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인터뷰란 기술이 아닌 태도의 문제다.”

▲ 지승호는 최근 유튜브 채널 <지승호의 그까짓 인터뷰, 그래도 인터뷰>를 개설했다. 단행본이라는 지면과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터뷰 작업을 널리 알리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 유튜브 채널 갈무리

100자 평
인터뷰가 어렵다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인터뷰가 쉽다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인터뷰를 할 일이 없다고? 그래도 이 책은 읽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알아가는 태도와 방법이 여기 있다.


편집 : 정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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