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싸우는 저널리스트들

싸우는 저널리스트들/로베르 메나르 지음/성욱제 옮김/바오/1만2000원

홍콩 언론의 자유를 상징하는 <빈과일보>가 지난달 24일 폐간했다. 빈과일보는 1995년 창간해 중국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매체다. 홍콩 내 반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후 신문사 간부가 구속되고 회사 자산이 동결됐다. 자진 폐간의 형식을 밟았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언론 탄압이었다. 홍콩의 다른 매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홍콩보안법 검열에 대항할 방법이 “거의 없어 보인다”라는 홍콩 기자들의 말은 현지의 절망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립된 그들이 입과 펜을 갖고 싸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가 있다. 1985년 창설된 ‘국경 없는 기자회(RSF, Reporters sans frontières)’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에 있는 중국 대사관 앞에서 빈과일보 장례식 행진을 벌였다. 홍콩 언론의 자유를 위해 국제사회가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긴급 호소문도 유엔(UN)에 제출했다. 언론을 탄압하는 곳이 있다면 전세계 어디에나 나타나 자유를 외치는 게 국경 없는 기자회가 내건 사명이다.

▲ 지난달 25일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파리와 베를린에 있는 중국 대사관 앞에서 <빈과일보>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 RSF 트위터

최근 이들의 모습을 보며 책 <싸우는 저널리스트들>이 떠올랐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창설자이자 초기 사무총장이었던 로베르 메나르(Robert Menard)가 쓴 책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세계 곳곳에서 언론 자유를 위해 싸워온 기록이 담겼다. 안팎의 위기에도 언론 자유를 증진하겠다는 일관된 목표를 향해 투쟁한 기록이다.

내부의 위기와 갈등은 자유를 실현하는 메나르의 행동 방식에서 발생했다. 그는 적극적 행동주의자였다. 대학생 때 연좌농성으로 노동 운동에서 승리한 경험이 계기였다. 사상가에서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건, 라디오 방송과 신문 제작에 참여하면서다. 정보를 독점하던 프랑스 정부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주장이나 대의를 위해 언론이 사용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투쟁 방식은 그 영향을 받았다. 튀니지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단식농성을 펼치는 벤 브릭의 활동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엄격한 정보 검열을 받는 중국 언론을 돕기 위해 해상 라디오 방송국을 만드는 시도까지 한다. “기자를 쇠창살 안으로 밀어 넣은 자들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나쁘게 선전’하는 것 말고 우리가 가진 다른 무기는 없다”는 게 메나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때로 대중을 선동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1994년 탈리스마 나스린 기자 사건이 대표적이다. 나스린이 집필한 책의 내용이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언론을 활용해 나스린 보호에 나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방글라데시 정부가 사형선고를 내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같은 수준의 비난을 받았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방글라데시의 정치 시스템을 극도로 단순화해서 세계 언론에 전파한 탓에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동일시된 것이다. 메나르는 이 사건으로 기자회 동료들과 깊은 갈등을 겪는다.

언론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난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1994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르완다 사건은 50만 명의 투치족 주민과 다수의 온건파 후투족이 살육된 대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특정 언론사가 학살을 선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제사회는 해당 언론사의 자유를 규제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메나르는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증오를 유포하는 미디어라 할지라도 이를 억압하는 것은 검열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의 자유는 대다수 사람에게 불유쾌한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견해나 의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유럽 인권재판소 판례를 인용했다.

▲ 싸우는 저널리스트들 표지

메나르의 주장과 행동은 진지한 고민 없이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르완다 사건에서 보여준 자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오늘날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들의 자유도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시행착오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솔직하고 확고한 태도 때문이다. 그는 나스린 사건과 관련해 훗날 실수를 인정한다. “언론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소수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말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현재 홍콩 언론의 상황은 암흑과도 같다. 중국은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1년 언론자유지수에서 180위 중 177위를 차지했다.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언론 탄압은 홍콩의 민주주의도 말살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저널리스트를 탄압하는 일을 세계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투쟁한다. 책 <싸우는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의 행동주의가 저널리즘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준다. 그러한 행동이 홍콩의 언론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자유를 돌려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00자평 
세계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지는 책. 언론 자유의 경계와 기준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해볼 수 있다. 홍콩 언론에게 자유를.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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