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0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지닌 ‘성에 관한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법률을 통해 다시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장애인에겐 이러한 당위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지 못해왔고, 심지어 성적 욕구나 자기결정권을 지니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장애인과 성을 떨어뜨려 생각해보자. 오랫동안 유교적 엄숙주의가 지배해 온 한국 사회에서 성욕과 성생활에 대한 담론은 (비장애인에게도) 여전히 터부시 되는 경향이 강하다. ‘성’을 말하는 순간 분별없이 쾌락만을 탐닉한다거나 정숙하지 못하다는 낙인이 찍히기 쉬웠다. 성을 다루는 영화나 소설도 쉽게 외설 시비에 휩싸인다. 장애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은 열등한 존재, 부정(不淨)한 존재를 가리키는 멸칭으로 사용되었고, 장애인은 정상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배제되며 비장애인의 시야에서 쉽게 ‘치워지는’ 존재가 되었다. 성(性)과 장애인은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며 억압받는 대표적인 ‘대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의 성적 욕구 및 성생활에 대한 관심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일 수 밖에 없다. ‘장애인’의 ‘성생활’은 그 자체로 어색한 단어 조합인 셈이다. 미디어는 장애인을 대체로 성적 욕구가 없는 존재처럼 묘사하였고, 장애인의 성은 관심과 인식 바깥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2010년 <한겨레21>은 네 달 동안의 취재를 통해 두 ‘금기’의 결합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결과물인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그해 한국기자상(기획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킨제이 보고서’는 미국의 생물학자 엘프리드 킨제이가 발간한 현대인의 성 생활 실태를 종합적으로 드러낸 연구서로, <남성의 성적 행동>(1948), <여성의 성적 행동>(1953)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그 동안 체계적인 논의조차 없었던 장애인 성 생활 실태를 저널리즘의 문법으로 종합적으로 풀어낸 기획이다.

▲ ‘킨제이 보고서’는 인간의 성적 행태에 대한 종합적 연구로 <남성의 성적 행동>과 <여성의 성적 행동>이라는 두 종의 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통계 처리 과정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되지만, 금기에 가까웠던 여성의 성과 동성애를 연구 대상으로 직접 다뤘다는 의의가 있다. ⓒ 아마존 책 표지 갈무리

장애인들의 성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파헤친 보도

이전까지 장애인의 성적 욕구와 성생활이 전혀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영화는 비교적 꾸준하게 '장애인의 성'을 작품에 담았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는 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의 사랑을 다루면서, 당사자 및 장애인 운동 진영과 평단에서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최동수 씨가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집창촌’에 방문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2005)는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규범의 경계를 넘어서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섹스 볼란티어>(2010)는 더 나아가 타인(성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이 성을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화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2000년대 들어 장애인의 ‘성’을 다룬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개봉했다. 그 동안 비장애인-대중의 관심 밖에 있던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장애인에 대한 편견 및 성 상품화와 관련된 논란을 일으키키도 했다. 왼쪽부터 <오아시스> <핑크 팰리스> <섹스 볼란티어> 영화 포스터. ⓒ 영화 포스터 갈무리

하지만 장애인의 성생활이 본격적으로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다뤄진 것은 2010년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에 이르러서다. 이 기획은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전까지 영화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다뤄진 ‘장애인의 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논의가 이뤄지게 된 계기인 셈이다. 2010년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 심사위원단은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에 대해 “학계와 관계기관 언론 등 모두가 무관심했던 장애인들의 성(性)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파헤친” 보도라고 평가했다. “학계조차 외면해 왔던 전인미답의 장애인 성문제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공개된 이슈로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241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수치와 인터뷰로 선명하게 복원한 낮고도 절실한 목소리들

224명 장애인 심층조사 “우리도 하고 싶다”

2010년 10월 1일 발간된 <한겨레21> 제829호의 표지는 다소 도발적이고 선정적으로 보이는 문구를 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커버스토리인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기획의 핵심을 효과적이고 간명하게 드러낸다. 기획은 총 네 개의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를 커버스토리로 실은 <한겨레21> 제829호 표지 사진. ⓒ 한겨레21 홈페이지 갈무리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임인택 기자)는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기획의 메인 기사다. 지적장애·뇌성마비·척수손상 장애인 224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성욕과 성적 행동, 성적 권리에 관한 심층조사 결과를 다룬다. 표지의 문구처럼 의욕대로 하지 못해 좌절하고 고통받는 장애인들과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절절한 응답이 담겨있다. 

언제부턴가 아들이 “결혼도 할 수 없는데, 여자랑 한 번만 자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얘기, 그래서 결국 아들의 자위를 어머니 제 손으로 해주기 시작했다는 얘기…. 여인은 결국 오열했다. 대화가 30여 분 끊겼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더 긴 거, 점점 더 자극적인 걸 요구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 중에서)

두 번째 기사인 ‘날마다 자식의 욕구와 싸우는 엄마들’(하어영 기자)은 장애인 자녀의 ‘성문제’로 고민하는 어머니들의 사례와 그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을 전한다. 기사 속 사연들은 이론이나 제도가 감당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고민과 희생을 강요하는 후진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장애인 자녀의 성문제와 관련된 고민들이 결국은 한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어떻게 보장하는지와 맞닿은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적장애 1급인 딸을 키우는 한 엄마는 아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고민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성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성교육도 해봤어요. 아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성생활과 양육의 기쁨도 누려야겠지만, 우리 딸의 미래에 엄마인 나 혼자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이라면 성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엄마는 본인이 딸의 인생 전부를 책임질 수 없을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딸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더 잘 안다. (‘날마다 자식의 욕구와 싸우는 엄마들’ 중에서)
  
