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정치와 종교’

▲ 신현우 PD

3년 전, ‘한국CLC’(Christian Life Community)라는 가톨릭 단체에서 진행하는 ‘목요신학강좌’를 들었다. 6주차 강의가 끝날 무렵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강사에게 질문했다.

“신부님들, 정치적인 이야기 좀 안 하시면 안 되나요?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는데, 기분 나빠요.”

그날 강의 주제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였다. 1년쯤 뒤, 동아리 선배한테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인가? 그거 성당 맞지? 야, 신부들 그렇게 정치색 드러내도 돼?”

성당에 다닌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선배는 나한테 화풀이를 했다. 기분이 상한 나는 궁금해졌다. ‘종교의 정치 참여는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 같은 성당 출신 신학생에게 물어봤다. 2년 뒤 사제가 될 그는 “정당 활동이나 선거 출마 같은 정치 활동은 안 되고, 사회 문제에 하느님의 시선으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명쾌한 답변은 아니었다. 가능한 정치 활동과 불가능한 정치 활동 사이에 애매한 사례가 떠올랐다.

정치에 참여한 종교가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많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 단체,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천주교, 최근에는 정권과 ‘맞서는’ 전광훈 목사까지. 올 봄 선종한 대구교구 이문희 대주교와 정진석 추기경은 보수 성향이어서 사회현실에 목소리를 내는 신부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과 문익환 목사는 민주화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 2017년 7월 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광장 내 퀴어축제 허용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에 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종교의 잣대만 내세운다면 다른 시민과 소통할 수 없다. ⓒ KBS

종교의 정치 참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떠올린 ‘종교의 정치 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할까’라는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종교의 정치 참여는 선을 그을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다. 종교가 정치에 참여할 때 지켜야할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보편적 언어로 말하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한 ‘하느님께 봉헌’은 시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표현만이 아니다. 창조론과 윤회 같은 교리 역시 종교와 종교인에게만 해당한다. 정치는 시민 모두의 영역이고, 종교만의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 둘째, ‘공통의 규칙 지키기’다.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에는 헌법과 법률 같은 규칙이 있다. 전광훈 목사처럼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로 규칙을 어길 수 없다.

셋째, ‘다양한 관점 인정하기’다. 천주교 교리에서 태아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는 진리가 아니다. 과학에서, 법학에서, 철학에서 관점에 따라 태아를 달리 정의할 수 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의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시작돼야 한다.

세 가지 사항은 종교에 공통으로 요구한다. ‘속세의 일에 참여하고 싶으면 속세의 규칙을 따르라’고. 종교의 잣대가 적용되는 건 종교의 일뿐이다. ‘동성애는 죄’라고 가르치는 교리가 교회 밖에서도 적용되는 건 아니다. 유일신 창조주가 있고, 모든 일을 신에게 감사드려야 하는 종교의 세계관을 고수하면 종교는 비종교인과 소통할 수 없다.

이는 종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분열의 정치’는 각자가 고수하는 세계관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여당의 ‘검찰개혁’과 야당의 ‘검찰개혁’이 다르고, 50대의 ‘공정’과 20대의 ‘공정’이 다르다. 언론개혁도 관점에 따라 다르다. 자기만의 관점을 고수하면 분열과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소통 없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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