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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은 세상 보는 눈이 다르다
[인문교양특강] 이주헌 미술평론가
주제 ① 서양 미술의 이해
2021년 03월 03일 (수) 21:06:47 이성현 PD 이정헌 이복림 기자 forever22mu@naver.com

우리 눈은 끊임없이 착각한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여겨지는 눈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배경∙초점∙선입견이 다르면 보는 것도 다르다. 절대 음감은 있어도 절대 시각은 없는 이유다. 착시효과가 대표적이다. 수십 권의 책과 강연을 통해 미술 대중화에 앞장서온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내가 보는 대로 남들도 볼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미술 분야에선 하나의 시각으로 사람을 모으려 하지 않는다”며 “하나의 시각만이 정답이라면 그것은 유일한 오답”이라고 지적했다.

   
▲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지난 11월 13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서양 미술의 이해’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 이성현

서양 미술의 세 가지 특징

   
▲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틴토렌토의 ‘은하수의 기원’에는 인간중심적, 사실적, 감각적인 서양 미술의 특징들이 잘 드러난다.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주헌 평론가는 “’은하수의 기원’에선 신들조차 인간 형상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내용도 신이 바람을 피운 이야기다. 서양 미술은 형식과 주제에서 인간 중심적이고 친화적인 특징을 담고 있다. 인간사를 담고 있는 역사화가 가장 높은 수준의 회화로 평가된다. 17세기 프랑스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는 회화의 위계를 역사화, 초상화, 동물화, 풍경화, 정물화 순으로 매겼다. 이 평론가는 “우리나라는 서양처럼 이렇게 위계를 나눈 적이 없다”며 “일반적으로 동양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산수화”라고 설명했다. 산수화와 비교될 수 있는 서양의 회화 장르는 풍경화다. 풍경화는 위계상 네 번째다. 서양은 인간 중심, 동양은 자연 중심의 시각을 가졌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은 서양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제일 눈에 들어오는 건 전라의 여인 헤라와 그를 향해 다가오는 제우스다. 가운데 아이와 주위를 둘러싼 네 명의 큐피드도 보인다. 이 아이는 바로 헤라클레스다. 제우스는 헤라를 두고, 아르키메데스와 바람을 피워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헤라는 이 아이를 죽이려고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초인적인 힘으로 번번이 실패한다. 이 상황에서도 간 큰 제우스는 헤라가 잠든 틈을 타서 아내의 젖을 물린다. 천하장사 헤라클래스가 강하게 젖을 빨자 헤라의 젖이 분수처럼 퍼져 나와 은하수를 이룬다.

서양미술은 사실적이다. ‘은하수의 기원’에서는 동쪽에서 비추는 햇빛과 제우스의 그림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양의 빛은 제우스의 등 뒤로 떨어지고 헤라의 몸에는 제우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다뤄, 명암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동양의 그림과 대조되는 특징이다. 우리나라 화가들은 그림자를 그려 넣지 않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대표 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에도 그림자가 있는 인물은 드물다. 이 평론가는 “우리 조상들은 눈에 보이는 외양의 사실적 표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본질의 진실한 표현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서양 미술은 감각적이다. 다양하고 화사한 색조를 사용한다. 헤라의 피부는 비단결처럼 곱고, 제우스의 등은 탄탄하게 느껴진다. 아기들 살결에서는 포동포동함이 느껴지고, 침대에 덧씌운 천에서는 부드러움과 까칠함이 다르게 느껴진다. 게다가 나체인 신의 모습은 그림을 더욱 관능적으로 보이게 한다. 서양에서는 남녀노소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나체화가 예술로 발전했다. 감각을 즐기는 것을 중시한 문화적 결과다.