이어지는 ‘여성의 눈으로 유럽 성 서비스를 보다’(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김순배 기자)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유럽의 장애인 성 서비스 업체 및 단체를 방문하여, 유럽이 장애인 성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점검한 기고문이다. 장애인 성 문제 담론의 남성 중심성과 장애인 대상화의 위험성 등을 지적한다. 독일 장애인 성 서비스 단체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도 함께 전해 ‘장애인 섹스 서비스’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 기사인 ‘만나고 토론하고 사랑하라’(이범석 국립재활원 병원부장·재활의학과 전문의)에서는 ‘성욕-해소’라는 도식화된 해법이 아니라 한국적 맥락을 고려하여 성교육, 이동권 보장, 인터넷 토론, 교제 모임 등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종합적인 분석으로 공론장을 여는 저널리즘

개별 취재원의 구체적인 삶과 문제에 집중하여 취재하고, 그것을 선명하게 기사로 작성하는 기획은 수용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개별 사례에 함몰되어 결과물에서 보편적 의미를 도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장애인 성 문제’가 특정인이 예외적으로 겪고 있는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현상인지, 장애인 집단이 대체로 공유하는 지속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인지 불분명하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의 관심이 자극적인 사례에만 몰려 기사를 통해 드러내려는 문제의 본질이 오히려 외면받을 수도 있다. 기사가 장애인 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기보다 ‘흥미거리’로 소비되며 황색 저널리즘, 선정주의라는 낙인이 찍힌다.

앞서 언급했던 ‘장애인 성 문제’를 다룬 영화들도 이러한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가 설문조사를 주요한 접근 방법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두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윤리적 문제를 피하면서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기 위해 ‘장애인 성 문제’에 대한 보편적이고 타당한 자료와 분석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수용자의 인상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 조사와 분석을 통해 획득한 보편성에 기반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논증하는 셈이다.

다음으로 지속적인 여론 형성과 공론장 활성화를 위한 기반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다. ‘킨제이 보고서’가 현대인의 종합적인 성 생활 실태를 다룬 것처럼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 속 설문조사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욕구와 실제 행태, 그리고 권리에 대한 인식을 망라하여 다룬다. 욕구와 행태, 그리고 인식은 개별적이지 않고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문제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이를 종합적으로 다룰 때 가능하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기획이 일회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보도 이후 장애인 성 문제에 대한 공론장, 정책적 논의의 기초가 되는 ‘종합 보고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가 돋보여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용기가 돋보인다. 취재원과 독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본질을 에두르게 빗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의 성생활(성관계 횟수 및 만족도 등)은 충분한가” “가장 근래에 성욕을 해소한 방법” 등과 같은 직접적인 질문은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드러내기 때문에 응답자가 솔직한 답변을 꺼릴 수도 있다. 실제로 조사 과정에서 설문 내용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응답을 거부한 장애인과 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가 불필요하게 장애인들의 성욕과 비장애인 독자의 말초적 흥미를 자극한다며 경계하는 시선도 마주했다. 임인택 기자도 이에 대해 의식했다.

“읽기조차 불편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최선이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몰랐고 무관심했음을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수사한다. 왜 장애인의 성만 주목받아야 하는가. 이 당연한 질문조차 비장애계의 차별과 무관심을 인정하면서부터 타당한 질문이 되고 답이 구해질 것이다. 그래서 “인권 감수성을 깨우쳐주었다”는 많은 독자들의 반응은 고맙다. (‘241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소감문’ 중에서)

▲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취재팀은 장애인의 성 문제에 관련된 의미있고, 신뢰도 높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설문지 설계와 공동기획 단체를 설득하는 과정에 한 달 이상의 시간을 할애했다. 장애인의 성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성적 욕망을 풀고 싶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한 적이 있다” 등과 같은 다소 직설적인 문항도 설문지에 포함했다. ⓒ 한겨레21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취재팀은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장애인 성 문제를 세상에 정교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신 타당도 높은 질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인 단체들과 설문조사를 공동기획했고, 재활의학 전문가에게 설문안 설계 과정에서 조언 및 감수를 구했다. 이를 통해 성별, 연령, 장애 유형, 성 경험 횟수 등 변수 간 교차 분석이 가능했고 결과적으로 취재에서 더 많은 의미를 도출할 수 있었다. 양적 조사 과정에서 통계치로 치환된 응답자 개인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인터뷰 기사 속 사례와 함께 복원해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또한 이렇게 조사한 내용을 가감없이 기사로 표현하여 장애인 성 문제를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조사 결과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과에서 도출되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실제 사례를 함께 제시하여 저널리즘적 의미를 보완했다. 나아가 문제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 해외 사례 및 대안, 그리고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쟁점까지 제시하였다.

현재 성 서비스 담론의 핵심은 중증장애 남성의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고, 누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전제하는 건 아닌가? 그리고 장애인의 성적 권리가 다른 이들의 권리 혹은 다른 측면의 권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는가?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선 비장애·남성·이성애 중심으로 구성된 성적 만족의 각본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눈으로 유럽 성 서비스를 보다’ 중에서)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취재팀이 이처럼 취재원이자 당사자인 장애인과 독자 모두에게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을, 기사를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에게도 성 문제는 내밀한 사적인 문제로 남겨둬야 하지 않았을까?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성을 다룬 기사 자체가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대상화 하는 것이 아닐까? 임인택 기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성은 사랑, 결혼, 관계의 이면에 있었고, 성적 권리는 이동권, 주거권, 노동권을 이면에 뒀다. 50여 명을 만나며 실사례로 짚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성적 고충은 비장애의 무관심이나 관심 있는 이의 차별과 깊이 맞닿아 있어 사적일 수 없다. 사회적이다. (‘241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소감문’ 중에서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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