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10회 인권보도상 대상 수상작 – 포항MBC <그 쇳물 쓰지 마라>

얼마 전 남자친구가 취업을 했다. 건설현장에 필요한 장비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는 매일 거래처의 현장으로 출근했다. 최근 그의 팔에는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업 현장에서 일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개미에 물린 것 같은 자국 수십 개가 오른팔 군데군데로 퍼졌다. 병원을 두 곳이나 다녀왔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며 잘 먹고 잘 자라는 처방만을 받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현장에서는 꼭 공업용 마스크를 쓰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면역력을 위해 주말에 몸보신 음식을 사주는 것뿐이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생긴 두드러기의 원인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분진이 떠다니는 작업 현장의 환경 때문이라는 걸 우리 둘 다 짐작하고 있었다.

죽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삶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죽어간다. 작업장의 컨테이너에 깔려서, 컨베이어 벨트에 껴서, 그리고 작업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몸에 발암물질이 쌓여 죽는다. 한국에서 직업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017년 사고재해 사망자 수를 앞질렀다. 이 사실을 접하게 된 포항 MBC의 장성훈 기자는 직업병에 의한 사망 소식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가 포스코의 직업병 문제를 취재한 계기다.

▲ 2020년 12월 10일 포항MBC는 포스코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인근 지역의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마라’를 방영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 포항MBC ‘그 쇳물 쓰지 마라’ 방송화면 갈무리

일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지난해 12월 10일 포항 MBC는 54분짜리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에서 포스코의 직업병 문제와 포스코 공장이 야기하는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했다. 장성훈 포항MBC 기자가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전 포스코 환경보건담당자, 직업병 생존자, 유가족, 인근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담았다. 

영상은 포스코 노동자 정원덕 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스무 살에 포스코 하청 철강생산공장에서 일을 시작해 40여 년을 근무했다. 철광석에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크롬, 니켈, 망간 등 발암물질들은 그의 호흡기 속으로 들어갔다. 회사는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정년의 나이를 갓 넘긴 61세의 그는 폐암 4기, 각종 피부병, 기억력 감퇴를 겪고 있었다. 쇠로 목을 긁는 것 같은 소리의 기침을 하며 힘들어하던 그는 영상 말미, 향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온다. 

▲ 포스코 하청 철강생산공장에서 40여 년간 일한 정원덕 씨는 죽기 직전까지 폐암, 피부병 등을 앓았다. 그는 포스코 노동자의 직업병에 대해 증언하겠다며 취재팀에 직접 연락했다. ⓒ 포항MBC ‘그 쇳물 쓰지 마라’ 방송화면 갈무리

정 씨의 모습에서 14년 전 일어났던 사건이 겹쳤다. 어려운 집안 환경을 생각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선택했던 청년은 고향 속초를 떠나 수원의 한 공장에 취직한다. 국내 최대 대기업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 그 자부심은 2년도 안 돼 그의 삶을 산산조각냈다. 공장에서 일한 지 1년 8개월 만에 그는 백혈병 판정을 받는다. 그가 하던 일은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웨이퍼를 각종 화학물질에 담갔다 빼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생산 3라인에서 일하던 스물셋 황유미 씨는 그렇게 죽었다. 비슷한 시기, 삼성 반도체공장과 디스플레이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80여 명이 황 씨처럼 백혈병에 걸리거나 뇌종양, 자궁경부암, 유방암, 피부암 등으로 사망했다. 황 씨와 동료들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었다’는 것을 확인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 당시 그들의 죽음에 삼성과 정치권, 국내 대다수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전히 반복되는 침묵의 카르텔

다큐멘터리는 포스코의 산업재해와 환경 문제 역시 1990년 한 차례 제기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당시 서울대학교 연구진은 포항제철 코크스 생산 공정에서 발암물질인 코크스분진이 허용기준치보다 20배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한다. 포스코는 이를 덮기 위해 당시 환경보건 담당자 이윤근 소장에게 반박할 것을 지시하지만 이 소장은 회사의 명령을 어기고 포스코 환경 문제 제기에 앞장선다. 30년 후, 이윤근 소장은 ‘그 쇳물 쓰지 마라’에 나와 당시 느꼈던 무력감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인다.

