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주원 기자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그렇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세상에 알린 후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는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됐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외교적 소실 상태에 놓여있으며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시작은 박정희 정부의 65년 한일기본조약이다. 1993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내놓았음에도, 한일기본조약이 발목을 잡았다. 95년에는 일본 정부가 ‘아시아 여성기금’을 만들어 해결을 꾀하면서도 정부 예산은 투입할 수 없다고 버텼다. 국가 범죄임을 인정하는 대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데 그쳤다. 시민들은 기금을 거부하고 끝없는 대일 투쟁에 들어갔다. 

한국 정부는 늘 수동적이었다. 결국,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일본 정부와 교섭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위헌임을 선언했다. 이후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굴욕 외교가 시작됐다. 당시 아베 정권과 위안부 문제를 두고 다투던 중,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에 2015년 갑작스럽게 이 문제에 합의를 해버렸다. 일본 정권은 또다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만 할 뿐 국가 범죄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합의로 그동안 거부했던 10억 엔도 받았다. 진정한 사과는 담기지 않은 또 하나의 굴욕적 합의였다. 문재인 정부는 해당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지난 1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했음에도 정부는 미온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해당 판결에 대해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할 뿐이었다. 당시 법원의 판결은 양측 정부의 외교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할머니들의 피해 보상을 위해선 사법적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취지였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니 법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한 것이다. 이어진 2차 소송에서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고 할머니들은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겠다는 말만 남겼다. 2차 판결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고, 일본 정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2차 소송' 재판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 연합뉴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최악이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재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새로 만드는 교과서를 통해 과거의 흔적을 지워나갈 뿐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항이 아닌 ‘관리해야 할’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할머니들이 개별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정부의 배임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더는 지체하지 않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밖에 없다.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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