인간 중심적인 ‘칼레의 시민’

   
▲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14세기 백년전쟁 때 칼레를 구한 숭고한 영웅들을 기념한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 이주헌

서양 미술에서는 사람의 심리를 생생하게 표현한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상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백년전쟁이다. 1346년 북부 프랑스 크레시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항구 도시인 ‘칼레’로 쳐들어갔다. 칼레의 시민들은 11개월간 영국군에 저항하지만, 결국 항복했다. 분노한 영국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 모두를 죽이려다가, 부인 등의 조언으로 한 가지 조건을 건다. 모든 칼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고 싶으면, 칼레 대표 6인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6명의 자원자가 나섰다. ‘칼레의 시민’ 조각상은 이들 개인의 심리와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 로댕은 칼레의 여섯 영웅들의 몸짓, 표정을 통해, 탁월한 캐릭터 묘사를 했다. 윗줄 외스타슈, 장 데르, 피에르 드 위상, 아랫줄 장 드 핀네, 자크 드 위상, 앙드리외 당드레. ⓒ 이주헌

가장 첫 번째 나선 사람은, ‘외스타슈’다. 그는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었다. 그는 ‘우리가 싸움에서 진 것이지, 우리의 얼과 넋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라며 “자원해서, 떳떳하게 죽자”고 나선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는 강한 신념과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의 손은 반쯤 풀려 있다. ‘당당하게 죽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허망한 마음이 드러난다. 그 옆에 먼 곳을 응시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인물은 법률가 ‘장 데르’인데 근엄한 표정에서 결의가 엿보인다. 하지만 그의 손은 성문 열쇠를 힘주어 쥐고 있다. 성문 열쇠를 적에게 건네 줘야 하기에 자괴감과 울분이 생기는 것이다.

존경받는 사업가 ‘피에르 드 위상’은 뒷사람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뒤돌아보지 말아라, 혹시 사랑하는 가족과 눈이 마주치면, 다신 발걸음을 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가족과 이별을 감내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부각한다. 하지만 칼레 시장 ‘장 드 핀네’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넋이 나간 표정을 한 그는, 마치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다. ‘자크 드 위상’은 머리에 손을 가져가며, 전쟁과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청년 ‘앙드리외 당드레’가 있다. 이른 죽음 앞에서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같은 죽음에 직면해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갈등이나 고통은 제각각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

이주헌 평론가는 작품에서 인간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고 말했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인물의 정서가 각각의 조각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서양 미술은 인간의 이야기와 희로애락, 인간의 고통과 성취, 인간의 조건 등을 담고있다. 표정이나, 인상, 내면심리 표현이 간접적인 우리의 전통 회화에서는 찾기 힘든 요소다. 이주헌 평론가는 “바로 이런 요소가, 서양 미술이 인간 자체에 집중한 미술이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했다는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그리스에서 ‘사실주의’가 발달한 이유

고대 그리스에서 사실주의가 발달한 배경에는 논쟁을 중시하는 문명, 그리고 이와 함께 발전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정치는 ‘폴리스적’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공동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며 직접 정치를 하는 체제를 뜻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외부인을 일컫는 ‘야만인(Barbarian)’과 그리스어를 쓰는 자신들이 다르다는 맥락에서 ‘폴리스적’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토론과 논쟁을 거쳐 집단의 의사 결정을 내렸고, 논쟁을 하다 보면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에 근거해 이야기하게 된다. 또 이러한 논쟁이 발달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존중한 고대 그리스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주헌 평론가는 “논쟁은 주의와 주장의 모순을 금세 드러낸다”며 “미술도 비판받고 수정하는 끝없는 과정 속에서 사실 표현을 고도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진화와 진보가 그렇게 일어나고, 점점 사실에 가까워진다”며 사실주의가 발달하게 된 다른 배경으로 고대 그리스의 ‘현세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면’을 꼽았다. 그는 “그리스에선 정치가 사회규범의 최후 보루”라며, 그리스 신화에 ‘악마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집단의 정치적 의사는 폴리스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현세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 선택에는 종교적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국외로 추방할 인물은 매년 시민들이 ‘패각 투표’를 통해 결정했고, 철학자 소크라테스 재판도 ‘수많은 시민이 모여 결정하는 ‘배심원 재판제’로 이루어졌다. 이런 현실 정치적인 면모들이 고대 그리스의 미술을 사실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여신을 모신 파르테논 신전. 지중해 고대 문명에서 ‘Eleuteria’, 곧 개인의 자유를 뜻하는 단어를 가진 지역은 그리스가 유일했다. ⓒ 이주헌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 부흥하던 사실주의는 중세 1천년 동안 서양 미술에서 사라지게 된다. 성인과 순교자나 성경이나 교리의 내용을 소재로 그린 중세기 성화인 ‘이콘’(Icon)을 보면, 인물의 그림자는 없고 공간의 사실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이 평론가는 “신 중심의 중세 기독교 사회에선 그리스적 사실 표현이 많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런 미술의 흐름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주의로 회귀하려는 휴머니즘이 발흥한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고대 그리스적인 사실주의가 부활한다.

