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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8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
2021년 08월 18일 (수) 12:37:54 이예슬 기자 yeslowly@gmail.com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앞서 회사를 경영한 남편 필립 그레이엄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1960년대 초반부터 30여 년 간 발행인이자 대표로 일하면서 워싱턴포스트를 세계적 언론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재임할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닉슨 대통령의 사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냈다.

그의 말처럼 뉴스는 사초(史草) 역할을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놓은 신문과 방송 덕에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과거의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다시 수사하려고 해도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언론이 보도한 뉴스는 이럴 때 증거로 사용된다.

그러나 아무리 중대한 사건이라도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중앙 언론이 취재·보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중앙 언론이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역을 바라본다면, 지역 언론은 가까운 곳에서 현미경으로 바라본다. <부산일보>는 2018년 4월부터 총 15회에 걸쳐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을 보도했다. 부산에서 일어난 국가 폭력 사건을 집요하고도 촘촘하게 파헤쳤다. 그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료로 복원한 30년 전 참상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공권력과 박인근 원장 일가가 무고한 시민을 강제로 수용해, 폭행·살인·강제노역 등 인권유린을 저지른 사건이다. 보도는 아무런 이유 없이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죽거나 탈출한 126명의 수용자 신상기록카드 원본을 단독 입수해 알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경찰과 형제복지원이 일지 형태로 작성한 ‘부랑인 수용 일보(日報)’까지 공개했다. 수용일보에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부랑자’라는 낙인을 찍어 형제복지원에 인계한 경찰관들의 소속과 이름이 적시돼 있다. 

취재과정에서 형제복지원에 입소한 이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신병인수인계대장도 확보했다. 1985년 7월부터 12월까지 입소한 1964명의 성명, 성별, 연령, 주소, 인계자, 인수인계 일시 등이 적힌 자료다. <부산일보>는 이 기록들을 토대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형제복지원 피해자 명단 검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것으로 알려졌거나 행방이 묘연한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서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사회복지연대와 함께 핫라인을 구성하기도 했다.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베이스와 핫라인을 통해 피해자를 직접 돕는 것이다. 피해자 명단 검색 시스템과 핫라인은 2018년 4월 보도 당시 만들어져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 <부산일보>가 개설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명단 검색 시스템’. 성명과 성별만 입력하면 1985년 7~12월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부산일보> ‘형제복지원 피해자 명단 검색 시스템’ 사이트 갈무리

이어 취재진은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일가가 호주로 재산을 빼돌린 사실을 발견했다.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호주에서 골프장과 체육관을 운영한 내용 문건을 최초로 확인했다. 끈질긴 취재를 통해 불법적인 재산 축적의 증거를 찾은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로 무장한 보도는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2018년 제50회 한국기자상(지역취재보도 부문)과 일경언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22회 일경언론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30년이나 지난 과거 형제복지원의 참상을 입소자 신상기록카드와 신병인수인계대장 같은 새로운 기록 발굴을 통해 다시 이슈화하고 결국 재조사를 이끌어 내는 뚝심이 빛났다”며 “시민단체와 피해자 지원 핫라인을 운영하는 배려도 찬사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큰 사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뉴스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기사를 쓴 안준영 기자도 이를 우려했다. 

“형제복지원 보도가 있기 전에는 여러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30년이나 지난 일이고 형제복지원 이야기는 부산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데 거기서 또 어떤 걸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저희가 보도를 하고 난 뒤로 정말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다. 내 아버지·우리 오빠·동생이 형제 복지원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사망 자료라도 좀 알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본인이 죽기 전에 제사라도 한 번 모셔야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 이렇게 저희의 기자상은 피해자분들의 피눈물 위에 쓰인 거라고 생각한다.” (제50회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 수상소감문’ 중에서)

   
▲ 총 15회에 걸쳐 보도한‘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에는 입소자 신상기록카드와 명단, 원장 일가의 호주 골프장 문건 등 새로 발굴한 자료 내용이 담겼다. ⓒ <부산일보> 지면 갈무리

진실 규명을 향해 한 발짝 더

보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형제복지원의 수용자 기록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당시 파출소에서 근무했던 한 퇴직 경찰관이 양심고백에 나서기도 했다. 사람들을 잡아들여 형제복지원에 넘기면 높은 근무평점과 함께 뒷돈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보도 이후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검찰 개혁위원회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비상상고(판결이 확정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했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불복신청을 하는 비상구제제도)를 권고했고, 검찰도 비상상고 절차에 돌입했다. 문 당시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에게 과거 참상에 대해 눈물로 사과했다.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 역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사과 이후 부산시청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팀을 발족했다. 

지난해 12월에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제1호 사건으로 접수했다. 지난 3월 대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에 대한 기각 판결을 내려, 진화위 조사가 더욱 중요해졌다. 재판부는 비상상고를 기각했으나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부산일보>는 2018년 연속 보도 뒤에도 꾸준하고 끈질기게 형제복지원 사건을 좇고 있다. 사건 33년째를 맞은 지난해에는 형제복지원 감금 피해자 33인의 증언을 영상구술사 방식과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소개했다. 피해생존자 33인을 심층 인터뷰하고, 참상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자료 등 각종 기록물을 더해 ‘온라인 참상 기록관’을 만들었다. 이대진·이승훈 기자의 ‘살아남은 형제들’ 보도는 2020년 제52회 한국기자상(전문보도 부문-온라인)을 수상했다. 전국 곳곳에 숨죽인 채 살고 있는 피해자들을 발굴해 잘 알려지지 않은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 실태를 기록하고, 피해가 현재진행형임을 드러낸 기획이다.

   
▲ ‘살아남은 형제들’ 인터랙티브 페이지(brother.busan.com)는 형제복지원 참상을 현실감 있게 구현한 ‘온라인 기록관’이다. 인트로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증언·증거·기억·기록’ 5개 챕터로 구성됐다. ⓒ <부산일보> 인터랙티브 사이트 갈무리

공식 입소기록만 따져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입소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 주변에는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고 방조한 ‘어제의 우리’도 함께였다. 이제는 지켜보고 기록하는 언론이 우리 곁에 있다. 이 ‘절규의 기록’들은 훗날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파헤치는 단서가 될 것이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이기에.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 김현주 기자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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