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㉒ 인천 가좌공단 코스모40

▲ 유튜브에서 로파이 채널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듣는 ‘Chilled Cow’의 실시간 로파이 음악. 기사 읽기 전 재생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들으면서 기사를 읽으면 분위기가 살아난다.

바쁜 일상을 끝내고 금요일 밤을 불태운 이들의 토요일 낮은 요즘 유행하는 로파이(lo-fi)와 같다. 로파이는 저음질(low-fidelity)의 약자로, 음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LP나 카셋트 테이프로 듣던 음악처럼 지직거리는 질감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힙합 장르다. 졸린 듯 누워있는 고양이가 미디움 템포에 맞춰 꼬리를 살랑거리는 듯하다. 공장이 모여 있는 공단지역인 인천 서구 가좌동도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인천지하철 2호선 가재울역 4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쭉 직진하면 주말인데도 나밖에 없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한적하다.

▲ 코스모40 앞 고철처리장에서 고철집게로 작업을 하는 모습이 울타리 너머로 보인다. ⓒ 조한주

로파이를 들으며 걸어본 폐공장 거리

대로를 걷다가 사거리로 접어들면 색깔의 변이가 눈에 띈다. 길 건너편은 공단의 먼지와 소음 등을 막기 위해 만든 가좌완충녹지공원이 있어 온통 녹색이고, 가재울역 4번 출구 쪽은 빛바랜 회색이다. 이어폰으로 로파이 채널 ‘Chilled Cow’의 음악을 들으며 700미터 정도 걸어 가면 어수선한 공단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갈색 벽과 대형 유리창 건물이 나타난다. 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 ‘COSMO40’이다. 고철을 매입해 부수어 파는 곳과 고무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흘러나오는 공장들 사이에 세련된 건물이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

▲ 기존 공장 건물을 ‘코스모40’으로 개조하면서 갈색 건자재로 마감했다. ⓒ 조한주

우주선 캡슐 같은 것 옆에 카페 테이블

넓은 주차장을 끼고 서있는 ‘코스모40’ 건물은 4층밖에 안 되지만 규모는 꽤 크다. 신축된 엘리베이터 타워가 붙어있고, 커다란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면 낡은 골강판(공장 등에서 벽이나 지붕으로 쓰는 물결 모양 철판 외장재)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봐서는 건물의 연식을 짐작하기 어렵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클럽에 들어온 것처럼 넓고 어두운 공간이 나타난다. 분명히 바닥과 조명은 요즘 제품들인데, 천장과 기둥, 벽은 낡고 녹슬어 오래 된 공장이었음을 말해준다. 요즘 유행하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디자인’이 이런 건가 싶다.

▲ 코스모40 1~2층 메인홀은 원래 전시나 공연, 파티 등을 하던 문화공간이지만 취재한 10월 중순에는 코로나19로 테이블과 소파만 놓여 있었다. ⓒ 조한주

전시나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는 1층과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면 낡은 구 건물과 신관이 만나 묘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펼쳐진다. 철제 프레임 사이로 어둡고 거친 공장의 흔적과 밝고 세련된 조명이 함께 어울려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다.

▲ 코스모40이 화학공장 시절 사용하던 배합기 옆에 카페 테이블이 놓여있다. 바로 위에서 쏘는 조명 덕에 마치 연극무대 같은 느낌이 든다. ⓒ 조한주

여기 저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널찍한 카페 한쪽 구석에는 우주선 캡슐처럼 생긴 노란색 전시품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원래 자외선차단제의 원료 등을 생산하던 ‘코스모화학’ 공장이었고, 그 전시품은 핵심장비 중 하나인 배합기였다.

티타늄으로 선크림 원료 만들던 화학공장

화장할 때 사용하는 자외선차단제 선크림은 자외선 차단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산화티타늄을 원료로 한 산란제를 발라 자외선이 피부에 닿기 전에 반사해 버리는 것이 물리적 방법이고, 파라아미노안식향산을 원료로 한 흡수제를 발라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변환시켜 차단하는 것이 화학적 방법이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이중 산란제를 이용하는 물리적 방식은 피부에 얇은 막 같은 걸 만들어 자외선을 차단하기 때문에 피부 안전도가 높아 아기도 사용할 수 있다. 갖고 있는 선크림에 이산화티타늄이나 티타늄옥사이드가 표시돼 있다면 무기 화합물 계열의 산란제형 자외선 차단제다. 이산화티타늄의 특징인 흰색 때문에 조금만 말라도 하얗게 보이는 ‘백탁 현상’이 생기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나노 수준으로 가공해 많이 개선됐다. 이 이산화티타늄을 만들던 곳이 바로 코스모화학이다.

