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세상사 한쪽만 비추는 거울 ‘정파성’

지난해 12월 10일 아침, 신문을 펼쳐든 A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날 저녁 뉴스를 통해 ‘공정경제 3법’이 국회를 통과한 사실을 접했는데, 신문에는 ‘기업규제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이 모르는 ‘기업규제 3법’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사를 꼼꼼히 읽어봤지만, 아무리 봐도 방송에서 봤던 ‘공정경제 3법’과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 언론 소비자 어느 누구든 A씨가 될 수 있다. 두 방송 뉴스를 볼 경우, 두 개의 신문을 볼 경우도 A씨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른바 ‘경제 3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10일 <한겨레>의 1면에 실린 관련 기사의 제목은 “‘재계에 밀린’ 공정경제 3법 본회의 통과”였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1면에는 “브레이크 없는 거여 ’갈등 입법‘ 쏟아냈다”는 기사가 가장 크게 실렸다. 해당 기사에는 ‘기업규제 3법’이 통과됐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 지난해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한 경제 3법에 대해 중앙일보는 ‘기업규제 3법’으로, 경향신문은 ‘공정경제 3법’으로 표기했다. ⓒ 네이버 뉴스

경제 3법, 공정과 규제 사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경제 3법은 상법 일부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일컫는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대기업 경제력 집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과된 법안들이다.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는 이 법안들을 줄곧 ‘공정경제 3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해당 법안들에 대해 재계에서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며 비판해왔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상법 개정안 가운데 3% 룰이다. 이 규정은 기업이 이사를 선출할 때 함께 뽑던 감사위원을 따로 분리해서 선임하고, 그때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최대 3%로 제한하는 것이다. 재계는 해당 규정이 1주 1의결권을 보장하는 주식회사 제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더해 외국계 자본의 국내 회사 침투력이 강해져, 국내 회사가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부 언론은 ‘공정경제 3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의미에서 ‘기업규제 3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정파성에 따라 나뉜 보도 태도

‘공정경제 3법’과 ‘기업규제 3법’은 같은 내용의 법안이지만 앞서 확인한 것과 같이 언론사별로 사용하는 명칭과 법안에 대한 보도 태도는 달랐다. <중앙일보>의 경우, 재계에서 사용하는 ‘기업규제 3법’이라는 용어를 택했다. “완화됐다는 3%룰 반대 왜? 여전히 외국 투기자본 방어에 구멍”, “‘기업 3법’ 현실화에 경영계 분통…“기업이 실험 대상인가”“ 등, 경제 3법이 통과된 이후 보도된 <중앙일보>의 기사 중 해당 법안에 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반면, <한겨레>는 꾸준히 해당 법을 ‘공정경제 3법’이라고 표기했다. <한겨레>는 법이 통과되기 전에도 해당 법에 관해 우호적 입장을 담은 기사를 주로 내보냈으며, 법이 통과된 다음 날인 10일에는 ”‘공정경제 3법’에 반발하는 경영계, 염치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당사가 경제 3법에 관해 어떤 입장을 갖는지 명확히 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도할지 결정하는 정파성

언론사가 갖는 정파성이 경제 3법을 ‘공정경제’와 ‘기업규제’ 가운데 어느 쪽으로 규정할지를 가른다. 방송 3사(KBS, MBC, SBS), 종편 4사(TV조선, 채널A, JTBC, MBN), 6대 종합일간지(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 한국), 통신사(연합뉴스), 보도전문채널(YTN) 가운데 ‘기업규제 3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언론사는 <조선>, <중앙>, <동아>, <TV조선>의 4곳 뿐이었다. 통상 ‘보수 언론’으로 불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색채에 따라 언론의 경제 3법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달랐다. 이처럼 정파성은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 태도를 결정하며, 때로 특정 내용에 대한 보도를 소홀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매체 정파성과 성소수자 담론 텍스트 분석> 연구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성 소수자’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 수는 조선일보가 329개, 동아일보가 344개였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 1,109개와 1,340개로 앞의 두 언론사보다 월등히 많은 기사가 검색됐다. ‘퀴어 축제’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였다.

▲ 보수와 진보 언론의 성 소수자, 퀴어 축제 관련 기사 수 차이. ⓒ 「한국사회의 매체 정파성과 성소수자 담론 텍스트 분석」, 강신재 외(2019)

시청자나 독자가 어떤 정파성을 갖는 언론을 고르는가는 그들이 어떤 소식을 접하는가를 결정한다. 그러나 특정 사안에 대해 한쪽 입장만 내세우거나 소홀하게 다루는 것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정파성이 짙으면 그 언론이라는 거울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이 왜곡된다.

언론 윤리에 위배되는 정파적 보도

편향된 보도는 언론 윤리에도 어긋난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2항은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객관성과 과도한 정파성은 양립할 수 없다. 언론사의 과도한 정파성은 사실 보도에서까지 해당 언론사의 주관을 앞세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 3법을 ‘기업 규제’와 ‘공정 경제’로 완전히 다르게 규정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정파성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9조의 ‘갈등·차별 조장 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특히, 보수 또는 진보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중도인 사람들보다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 한국의 경우 자신과 같은 관점의 뉴스를 보는 수용자의 비율이 타 국가보다 높게 나타났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개인은 자신의 정치적 색채에 맞는 언론을 선택함과 동시에, 특정 언론의 정파적 논조에 다시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관점과 비슷한 기사를 읽는 소비자는 해당 사안에 관해 포괄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뿐더러, 타 집단에 관한 이해심을 갖기 어렵다. 편향된 기사는 편향된 시민을 만들고, 편향된 시민은 다시 편향된 기사를 읽음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계속 확대하게 만든다.

정파성,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합적 관점을 가진 기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좋은저널리즘연구회’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58.3%, 타임스는 40.7%가 두 개 이상의 관점을 담은 기사인 반면, 국내 언론사의 경우 해당 비율이 17%에 불과했다. 

정파성이 아니라 조금 더 꼼꼼하게 사실에 기반해 보도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한 언론사에서 다양한 관점의 여러 기사를 내보냄과 동시에, 조금 길어도 복합적 관점을 토대로 작성된 기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언론이 독자들의 생각을 결정하려 들지 말고, 독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공정경제, 기업규제 같은 용어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법의 어떤 부분이 공정한 것이고 어떤 부분이 기업에 규제로 다가오는지 종합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편집 :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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