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주제 ② 혐오표현

“언론이 혐오표현을 어떻게 전하는지에 따라 혐오에 관한 국민의 인식을 전적으로 좌우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국민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뜨거운 담론장이 되어야 하고, 언론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는지 항상 성찰해야 합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혐오표현, 언론은 확성기인가 필터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미디어가 혐오표현을 그대로 옮기거나 스스로 생산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가 지난 5월 12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저널리즘특강’을 하고 있다. 김 이사는 현재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윤재영

혐오표현, 나쁘다는 건 알아도 구분 막연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혐오표현 리포트>를 발간했다. 리포트에서는 혐오표현을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에게 모욕·비하·멸시·위협하거나 차별·폭력을 선전·선동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소수자가 갖는 속성으로 그 집단을 향한 차별을 더 공고히 하는 것이다.

김 이사는 소수자로 규정되지 않은 집단을 향한 차별도 혐오표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꼽았다. 사회적 소수자가 아니지만 이들을 향한 차별이 부정적 편견을 확산해 구체적인 적대 행동을 촉발하는 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반면 남성을 향한 ‘한남충’ 등의 언어는 혐오표현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남성은 소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는 혐오표현 범주에 넣기는 어렵지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부적절한 차별 언어라고 김 이사는 덧붙였다.

김 이사는 혐오표현을 다루는 언론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혐오표현에 관한 국민의 인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혐오표현을 전할 때 언론이 그저 화제의 말로 전하거나 찬반양론이 있다며 양비론을 펴는지, 이를 비판적으로 전달하는지에 따라 시민의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옮기기만 하면 언론은 혐오표현을 한 발화자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라며 “사실상 동의하는 것이고 나아가 위력만 더 키워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 속 혐오표현 차고 넘쳐

“주류 언론이 혐오표현을 막자고 나섰다면 이만큼 창궐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언론과 1인미디어에서 혐오표현을 담은 콘텐츠를 내놓는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미디어 속 혐오표현 가운데 대표적인 유형은 성차별적 표현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몇 언론사는 ‘노래방 살인녀’, ‘화장실녀’ 등 피해자를 자극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기자회견녀’다”라며 여성을 향한 언론의 혐오적 보도 방식을 비판했다. 김 이사는 “언론에서 ‘여대생’, ‘여교수’ 등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단어에도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며 “특히 ‘김치녀’ ‘된장녀’ 등 단어 뒤에 ‘~녀’를 붙여 만들어낸 용어는 혐오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자에게는 ‘노래방 살인남’이라고 말하지 않는 반면 여성의 사회적 소수자성을 부각하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보도도 많다. 김 이사는 2016년 전남 신안군 한 섬마을에서 초등학생 학부모 3명이 교사에게 억지로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사건을 꼽았다. 이때 채널A는 사건 발생 직전 술자리에 동석한 A씨의 말을 전하며 단독보도를 했는데, 가해자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그대로 옮겼다. A씨는 “바래다주면서 선생님 잘 잠그고 주무시라고 그랬는데도”라며 “그냥 열어주니까, 순간적으로 같이 술 먹다 우발적으로”라고 말하는 등 오히려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는 의미의 2차 가해 발언들을 했는데 그게 그대로 방송됐다. 김 이사는 “당시 모든 언론이 선정적인 보도에 몰두하면서 사실상 ‘공범’과도 같은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성차별적 인식에 더해 탈북 여성을 차별하는 보도도 있었다. <동아일보>는 2017년 한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젊은 탈북 여성 이모 씨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성인방송에 출연했다가 적발된 사례를 상세히 전했다. 이 사건으로 불구속 입건된 10명의 BJ 가운데 탈북 여성은 1명뿐이었는데, 보도에서는 ‘야방북녀’(야한 방송을 하는 탈북 여성)라는 자극적 신조어까지 덧붙이며 탈북 여성의 존재를 부각했다. 김 이사는 “탈북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강화할 수 있는 구성의 보도였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소수자들이 포함된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거나 흥미 위주의 선정적 접근으로 몰아가면 해당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만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 혐오는 더욱 심각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도를 넘어선 수준입니다.”

2018년 고양시 저유소 화재 당시 언론은 용의자 국적을 앞다퉈 공개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용의자가 저유소 인근에서 날린 풍등이 저유소 잔디밭에 떨어져 불이 났고, 불씨가 휘발유 탱크에서 새어 나온 가스에 붙어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은 사건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경찰 “고양 저유소 화재 관련 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긴급체포”’ 기사를 포함해 이어지는 보도에도 국적을 강조하는 제목을 붙였다.

