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사고 9년] (상) 그린피스 조사 결과와 건강피해 현황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원전사고 9년을 맞은 일본 후쿠시마를 현지 조사한 후 ‘심각한 재오염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벨기에, 일본, 한국 등 다국적 방사선 방호 전문가들로 구성된 그린피스팀은 지난해 10월과 11월 3주에 걸쳐 현지에서 방사선 측정 등 종합적 실태조사를 벌인 후 지난 3월 ‘2020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의 확산: 기상 영향과 재오염’ 보고서를 발표했다. <단비뉴스>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전문가 인터뷰와 분야별 자료를 보강, 후쿠시마의 오염 실상과 우리의 안전에 미치는 위협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노심용융(멜트다운)’에 따른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그린피스는 정기적으로 현지의 방사성 오염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는 숀 버니(독일), 얀 반데푸트(벨기에), 마이 스즈키(일본) 등 다국적 전문가 10여 명이 2019년 10월 태풍 하기비스 피해 이후 3주간 현지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태풍 하기비스로 일본 후쿠시마 산림 지대 방사성 오염물질이 평지로 이동해 고준위 방사성 세슘이 도로, 주택 등으로 퍼져나가는 등 재오염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정부가 ‘피난 지시’를 해제해 주민들의 귀환을 종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시민단체 등은 후쿠시마에서 소아갑상선암이 급증하는 등 건강피해가 본격화하는 것과 이주노동자들이 방사능 제염 작업에 집중 동원되면서 피폭되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산림에 쌓여있던 방사성 물질 쓸려 내려와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이 일본 후쿠시마현 나미에의 ‘귀환곤란구역’에서 방사선 측정 등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린피스는 산림에 쌓여있던 방사성 오염 물질이 평지로 이동해 재오염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 그린피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 인근지역 공공도로에서 20미터(m) 범위 내에 있는 수목과 토양을 일정부분 제거하는 제염작업을 광범위하게 실시했다. 그러나 후쿠시마현의 70%를 차지하는 산림지역은 손을 대지 못했다. 그래서 폭우나 태풍 등으로 방사성 물질이 씻겨 내려가면 먼지나 흙에 섞여 하천 등지로 이동하고, 결국 태평양으로 유입되는 방사성 퇴적물도 증가할 것으로 우려됐다. 그린피스 조사팀은 지난해 10월 조사에서 후쿠시마 나미에 지역 칸노 씨 집 등 산림지대 측정구역에서는 방사선 수치가 감소하고 평지에서는 오염이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2017년 3월 피난 지시를 해제하고 주민 귀환을 지시한 나미에와 이타테의 피난지시 해제지역의 경우도 이번 조사에서 방사선 수치가 여전히 높게 나타났다. 나미에 마을에서 조사한 5581곳 중 제방과 도로 지역의 99%가 일본 정부의 장기 제염 목표치인 0.23μSv/h(시간당마이크로시버트)를 웃돌았다. 이곳의 평균 선량은 0.8μSv/h, 최댓값은 1.7μSv/h로 사고 이전보다 20배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타테 마을에서는 총 3651개 지점에서 수치를 측정했는데, 이 중 96%에서 측정치가 0.23μSv/h을 넘었다.

일본 정부는 태풍 하비기스 이후로 후쿠시마 내 방사능 측정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NCR)는 일본 전지역에서 1m 높이로 방사능을 측정하고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해 왔는데, 지난 10일 NRC 정기보고서는 “태풍 때문에 모니터링 포스트(측정 장치)가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방사능 기준치로 주민 귀환 종용 

방사선량 국제기준을 정하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선량을 1mSv/y(연간 1 밀리시버트)로 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이 기준을 적용해 왔으나 후쿠시마현 방사능 오염이 심화하자 2012년 4월 연간 한도 선량을 20mSv/y로 20배나 높였다. 그리고 후쿠시마현 내에서 연간 적산선량(사람이 방사능에 노출되는 동안 몸에 흡수되는 에너지의 총량)이 50mSv/y를 초과하는 곳을 ‘귀환곤란구역’, 20mSv/y초과 50mSv/y이하까지인 곳을 ‘거주제한구역’, 20mSv/y이하인 곳을 ‘피난 지시 해제 준비구역’과 ‘피난 지시 해제 구역’으로 나누었다.

일본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피폭 한도선량을 정한 뒤  성급하게 피난 해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인체가 방사선에 노출되면 백혈병, 림프종과 같은 비고형암(혈액암)과 간암, 폐암, 유방암 등 고형암에 걸릴 가능성이 피폭량에 비례해서 높아진다. 아무리 적은 방사선량도 사람에 따라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 반경 20킬로미터(km)권역 내 주민들에게 피난 지시를 내렸다가 2015년 6월부터 단계적으로 피난 지시 구역을 해제하고 있다. ⓒ 일본 후쿠시마현청

국내에서 방사능 오염 감시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최경숙 활동가는 지난 13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적어도 반경 30km까지는 피난 지시를 내리고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라면 후쿠시마를 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30km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소련 정부가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한 기준이다.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원전사고 후 소아갑상선암 약 70배 증가 

