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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 아닌 ‘순환’ 논리로 세상을 보다
[인문교양특강II] 이상수 철학박사
주제 ① 주역을 통해 본 동아시아의 사유 방식
2021년 02월 02일 (화) 12:59:06 박서정 PD, 조한주 기자 outsidebox94@gmail.com

“여기서 주역을 읽어 보신 분 있나요? 없죠.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놀랐을 겁니다. 주역 공부하다 보면 점쳐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은데…, 맞아요. 점치는 법에 관한 책이죠. 하지만 전 주역 편찬한 사람들이 중국 최초의 인문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수 동양철학박사는 지난 10월 23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주역을 통해 본 동아시아의 사유 방식’에 관해 강연했다. 그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에서 <주역>을 연구해 석사학위, 제자백가의 논리철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했고, 웅진씽크빅 중국법인장을 지냈다. 지금은 강연과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이 박사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담긴 동양사상을 첫 번째 주제로 강연했다.

   
▲ 이상수 박사는 대다수 한국인의 사고 방식은 동아시아 전통적 사고보다 서양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 조한주

갑골점에서 시작한 동양사상

이 박사는 주역을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 역사와 갑골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1899년 고문자(古文字)를 연구하던 왕이룽이 학질에 걸려 중의원(中醫院)을 찾아갔다. 의원이 약재라며 거북이 껍데기 조각을 갈아 먹으라고 줬는데, 자세히 보니 글씨가 보였다. 거북이 껍데기를 찾은 중국 허난성 안양 샤오툰춘으로 달려갔더니, 노천갱처럼 껍데기가 무더기로 있었다. 그 껍데기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인 갑골문이 쓰여 있었다.

   
▲ 중국 은허 유역에서 발견된 갑골. ⓒ Baidu

유물이 발견된 중국 고대 국가 중 가장 오래된 상나라 사람들은 약 700년 동안 갑골점을 쳤다. 국가의 주요 대소사를 거북이 껍데기가 갈라지는 모습을 통해 점쳤다. 전쟁, 농업, 결혼, 제사 등 국가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모두 갑골점으로 알아봤다. 거북이 배에 점칠 내용을 긍정∙부정 의문문으로 새겼다. 이를 불에 구우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데, 그 모양새를 보고 길흉(吉凶)을 판단했다.

깔끔하게 딱 갈라지면 길한 것이었고 잔금이 많아 지리멸렬하게 갈라지면 흉한 것이었다. 이 갈라진 모양에서 ‘점 복’(卜) 자가 나왔고, 점(卜)을 본다(見)는 의미로 점치는 사람을 정인(貞人)이라 불렀다. 이 갑골점과 정인에 동아시아적 사유방식의 중요한 단서가 있다. 점이 맞지 않았을 때 정인이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낸 것들이 동아시아적 사유방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점이 맞지 않으면 정인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전쟁에서 이길 거라고 점을 쳤는데 전쟁에서 졌다면? 정인은 뭐라고 핑계를 대야 했을까요? 두 가지가 있죠. ‘원래 이길 전쟁이었는데 왕의 덕이 부족했다’는 것과 ‘지금은 졌지만, 이것이 나중에 도리어 복이 될 것이다’라는 것. 이게 주역의 바탕입니다.”

정인은 길흉의 주관적 요인은 임금의 덕이며, 객관적 요인은 ‘상반상성’(相半相成)과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봤다. 이 박사는 “임금 덕을 탓하는 것에서 유가 사상이 나왔고, 재앙과 복이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유 방식에서 도가 사상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노자>가 <주역> 사상을 가장 많이 발현하고 있는 고전이라며 ‘화는 복이 기대고 있는 곳이며 복은 화가 기대고 있는 곳이다’라는 <노자>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왕과 귀족이 독점한 점에서 대중의 점으로

이 박사는 <주역>의 등장이 곧 점의 개혁이었다고 평했다. 정인이 길흉의 객관적 요인이라고 했던 ‘상반상성’과 ‘물극필반’을 책으로 정리한 게 <주역>인데, 점치는 방법이 책으로 나와 상류층만의 점에서 대중의 점이 됐다는 것이다.

“원래 갑골점은 왕만 치게 할 수 있었어요. <주역>은 책이 있고 공부만 하면 누구나 칠 수 있죠. 조선 선비들도 <주역>을 공부하며 점을 쳤고, 자기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죠.”

주역이 나오고 거북이 껍데기가 터지는 걸 직접 봐야만 점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셈을 하면 점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 점괘 ‘경우의 수’가 총 384가지가 나오는데, 이를 두고 풀이하면 된다.

   
▲ 이 박사는 “주역에 ‘절대’라는 건 없다”며, “‘네가 어떻다면 길하다’와 같은 조건절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대체로 다 맞는 편”이라고 말했다. ⓒ 박서정

우열 아닌 순환의 논리 ‘상반상성’

<주역>은 기본적으로 음료와 양호로 이뤄져 있다. 남녀, 산곡(山谷) 등 우주 모든 사물은 음성과 양성으로 나뉜다고 본 것이다. 대부분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이분법적 구조다. 차이점은 음양 세계관에 음양 사이 우열이 없다는 점이다. 신과 악마 등 대부분 하나가 긍정적이면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데, 음양은 하나만 선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음양 사이에 가치가 평등하다는 게 주역의 핵심이자 동아시아적 사유 방식의 뿌리다.

