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

모터스포츠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 해외에서는 인기가 대단하다. 포뮬러 원(Formula 1·F1)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 중 하나다. TV 생중계 시청자가 4억 명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가 중단되면서 타격을 입었지만, 매주 다른 국가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중계 덕에 관광 산업도 성장한다. 

넷플릭스는 2018년부터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를 제작했다. 시즌마다 그 해 개최된 그랑프리를 기록한다. 비인기 종목에 관한 다큐멘터리임에도 2019년 '한국이 가장 사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10선에 이름을 올렸다. 모터스포츠에 관심 없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뜨거웠던 이유는 이 작품이 가진 보편적인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 'F1:본능의 질주' 타이틀 ⓒ 넷플릭스

자본, 꿍꿍이, 극한 경쟁

"치열한 경쟁, 엄청난 투자금, 정치적인 문제들…"

F1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의 압축판이다. KTX보다 빠른 경주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하다. 그 돈을 지원하는 스폰서가 팀을 좌우한다. 드라이버 영입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기술자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현장을 달리는 드라이버가 차에 대해 잘 알아야 경주에 맞게 개발하고 운용할 수 있다. 팀에는 영입 단가가 높은 실력자 드라이버가 한 명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스폰서를 끼고 있는 드라이버를 영입해 자본을 끌어온다. 

F1은 모든 것이 돈에 의해 좌우되는 세계다. 모든 기술자, 전략가, 자본가들이 뛰어든다. 이 안에서 실력만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 이기기 위해선 돈도 쓰고 정치적인 뒷거래도 한다. 기술력 좋은 팀의 차 설계를 베끼기도 하고, 건수가 잡히면 규정을 들어 딴지도 건다. 모두 '꿍꿍이속'이 있는 판이다.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최근에는 예산 규정이 생기기는 했지만, 기술은 이미 상위권 팀에 축적되어 있다. 꿍꿍이는 이어질 것이다.

▲ 충돌하는 경주차들. 보통 선 바깥으로 벗어나는 상황은 충돌 사고로 이어진다. ⓒ 넷플릭스

F1 드라이버 시트는 단 20개다. 한 팀에서 경주차 두 대가 출전한다. 그러나 두 명의 드라이버는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 이 시트를 차지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운다. 다음 시즌에 더 기술력 좋은 팀에 가기 위해서다. 혹은 F1에서 방출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기도 하다. 생존하기 위한 질주가 서킷 위에서 이어진다. 

서킷은 전쟁터다. 드라이버들을 안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붉은 선과 스폰서 광고가 눈을 자극한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드라이버들에게 온갖 원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붉은색의 기호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자동차가 개발된 이후 무질서하게 도로에 엉켜 있는 차를 정리하는 신호가 먼지 속에서도 명료하게 보이는 붉은색이다. 붉은색 기호는 드라이버들에게 경쟁의 성패를 구분 짓는 선이다. 이 선 바깥으로 튕겨 나가면 보통 사고로 이어진다. 경기가 시작될 때 생존을 건 위험한 레이스에 뛰어든다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원색의 빛이 점멸하는 서킷, 극한 경쟁과 자본의 색채에 열광한다. 

진흙탕에서 쓰인 신화

“공정한 챔피언십이라 할 수 있나요?”

선수와 팀 관계자들은 종종 F1을 두고 공정한 게임인지 묻는다. 겉보기에는 가장 빠른 차가 점수를 따는 단순한 룰에 수많은 불공정한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위권 팀은 드라이버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좀처럼 상위권에 갈 수 없다. 그들의 역량을 뒷받침할 기술이 부족한 탓이다. 보통 F1은 F2에서 활약하는 '슈퍼 루키'가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 꿈의 무대인 F1에 오르기 위해 하위권 팀으로 들어가면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F1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가장 빠른 속도로 결승선을 넘은 사람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가 성과를 수치로 환산하는 데 익숙한 정서와 일치한다. 그 수치는 자본과 환경에 좌우된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공정성’이 F1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 BWT 레이싱 포인트 팀은 2019년 재정난으로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2020년에는 고무적인 성적을 끌어냈다. ⓒ 넷플릭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더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면 신화가 된다. 1위 팀과 10위 팀의 자본이 몇 배나 차이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하위 팀이 버티는 이유다. 위험천만한 이 경주에서는 추돌사고가 빈번하다. 드라이버의 실력이 반드시 우승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날씨와 도로의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타이어를 바꾸기도 해야 한다. 의외로 F1은 드라이버와 팀 관계자들이 함께 의논해서 전략을 세우는 팀 스포츠다. 그래서 F1은 항상 무선으로 교신하며 경기를 진행한다. 수많은 변수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서킷 위에서 하위 팀은 일말의 행운에 희망을 건다.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불안, 거대한 자본의 압박을 이겨낸 드라이버에게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영웅의 모습이 있다. 그 영웅이 마침내 신의 세상으로 간다. 자본주의적인 현대 신화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숭배 의식이었던 '바카날'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헤라의 박해를 피해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디오니소스가 마침내 고난을 축제로 승화하고 신이 되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조차 '첨단화'된 세상을 이겨낸 개인은 마침내 샴페인을 터뜨린다. 높은 단상에 올라 환호하는 수많은 사람을 내려다보는 신이 된다. <F1:본능의 질주>는 높고 훌륭한 것을 숭상하는 집단 무의식을 자극한다. 약한 자가 성공하는 드라마는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감동을 이끈다.

▲ 2019년 기량 부족으로 상위권 팀인 레드불 레이싱에서 방출당했던 알파타우리의 피에르 가슬리가 2020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 넷플릭스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이 세계의 영광

한 출연자는 F1 팀을 '순회 서커스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랑프리 무대를 옮긴다. 레이스가 끝난 서킷에는 목적을 다한 꽃가루가 나뒹굴고 있다. 곡예 하지 못하는 서커스단에게 관객이 돈을 쓸 리 없다. F1 곡예사들은 매주 외줄을 탄다. 그들은 매 순간 시트를 잃을까 염려하거나 분노한다. 깨지거나, 깨지다 못해 바스라져 사라지거나. 그들이 쟁취한 영광은 한없이 연약하다. 코너를 도는 게 두려워서 브레이크를 일찍 밟으면 진다. 0.001초 사이에 포디엄과 충돌사고라는 갈림길을 지나버린다. 심각한 사고가 나면 부상을 입고,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대기하는 드라이버. ⓒ 넷플릭스

그런데도 그들은 경주차에 탄다. 초록색 사인이 전광판에 들어오면 질주를 시작한다. 이 모든 게 은유하는 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이다. 인생은 대체로 씁쓸하다. 좀체 풀리는 법이 없다. 돈 많고 잘난 사람이 잘 산다. 그러니 이번 그랑프리에서도 어김없이 월드 챔피언인 루이스 해밀턴이 이기지 않을까. 아니면 차세대 챔피언으로 주목받는 레드불의 막스 페르스타펜이거나. 그래도 혹시 모른다. 통제 불능의 레이스 속에서 어떤 꽃이 피어날지. 사람들 모두 그런 연약한 희망을 품은 채 삶을 이어간다. <F1:본능의 질주>는 그런 마음의 틈새로 질주해 온다.


편집 :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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