원전사고 영향으로 후쿠시마 주민들의 건강피해도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구성한 ‘후쿠시마현민 건강조사 검토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2월 현재 후쿠시마현 내 소아갑상선암 환자는 악성 의심환자(암으로 의심되는 환자)를 포함해 공식적으로 236명이다. 이들 중 소아갑상선암으로 수술까지 한 환자는 186명이다. 소아갑상선암은 희귀질병이라 1년에 10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 후쿠시마 어린이 인구가 35만 명이니, 대략 3년에 1명꼴로 발생하는 것이 평균치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전사고 후 후쿠시마의 소아갑상선암 발생률은 평균치보다 최소 62배(수술환자기준)에서 최대 78배(의심환자포함)까지 증가한 셈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5년 이후 어린이 갑상선암환자도 발병빈도가 지역에 따라 사고이전 기준 30~100배 증가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18년 미국소아과학회 발표 논문에서 어린이들은 갑상선, 골수, 유방, 뇌 등의 조직이 성인보다 방사선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암 발생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비영리단체 ‘3.11 갑상선암 어린이기금’은 2018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재의 검진 체계로는 원전사고 당시 후쿠시마현에 살았던 어린이들의 갑상선암 사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며 더 많은 환자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어린이기금에 따르면 사고 당시 후쿠시마에 있었던 모든 어린이를 추적하지 않았고, 피난민에 대해서도 추적을 하지 않고 있다. 또 갑상선암 검사 외에 다른 질병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출신 등 이주노동자 방사능 피폭 무방비 

지난 9년 동안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흙을 긁어내는 등 제염작업에 동원된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피해와 인권 침해도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그린피스가 발간한 ‘후쿠시마 원전 재앙의 최전선: 노동자와 아이들의 방사선 위험 및 인권 침해’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노동자들이 충분한 보호 장구도 없이 장시간 제염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 오쿠마 지역에서 제염 노동자들이 방사능 오염토를 한 곳에 모아두고 있다. ⓒ 그린피스

베트남출신 제염노동자들이 일본인의 절반도 안 되는 일당(약 6만 4천원)을 받고 일하다 방사능에 피폭돼 건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2019년 9월 KBS 뉴스에 보도된 베트남 노동자 곤 씨의 사례를 보면 일본 이와테현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에 고용된 그는 후쿠시마 원전 인근 나미에 마을에서 방사능 오염토를 긁어내는 작업을 2달 가량 한 후 방광에 이상을 느꼈다. 병원을 찾은 그는 내부 피폭 진단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이주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 ‘귀환곤란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제염 작업을 중지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오히려 '특정 기능'이라는 자격을 신설, 외국인 노동자라도 방사능 관련 작업에 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특정 기능’ 비자는 지난해 4월에 도입된 취업 비자로, 기술 시험을 거친 외국인을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다. 이로서 연간 8000여 명의 건설 부문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염작업에 합법적으로 투입될 수 있게 됐다.

민간단체인 에너지전환포럼의 전용조 연구원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제염작업이 방대한 지역에서 이뤄지는데, 작업자가 피폭되지 않도록 여건을 갖추려면 비용이 드니까 손쉽게 이주노동자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피폭이 되는 반면, 일본 정부에서 수주를 받은 건설사는 제염사업으로 폭리를 취한다”고 말했다. 토사를 (비닐 등으로 덮어서) 그대로 놔두면 태풍 등으로 훼손이 되고, 그러면 건설사들 일이 더 생겨 돈벌이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국민 안전’ 외면하고 정보 은폐하는 일본 정부 

그린피스 조사 결과 원전 인근 마을 대부분에서 위협적인 방사선 수치가 확인됐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 3월부터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후타바마치 지역 중 ‘귀환곤란구역’인 후타바역 부근의 피난 지시를 해제하는 등 주민 귀환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피난 주민에게 지급하던 보조금(성인 한 명당 월 94만원)도 2018년 3월부터 중단했다.

▲ 피난지역을 해제한 후쿠시마면 이타테, 오쿠마, 나미에 마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위치. 오쿠마 마을은 원전과 거리가 5km도 채 안 된다. ⓒ 구글 어스

후쿠시마현에 따르면 원전사고 직후 16만 명이 긴급 대피한 이후, 2019년 기준 피난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주민은 4만 3천여 명이다. 하지만 피난 지시가 해제된 지역으로 돌아간 주민들의 비율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평균 15퍼센트, 적을 경우에는 3~4%대에 머물고 있다. 피난 보조금이 끊겨 별다른 생계대책이 없는 주민들만 어쩔 수 없이 귀환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후 방사능 피폭으로 질병이 증가했다는 것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후쿠시마에서 소아암환자가 급증한 것이 원전의 방사능 물질 탓이라는 근거가 없으며 ‘과잉 진단’ 등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진상이 알려질 경우 일본 국민들이 겪게 될 공포(패닉)와 그로 인한 경제적 타격,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 개최 등에 차질이 생길 것 등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익중 전 동국대 의대교수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갑상선암뿐 아니고, 역학조사를 제대로 해서 원전사고 때문에 어떤 암이 얼마나 생기는지 조사하면 피해자에게 도쿄전력이나 정부가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그럴 돈이 없다”고 말했다. 뒷감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정을 안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원자력(발전)을 할지말지는 정부가 결정했는데, 사고가 난 다음에 피해는 그 결정에 참여하지도 못했던 국민들이 받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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