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

지난 4월 26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윤여정 씨의 여우조연상 수상 여부에 우리의 이목이 쏠렸지만, 이때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작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의 문어 선생님>이다. 작년에 입소문을 타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다시 한번 바람이 일었다. 문어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어떻게 대히트를 치며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을까.

<나의 문어 선생님>은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크레이그 포스터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매너리즘과 우울증에 빠진 주인공은 근본적 변화를 꿈꾸며 고향인 대서양 바다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문어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관찰을 1년 가까이나 지속하면서 문어와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다. 관객은 영화에서 문어의 생애주기 중 약 80%를 함께한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문어의 생애주기를 따라가며 교감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놀라움과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식도 전환시킨다.

▲ 크레이그가 처음 본 문어의 모습. 문어가 다양한 조개껍데기를 모아 그 사이에 숨어 있다. ⓒ 넷플릭스

문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전환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문어를 친숙하게 여기는 편이다. 글월 문(文)에 어류 어(漁)를 쓸 정도로 예로부터 문어를 영리한 생물이라 여겼다. 어린이들도 문어를 곧잘 받아들인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싱글로 재발매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안예은의 곡 ‘문어의 꿈’은 일명 ‘초통령 송’으로 자리매김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문어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도 이 작품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문어가 이 정도로 똑똑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파자마 상어의 공격을 피해 도망가던 문어는 더 이상 따돌리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크레이그와 처음 대면할 때처럼 주변의 조개껍데기와 돌을 모아 머리를 보호한다. 그 상태로 상어의 강력한 공격을 방어하던 문어는 어느새 상어 시야의 사각지대로 도망친다. 상어 등에 올라탄 것이다.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사각지대까지 활용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 상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문어의 모습(좌). 크레이그가 문어와 처음 마주했을 때와 동일한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상어 시야의 사각지대인 등에 올라타는 모습이다. ⓒ 넷플릭스

하지만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지역을 제외하면 문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북유럽과 서유럽 지역에서는 문어 같은 두족류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혐오한다. 북유럽 전설의 바다 괴물 크라켄의 영향으로 서양인들의 무의식에 문어에 대한 공포심이 각인된 것이다. 문어를 다룬 문학작품에서는 대부분 야행성으로 문어를 묘사한다. 할리우드에서는 문어를 악역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영화에서 악역이나 악역 집단의 심볼로 문어 형상이 사용된다. 

▲ 영화 <007 스펙터>의 악역 ‘스펙터’의 엠블럼(좌), 마블 영화 세계관의 악역 집단 ‘하이드라’의 엠블럼(우). 서구권엔 문어에 대한 공포감과 혐오감이 존재한다. ⓒ PNGWING
▲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악역 ‘우르슬라’, <스파이더맨2>의 악역 ‘닥터 옥토퍼스’, <캐리비언의 해적>의 악역 ‘데비 존스’. ⓒ PNGWING

크레이그의 눈에 문어는 감탄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어는 크레이그와 신체적으로 접촉해 교감할 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와 장난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알을 낳은 후에는 알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고, 알이 부화하는 시점에 죽음을 맞는다. 반사회적 동물이라 여겨지던 문어가 지극히 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자식을 위해 자기희생까지 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크레이그는 문어를 관찰하며 본인이 느꼈던 감정과 인식 변화를 다큐멘터리에 있는 그대로 녹였다.

▲ 다른 물고기와 장난을 치는 문어의 모습. 문어가 사회적 행동을 하는 모습이다. ⓒ 넷플릭스

단순 교감을 넘어 자연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로

문어와 사람의 '교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크레이그는 문어와 교감하며 지치고 우울했던 마음에 위로를 얻었고, 마침내 잃어버렸던 ‘인생의 목적’을 되찾는다. 관객들도 작품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생소한 소재인 문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라는 보편적인 스토리텔링을 구현해 낸 것이다. 교감과 치유 과정이 전하는 감동만으로도 이 작품은 경쟁력이 있지만,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 크레이그에게 손을 내밀며 교감하는 문어의 모습. 언뜻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넷플릭스

크레이그가 문어와 교감하며 치유되는 과정은 관객에게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이끈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약 1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점점 문어와 교감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문어가 주인공의 손등에 올라앉고 함께 놀기도 하는 듯한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자연에 대해 특별히 감상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던 크레이그는 이런 교감을 통해 변화한다. 

크레이그는 문어를 통해 깊은 위로와 치유를 받으며 인간관계도 회복한다. 동료들과 연대하여 다시마 숲을 지키는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일에만 집중하느라 서먹했던 아들과 대자연 속에서 함께 헤엄치며 부자 관계도 회복한다. 아들도 자연을 누비며 점점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이 크레이그뿐만 아니라 아들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다양한 촬영기법을 통해 완성하는 아름다움, 우아미

<나의 문어 선생님>의 서사구조는 조동일이 제시한 '4대 미적범주' 중 '우아미'에 해당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성공하기 위해 오랜 해외 활동에 매진하던 그가 맞닥뜨린 건 부담감과 불면증 그리고 뒤틀어진 가족 관계였다. 카메라나 편집실은 쳐다보기도 싫어할 정도로 삶의 목적의식이 무너져 내렸다고 느낀 그가 돌아간 곳은 고향 대서양 바다였다. 목적의식을 갖고 고향을 떠나 몸담았던 직장은 ‘지향하던 공간’이지만, 그를 매너리즘과 불면증으로 이끈다. 반면 고향인 대서양의 바다는 잃어버렸던 삶의 목적을 찾게 해준 ‘있는 그대로’의 공간이다. ‘지향하던 공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공간’은 그저 가만히 존재하며 주인공을 반겨준다.

▲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는 장면들. 왼쪽부터 인서트 전경, 드론 전경샷, 아름다운 수중촬영 장면. ⓒ 넷플릭스

주인공이 되돌아온 바다는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의 고향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공간처럼 느끼게 한다. 드론샷을 통해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주인공을 전경으로 담아낸 장면, 날짜가 바뀌는 인서트 부분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담은 장면, 어려운 수중 촬영을 통해 담아낸 바다 속 영상미는 다른 작품과 차별점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는 자연이지만, 판타지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은 ‘지향하던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의 공간’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자연과 합일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아미적 서사 요소를 완성한다.


편집 : 조한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