“포스코가 완전히 발칵 뒤집혔죠. 회사의 명예가 실추됐다. 바로 이제 방어를 하기 시작합니다. 막강한 언론의 네트워크를 통해 방어를 하기 시작하죠. 방어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측정이 잘못됐다’라고 하는 거고요 두 번째는 ‘데이터의 해석이 잘못됐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쇳물 쓰지 마라’ 중 1990 포스코 환경보건 담당자 이윤근 소장)

포스코 발암물질 논란 이후 30년이 지난 한국 사회에서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현실을 고발한다. 최근 다시 점화된 포스코의 직업병과 환경오염 논란에 정부나 유관 기관들은 책임을 미루고 있으며, 언론은 보도하지 않고, 포스코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다큐는 책임 감독기관인 경상북도가 환경부와 논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내세우고, 경북 도의원들은 이 문제가 자신의 소관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현실을 보여준다. 취재팀은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취재하며 지역 일간지 두 곳과 중앙지 세 곳을 분석해, 포스코와 관련한 홍보성 기사가 90%를 넘어 비판성 기사보다 월등히 많았다는 사실도 꼬집는다. 취재팀은 포스코에도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포스코는 이를 거절하는 것은 물론, MBC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직원들에게 내렸다. 

▲ ‘그 쇳물 쓰지 마라’팀과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부의 조사에 따르면 포스코를 다루는 포항 지역 일간지 2곳과 중앙지 3곳의 기사 대부분이 홍보성 기사였다. ⓒ 포항MBC ‘그 쇳물 쓰지 마라’ 방송화면 갈무리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기본적 역할

“말 꺼내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현장에서 창고 데리고 들어가서 때리고 하니까 방법이 없잖아요. 하라 그러면 하는 거죠.”

“한마디 하면 잘리는데 누가 합니까. 나서서 아무도 못 하죠. 가족들 있는데.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할 거 아닙니까.”

”겁나거든요. 회사에서 보복할까봐서.“

포스코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지 한 달 후,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제작한 장성훈 기자 개인을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했다. 사실과 다르거나 오류가 있는 내용이 있어 명예훼손이라는 이유였다. 통상 언론 보도 내용에 관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한 후 먼저 조정 절차를 밟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항MBC는 “기자 개인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취하하는 행태는 무책임하다”며 “언론의 감시와 비판, 견제 기능을 위축시키려 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며, 포스코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는 제10회 인권보도상에 포항MBC의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지역사회의 인권문제를 용기 있게 다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언론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권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권력을 감시하고, 그 권력 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힘 없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변했다는 평가다.

‘그 쇳물 쓰지 마라’가 남기는 것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시사하는 것은 포스코와 포항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1년째 산재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에 한국에서 산재로 사망한 사람은 882명으로 2019년 855명보다 3.2%인 27명이 증가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는 ‘사망사고 속보’ 게시판까지 있다. ‘7월 10일 나주, 화물차와 지게차 사이에 끼임’, ‘7월 10일 평창, 안전대 후크를 건 생명줄 매듭이 풀려 추락’, ‘7월 14일 포항, 케이블 드럼을 운반하던 중 케이블 드럼에 깔림’. 매일 그날의 날짜와 사고 지역, 사고 원인으로 가득 찬 게시판은 점점 사람들 마음속 산업재해를 무디게 만든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 ‘사망사고 속보’ 게시판. 매일 전국 각지에서 얼마나 많은 산업 재해가 일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

포항MBC의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일으킨 반향이 반가운 이유다. 다큐를 연출한 장성훈 기자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탐나는 TV’에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대한) 모든 분들의 관심이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아가는 변화에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코를 넘어 전국 제철소의 직업병 실태와 인근 환경에 대한 후속 보도를 계획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다큐의 제목인 ‘그 쇳물 쓰지 마라’는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1600도가 넘는 쇳물로 추락해 사망한 김 군을 기리던 시에서 비롯됐다. 사고재해나 직업병과 같은 산업재해는 내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내가 겪을 수 있는 문제다. ‘그 쇳물 쓰지 마라’를 통해 포스코의 자정과 언론의 역할에 관한 고민과 동시에, 쇳물에, 발암물질에, 대형컨테이너에, 케이블타이에 스러져간 주변 이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며,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에 삽입된 노래. 댓글 시인 ‘제페토’가 작사하고 가수 하림이 작곡해 포스코 직업병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이 부른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와 영상을 덧붙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4NiXKrrZpTE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마라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앞에 세워 두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게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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