김 이사는 “보복 범죄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용의자인 스리랑카인은 무서웠을 것”이라며 “범죄 혐의 사실은 소수자 관련 보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정적인 일은 어떤 소수자든 굳이 결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 이사는 “부정적인 사건에 소수자의 특성을 결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소수자 전체에게 혐오를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윤재영

김 이사는 각 소수자 집단을 향한 혐오라도 많은 소수자 단체가 연대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주민 단체나 성소수자 단체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보도에 분노하다가 다른 집단을 공격할 때는 조용하고 무감각해진다”며 “소수자 혐오 보도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 심각한 수준이니까 많은 단체들이 연대해서 성명을 내야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종사자 혐오표현 교육받아야

“혐오표현과 관련 범죄가 늘어나고 있지만, 언론이 혐오표현을 혐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게 원인 중 하나입니다. 기자들이 혐오표현의 배경과 맥락, 해악을 알아야 하는데 아예 모르기 때문에 생각을 못 하고 받아쓰는 거죠.”

인권위가 2018년 ‘혐오표현 예방·가이드라인 마련 실태조사’ 일환으로 언론사 기자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기자 가운데 93.2%가 혐오표현 판단 기준이나 처리 절차 관련 규정이 없다거나 잘 모른다고 답했다.

김 이사는 혐오표현에 관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인권위와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공동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 개념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계속 바뀐다”며 “인권보도준칙의 오래된 내용을 정교하게 개정·보완해서 기자, 피디(PD) 등 전체 미디어종사자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중국인 혐오를 겨냥한 보도가 나왔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월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 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이라는 제목을 붙인 르포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는 중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대림동시장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바닥에 침을 뱉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을 묘사했다. 김 이사는 “대림동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보일 법한 모습이었다”며 “중국인을 향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일부러 만들어낸 억지 보도”라고 비판했다.

인권위와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공동으로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은 “이주민에 대해 희박한 근거나 부정확한 추측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장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관련 실천요강에서는 범죄사건의 용의자 국적이나 민족을 부각하지 말라고 규정해 놓았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주의사항을 더욱 강조하는데 ‘독일언론협회 보도준칙’에서는 소수자 보호와 선입견 방지를 위해 범죄 용의자의 국적과 종교는 보도금지가 원칙이며, 공개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성소수자 보도, 편견 넘어 아웃팅까지

성소수자 관련 보도에서는 개인의 성적지향을 언론이 강제로 공개하는 ‘아웃팅’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로버트 할리) 씨는 경찰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석방됐다. 하일 씨는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느닷없이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사가 쏟아졌다. <뉴시스>는 기사 첫머리부터 하일 씨의 성적지향을 겨냥하는 보도를 했다.

‘몰몬교 신자로 알려진 방송인 하일 씨가 과거 마약투약이 의심되는 당시 동성행각까지 벌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몰몬교는 동성애를 부정하는 보수 성향의 종교로 불리운다. 하 씨의 경우 몰몬교 신자로 해당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마약과 동성애를 동시에 하는 등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김 이사는 “’동성 행각’이라는 말은 굳이 할 필요 없었다”며 “범죄행위를 본인이 인정했고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언론이 아웃팅을 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7일 <국민일보>는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기사로 확진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부각했고 다수 언론에서 ‘게이클럽’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썼다. <국민일보>는 9일 ‘”결국 터졌다”…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라는 기사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강하게 부추겼다.

김 이사는 “성소수자 인권침해도 문제지만, 방역에 큰 지장을 초래한 보도”라며 “성적지향을 공개하고 혐오를 부추긴 보도 때문에 당사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꺼려 방역에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모든 혐오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며 “외국인노동자나 성소수자를 향한 불안감이 깔려있는 가운데 ‘혐오 조장 기사’가 불안의 지점을 건드려 크게 키웠다”고 말했다.

▲ 김 이사는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언론이 혐오표현을 어떤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가는 중요하다”며 “언론이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윤재영

이렇듯 인권의식 향상에 앞장서야 할 미디어가 오히려 혐오표현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지난 1월 인권위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PD연합회 등 9개 미디어 단체와 공동으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어떠한 혐오표현도 반대한다는 원칙에 따라 혐오표현에 대항하기 위한 미디어 종사자들의 실천사항이 담겨 있다.

플랫폼 스스로 혐오표현 관리해야

김 이사는 유튜브, 페이스북, 네이버 등 플랫폼에서 혐오표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자체 규정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혐오표현의 근거가 사실이든 허위조작 정보이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정부의 규제는 언론탄압으로 악용되거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옥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업체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혐오표현을 한 언론사에 강한 벌점을 부과해 언론사들이 자정 노력을 기울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별로 가이드라인을 다르게 적용하는 유튜브에 관해서는 “독일 등에서는 혐오표현에 대응하지만 국내에서 손 놓고 있는 이유는 관련 제도가 없어서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을 마련하고, 우리의 정보주권을 근거로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이 혐오표현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 윤재영

강연을 마친 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온상이 됐던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 관한 보도는 혐오가 아니었는지 묻는 김지연(27) 씨의 질문에 김 이사는 “신천지가 바람직한 종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신천지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면 몰라도 근거 없이 비아냥대거나 악마화한 보도는 잘못됐다”고 답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는 그 나름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학기 [저널리즘 특강]은 김언경, 김양순, 곽윤섭, 정연주, 강진구, 고경태, 민경중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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