▲ 이산화티타늄. ⓒ 코스모화학

코스모화학은 국내에서 이산화티타늄을 독점하다시피 양산하거나 판매하는 업체다. 이산화티타늄은 제조 방식에 따라 아나타형과 독일 크로노스의 루타일형으로 나뉜다. 코스모화학은 아나타형 이산화티타늄을 독점 생산∙판매하면서 루타일형은 국내 독점판매권을 갖고 있다. 국내 아나타형 이산화티타늄 시장에서 약 60%는 코스모화학이 생산·판매하고 나머지 40%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왔는데, 2019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품목에 들어갔을 때 ‘애국주’로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선크림의 원료인 이산화티타늄을 티타늄으로 만드는 것도 흥미롭다. 티타늄은 강철과 같은 강도를 지니면서 무게는 강철의 절반 정도밖에 안 돼 비행기나 골프채처럼 가볍고 질긴 물품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소재다.

자외선차단제 원료인 이산화티타늄은 가공 전의 티타늄 원석을 고온에서 산소와 반응시켜 만든다. 무색무취의 백색 가루로 아주 얇게 발라도 빛을 대부분 반사해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 아주 하얀 빛이 돌아 백색 안료로도 많이 쓰인다. 페인트를 발라 물체의 표면을 감추는 은폐율도 백색 안료 중 가장 높다.

공해로 밀려난 공장에 들어선 문화공간

일대는 원래 코스모화학 공장 건물이 45동이나 들어선 ‘공단’이었다. 1968년 한국지탄공업으로 출발해 회사명을 '한국티타늄공업' '코스모화학'으로 바꾸면서 규모가 커지고 환경오염 등으로 민원이 제기되자 울산 온산공단으로 옮겼고 2016년에는 가좌 공장 문을 닫았다. 대부분 건물은 철거됐지만, 정제플랜트였던 40번째 건물은 가좌동에 사는 심규보 씨와 서울 마포구에서 인더스트리얼 카페를 운영하는 성훈식 씨가 인수해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문화공간 코스모40으로 2018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 신관에서 구관을 바라본 모습. ⓒ 조한주
▲ 구관에서 신관을 바라본 모습. ⓒ 조한주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 내부는 큰 유리창으로 빗겨 드는 햇살 덕분에 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이 공장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골강판으로 둘러싸인 구관 사이에 있는 거대한 창으로 바깥을 내다보면 햇살과 공장, 녹색공원 등이 어우러져 코스모40만의 분위기가 연출된다.

▲ 3층 코스모라운지에서는 대형 유리창으로 통해 공장 건물과 고철 재가공 공장 등을 조망할 수 있다. ⓒ 조한주

골강판 벽을 등지고 음미하는 커피 향

코스모40 구관의 벽체는 철판이 물결 모양으로 구부러진 골강판이다. 골강판은 1829년 영국의 헨리 파머가 특허를 획득한 특이한 벽∙지붕재다. 18세기 후반 엄청난 양의 화물이 템즈 강을 통해 런던으로 들어오자 부두에 거대한 창고를 지으면서 튼튼하고 가벼운 지붕을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고안해낸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골판지 지붕을 두고 우아함, 단순함, 경제성을 높이 평가했는데, 어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가볍고 튼튼한 지붕'이라고 평가했다.

▲ 코스모40의 골강판 벽. ⓒ 조한주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도장기술과 아연도금의 발달로 색깔이 있는 골강판을 생산해 사용했다. 코스모40은 코스모화학 시절 사용하던 골강판 지붕과 벽을 그대로 남겨 사용하고 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묘미는 골강판 같은 독특한 공장 소재나 산업자재에서 나온다.

‘옛 것은 지키고 새 것은 더 새롭게’

코스모40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옛 건물이 신축 건물에 닿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오래된 콘크리트 기둥에 철제 빔을 덧대면서도 서로 닿지 않도록 해서, 대형 유리에 둘러싸인 외벽과 그 안의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공장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옛 것은 지키고 새 것은 더 새롭게’라는 코스모40의 건축 모토가 잘 배어나는 모습이다.

코스모40에는 곳곳에 옛 화학공장에서 쓰던 설비나 장비가 남아있다. 공장 1층 기계실로 사용하던 곳은 작은 전시실로 꾸며 놓았고, 3~4층 전기공급 제어실과 중앙관제센터 등은 공장 가동 당시 설비들을 보존해 두었다. 4층 천정에 달려 있는 호이스트(크레인)는 일부 보수를 해서 지금도 작동되고 있는데, 전시 작품의 설치를 돕거나 작품의 일부가 된다. 카페 홀 바닥에는 공장 가동 당시 기계를 떠받치던 받침돌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 코스모40 건물 4층 천장에 있는 호이스트. ‘안전제일’과 ‘10TON’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골강판 벽과 계단의 사선, 호이스트 아래 조형물 덕분에 호이스트 역시 예술품의 일부처럼 보인다. ⓒ 조한주

코스모화학의 핵심 설비였던 배합기와 화학원료 등을 담아 두던 곳들도 코스모40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2층과 3~4층은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한 층처럼 천장까지 시원하게 터서 층고가 8m를 넘는다. 1층 전시실에서는 지역 예술인과 영감을 나누는 프로그램인 강보라∙유림∙이소영 세 작가의 개인전이 11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셋 모두 재생과 공동체를 주제로 한 전시다.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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