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⑥ P4G 정상회의 맞아 시민·환경단체 잇단 시위

30일 공식 개막한 서울 녹색미래(P4G) 정상회의를 둘러싸고 시민·환경단체들이 정부에 ‘말이 아닌 행동’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잇달아 열었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주최한 ‘P4G 멈춰! 우리가 바로 녹색이다!’ 집회가 열렸다. 섭씨 30도에 가까운 뜨거운 날씨에도 환경·노동·인권·종교 등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나온 150여 명의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한 채 초록 깃발과 크고 작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환경·노동·인권·종교단체 150여 명 청계천 광장에서 집회 

▲ 30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민정희 공동운영위원장이 “말뿐인 P4G 정상회의에 반대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 고성욱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선언문을 통해 “이번 P4G 정상회의 슬로건인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위한 행동’은 맞는 말”이라며 “그런데 지금 저 회의장에 있는 한국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는 그린뉴딜을 말하면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신규 석탄발전소에 투자했고, 탄소중립을 선언할 때도 7기의 (국내)석탄발전소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더 많은 평등과 민주주의만이 기후위기 해법”이라며 “국가와 지자체의 기후위기 관련 정책 수립 과정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은정 강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최근 청와대 유튜브 영상에서 ‘개인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폭염에 실내온도 50도를 넘나들어도 냉방기조차 없는 시간을 보낸 분들에게 어떤 개인적 실천을 권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온실가스 대부분을 방출하는 대규모 기업들에게 아무런 말을 못 하면서, 개개인의 실천으로 기후위기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는 모습이 절망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공항 사업 철폐를 주장하기 위해 부산에서 왔다는 손상우 미래당 부산시당 기후미래특별위원장은 “가덕도 신공항은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저지른 가장 큰 환경 파괴 이슈”라고 꼬집었다. 그는 “신공항 특별법이 다른 지역 개발사업도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가덕도 신공항을 막아내는 것은 탄소중립으로 넘어가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과 지지부진한 탄소중립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는 미래당원들. 왼쪽부터 최지선, 황태리, 이성윤, 손상우, 김경힘 당원. © 고성욱

심상정 정의당 의원, 문 대통령에 5대 요구사항 제시 

집회 참석자 중에는 심상정·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도 있었다. 심 의원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첨단 퍼포먼스로 포장된 P4G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행동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촉구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P4G 핵심 목표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실현하자는 것인데, 지금 정부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왼쪽부터 정의당의 이헌석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장, 심상정 의원,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장혜영 의원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등의 요구사항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고성욱

그는 이날 P4G 연설을 앞둔 문 대통령이 5가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첫째 2030년 국가 탄소배출 감축목표(NDC)를 2010년 배출량 대비 50%로 상향 조정할 것, 둘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추진과 석탄산업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할 것, 셋째 가덕도·제2제주·새만금 신공항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 넷째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탄소중립위원회를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기후정의위원회로 다시 설립할 것, 다섯째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특례를 제시할 것 등이다.

이날 집회에는 가족 단위 참여자도 눈에 띄었다. 10대 딸 둘, 남편과 함께 나온 성북기후위기비상행동의 한 회원은 “기후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9명씩 나뉘어 총 18팀이 5분 간격으로 청계천을 출발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까지 40분가량 행진했다.

▲ 성북기후위기비상행동의 한 회원은 10대인 두 딸 등 가족들과 함께 초록색 깃발, 구호가 적인 손팻말 등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 고성욱

석탄발전소 노동자 92% 고용불안, 정부 대책 없어 

비슷한 시간인 오후 1시 30분, P4G 정상회의 개회식이 예정된 DDP 앞에는 발전·에너지 분야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진보정당·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등이 주관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보장과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약 35분간 진행됐다.

첫 발언에 나선 류호정 의원은 지난달 정의로운에너지전환연구팀이 석탄화력발전소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36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들어 “석탄발전소 노동자 중 본인이 일하는 발전소 폐쇄 시점을 정확히 아는 노동자는 단 8.7%에 불과했고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가 92.3%에 달했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발전소 폐쇄에 관한 정보 공유와 고용불안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법을 준비하는 데 시일이 걸리고 있지만, 올해 안으로 발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3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석탄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지원 대책이 없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 강훈

23년째 충남 태안석탄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태성 간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9일 충남 보령화력발전소를 방문해 ‘누구도 일자리를 잃지 않는 에너지전환’을 약속했지만, 지난 4월 1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추진한 12개 부문 ‘업종별 협의회’에서 에너지·노동 분야는 제외됐다”고 발언했다. 이어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 간사는 지난 29일 출범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 관해 “탄소중립은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라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조 전문가가 협의체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위원회 설립 과정에서 정부는 석탄발전산업 안에 있는 노동자와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정부의 이번 탄소중립위원회 설립은 수박 겉핥기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 3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기후위기 말만 말고 행동으로 나서라’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강훈

이어 이날 오후 4시쯤에는 녹색당 이은호(32) 기후정의위원장이 14일째 단식 중인 DDP 천막 부근에서 멸종반란한국·멸종반란서울의 활동가 20여 명이 문재인 정부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 항의하는 기습시위를 열었다. 활동가들은 녹색 물감을 바닥에 뿌리고 연막탄을 터뜨리며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다가, 출동한 경찰과 1시간가량 대치하기도 했다.

 
▲ 멸종반란한국·멸종반란서울의 활동가들이 정부의 ‘그린워싱’에 항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막탄을 터뜨린 활동가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 강훈

탈석탄순례단은 단식 중인 청년에게 ‘사과’

이에 앞서 지난 28일 오전 9시 20분쯤에는 DDP 조형물 옆에서 단식 중인 이은호 위원장을 ‘삼척 탈석탄·탈송전탑 희망 국토도보순례단’이 방문했다. 파란색 등산복 차림의 성원기(65)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이 위원장에게 “기후위기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위원장이) 단식농성을 하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세상에 호소하는 것은 대단히 큰일을 하는 것”이라며 “이 위원장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연대한다”고 덧붙였다.

성 대표는 탈석탄과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 4일부터 25일간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는 강원도 삼척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길거리 투쟁’을 하는 중이었다. 10여 명의 순례단과 함께 온 함 패트릭(54) 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는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석탄화력발전소를 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중단을 요구하며 단식투쟁 중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을 만나 격려하는 성원기 공동대표 등 삼척도보순례단. ⓒ 강훈 고성욱

탈석탄 시민단체 ‘석탄을넘어서’가 주관한 ‘탈석탄·탈송전탑 희망 국토도보순례’는 지난 4일 삼척도보순례단을 시작으로 경남·충남·인천 등 국내 석탄발전소 주요 소재지에서 릴레이로 진행됐다. 지난 28일 오전 11시 도보순례단은 서울 세종로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광장에 도착, ‘전국 석탄발전지역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청와대에 엽서를 전달한 이유’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석탄을 넘어서’ 회원들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완기 인천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국장, 이수빈·이선진 녹색법률센터활동가,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 성원기 강원도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 김춘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 조순형 충남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특별위원회 탈석탄팀장. ⓒ 고성욱

성원기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가 아니라면, 당장 포스코 삼척블루파워와 삼성물산의 강릉에코파워 사업을 중단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신속히 통과돼 석탄화력을 포기하는 사업자들의 전환 비용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 : 최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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