‘지금은 졌지만 도리어 복이 될 것’이라는 정인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무평불피’(无平不陂) ‘무왕불복’(无往不復), 즉 ‘평평하기만 하고 비탈지지 않은 땅은 없으며,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이 박사는 “세상에 바뀌는 건 없으며,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를 이루기도 한다는 상반상성의 원리가 오늘 주역 강연의 첫 번째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내용 때문에 주역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 고전론과 양자론을 결합한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개인 문장에 태극 문양을 넣을 정도로 <주역>에 심취했다. ⓒ 이상수

많은 서양 지식인들도 <주역>을 읽고 영향을 받았는데, 양자역학에서도 주역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양자 역학의 아버지’ 중 하나인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빛의 특성과 원자의 구성을 설명하는 ‘상보성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는’ 음양 원리를 바탕으로, 빛이 파동과 입자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성질을 가지면서 두 가지 성질이 따로 나타나는 이중성의 공존으로 이론을 전개했다. 양성자나 전자같이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보이는 이중성도 이 원리로 설명되어, 상보성 이론은 양자역학의 기반이 됐다.

‘물극필반’의 돌고 도는 순리

이 박사가 두 번째로 설명한 주역의 핵심 원리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다. 어떤 사물이든 그 기운이 극에 이르면 반대의 성질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이 원리는 ‘인생만사 새옹지마’처럼 돌고 도는 길흉회린(吉凶悔吝) 현상을 설명하는 규칙이다.

   
▲ 어려움이 닥치면 흉한 일이 생기고, 흉을 맞아 반성하고 노력하면 뉘우치게 된다. 뉘우치면 길해지지만, 길해졌다고 자만하면 다시 어려워지는 길흉회린(吉凶悔吝)의 순환을 겪게 된다. ⓒ 이상수

“원래 제가 (한겨레) 문화부 출판 담당 기자를 했어요. 매주 신간이 하도 많이 와서 돈을 세듯 책을 세었죠. 그중 보도할 가치가 있는 책을 골라내는 게 제 일이었어요. 하루는 나라만신 김만금의 에세이집이 온 거예요. 제가 나라만신을 찾아가서 ‘딱 보면 보이시냐’고 여쭈니까, ‘만신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 아녀, 너무 힘들어서 꺾여 오면 위로해주고 너무 잘 나가서 뻣뻣하게 오는 사람은 기 꺾어주는 게 만신의 일’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주역도 같아요.“

태극기 건곤감리의 비밀

   
▲ 팔괘의 구성표. 괘 숫자가 짝수면 볕(양효), 홀수면 그늘(음효)로 분류한다. ⓒ 이상수

음과 양에 선악이나 우열이 없듯, 팔괘(八卦)도 모두 동등하며, 각각의 괘에는 고유한 미덕이 있다. 팔괘는 4원소설의 공기, 땅, 불, 흙을 각각 둘로 나눈 것이라고 보면 된다. 양효로만 이뤄진 건(乾)은 만물 위에 의기양양하게 떠 있는 하늘이며, 곤(坤)인 땅은 밑에서 받쳐주니 성질이 유순하다. 음이 양을 둘러싸고 있는 감(坎), 즉 물은 겉으로는 유순하나 태풍이나 홍수 때 보면 두려운 존재다. 불을 상징하는 리(離)는 감(坎)과 반대로, 양이 음을 감싸고 있는 형태다. 불은 겉은 냉정하게 타지만, 어딘가 기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한비자는 물보다 불같은 지도자가 문제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하늘이 밑으로 무너져서 내리는 게 바람이어서 건(乾)괘에서 맨 아래만 음이 손(巽)괘다. 산, 연못, 번개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에서 양 속에는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는 성질을 찾는다. 이것이 음양대대다.

   
▲ 이상수 박사가 칠판에 ‘용이 하늘로 오르면 후회할 일이 있다’는 ‘항용유회’(亢龍有悔)를 써놓고 건륭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건륭제에게 주역을 가르치던 이광지가 황제에게 미움을 살까 항용유회를 설명하지 않고 건너뛰려 하자, 건륭제는 그런 불길한 의미도 배워야 공부가 의미가 있다고 대답했다. ⓒ 박서정

2015년에는 ‘환경을 주제로 한 동서양의 만남’이란 전시회를 앞두고 예술가들이 ‘후쿠시마에 미래가 있는가’로 이 박사에게 점을 쳐 달라고 의뢰했다. 이 박사가 점을 치자, 박괘의 마지막 괘인 '산지박(山地剝)'이라는 괘가 나왔다. 아래로부터 5개 음효가 깎이고 깎이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후쿠시마의 현실을 말한다면 마지막 여섯 번째 양효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희망을 품은 괘이다. 이 박사는 64개 주역의 괘 중 가장 강력한 희망괘라 볼 수 있으므로 극한 상황에 처한 후쿠시마의 어려움을 소인배의 처신이 아닌 군자의 덕으로서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반드시 '행복한 섬’(후쿠시마)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해석해주었다. 이렇게 모든 괘가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순자는 “주역을 잘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사는 ‘상반상성’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상나라 삼현(三賢) 중 하나였던 기자가 (상나라를 뒤엎고 즉위한) 하나라 임금에게 조언했다는 ‘홍범구주’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점을 칠 때 임금께서 자기 마음에 먼저 물어보고, 대신들한테 물어보고, 백성들의 여론을 들어보고, 그래도 결정 못 하면 점을 치라고 조언해요.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먼저 자기 내면의 덕을 바라보고, 자기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 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홍종호 이상수 강유정 이주헌 허효정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유희태 PD

[박서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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