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저널리즘 모포시스

저널리즘 모포시스/한국언론정보학회 기획/임종수 외 12인 지음/팬덤북스/1만8000원

기자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보편화된 세상이다. 언론사 누리집과 포털 뉴스의 댓글창을 보면 ‘기자’는 없고 ‘기레기’만 있다. 댓글만 보면 한국은 사실 확인 없는 허위조작정보,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 각종 진영논리로 갈등만 부추기는 기사를 내놓는 기자로 가득하다. 이 말이 처음 생겨났을 때는 일반 수용자 수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와 언론사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자신의 의견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하는 경향도 있다.

일각에서는 ‘기레기’라는 용어가 저널리즘의 사형선고에 가까운 멸칭이라 보기도 한다. 어떤 직종에도 쓰레기라는 표현이 붙은 적은 없다.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반영된 결과다.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성인 10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언론 신뢰도는 35.5%로 나타났다. ‘시민의 편이다’(34.8%), ‘도덕성이 있다’(28.2%)는 비교적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조사 결과 시민들은 언론인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고 전문성도 갖추고 있지만, 사회 기여가 부족하고 시민의 편이라고 하기도 힘들다고 인식했다.

▲ <저널리즘 모포시스> 표지. ⓒ 팬덤북스

변이하는 저널리즘

언론이 정치논리에 휘둘리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그보다 미디어 논리가 정치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 과거의 언론이 정치논리 안에서 ‘뉴스로서의 상품’을 생산했다면, 지금은 포털 등 플랫폼 이용자들에 최적화해야 한다는 디지털 미디어 논리에 맞춰 ‘상품으로서의 뉴스’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의제는 정치사회적 중요성이 아니라 상품 가치에 따라 취급된다.

책에는 ‘21세기 저널리즘 형태변이를 위한 진단과 제안’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한국 저널리즘이 쓰레기에 비유되는 현실에서, 전현직 기자들과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저자 13명은 기레기라는 말을 달리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전통적인 저널리즘 원칙에 맞춰 ‘기레기 현상’에 일침만 가할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자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레기’라는 용어를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바라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본다.

‘모포시스(morphosis)’란 형태 변화, 형태 형성 과정을 뜻하는 생물학 용어다. 유기체나 그 일부분이 형태를 바꾸거나 성장을 진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책에서는 저널리즘의 질적인 변화를 강조해 ‘형태 변이’라 칭한다. ‘기레기’라는 용어는 한순간 우연히 생겨난 멸칭이 아니라, 미디어가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저널리즘과 결별하고 새로운 직업적 관습·문법으로 ‘변이’할 것을 요청하는 신호라는 것이 책 전체의 문제의식이다.

새로운 저널리즘의 징후

책은 뉴스 생산자와 유통자, 수용자의 측면에서 저널리즘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문상현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신문 비즈니스 모델의 붕괴에서 비롯된 저널리즘의 위기부터 살펴본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종이신문을 떠났고, 오랜 비즈니스 모델의 한 축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특정 신문이 생산한 뉴스를 읽지만 대가의 지불 없이, 종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 채 뉴스를 소비하게 됐다. 독자가 떠나자 광고주도 떠났고, 결국 주요 전쟁터는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조회수를 위한 매체들 간의 기사 어뷰징과 클릭 경쟁은 저널리즘의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언론사 내부에서는 과도한 게이트키핑과 사주의 영향력, 그에 따라 작동하는 정파성이 기자들을 지배했다. 조직은 수직적 통제를 통해 기자 개인의 혁신을 가로막았고, 이는 언론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는 조직의 통제를 극복하기 위해 언론사 내부의 수평적 연대를 복원하고 노동조합 등 자율 기구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현재 뉴스 유통과 소비의 절대적 강자가 된 포털이 ‘기레기 현상’의 구조적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포털은 하이퍼링크라는 미디어 속성을 지렛대 삼아 한국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포털과 언론사는 클릭을 통한 상업주의로 동맹관계를 맺었다. 뉴스를 편집하는 포털은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에 체류하도록 도와주는 기사에만 집중했다. 임 교수는 포털이 이용자들에게 배달된 뉴스의 선택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알고리즘의 책무성에 대해 인지하고, 공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낚시성 기사 위주로 편집·노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포털 생태계에도 부정적이라는 설명이다.

▲ 책은 자극적인 낚시성 기사 위주로 편집·노출하는 포털이 ‘기레기 현상’의 구조적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 KBS

수용자 입장에서는 확증편향 문제를 해결하고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수용자의 확증편향은 전통 미디어에 대한 신뢰 붕괴로부터 시작됐다. 허윤철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는 그 해결책으로 저널리즘 내부의 책무를 강조하지만, 실행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던진다. 대중의 미디어 참여와 확증편향이 기성 언론에게는 불편하겠지만,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용자들의 변화를 저널리즘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또한 허위조작정보가 확산되면서 팩트 체크와 정부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실효성과 제도적 허점이라는 본질적 한계도 분명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뉴스 리터러시이다. 미디어 수용자들이 뉴스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기레기 현상을 새로운 저널리즘 생성의 징후라는 희망으로 고찰하며 미래의  저널리즘을 논한다. 낡고 왜곡된 저널리즘 관습을 비판하며, 새로운 저널리즘과 미디어 공론장을 만들자고 채근한다. 미디어의 수용자이자 생산자로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참고할 만한 책이다.

100자 평
전현직 기자와 언론학자 등 저널리즘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한국 언론에 대해 내놓은 진단과 처방. 디지털 미디어 시대, 변화하는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 저널리즘과 관련된 이론, 사상, 개념 등이 많이 등장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편집 :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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