당시 대표적인 그림으로 17세기 화가인 카라바조(본명: 미켈란젤로 메르시)의 ‘의심하는 도마’가 있다. 부활한 예수가 자신을 의심하는 도마(예수의 제자)의 손을 잡아 끌어,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를 직접 만지게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흔히 성화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머리 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둥근 빛, 후광이 없다. 예수의 가난한 제자들은 옷이 헤졌고, 거친 노동에 손톱에는 때가 잔뜩 끼어 있다. 예수의 옆구리 상처 속에 손가락을 넣은 도마의 놀란 표정과 이마의 주름은 더욱 사실적이다. 이 평론가는 “인간적으로,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의식이 발달하면서 그림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예수의 가난한 제자들은 옷이 헤졌고 손톱에 때가 잔뜩 끼어 있다. ⓒ 포츠담 상수시 궁전 소장

오늘날 사실주의는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한 미술 양식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주헌 평론가는 그 배경에는 자연 속에 이미 사실주의가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나뭇잎 나비’는 나뭇잎 모양과 색상의 날개를 갖고 있는데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나뭇가지와 똑같이 생긴 자벌레는 뒷발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곧게 뻗어 자신을 위장한다. 그는 “사실주의의 기본은 눈을 속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며 “자연에도 존재했고, 서양미술에도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주의는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기법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동양 미술, 사실을 넘어선 그림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사실주의 미술’이 발달하지 않은 걸까? 이주헌 평론가는 동양에서는 “사실을 그리는 것보다는 본질을 그리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가 예들 든 작품은 조선 말엽 화가 전기(田琦)가 그린 ‘계산포무도’이다. 이 산수화에는 색깔이 없다. 화폭에 그려지지 않은 하늘은 산을 보고 짐작하게 된다. 그림의 정 중앙에 아무 것도 없지만, 갈대와 집이 선으로 그어져 있어, 흐르는 강이나 냇물을 상상하게 된다. 이 평론가는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것”이라며 “사실을 넘어서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양이 주목한 본질은 ‘물아일체와 기운생동’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와 자연이 품고 있는 기(氣)와 운(韻)을 그리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에너지와 리듬’이다. 이주헌 평론가는 난해한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언젠가 다 사라지는, 눈에 보이는 물체는 진짜가 아니에요. 진정 존재하는 것은 이것들을 생겨나게 했다가 사라지게 했다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기(氣)와 운(韻), 에너지와 리듬입니다.”

   
▲ 조선시대 화가 전기의 ‘계산포무도’. 간결한 붓 솜씨가 특징이지만 자연을 화폭에 모두 이루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양의 사실주의와 대비되는 동양 미술의 표현 양식 역시 문화적 결과물이다. 이 평론가는 “동양화의 핵심적인 표현 형식은 관계의, 관계에 의한, 관계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뜻하는 ‘인(人)’은 사람이 기댄 형상이고, ‘인간(人間)’은 사이 간(間) 자를 쓴다. 사람을 관계 속의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 평론가는 동양의 인식관이 ‘모든 게 이어진 네트워크’라고 풀어 설명했다.

서양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중시하고, 동양은 존재를 관계에서 바라본다. 1인칭 시점을 강조한 서양은 ‘투시원근법’을 발견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중시한다. 반면 동양은 제3자 시점에서 바라보며 겸손한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양은 물체를 해부하듯이 바라보고, 동양은 대상과의 물아일체를 지향한다. 개인을 강조하는 서양에서는 ‘감각’을 발달시켰지만, 동양에서는 감각을 추구하는 행위가 허상을 탐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주헌 평론가는 “우리는 감각을 억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찾은 반면, 서양은 감각이 주는 쾌를 추구하는 문화를 발달시켜왔다”고 말했다. 미술 표현 양식에서 나타나는 동서양의 차이는 인간에 관한 이해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등 본질적인 다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홍종호 이상수 강유정 이주헌 허효정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조한주 기자 

[이성현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소셜전략팀 이성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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